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1)
제 41화
순리를 거스르는 시체 – 4
침묵 속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기절한 것처럼 널브러진 버러지 하나를 제외해도 정보를 토할 것들은 많이 남아 있다. 물론 수장만 알고 있는 기밀 정보가 있을 수도 있으나, 상관없다. 이 정도 숫자면 질에서 다소 떨어져도 무방하다.
세번째 영광의 배후자나 협력자를 수장만 알고 있어도 괜찮다. 어차피 아펠스 부흥이라는 망상에 미쳐 제국에 송곳니를 보인 것들이다. 반드시 다른 수작을 부릴 것이고, 바로 찾아내 죽여버리면 되는 거니까.
그래,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죽여도 문제 없지.’
결론이 나자 버러지를 향해 걸어갔다. 양팔을 잡고 있던 묵광대원 둘이 황급히 물러났고, 1과장과 4과장도 내 뒤에 따라 붙었다.
기절한 놈을 깨우기 위해 머리를 붙잡아 올렸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까뒤집혀 흰자만 보이는 눈, 뭉개져서 흔적도 보이지 않는 하관. 그리고 이목구비에서는 피가 흘렀다.
“죽었군.”
내 말에 앞에 있던 묵광대원의 몸이 떨렸다. 이미 죽었다. 아무래도 4과장이 급하게 걷어차느라 힘조절에 실패한 것 같은데.
잠시 뒤집힌 버러지의 눈을 바라보다가 손에 힘을 주어 머리를 터뜨렸다. 죽었으니 의미없는 일이지만, 이 좆같은 심정은 이렇게라도 풀어야 할 것 같다.
손에 묻은 오물을 대충 털어내고 뒤를 돌아보자 어쩔 줄 몰라하는 4과장과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 1과장이 보였다.
‘이를 어쩐다.’
1과장은 고의적으로 고문을 느리게 진행한 정황이 있고, 4과장은 이유가 어떻든 주요 심문 대상을 무단으로 사살했다. 문제 삼는다면 충분히 질책할 수 있는 일들이다.
둘을 번갈아 보다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몸을 떨며 고개를 푹 숙이는 모습이 영 마음에 걸린다. 평소라면 별일 아니다. 1과장이 아펠스 부흥군이라는 새로운 장난감에 정신이 팔릴 건 예상하고 있었고, 4과장이 나와 관련된 일에 적극적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1과장을 진즉에 다그치지 않은 것도 나고, 4과장이 튀어나갈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던 것도 나다. 그래놓고 이 둘을 질책하는 건 조금 추하지.
비록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지만─
‘씨발.’
다시 생각해도 좆같다. 답답한 심정에 마른 세수를 하려다 아직 손이 축축하여 멈췄더니, 슬쩍슬쩍 내 눈치를 보던 4과장이 조심스럽게 손수건을 건넸다.
“부장님, 괜찮으시다면 이거라도…”
목소리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손수건을 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걸 봐버려서 질책할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 운이 없었다. 방금 일은 그저 운이 없었던 거다.
“고맙다.”
4과장의 손수건으로 손을 닦고 다시 건네주었다. 그리고 마음을 풀었다는 의미로 어깨도 몇 번 두드려줬고.
“그래도 나 생각해주는 사람은 페넬리아밖에 없네. 고맙다, 대신 화내줘서.”
내가 할 일을 가져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사의 분노 포인트에 대신 나서서 처리해 준 것이니까. 선의로 한 일이니 넘어갈 수 있지.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4과장을 뒤로 하고 1과장에게 향했다. 아까보다 심하게 떠는 것이 둘이 받을 분노가 본인 혼자에게 쏠릴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 걱정 마라, 너도 넘어갈 테니.
“에르제베트?”
“네, 네! 부장님!”
기합이 잔뜩 들어가 부동자세로 외치는 1과장의 모습은 조금 재밌었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4과장처럼 어깨를 두드려줬다.
“아까는 그냥 실수였어. 그렇지?”
“아, 아니에요. 제가 더 빨리 했어야 했는데…”
“실수야. 에르제베트는 지금까지 잘했으니까, 가끔 실수 정도야 할 수 있지.”
그렇게 위로를 해주자 몸의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렇게 부하 생각해주는 상사가 어디 있겠냐.
“이번에는 잘 할 수 있지?”
“네!”
신병 마냥 빡쎄게 대답하는 모습에 조금은 흡족해졌다.
