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3)
제 43화
우리 박람회 정상영업합니다 – 2
쉬고 오신다던 오라버니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이거 막상 가려니 좀 그런데. 정말 나 없어도 괜찮아?”
“괜찮아요. 오히려 인력은 충분한 걸요.”
애초에 부스 운영은 고문 없이 부원들로만 할 일이고, 오라버니의 부탁으로 오신 삼국 분들도 계시기에 손이 부족하지는 않다. 그런 의미를 담아 손을 흔들며 오라버니를 배웅하니, 결국 다른 부스가 몰려있는 곳으로 향하셨다.
그래도 계속 뒤를 돌아보시길래 나도 오라버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그제서야 도망치듯 속도를 높이는 오라버니 모습은 조금 귀여웠다. 오라버니 앞에서 말하면 화낼지도 모르지만.
‘결국 대답은 안 해주셨네.’
철벽 같은 오라버니를 떠올리니 씁쓸한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오라버니에게 몇 번이나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했고, 고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달라고도 했다. 그럴 때마다 오라버니는 다른 대답을 하실 뿐, 알겠다고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아서, 못미더워서 그러는 걸까 싶었다. 그것이 조금은 서운하더라도 크게 마음에 담지는 않았다. 오라버니는 나보다 훨씬 유능하고, 대단한 분이니까. 오라버니를 처음 봤을 때는 몰랐지만, 뒤늦게 부장급 관료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었는지.
그러니 오라버니가 아무 말이 없어도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재촉하는 건 오라버니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어제 오라버니의 모습을 보고 나서도, 그저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라버니…”
걱정되는 마음에 이제 보이지도 않는 오라버니를 부르고 말았다. 어제 봤던 오라버니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누군가 건드리면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언제나 겉으로는 담담하셨으니. 오히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기에 속에서 썩어가고 있어도,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다. 나도 오라버니와 같은 사람을 본 경험이 없었다면 눈치 채지 못했겠지.
어제 오라버니에게 드린 쿠키는 늘 고생하는 오라버니를 위해 색다름은 접어두고 단맛을 극대화하여 만들었다. 어떤 쿠키라도 잘 드셔주시는 오라버니지만, 그래도 좋은 걸 드리고 싶으니까.
그러나 부스에서 늘 쓰던 재료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어제 정신없이 움직이면서 설탕과 소금이 바뀌었다는 걸 오늘 아침에서야 알았으니까. 농담으로도 재미없는 실수가 하필 어제 터진 것이다.
아무리 아무거나 잘 드시는 오라버니여도 단 것이라 말하고 소금 덩어리를 주는 건 다른 문제다. 화를 내시거나, 아니면 웃으며 너무 짰다고 하실 줄 알았다.
“어, 맛있더라.”
오라버니의 반응은 무엇도 아니었다. 아침에 부스로 오셔도 별 반응이 없으시길래 슬쩍 떠보니, 아무렇지도 않게 답변하셨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건,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형은 예전부터 아무거나 잘 먹었어. 저택 주방장도 형 식사 만드는 게 제일 편하다 했을 정도니까.”
예전에 에리히에게 들었던 말. 하지만 이건 단순히 잘 먹는 수준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겨우 오라버니와 친해지고 있는 에리히에게 걱정거리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오라버니.’
정말 괜찮으신 거 맞나요?
혹시라도 오라버니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실 것 같아,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실 것 같아 두려웠다.
***
루이제를 울릴 것 같아 무작정 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나오니 할 게 없다.
‘어쩌지.’
즐기는 것도 뭘 알아야 즐기는 법이다. 내가 이 세계에서 마음 편히 지낸 것은 빙의 직후 1년 정도였고, 그 뒤로는 개판이었다. 갑자기 쉬다 오라고 해봤자 대체 뭘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문득 1과장을 가이드로 삼아 돌아다닐까, 라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바로 폐기했다. 아카데미 어디에 1과장이 있을 지도 모르고, 아무리 내가 1과장을 막 다뤄도 놀고 있는데 상사를 모시게 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당해봐서 그 처참한 심정을 안다. 감찰부장 직함을 달고 처음으로 얻은 휴가 때, 바람이라도 쐴 겸 제도를 돌아다니다가 장관과 마주치고 말았지. 서로 할 게 없어서 결국 같이 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개같은 기억이다. 이 끔찍한 연쇄를 1과장에게도 주기는 좀.
정 할 일이 없으면 4과장을 더 빨리 찾아갈 생각으로 돌아다니다가, 멀리서 익숙한 붉은 머리가 보였다.
‘마르게타?’
언제나 들고 다니는 붉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부스들을 살펴보는 마르게타가 보였다. 그러고보니 학생회의 업무 중 하나가 박람회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는 거라고 했었지.
