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08)
로판 속 공무원 408화(409/451)
감찰성 창립이라는 환상적인 명분 때문에 제도 탈출에는 실패했으나, 그나마 황제 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소환을 당했다. 개새끼가 따로 없다.
– 장관이 보낸 가안은 확인했네. 이대로 임명해도 무방할 것 같은데 장관의 생각은 어떠한가?
“현재로서는 그보다 좋은 방안이 없을 듯합니다.”
– 좋다. 명단에 적힌 자들을 내정자로 삼을 터이니, 장관은 그들과 함께 황궁으로 입궐하라.
심지어 나만 소환하는 게 아니라 드래곤볼처럼 흩어져있는 간부 내정자들을 데려오라는 지시까지 덧붙이더라.
귀찮고 번거로운 지시다. 아직 감찰성으로 통합된 상태가 아니라 간부 내정자들은 재무성 청사와 특무성 청사, 혹은 제도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반들을 하나하나 수거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폐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명단 중에는 양육 휴가 중인 관료도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2과장은 양육 휴가라는 강력한 방패를 들고 있는 상태다. 아무리 나라도 휴가─ 그것도 양육 휴가 중인 놈을 끄집어 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막말로 2과장이 황제의 소환령에 끌려가면 ‘양육 휴가 중에도 황명이 떨어지면 움직여야 한다.’ 라는 선례가 생긴다고. 앞으로 내가 낳을 자식이 몇인데 그딴 선례가 생기면 어떡해.
– 양육 휴가?
“예, 폐하.”
다행히 황제도 양육 휴가라는 말에 동요했는지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었다. 본인도 황태녀를 키우는 입장인 만큼 양육이라는 단어에 흔들린 것이겠지.
허나 거기서 멈췄다면 황제를 개새끼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 …자식을 돌보는 것만큼 중한 일은 없으나, 하루만 출근하라고 전하도록. 내정자 임명을 마치면 바로 퇴근해도 상관없으니.
잠시 침묵하던 황제는 기어코 양육 휴가라는 특급 방패를 관통해버렸다.역시 이 새끼는 개새끼가 맞다.
– 서로 다른 부서들이 통합되는 만큼 위계질서가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 급하게 질서를 세우는 것보다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간부들을 내정하는 것이 좋을 터.
물론 휴가를 무시한 명령은 황제가 생각해도 너무 가혹한 명령이었는지 급하게 변명을 하기는 했다만, 명령을 내린 순간부터 그 어떠한 변명도 악어의 눈물에 불과하다.
‘황제가 법을 어기면 누구한테 항의해야 하나.’
일단 제국의회나 대법원은 없는 셈 치자. 그쪽에 항의를 하면 ‘폐하께서 가슴 아픈 결단을 내리시기 전에 신하로서 자진 출근하는 것이 도리.’ 라는 미친 발언을 할 수도 있으니.
‘망할.’
작게 한숨을 내쉬며 통신구를 품 속에 넣었다. 가혹하고 무자비한 명령을 내린 누구 때문에, 결국내 손으로 양육 휴가를 즐기는 부하를 끄집어 와야 했다.
미안하다. 내가 준비한 선물은 승진뿐이다. 설마 깜짝 출근까지 주게 될 줄은 몰랐지.
진짜 미안하다.
감찰성 집행부장 내정자, 현 감찰부 3과장 레너드 호델라.
감찰성집행차장 내정자, 현 감찰부 5과장 마르실리오 비아고.
감찰성정보부장 내정자, 현 정보부장 외젠 클루아 오브 히스트.
감찰성정보차장 내정자, 현 감찰부 2과장 라파예트 바론.
감찰성특임부장 내정자, 현 묵광대장 페넬리아 유스.
감찰성특임차장 내정자, 현 염화 마법사단장 니콜라스 헤단.
이중 2과장을 제외한 다른 간부 내정자들은 빠르게 소집할 수 있었다.
사실 잡음이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 정보부장은 변동 없이 원래 역할을 유임하는 거고, 페넬리아와 5과장은 명령에 충실한 편이다. 특임차장이 된 양반은 승진했다는 사실에 기꺼워했으니 논할 것도 없다.
“아니, 제가 왜 부장입니까! 제 나이에 그런 중책을 맡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내 나이에 장관이 되는 건 말이 되고?”
그 와중에 집행부장 내정자인 3과장이 아주 소소한 반항을 하기도 했으나,
“그리고 간부 명단이 폐하께 올라가서 이제는 장관 명령이 아니라 황명이야. 황명 어긴 관료가 되고 싶으면 해보든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위대한 황명 앞에 빠르게 굴복했다. 실로 완벽한 소집이다.
“폐하를 뵙습니다.”
“””폐하를 뵙습니다.”””
덕분에 나를 포함하여 일곱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 황제 앞에 허리를 숙였다.아마 황제 눈에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드래곤볼로 보이겠지. 명령만 내리면 어지간한 일들을 처리해 주는 드래곤볼.
원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소원을 들어줬다고 흩어질 일이 없다는 것이다. 만능이네 이거.
“고개를 들라.”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는 황제가 보였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A++급 한우를 보는 사육자의 눈빛이 얼핏 느껴진다.
“아직 감찰성이 정식으로 창립된 것은 아니나, 감찰성을 이끌어 갈 인재들을 보니 기쁘기 그지 없다.”
“황송하옵나이다, 폐하.”
“또한 경들은 상황께서 짐과 제국을 위해 안배한 인재기도 하니, 짐의 기대 역시 매우 크다.”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 상황이 물려준 귀한 노예들이니 알차게 굴리겠다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폐하의 신뢰에 반드시 보답하겠나이다.”
