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06)
로판 속 공무원 406화(407/451)
황제가 해산령을 내렸다.
해산령이라고 하니 뭔가 거장하게 들리지만, 그냥 황제 옆에 붙어서 고생하던 공작들에게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한 것뿐이다. 즉위 기념 연회가 열리면 다시 황궁으로 와야 하지만 잠시라도 쉬는 게 어디냐.
그러나 나는 해산령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미 아카데미에는 대체 인력도 있지 않나. 연회가 끝날 때까지는 제도에 있도록.”
남들 다 보내면서 나는 붙들고 있겠다는 흉악한 선언에 반발하려고 했으나, 뒤이은 말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참에 감찰성 창립이 잘 진행 중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게 어떤가. 지금까지는 아카데미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마침 제도에 있으니.”
“…예, 폐하. 그리하겠나이다.”
분하지만 너무 완벽한 명분이었다. 내가 감찰성 창립 위원장 겸 장관 내정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는 이상, 그 명령에 반발하는 건 상황의 마지막 인사이동 명령을 정면에서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묵묵히 재무성 청사로 향했다. 장관 내정자라는 놈이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자마자 명령을 무시하면 후환이 두려우니까.
‘망할.’
씁쓸하다.보는 사람마다 나를 감찰성 장관이라 불러서 나도 잠시 헷갈렸으나, 아직 감찰성이라는 조직은 존재하지 않는다.공식적으로는 재무성 소속 감찰부, 특무성 소속 정보부 등으로 나누어진 상태다. 그 부서들을 통합하기 위해 준비 중인 단계지.
황제가 말한 것처럼 나는 아카데미에 있던 상황이라 차장과 정보부장이 창립 준비를 맡고 있었는데, 설마 올해 양위식이 터져서 제도로 올라오게 될 줄은 몰랐다.
‘처리할 건 다 처리해야지.’
아직 재무성 청사 내에 있는 감찰부에 발을 들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내 결재가 필요한 것들은 전부 처리하고 가자.
예를 들면 감찰성 조직 구성이라거나, 부장 같은 간부에는 누구를 임명한다거나─ 대충 생각해도 이래저래 많기는 하다.
‘일단 2과장은 최소 차장이다.’
어느 부가 되든 차장은 무조건 맡긴다. 그보다 위면 더 좋다.
내 사직서를 건 다짐이다.
***
사람의 고통이 극에 이르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는 한다. 높은 업무 강도, 잦은 야근,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침대 등.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사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사람이 정말 고통스러우면 죽을 것 같다는 말이 아닌 다른 말이 나온다.
‘살려줘…’
생존을 갈구하는 말이 나온다. 이러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은 처절한 단말마가 나오게 한다.
펜을 쥔 채 파르르 떨리는 손이 서류 위에서 날갯짓을 한다. 서류에 적인 글자는 마치 데뷔탕트를 치르는 영애들처럼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다.
망했다. 손도 눈도 서서히 맛이 가기 시작했다.
‘시리는?’
무심코 시리에게 시선을 돌리자 시리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시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제법 많은 수의 동기나 선배들도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이 데미안 코너, 감찰부장님의 은혜로 감찰부에 들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고 자부하지만─ 요즘 들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흔들리고 있다.
‘분명 천국 같은 곳이었는데.’
올해 초, 감찰부의 신입 관료가 된 이후로 힘들지만 보람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감찰부라는 실세 중의 실세 부서에 속했기에 업무 강도가 높은 건 당연하지만,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각오한 일이었다.
게다가 딱딱하고 음침한 대외적 이미지와 달리 감찰부 내부 분위기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기존 선배 관료들이 막 들어온 신입을 다독이고 정성을 다해 가르쳐 줄 정도로.
하지만 갑작스러운 감찰성 창립은 감찰부를 뒤엎기에 충분했다.
‘지옥이다.’
짧은 명령 한 마디로 인해 천국은 순식간에 지옥이 돼버렸다.
