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2)
제 42화
우리 박람회 정상영업합니다 – 1
쿠키 주머니를 든 채 한참을 가만히 서있었다. 이미 2년이나 지난 일이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전쟁 중에 이런저런 일이 터지는 것도, 누군가 죽는 것도 당연한 일인데. 이제 슬슬 털어내려고 해도 생각처럼 쉽게 털어낼 수가 없다.
그래도 언젠가는 털어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쿠키 주머니를 내려다보다가 품 속에 넣고 다시 숲으로 이동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끝내야 내일 박람회도 무사히 진행할 테니까.
조금 발걸음을 서둘러 숲에 도착하자 1과장과 4과장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심문을 마친 모양. 역시 마음 먹고 하면 못하는 게 없는 녀석이다.
“끝났어?”
“네, 알고 있는 건 전부 토하게 했어요.”
1과장과 4과장은 아직도 긴장했는지 쭈뼛거리는 모습이었다. 이건 내가 괜찮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니 그냥 둬야지. 상관이 나 화 안났어, 라고 해봤자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포로로 잡은 세번째 영광의 상태를 훑어보자 하나같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사지는 기본적으로 부족했으며, 몇 명은 살점이 꽤나 발라졌다. 야외에서 능지까지 했네? 그럼 확보한 정보도 믿을만하다.
“특이사항은?”
“이상한 걸 가지고 있었어요.”
“이상한 거?”
내 물음에 1과장이 아닌 4과장이 종이를 내밀었다. 하, 이 새끼들 봐라.
“폭발 스크롤이군.”
“예. 광산용인 것 같습니다.”
폭발 마법이 저장된 일회용 스크롤. 보통 광산에서 작업을 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그 파괴력으로 인해 제도의 마탑에서만 생산하며 신원이 확실한 인물이나 단체에게 공급한다.
만약 이 스크롤이 아카데미 한복판에서 터졌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참사가 벌여졌겠지. 물론 지금은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아닌, 이 스크롤이 일개 반군의 손에 들어간 연유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폭발 스크롤은 지방관이나 영주, 혹은 광산 책임자에게 공급된다. 누구라고 하든 제국에 충성을 바쳐야 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반군에게 이 스크롤을 흘렸다면 명백한 반역 행위다.
“자살 희망자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스크롤은 신원이 확실한 인물이나 단체에게 공급하고, 누구에게 얼마나 공급했는지도 기록에 남는다. 그러니 그 기록을 가지고 전부 털면 범인을 찾을 수 있다. 공급 기록과 사용 기록이 불일치하거나 어색한 점이 있으면 그 새끼가 범인이니까.
진짜 반역자들은 기본적으로 지능이 부족한가, 금방 적발될 수 있는 일에 왜 인생을 배팅하는 건지 모르겠다.
잠시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사항으로 스크롤만 언급하는 걸 보면 딱히 쓸만한 정보가 나온 건 아닌 것 같고, 스크롤이 유출된 것이 확인되었으니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끝났네. 다들 수고했다.”
이제 현장에서 처리할 일은 없으니, 남은 건 중앙으로 토스하면 된다. 아직 숨이 붙은 놈들은 특무성에 인계하면 알아서 써먹을 테고, 스크롤 유출 문제도 눈이 뒤집혀서 찾아내겠지.
마탑에서 만든 물건이 이상한 용도에 쓰일 뻔했다는 걸 마종공이 알면 격노할 것이다. 특무성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마종공의 분노를 받을 범인을 찾아 제물로 삼고 싶을 거고. 고생 좀 하겠네.
물론 특무성에서 범인을 찾으면 다시 감찰부로 토스하겠지만. 결국 고생하는 건 우리구나.
세번째 영광을 전원 생포하고 정보 확보에 성공하면서 1과장과 묵광대의 역할은 끝났다. 생포한 세번째 영광도 4과장이 특무성에 보고 하자마자 마법사들이 튀어나와 제도로 이송했다. 텔레포트가 참 편하긴 해.
