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28)
로판 속 공무원 428화(429/451)
서글프다. 분명 완벽한,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무결점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당사자도 만족하길래 내 머리도 아직 쓸만하다고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때문에 이 기쁜 승전보를 제도에 있는 연인들과 공유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니까.
– 별로예요.
하지만 아니었다. 토론 참석자가 아닌 제3자의 시선으로는 무결점은커녕 결점투성이의 아이디어였다.
– 루가 뭐예요, 루가. 요리하는 애라고 애칭을 루라고 한 거예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에리의 모습에 억울함과 원통함이 동시에 솟구쳤다.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어도 연인 애칭을 그렇게 정했겠냐. 진심으로 루가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서 루라고 한 건데.
– 어차피 루라고 할 거면 그냥 쿠키라고 하지 그랬어요. 그게 더 익숙하고 좋잖아요.
“알았으니까 그만해…”
연이은 맹공에 마음으로 울고 말았다. 상대에게 ‘네 아이디어 구려.’ 라는 말을 무호흡 딜링으로 듣는 건 생각보다 가혹한 일이었다.
인정하자. 내 아이디어는 구렸다. 루이제가 좋아한 것도 그냥 연인이 지어준 거라 예의상 웃은 거였다.
‘내가 지은 애칭은 없구나.’
그러다 문득 불편한 진실에 도달하고 말았다. 마르, 트릭시, 린, 에리, 피네. 다섯 개의 애칭 전부 내가 지은 것이 아니다.
마르, 트릭시, 린, 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쓰던 애칭을 나도 쓰는 형태고, 피네마저 에리의 도움을 상당히 받은 애칭이었다. 내 순수 창작 애칭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루만 빼고.
…
“그럼 리제는 괜찮지?”
– 넹.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한 반응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앞으로 자식들 애칭을 지을 일이 생기면 부인들에게 맡기자.
그리고 에리와의 연락을 마친 후, 피네에게 루이제의 애칭을 리제라고 정했다는 말을 하자 정말 좋은 이름이라고 칭찬을 들었다.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
어제부터 조금만 방심하면 입꼬리가 올라갔다. 수업을 듣던 중에도 히죽히죽 웃음이 나와서 선생님과 어색한 눈빛 교환을 한 것이 수차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생애 최초로 애칭을, 그것도 오라버니가 직접 지어준 애칭을 얻었는데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잖아.
‘루.’
슬며시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창 밖을 바라봤다. 손을 내리면 부끄러울 정도로 히죽거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한테 들킬 테니.
‘그건 안 돼.’
속으로 결연한 각오를 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는 안 돼. 내가 기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내 개인적 기쁨이 추한 얼굴을 보여줄 이유가 될 수는 없으니까.
난 오라버니의 연인이다. 오라버니가 직접 루라는 애칭을 붙여준 예비 아내다. 만약 내가 처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 개인의 명예 하락이 아닌─ 오라버니의 평판에도 문제가 될 것이다.
“감히 칼을 직접적으로 욕할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그 주변 사람, 예를 들어 칼의 연인이나 부하를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겠죠.”
아주 예전, 내가 막 오라버니와 연인이 되었을 무렵. 마르게타 언니가 나와 이리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부인이 이상한 모습을 보이면 남편도 덩달아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게 사교계라고. 차마 칼을 흉볼 자신은 없으니 그 주변인인 우리를 건드리며 에둘러 칼을 모욕할 거라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욕을 먹는 건 내 잘못이니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부족한 나 때문에 완벽하고 멋진 오라버니가 욕을 듣는 건 참을 수 없다.
‘치사한 사람들.’
입꼬리가 조금씩 내려갔다. 오라버니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그런 주제에 면전에서 나쁜 말을 할 용기는 없어서 근처를 노리는 승냥이들. 그런 승냥이들에게 틈을 보일 수는 없다.
‘나도 작위 귀족이야.’
그렇기에 다시금 의지를 다잡았다. 엄밀히 따지면 아직은 작위 귀족이 아닌 후계자지만, 언젠가는 나도 명실상부한 작위 귀족이 된다. 비록 말단인 남작에 불과하더라도 모든 귀족을 통틀어 극소수인 작위 귀족이 되는 거다.
그런 만큼 내가 틈을 보이지 않고 똑 부러지게 행동하면 누구도 오라버니를 욕할 수 없다. 아니, 역으로 오라버니를 시기하는 사람들을 응징할 수 있다.
미래의 나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남작이라는 작위와 마종공의 유일한 제자라는 이름은 제국에서 많은 걸 가능하게 할 것이다.
어째 내 힘이 아닌 타인의 힘을 이용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는 하지만.
“내 제자는 앞으로도 네가 유일할 거란다.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너를 단순한 남작 영애로 볼 수 없겠지.”
스승님─ 아니, 베아트릭스 언니라면 오히려 자신이 가진 걸 잘 활용한다고 기뻐할 거다.
그러니 힘내자. 오라버니의 약점이 아닌, 제대로 내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자.
오라버니에게 받은 애칭을 걸고!
루라는 이름을 걸고!
그렇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동아리실에 도착했지만, 도착하자마자 오라버니에게서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까 루보다는 리제가 어감이 좋은 것 같아. 게다가 루는 뭔가 성의 없이 앞 글자만 따온 것 같잖아.”
그 말에 움찔하고 말았다.
애칭을 너무 빨리 걸어버렸나? 그래서 바뀌는 거야…?
“루이제도 리제가 더 좋지?”
루든 리제든 오라버니가 지어준 애칭이니 상관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오라버니의 눈빛은 어딘가 슬퍼 보였다.