기존 감찰부 업무, 새로 감찰성에 통합될 부서와 부대의 현황 파악, 여러 부서를 조화롭게 통합하는 과정 등. 미친 난이도와 양의 업무가 감찰부에 쏠렸다. 그 업무는 노련한 선배들도, 열정 넘치는 신입들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사무를 담당하는 감찰부 차장실은 물론, 각 과에서 서류 좀 본다 싶은 인력은 전부 동원됐겠는가.
‘세상에.’
슬며시 눈을 뜨며 차장님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경이로움을 느꼈다.차장실에 있는 대다수의 인원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차장님은 아무런 동요 없이 빠른 속도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심지어 다른 관료가 가지고 있던 서류도 자연스레 가져가셨다. 경이로움과 자비로움을 동시에 느꼈다.
“감찰부는 차장님 없으면 안 돌아간다. 부장님이 장기 출장 중이신데도 잡음 하나 없는 거 보면 알겠지만.”
문득 몇 달 전, 한 선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차장님은 현장에서 뛰신 경험도 많아 다른 과도 차장실에는 협조적이지. 괜히 차장실이 0과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그때는 차장실에 속한 자부심으로 인해 다소 과장이 들어간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과장이 아닌 겸손이었다.
진짜다. 진짜 감찰부는 차장님이 없었으면 망했을 거다. 부장님이라는 거물이 버티고 계시니 감찰부라는 껍데기는 멀쩡할 수 있겠으나 그 내부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
‘차장님이 떠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진심으로 두려워졌다. 현 감찰부는 새로 만들어질 감찰성 소속으로 남기는 하겠으나, 정작 차장님은 부장님을 따라 장관 비서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 차장실은─ 부장과 차장을 잃은 감찰부는 어떻게 되는 거지?
혹시 지금 같은 업무를 차장님 없이 몸을 갈아가며─
“차장실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갑자기 차장실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자연스레 차장실에 있던 관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으로 쏠렸다.
그리고 서류만 보고 있던 차장님도 그 목소리에 반응했는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장님?”
“갑자기 와서 미안하다.”
부장님이 오셨다.
죽어가던 관료들은 부장님이 오자마자 빳빳하게 허리를 세우며 진지한 표정으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시늉에 불과하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미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지만, 최고 책임자인 부장님 앞에서 풀린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본능의 결과일 뿐이니.
“당분간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 폐하께서 연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제도에 남아있으라 하셔서.”
그 눈물겨운 현장 속에서 부장님은 덤덤히 차장님과 대화 중이셨다.
‘출근?’
애석하게도 내용은 덤덤하지 못했다.
부장님이 감찰부에 출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허나 감찰성 창립이 결정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창립 업무는 차장님이 주도하셨다. 이 상황에서 부장님이 개입하셔서 부장님이 원하는 방식대로 업무를 주도한다면 지금까지 했던 일들이 물거품이 되거나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게다가 명분적으로도 감찰성 창립 위원장인 부장님의 의견이 최우선 되어야 하는 게 맞다.
‘…어쩌지?’
다시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까지 한 일이 쓰레기가 된다면 미칠 수도 있─
“혹시 막히는 문제라도 있나?”
“다행히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럼 그대로 해. 내가 건드는 것보단 차장이 하는 게 낫지.”
는데…?
‘뭐지?’
차장님의 어깨를 토닥이는 부장님을 보니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무려 성급 행정부서 창립에 관한 일을 ‘네가 하는 게 낫다.’ 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나?아직 관료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이번 일에 개입하면 얼마나 많은 권한이 딸려올지 짐작할 수 있다. 그에 비례한 고생도 같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권한을 노릴 사람은 많다.
예를 들면 통폐합될 각 부서의 지분을 어느 정도로 조율하느냐, 급격히 늘어날 정원을 누구로 채우느냐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그걸 포기한다고?’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몸과 영혼을 갈아가며 일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나, 부장님 입장에서는 우리를 더 굴리기만 하면 바로 얻을 수 있는 권한인데?