또한 특무성의 지시에 따라 혹시 모를 변수를 대비하여 묵광대의 파견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왕 파견한 김에 박람회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으면 든든하긴 하지. 그래도 1과장에 이어 4과장도 아카데미를 활보하면 귀족들이 기겁할 것 같으니, 아쉽지만 묵광대는 이 숲에 주둔하기로 했다.
4과장도 조금 아쉬워하는 것 같길래 저녁마다 찾아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보는 부하한테 그 정도 배려는 해야지. 오면서 먹을거리나 챙겨와야겠다.
그리고 숲에 머무는 4과장과 달리, 1과장은 다음날에도 나와 함께 부스에서 일하기로 했다.
“부장님. 제가 옮길 테니 저 주세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제보다 많이 고분고분해진 것.
“됐어. 내가 할게.”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아 웃음만 흘렸다. 과장 트리오가 내 눈치를 보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그래도 너에게 양심이라는 게 남아 있구나. 그건 감동스럽네.
거절 당했음에도 1과장은 눈을 이러저리 굴리며 내 근처를 맴돌았다. 사실 어제 사건에 1과장의 지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이거 계속 방치하면 울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기는 하네.’
그래도 괜히 부하 울리는 상사가 되는 건 곤란하지. 이만큼 내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잠시 풀어줘도 사고는 안 치겠고, 세번째 영광도 처리했으니 급한 일도 없고.
“너 지금 할 일 없어?”
“네! 없어요! 제가 대신 할 테니 부장님은 쉬고 계세요!”
꼬리가 달려 있다면 맹렬히 흔들 것 같은 기세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들고 있던 짐을 1과장에게 건네줬다. 짐을 받으니 체한 것이 내려간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 되는 1과장. 이 녀석은 나에게 짐을 받은 것이 아니다. 마음의 평화를 받은 거지.
“그거 저기 구석에 두고, 놀다가 와.”
“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직접 앞치마를 풀어줬다. 내가 너를 이걸로 포획했으니 놓아주는 것도 내가 해야지.
“이제 급한 일도 없으니 아카데미 안에만 있으면 돼.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놀겠냐.”
“어, 어… 진짜 그래도 돼요?”
“너 하나 없어도 부스 잘 돌아간다.”
빨리 가라는 의미로 손을 내젓자 그제야 1과장의 눈이 반짝이며 활기를 되찾았다. 혹시 다시 붙잡을까 빠르게 짐을 내려두고 달아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 포켓몬을 야생에 풀어주면 저런 모습일 것 같기는 하네.
몬스터볼 역할을 수행한 1과장의 앞치마를 적당히 던져두고 부스 내부를 살펴봤다. 부원들도 부스 운영이 손에 익은 것 같고, 삼국에서 온 일꾼들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애초에 1과장은 예정에 없던 인력이었으니 빠져도 문제 없지.
게다가 나를 찾아오던 귀족들도 시간이 지나니 급격히 줄어들었다. 어지간하면 거의 첫날이나 둘째날에 몰려왔으니 더 이상 올 사람도 없는 모양. 이제 정말 아무 걱정없이 시간만 보내면 된다. 이게 옳게 된 박람회지.
“오라버니.”
구석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려고 하니, 루이제가 다가와 말을 걸고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그냥 좀 앉고 싶어서요.”
확실히 루이제는 부스를 바쁘게 돌아다니는지라 앉아서 쉴 틈이 없었다. 손님이 없는 이럴 때가 아니면 의자 근처에도 못 가는 경우가 다반사였지.
“그러다 몸 상한다. 쉬엄쉬엄 해.”
아무리 부장이라지만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한 말이지만, 내 걱정에도 루이제는 아무 말 없이 내 눈을 바라봤다. 너무 빤히 쳐다봐서 조금 머쓱할 정도로.
“혹시 뭐 묻었어?”