어떻게 하지?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 거지? 이건 루를 택하든 리제를 택하든 오라버니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은데?
“아, 네. 저도 리제가 더 좋은 것 같아요.”
빠른 고민 끝에 후자를 택했다. 그만큼 오라버니의 표정은 리제로 기울어진 것 같았으니까.
“하긴, 루는 좀 아니지. 누가 들으면 수프 만드는 줄 알겠어.”
이상하다. 분명 농담이라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오라버니인데, 어째서인지 울고 있는 것 같다.
“미안해, 리제. 괜히 하루 만에 애칭을 바꾸게 해버렸네.”
하지만 미소를 지으며 양팔을 벌리는 오라버니를 보니 마음속 걱정과 불안감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래, 내가 너무 과잉 반응을 한 거야. 오라버니가 슬퍼할 일이 어디 있겠어. 그냥 내가 새로운 애칭에 가슴이 두근거려 착각한 걸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오라버니의 품에 안겼다. 그러자 오라버니도 내 몸을 껴안으며 입술에 입을 맞추셨다.
‘…역시 좋아.’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다.
***
애칭 사태 이후로 조용히 방학을 준비했다.
“이것도 비숍으로 프로모션.”
물론 내가 조용했다는 거지 부원들이 조용했다는 건 아니다.
다행히 밖에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아니었다만, 밖에서 샐 물을 안에서 쏟기로 작정을 했는지─ 동아리실은 하루하루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지금 보니 이번에도 비숍이 네 개군.”
“…….”
제3자가 들어도 꼭지가 도는 도발적인 목소리와 살벌하게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루이제가 구운 쿠키를 먹으며 애써 무시했다.
‘잔인한 새끼.’
속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흉악한 빨간 머리를 욕하며 쿠키를 씹었다.
얼마 전부터부원들은 족구 같은 실외 활동보다 실내 활동을 택하였다. 추운 겨울이니 당연한 선택이지만, 제과 동아리의 대표적 실내 활동 중 하나가 체스라는 게 문제였다. 류티스가 다시 5 나이트 전법과 4 비숍 전술이라는 광기를 내뿜을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그 광기의 피해자는 주로 라테르거나, 라테르거나, 라테르였다. 다른 부원들은 전부 류티스를 기피함에도 라테르만 꾸역꾸역 류티스를 상대했다.
보는 사람이 절로 안쓰러운 연패 행진을 자랑하면서.
“체스 두는 사람 어디 갔나?”
이윽고 고전적인─ 동시에 무엇보다도 확실한 도발이 류티스의 입에서 튀어나왔다.무시하던 나조차 본능적으로 시선이 갈 정도로.
‘저런.’
허나 시선을 돌리자마자 파르르 떠는 라테르가 보여 도로 외면하고 말았다.
차라리 실력이 부족해서 평범하게 패한 거면 라테르도 인정하고 넘어갔겠으나, 4 비숍이라는 기행 플레이에 당한 라테르는 자존심이 긁힐 대로 긁히고, 승부욕은 하늘을 찌르는 상황이다. 애초에 비숍을 4개로 만들 정도면 상대를 끝낼 수 있음에도 봐주고 있다는 말이니까.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저런 말까지 듣는다? 저건 타니안이라도 상대의 대가리를 성서로 찍어내릴 만한 일이다.
“…이 망할!”
얼마 지나지 않아 라테르의 분노 어린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결국 기행에 시달리던 정상인이 빡종을 하고 만 것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라테르의 혼신의 판 뒤엎기 이후로 잠깐 정적이 흐르기는 했으나, 금방 원래 분위기로 복구되었다.
류티스는 상대를 너무 놀려서 원인을 제공했고, 라테르는 빡종이라는 비신사적인 일을 했으니까. 그렇기에 서로의 죄를 퉁치기로 한 모양이다.
‘기묘한 새끼들.’
보고 있으면 헷갈린다. 저걸 대범하고 관대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단순하다고 봐야 할지.
‘싸우는 것보다는 낫지만.’
잠시 고민하다가 무난한 결론을 내렸다. 대륙 2위 국가의 왕자와 3위 국가의 왕자가 물리적 드잡이질을 하는 것보다는 저런 게 낫다고.
어느새 옹기종기 모여 포커를 하고 있는 남성 부원들을 보다가 여성 부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체스말과 체스판이 허공에 흩날리는 소란이 있었음에도, 여성 부원들은 평온히 과자를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분명 쟤네도 개노답 부원들이 일으키는 소란에 놀라던 시절이 있었거늘. 2년이라는 시간은 무슨 일이 터져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강철의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정확히는 1년으로도 충분했다.
‘강해졌구나.’
놀랍게도 다른 사람도 아닌 세라마저 강철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라테르의 고성에 흘끗 쳐다보고 금방 관심을 껐을 정도니까.
가슴이 웅장해진다. 저게 그 사회 생활이 전무하고 왕족 앞에서 긴장하던 세라가 맞나? 저런 세라마저 왕족들을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처럼 보게 되다니, 부원들은 전설이 맞다.
물론 딱히 자랑스럽지는 않다. 못난 놈들.
‘우리 황족은 그나마 정상이라 다행이다.’
씁쓸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심정으로 포커 중인 아인테르를 쳐다봤다. 그나마 저 중에서는 아인테르가 정상이다. 루이제에게 반해서 제과 동아리에 가입했다는 것 말고는 딱히 소란을 일으킨 적이 없으니까.
역시 외국산보다는 국내산이 좋은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