“생각해보니까, 북방 일을 알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배후나 협력자가 있는 것 같거든.”
“전부 알아내겠습니다!”
“좋아, 잘 하자. 알겠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이번에는 확실히 해낼 것 같다. 진심인 1과장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으니까.
“그럼 난 잠깐 부스에 다녀올게. 오늘 운영 시간 끝나기 전에 얼굴은 잠깐 비춰야지.”
볼 사람이 있다며 나간 사람이 부스 문 닫을 시간까지 오지 않는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나 혼자라도 슬쩍 가서 얼굴은 비추고 다시 숲으로 복귀해야지.
***
아카데미로 향하는 부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 부장님이 내 어깨를 만져주셨을 때, 1과장이라는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셨을 때. 이보다 더 심장이 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친듯이 요동쳤다.
헤헤…
‘좆됐다.’
진짜 좆됐다.
속으로 꾹 눌러 참고 계시는 거지, 제대로 꼭지가 돌아버리셨다.
전장에서 구른 사람이면 대부분 자신만의 징크스를 가지게 된다. 부장님도 그 대부분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였고. 부장님은 절대 관료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공석에서도, 사석에서도 무조건 직책으로 불렀다. 부장님의 징크스는 이름을 부른다는 것 자체였으니까.
북방에서의 2년 동안 이름을 부르며 허물없이 지냈던 사람들을 많이 잃었으니까. 카간을, 역천자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결사대 중에 제도로 생환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부장님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부장님이 직책이 아닌 이름으로 불렀다는 건, 그 징크스를 미처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진짜 제대로 빡치셨을 때만 그랬는데.
‘개새끼.’
머리가 사라진 세번째 영광의 단장을 노려봤다. 새로운 장난감이라 나름 예쁘게 봐줬는데, 이런 만행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다행히 부장님이 화를 표출하지 않으셔서 망정이지. 아니, 오히려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억눌러서 더 무섭기는 한데…
“페넬리아. 괜찮아?”
머리 없는 개새끼를 향하던 시선을 페넬리아에게 돌렸다. 4과를 특히나 총애했던 부장님이 4과장도 이름으로 불렀다. 페넬리아가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지금도 고개를 숙이며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으니까. 부장님만 보고 살아가는 페넬리아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겠지. 살짝 한숨을 내쉬고 위로를 하기 위해 다가갔다.
“부장님이나밖에없다고해주셨어부장님이나밖에없다고해주셨어부장님이고맙다고해주셨어부장님이나를이름으로불러주셨어부장님이나밖에없다고해주…”
“아.”
괜히 걱정한 것 같다.
조금 무서운 기세로 중얼거리는 페넬리아를 뒤로 하고 다른 세번째 영광에게 향했다.
아직 얼어있는 묵광대원 몇 명에게 손짓을 하니 금방 뒤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는지 발걸음에 조금 힘이 실렸다. 얘네도 화난 것 같다. 하긴, 부장님 면전에서 부장님을 욕하는 미친 놈을 봤으니.
“저거 가져와.”
“예.”
적당히 기절해있는 놈을 지목하니 곧장 달려가 내 앞으로 끌고 왔다. 깨어있어야 심문이 가능하니 뺨을 후려쳐 강제로 깨웠고.
비명을 지르려 입을 벌리자마자 묵광대원이 바로 재갈을 물렸다. 응, 역시 얘네가 눈치가 빨라서 같이 일하기에 좋아.
“원래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 했는데, 너희 대장이 우리한테 큰 실례를 저질렀거든. 유감이야.”
품 속에서 단검을 꺼내 말하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얘한테 유감이라고 하는 거지? 오히려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 건 우린데? 오히려 대장 관리를 못한 얘도 죄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딱히 유감은 아니네.”
편한 마음으로 해도 되겠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단검의 날 상태를 확인하고, 눈 앞에 있는 세번째 영광의 살을 조금 발라냈다.
너는 몇 번 발라낼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래오래 버텨줘.
***
개인적인 분노를 부하에게 쏟아내는 민폐 상사가 되는 건 피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예전보다는 더 인내심이 생긴 것 같기는 하다. 예전에는 진짜 듣자마자 들이박고 그랬는데.
“동료 핏값으로 출세한 놈이.”