“아, 내 결재가 필요한 건?”
“꼭 부장님이 처리해야 할 일들만 남았습니다. 휘하 부서와 간부 구성은 위원장의 권한이라 저로서는 정할 수 없습니다.”
“딱 좋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부장님은 평온하게 대화를 이어가셨다. 그러고는 차장님 책상에 있던 이면지 중 하나를 골라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다.
“부는 3개만 만들어. 지금 감찰부는 집행부, 정보부는 그대로, 특무성 소속 부대들은 통합해서 특임부.”
“예, 알겠습니다.”
“감찰부에 있던 정보 관련 과는 다 정보부로 붙이고. 그래야 후임 부장이 일할 때 편하지.”
현 감찰부를 철저히 행동부대로 만들겠다는 명령에 차장님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확실히 감찰부─ 아니, 집행부가 무력에만 치중한 부대가 되면 사무 부담이 급격하게 줄기는 할 거다. 현재 감찰부의 업무 중 심문을 담당하는 1과와 정보를 담당하는 2과의 지분이 적지 않으니까.
“차장실 전원은 장관실에 합류한다. 괜찮지?”
“영광입니다.”
마지막에 덧붙여진 말에 환호를 지를 뻔했다.
부하들의 업무를 건드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신용하시며, 부하들이 원하는 곳으로 발령을 내준다.
‘참된 상사…!’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부장님은 실로 자비롭고 은혜로운 상사시다.
***
이면지에 조직 구성 가안을 적은 뒤 차장에게 건넸다. 재무성도 감찰부를 빼면 4개 부로 이루어져 있으니, 신생 성에 부가 3개나 있으면 남들이 보기에도 충분할 거다.
‘정보차장을 2과장으로 하면 되겠네.’
흡족하다. 정보부가 있으니 2과장을 쑤셔 넣기에 딱 맞는다.
비록 기존 정보차장이 있기는 하나, 정보차장은 감찰성에 합류하지 않고 특무성이 새로 만들 첩보부 소속으로 남는다고 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 대가로 2과장을 승진시킬 수 있으니 넘어갈 수 있다.
깜짝 승진에 기뻐할 2과장의 모습을 생각하니 절로 흐뭇해진다. 세상에 나 같은 상사가 얼마나 있을까.
‘다른 애들도 다 올려야지.’
대충 3과장은 집행부장, 5과장은 집행차장, 페넬리아는 특임부장.
‘완벽하다.’
이 정도면 하늘이 애들 승진시키라고 자리를 마련해준 것 같은 수준이다.
대신 에르제베트는 올라갈 자리가 애매한데, 다행히 급한 문제는 아니니 일단은 넘어가자. 언젠가는 괜찮은 자리가 생길 테니.
‘음?’
그렇게 만족감이 가슴을 가득 채우고 나서야 차장실의 처절한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평범하게 업무 중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뭔 좀비 소굴이 따로 없다. 내가 막 감찰부장이 되었을 때 분위기도 이랬었지. 업무는 미친 듯이 쏟아지는데 인력은 제한이 있던 그 시절.
“다들 수고가 많군.”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넌지시 말을 꺼내자 차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있던 공무원이 척수반사적으로 외쳤다.
그 모습을 보니 더욱 측은해졌다. 속으로는 죽어가고 있어도 겉으로는 웃어야 하는 가련한 인생 아닌가. 나와 다를 것이 없다.
“대은화라도 몇 개씩 줘. 내 돈으로 메꿀 테니 예산은 걱정 말고.”
슬쩍 차장에게 말하자 좀비들의 안색이 다소 밝아졌다.
미안하다. 사실 너희한테 절실한 게 돈이 아니라 휴식이라는 건 잘 알아.
‘그건 나도 못 줘…’
그런데 나도 황제한테 굴려지고 있는 입장이라 남한테 휴가 같은 거 못 줘. 가능했으면 내가 먼저 썼지.
그러니 미안하다. 돈이라도 받고 열심히 일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