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01)
로판 속 공무원 401화(402/451)
크펠로펜 제국 역사상 양위를 통해 새로운 황제가 즉위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덕분에 양위식을 준비 중인 궁내성은 이전 제국들의 양위 전례까지 뒤적이며 머리를 싸매는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가장 처절하게 구르고 있을 황실부장은 사임한 전 궁내성 장관이 원망스럽겠지.
그러나 궁내성이 고생하든 말든 감찰성 장관 내정자인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다. 만약 내가 군 소속이었다면 양위식 동안 완벽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고생했을 테고, 순수한 재무성 소속이었다면 양위식 예산 확보를 위해 피를 토했겠으나─ 이 상서로운 행사에 감찰이 끼어들 곳은 없다.
그러니 아카데미에서 평온하게 지내다가 양위식 날에 쓱 제도로 올라가면 될 줄 알았다.
“칼, 이 옷은 어때요?”
내 행복회로가 언제나 빗나간다는 걸 잠시 망각한 교만이었다.
멍한 눈으로 마르가 보여주는 예복을 바라봤다. 하필 이번 양위식 때 황태자의 황제 즉위뿐만 아니라, 황태손의 황태녀 책봉도 같이 한다고 한다. 황태손의 대부인 내가 그 자리에서 주목을 받는 건 피할 수 없는 숙명.
그렇기에 마르는 며칠 전부터 내가 입을 옷을 선별하고 있었다. 어디서 옷을 구해온 건지 회장실이 드레스룸처럼 변할 정도로.
그래, 며칠 전부터 이랬다. 오직 한 옷을 위해 며칠이나.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멋진 것 같습니다.”
일단 정신적 피로를 이겨내고 겨우 입을 열었다. 솔직히 내 눈에는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이렇게 말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아까 보여줬던 옷이에요.”
“죄송합니다.”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멍청하게도 블러핑에 걸렸다.
그러나 고개를 숙였음에도 마르의 시선이 느껴졌다. 정수리가 따끔거리는 것이 대체 무슨 감정을 담아 쳐다보고 있을지 두려울 정도다.
‘너무 정신을 놓고 있었나?’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너무 무신경한 반응이었다. 마르 입장에서는 남편이 제국의 귀족과 신민들, 더 나아가 대륙 각국의 사절단 앞에 나서게 되었으니 최대한 멋있는 모습으로 꾸며주고 싶었겠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멋지게 만들고 싶은 건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니까.
그걸 알면서도 방금 같은 반응을 보인 건 명확한 실책이지만, 나름 변명 거리는 있다. 평소에 감찰부 제복만 즐겨 입던 내가 며칠 동안 옷 한 벌을 고르고 있는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겠나. 하루면 버티겠는데 그 이상은 좀.
“아무래도 잠시 쉬었다 고르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말한 마르는 소파에 앉더니 자신의 무릎을 약하게 두드렸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기에 조심스레 다가가 마르의 무릎에 누웠다.
‘좋다.’
어떤 베개도 이것보다 부드럽지는 않을 것 같아.
“미안해요. 많이 귀찮았죠?”
“아닙니다. 마르랑 같이 고르니 오히려 즐거웠어요.”
몽롱해지려는 정신을 붙잡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정신적으로 피곤한 건 맞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마르도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고 있는 건데 어떻게 그런 마음을 품겠냐고.
그 대답에 마르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아버님과 오라버니도 이런 일이 생기면 귀찮아하셨어요. 그러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귀찮은 건 아니지만, 조금 피곤하기는 했습니다.”
진심을 담은 대답에 마르도 만족스럽다는 듯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장인어른과 형님도 이런 상황에 약했구나. 내가 엄살 부리는 건 아니라 다행이다.
“사실 아버님과 오라버니가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조금 답답했어요. 조금만 신경 써도 정말 멋질 텐데, 평소에 입던 게 편하다면서 아무거나 입고 다니거든요.”
무심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나도 늘 입던 옷이 편하고 좋더라.
“그래서 칼만큼은 꾸며주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칼도 마찬가지 같지만요.”
무슨 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리자, 마르는 허리를 숙이더니 내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욕심부려서 미안해요. 칼은 뭘 입어도 세상에서 제일 멋진데, 제가 그걸 잊고 있었네요.”
“마르도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소 부끄러운 칭찬을 그대로 돌려주니,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단독인가요? 아니면 공동?”
“…아무래도 공동으로…”
그 말에 더욱 마르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연인의 외모 칭찬도 공동이라는 전제를 붙여야 하다니, 이 무슨 기괴한 상황인가.
황금공이 존경스러워지는 날이다.
며칠 동안 시달린 것이 무색하게 양위식 때는 그냥 감찰부 제복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아무리 황태녀가 될 황태손의 대부라지만, 그래도 내 신분은 공무원이니까.
게다가 국가적 행사, 그것도 황실이 주인공인 행사에 일개 공무원이 단정한 제복이 아닌 사치스러운 옷을 입고 나오면 뭔가 좀 그렇기도 하고.