계속 머리를 맴도는 말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인내심이 생겨도 좆같은 건 어쩔 수 없다. 더 좆같은 건 그런 말을 들어도 부정할 수가 없다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래도 애써 털어내며 아카데미에 도착하니 뒷정리를 하고 있는 부스들이 보였다. 이런, 조금 늦었나. 속도를 올려 제과 동아리 부스까지 가니 그곳도 비어 있었다. 확실히 늦은 게 맞네.
“아, 오라버니!”
다시 숲으로 돌아가려니 뒤에서 루이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는지 쑥 고개를 내미는 모습.
“뭐야, 왜 아직도 있어?”
“그래도 제가 부장인데, 오라버니 오실 때까지는 기다려야죠.”
히히 웃으며 말하는 루이제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무작정 기다려.
“다른 애들은? 그냥 가려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
“삼국에서 오신 분들이 데려갔어요.”
루이제는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 간단한 일을 위해 빌라르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느껴졌다. 루이제를 두고 그것들을 숙소로 데려가는 건 힘든 일이었겠지. 그 와중에 에리히와 아인테르도 끌려간 건 누구 작품이지? 둘을 남길 수 없는 외국 3인방의 견제인가?
‘견제는 잘 하네.’
누구도 앞서 나가지 못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앞서 나가게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 밸런스 맞는 새끼들.
“오라버니, 잠시 손 좀 주실래요?”
“손을?”
별 생각 없이 손을 내밀었다가 뒤늦게 아차 싶었다. 닦기는 했지만 아직 피냄새가 뱄을 수도 있는데, 좋은 거만 보고 자라야 할 애한테 썩 좋은 냄새는 아니다. 하지만 루이제는 신경 쓰지 않고 작은 주머니를 내 손 위에 올렸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나는 것 같네.
“이번에는 많이 달게 만들었어요!”
“그래?”
“피곤할 때는 단 걸 먹는 게 좋대요.”
걱정스레 말하는 루이제의 말에 내 몸이 잠시 굳었다.
“오라버니가 많이 피곤해 보여서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
“그으… 오라버니?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헤헤…”
머쓱한 듯 웃는 모습을 보다가 손에 든 주머니를 내려다봤다. 단 음식이 피곤할 때 좋다라, 많이 들은 말이지.
“고마워. 잘 먹을게.”
“네!”
밝게 웃는 루이제에게 나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루이제가 숙소로 돌아가는 걸 확인하고, 나도 숲으로 복귀하기 위해 막 아카데미를 빠져나왔다.
‘피곤할 때는 단 게 좋다, 라.’
그리고 루이제가 준 주머니를 열어 안에 있던 쿠키를 하나 꺼냈다. 모양이 깔끔한 것이 루이제가 신경 써서 만든 쿠키 같다. 그때는 이렇게 깔끔한 건 상상도 못했지.
“칼! 내가 좋은 거 챙겨왔다?”
“짜잔! 어때? 북방에서 무우우우-려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딨겠어!”
“너 거울은 보고 다녀?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데.”
“피곤할 때는 단 게 최고야! 너 생각해서 주는 거니까 먹어!”
“그리고 어린 녀석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이 누나한테 말해!”
아.
“시발.”
하필 버러지 새끼한테 그런 얘기를 들은 직후라 그런지, 아니면 루이제에게 비슷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갑자기 예전 일이 떠올랐다.
잠시 루이제의 쿠키를 내려다보다 조심스레 베어물었다.
“맛있네.”
그래, 맛있다. 루이제의 쿠키는 맛있다.
북방에서 먹었던 쿠키도 맛있었으니까. 내가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이었으니까.
그러니 루이제의 쿠키도 맛있다. 북방에서 먹었던 그때처럼.
그래, 분명 루이제의 쿠키도 맛있을 거다. 그럴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비록 우리의 육체는 어린이를 벗어났지만, 마음은 순수했던 어린이 시절의 추억을 담고 있으니 우리도 어린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님 말고요.
그러고보니 어느 독자님께서 의견을 내주셨습니다. 등장 인물의 프로필을 공지 사항으로 올려줄 수 있냐고 물어보셨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저도 풀네임은 조금 헷갈릴 때가 있어서 있으면 좋죠.
공모전 중에 설정을 종합한 글을 올려도 괜찮나 조심스럽지만, 공모전 규칙을 보니 이미지를 넣는 것만 아니면 문제 없을 것 같기는 합니다. 아예 등장 인물만이 아니라 작중 언급된 설정을 간단히 종합해서 올려보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