가끔 휘날리던 밀가루가 얼굴에 묻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혹시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가 싶어 얼굴을 매만졌지만, 루이제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어제 드린 쿠키는 다 드셨어요?”
“어, 맛있더라.”
내 대답에 루이제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지만, 어딘가 씁쓸해 보이기도 했다.
“부스는 저희한테 맡기셔도 괜찮아요.”
그 말에 이번에는 미소로 대답할 차례였다. 어제는 피곤해 보인다는 말, 오늘은 쿠키는 다 먹었냐는 말. 이렇게 적극적으로 쉬라고 종용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루이제가 보기에 내 상태가 그리 괜찮아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찻잎을 받을 때도 그렇고, 어린 애한테 두 번이나 걱정 받고 있네. 장관이 알면 비웃겠어.
“괜찮아. 고문이 같이 있는 건 당연하지.”
“다른 동아리는 아니던데요? 이리나가 있는 동아리도 고문 선생님은 다른 곳에 있었어요.”
이걸 들켰네.
확실히 고문은 어디까지나 일이 터지지 않게 감독하는 역할이다. 가끔 와서 살피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나처럼 부스에 지박령처럼 있을 필요는 없다.
문제는 난 도저히 저 개노답 부원들을 두고 자리를 비울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일이 터지지 않게 감독하는 것이 고문이니, 누구보다 의무에 충실히 임하는 중이기도 하다. 난 다른 동아리 고문들과 사정이 다르니까…
내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이 없자 루이제는 살짝 입술을 내밀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오라버니에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 많아요. 동아리 고문을 맡아주실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요.”
“별일 안 했는데 뭘 감사까지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신 행동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엄청 컸는 걸요?”
그렇게 말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내가 그동안 한 일을 쌓아 올리면 그럭저럭 크기는 하겠지. 이럴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오라버니 혼자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저도 오라버니를 조금이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요.”
“어린 녀석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이 누나한테 말해!”
‘망할.’
어제부터 이 모양이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말도 계속 그때 기억으로 이어진다. 대가리 그 새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죽어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어버렸다. 세번째 영광의 목적이 아카데미 부수기가 아니라 내 멘탈 부수기였으면 그럭저럭 성공했다. 근래 이렇게까지 좆같은 적은 없었으니까.
“그, 그… 오라버니…?”
‘아.’
뒤늦게 눈 앞에 루이제가 있는 걸 떠올리고 급히 표정을 정리했지만, 이미 루이제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상태로 어깨까지 조금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걱정 받으니 민망하네. 그러면 잠깐만 쉬다 올까?”
걱정해주는 애 앞에서 한숨을 내쉰 건 ‘내 일에 신경 꺼라.’ 라고 말한 거나 다름 없지.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다. 부스를 떠나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지금은 루이제의 말대로 하는 게 좋겠다.
내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니 루이제도 조금은 진정한 것 같았다. 다행히 동생 또래 애를 울리는 미친 놈이 되는 건 피했네.
‘그 개새끼.’
이게 다 그 버러지 같은 새끼 때문이다. 머리만 부수는 게 아니라 다른 곳도 박살내야 했는데.
세번째 영광을 소탕하여 위협이 사라진 박람회 2부. 분명 평화로워야 할 박람회는 이상하게 시작돼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름다운 동심과 추억을 간직하신 독자님들은 즐거운 어린이날을 보내셨나요? 저도 좋은 어린이날을 보냈습니다.
어제 후기에 언급한 내용입니다만, 어느 독자님의 건의로 작중 등장 인물 및 설정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공지에 올리려고 생각 중입니다. 그런데 이게 막상 쓰려고 하니 조금 애매합니다.
이름이나 직책이 조금이라도 언급된 인물은 전부 쓸까 하다가, 그러면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무지막지한 스크롤을 자랑할 것 같고, 그렇다고 주요 인물만 적기에는 뭔가 정이 없고.
조금 더 고민할 일이니 모음집이 올라오는 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SharkOrc님! 비공개를 원하신 지나가던 독자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