허나 겉으로 듣기에는 평범한 치하의 말이니 애써 의례적인 답을 돌려줬다.
그러자 황제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 대만 패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정도다.
“그래, 장관. 감찰성은 3개 부로 구성한다고 했었나?”
“예, 폐하. 기존 감찰부의 업무를 수행할 집행부, 감찰부의 2개 과와 통합할 정보부, 특무성 무력 부대로 이루어진 특임부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다행히 충동이 커지기 전에 순수 업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역적 루트를 밟을 뻔했어.
“허면 집행부의 규모가 이전에 비해 작아지겠군.내 예산을 더 보낼 터이니 인력 확충에 힘쓰게.”
“폐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걸렸던 점을 해결해 주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4개 과 중 2개 과가 사라지는 집행부가 잘 굴러갈까 걱정이 많았는데, 황제가 직접 예산 지원을 약속했으면 걱정할 거 없다.
3과장도 자신이 관리할 부가 황제의 관심 속에서 커질 테니 행복할 거다. 아무렴.
“이런, 바쁜 관료들을 두고 잡담이 길었군. 바로 임명식을 갖도록 하지.”
그렇게 말한 황제는 내 뒤에 있던 간부들에게 다가갔다. 이윽고 토닥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직접 어깨를 두드리며 인사라도 나누는 모양.
“장관이 젊어서 그런지 간부들도 젊은 건가? 활력 넘치는 업무를 기대하지.”
‘시발.’
이상하다. 분명 간부들한테 하는 말인데 나한테 하는 말인 것 같다.
아직 젊은 놈이니 화끈하게 굴리겠다는 선전포고처럼 들렸다.
***
감찰성 장관이 데려온 내정자들을 보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성급 부서 간부들이 이렇게 젊다니.’
20대 황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황제는 혈연의 영향을 짙게 받는 자리기에 20대가 아닌 2살 황제가 생길 수도 있다.
허나 관료들은 아니다. 귀족 사회가 아닌 관료 사회에서 혈연이 주는 영향은 적은 편이다. 가문이 좋으면 승진에 유리할 수 있으나, 가문이 좋은 관료는 한둘이 아니지 않나. 그렇기에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능력이다. 현 구휼성 장관이 고아 출신인 것처럼.
물론 그걸 감안해도 감찰성 간부들은 너무 파격적이다. 가장 연장자인 정보부장마저 부장급 관료 전체를 보면 나름 정정한 편이다.
‘구휼성 장관은 관료 생활이라도 길었는데.’
하지만 어쩌겠나. 당장 장관부터가 파격의 상징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장관이 고른 간부들이 젊다고 핀잔을 줄 생각은 없다. 오히려 젊을수록 오래 쓸… 아니, 오래 일할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군.’
그리고 이런 파격적 인사 명령은 관료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다. 능력과 야망이 있지만 노련한 상사들에게 막혀 숨을 죽이고 있는 관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
연륜의 벽이 높고도 높지만, 아예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는 희망을.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지.”
“예, 폐하! 반드시 폐하의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특임차장 내정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독려한 후, 다시 장관에게 시선을 돌렸다.
“한창 분주할 관료들을 잡고 있는 건 도리가 아니니, 장관만 남고 돌아가도 좋다.”
그 말에 장관의 눈동자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내정자 임명도 마쳤으니 전부 돌려보내도 무방하기는 하나─ 그 전부에 장관은 포함되지 않는다. 딱히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감찰성 창립은 감찰차장이 주도 중이니 거리낄 것도 없다.
‘마침 물어볼 것도 있고.’
이쯤 되면 나도 신기하다. 어떻게 볼 때마다 시킬 일이나 물어볼 것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
치가 떨린다. 애착 장난감이 황궁에 왔으니 곁에 두려는 만행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망할 놈아, 이럴 거면 나한테 황궁 시종 연봉이라도 줘라. 이게 시종이 아니면 대체 뭐가 시종인데.
그렇게 차오르던 울분과 고통은 뒤이은 황제의 말에 더욱 강렬해졌다.
“장관, 영지 관리는 어떻게 되고 있나?”
‘이 새끼가?’
갑자기 영지 얘기는 왜 꺼내는 거지? 곧 제국백 작위를 계승할 놈이라고 놀리는 건가?
순간 버퍼링에 걸려 바로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황제는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픽 웃음을 흘렸다.
“물려받을 영지 말고, 가지고 있는 영지 말일세.”
…
‘아.’
그제야 황제가 말하는 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서서히 머릿속에서 잊히던 지역을 떠올릴 수 있었다.
‘위리디아가 있었지 참.’
위리디아 백작위를 받은 건 기억하고 있는데 정작 위리디아 백작령을 잊고 있었다.분명 막 종전하고 아카데미에 복귀했을 때만 해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직할령 시절부터 위리디아를 관리한 지방관들이 있어 이상은 없지만, 그래도 장관의 영지 아닌가.”
“…송구하옵나이다.”
귀족에게 하사한 대영지에 아직도 황실의 지방관들이 일하고 있는 기묘한 상황.변명할 여지조차 없는 사태라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황실의 녹을 받는 지방관들이 황실 직할령이 아닌 곳을 관리하고 있다는 것부터 상당한 배려니까. 황실 입장에서는 자기 돈을 주며 남의 땅을 관리해주고 있던 것이다.
망할, 요즘 사건들이 연달아 터져서 그런가. 어떻게 영지를 까먹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