– 이런, 감찰성 장관의 제복이라도 미리 만들어둘 걸 그랬군. 내가 너무 무신경했어.
“일개 내정자가 어찌 장관의 옷을 입겠습니까. 마음만이라도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태자의 숨 쉬듯 자연스러운 도발에 태연히 대답했다.만약 평소였다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빡침을 느꼈겠지만, 곧 황제가 될 놈이 장관이니 뭐니 놀려봤자 대미지도 오지 않는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황제가 되지? 제국의 모든 업무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역할인데?
‘어후.’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난 그런 거 못 해.
– 역시 겸손하군. 장관은 뭇 신료들의 귀감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과찬이십니다, 전하.”
그 생각이 나도 모르게 눈에 담겼는지, 황태자는 급히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 주제로 이어가봤자 본인이 손해라는 걸 파악한 모양.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 내가 부황 폐하로부터 황관을 받으면 황태손도 황태녀로 책봉됨과 동시에 카바슐레이츠 대공이 될 것이다. 책봉 중 황태손은 대부인 장관이 안고 있도록.
“실로 영광이옵니다, 전하.”
그렇게 주제를 돌린 황태자는 황태손에 대한 일정을 언급했다. 즉위가 코앞인 황태자가 나한테 연락을 할 정도면 당연히 황태손에 관한 내용일 터. 예상했다.
아무튼 카바슐레이츠 대공. 비록 대공이라는 휘황찬란한 이름과 달리 영지가 없는 이름뿐인 작위지만, 황위 계승자가 갖는 작위라는 걸 생각하면 매우 고귀한 작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20대 초반인 나는 제국백, 20대 후반인 황태자는 황제가 되기 직전이다. 나름 구를 대로 구른 우리도 그 이름의 무게를 견디기 힘들 터인데, 아직 돌도 맞이하지 못한 아기가 황위 계승자라는 이름을 짊어지게 되었다.
‘너무 무거운 짐인데.’
안타깝다. 황손으로 태어난 순간부터 황위 계승자, 황제가 되는 건 당연한 절차이나─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렇다고 황태녀 임명을 미루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고.
– …장관이 황태손을 능히 지킬 것이라 믿네.
잠시 침묵한 황태자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품에서 황태녀로 책봉될 황태손을 잘 안고 지켜달라고.
그러나 황태자는 단순히 임명식 중 지켜달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나처럼 어리고 어린 황태손이 짊어질 무게를 걱정했기 때문에, 그 무게 때문에 힘들어할 황태손을 대부로서 지켜달라는 말이겠지.
“예, 마땅히 그리하겠습니다.”
그런 황태자를 향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황태자에게는 매일 십일장생 기도를 하고 있지만 황태손에게는 아무런 유감도 없다.오히려 대부로서 나름의 정과 책임감이 있다고 봐야겠지.
정작 황태손을 본 적은 몇 번 없으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돌볼 날이 압도적으로 길 거다.
***
양위식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사임한 전 궁내성 장관이 어느 정도 처리해둔 것도 있고, 재무성에서도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는지 수월하게 예산을 확보했다.
역시 미리 양위의 조짐을 보이는 것이 맞았다. 지금부터 준비했다면 내년이 돼서야 일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이제 끝인가.’
황실부장이 올린 보고서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이 다가오고 있다. 그저 막연하게만, 모든 일이 끝났으니 내 사명이 끝났다고만 생각하던 것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해냈군.’
창문 쪽으로 다가가 황궁을 내려다봤다. 드넓고도 웅장한 황궁의 전경이, 저 멀리 제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자리에 섰을 때는 황궁도, 제도도 칙칙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조용히 죽어가고 있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 제국은 희망을 품으며 나아갈 수 있─
“으음.”
다시 찾아온 두통 때문에 작게 침음을 흘리고 말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점점 잦아지는 두통은 도저히 호전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버텨라.’
그렇게 속으로 되뇌며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정말 마지막이다. 더 이상 홀로 짊어질 일도, 무리해서 나아갈 일도 없으니 조금만 버티면 된다.
조금, 아주 조금만 지나면 모든 걸 벗어두고 내려올 수 있다.그러면 이 두통도 내 곁을 떠나겠지.
‘…떠난다라.’
살며시 눈을 뜨며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창문 밖을 향한 시선이지만 그 방향을 조금 돌렸다.정면이 아닌 국립묘지가 있는 방향으로. 내 곁을 너무도 빨리 떠난 사람이 있는 곳으로.
한참이나 그 방향을 응시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황제인 나는 감히 그곳을 갈망할 자격이 없다.인간 코르부스가 아닌 황제 에이만카 16세는 감히 그럴 자격이 없다.
아니, 어쩌면 인간 코르부스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곧 만나러 가겠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품고 말았다. 황위에서 내려온 코르부스라면, 황제가 아닌 존재라면 그래도 만나러 가도 괜찮지 않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품고 있다.
“폐하.”
그러던 중 문밖에서 황실 기사단 부단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지. 벌써부터 약해지면 안 된다.
“들어오라.”
아직 나는─ 짐은 황제다.
사적인 감정 따위는 품지 말아야 할 황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