어차피 명확히 갈 곳도 없고, 돌아다니면서 시선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면 차라리 마르게타와 다니는 게 낫다. 겉으로는 학생회와 감찰관이 업무 목적으로 다니는 걸로 보일 테니까.
“마르.”
뒤쪽으로 다가가 말을 거니 다음 부스로 향하던 마르게타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머, 칼 영식.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냉랭했던 마르게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하고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겠지. 내가 동아리 부스에 지박령으로 지내야 한다는 건 마르게타도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마르게타는 루이제를 찾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서 우리 부스로는 오지도 않았다. 나도 별일이 없다면 박람회가 끝나고 나서야 마르게타를 볼 줄 알았는데, 별일이 생겼네.
“많이 바쁘십니까?”
“별로요. 작년에도 한 일이라 익숙하거든요.”
“그래도 혼자 하기에는 피곤할 텐데, 혹시 사람 하나 더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 마르게타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저는 아무하고나 같이 안 다녀요. 칼 영식이라면 괜찮겠지만요?”
“다행이군요. 마르가 괜찮다면 같이 다니고 싶습니다.”
“네?”
마르게타의 얼굴이 붉어지고, 입가만 가리던 부채가 눈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부채로 아래를 가린 덕분에 오히려 요동치는 마르게타의 눈동자가 더욱 여실히 보였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철혈공의 혈육치고는 너무 부드럽고 여린 사람이다. 아니, 다른 혈육들은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내가 잘 모르는 건가?
***
작년에도 한 박람회 진행 상황 확인 업무. 아카데미에 퍼진 부스에 비해 학생회 인원은 적어서, 필연적으로 홀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업무다.
‘재미없어.’
애초에 관료가 되어 칼을 만나기 위해 들어간 학생회고, 그렇기에 별 흥미 없이 활동에 임했다. 심지어 올해는 칼이 아카데미로 왔으니 더더욱 의욕이 나지 않을 수밖에. 그래도 명예로운 바렌티 가문의 일원으로서 맡은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움직일 뿐.
“마르.”
귀찮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는 사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칼 영식.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칼이다, 칼의 목소리다.
급하게 뒤를 돌아보자 역시 칼이 서있었다. 부채로 입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야. 부끄러울 정도로 히죽이는 모습을 보일 뻔했잖아.
사실 박람회 기간 동안 칼을 만나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다. 칼은 특이한 부원들이 모인 동아리의 고문이기에 부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나도 루이제 영애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을 생각이니까. 그래서 재미없는 박람회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칼을 만나게 됐다.
‘역시 우리는 운명이야.’
아무리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도 결국 만나게 된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흡족한 마음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왕 칼과 만났으니 조금이라도 길게 대화하고 싶지만, 그래도 칼도 할 일이 있으니 너무 붙잡는 건 실례겠지. 오늘은 이 운명에 만족하자.
그래, 이걸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마르가 괜찮다면 같이 다니고 싶습니다.”
“네?”
칼의 갑작스러운 말에 머리가 굳어버렸다.
‘나하고, 같이?’
나하고? 칼이? 같이? 다른 일로 바쁜 거 아니었어? 칼이 나한테 먼저 권유한 적이 있었나?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에 황급히 부채를 끌어 올려서 가렸다. 안돼, 이런 얼굴은 절대 못 보여줘.
‘데, 데이트… 데이트…! 칼과 데이트!’
처음이다. 칼이 먼저 함께 하자고 말해준 것은 처음이다. 심지어 데이트 자체도 처음이다. 1년 전에는 칼이 워낙 바빠서 같이 차나 마시며 대화한 수준이지, 어디 나간다는 건 꿈도 못 꿨으니까.
‘운명!’
역시 운명이다. 역시 칼은 내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그 무뚝뚝하던 칼이 먼저 데이트를 권해줬으니, 이미 내 것이나 다름없다!
“마르?”
‘아차.’
기쁨에 뇌가 녹아내려 칼의 데이트 신청에 대답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야, 서두르지 말자. 칼을 조금 괴롭혀주기로 했잖아. 여기서 너무 쉽게 받아주는 건 곤란해.
“네, 좋아요. 같이 다니죠.”
…그래도 오늘 정도는 받아줘도 괜찮지 않을까? 칼도 큰 마음 먹고 한 데이트 신청일 거니까. 밀어내는 모습을 보여주면 칼도 상처를 입을 거다.
응, 그래서 받아주는 거야. 정말로.
***
다행히 마르게타는 동행을 허락해줬다. 예산 업무도 아닌 단순한 상황 확인 업무면 내가 도울 명분도 없어서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받아줘서 다행이다.
사실 같이 다닌다고 해도 별 거 없었다. 마르게타는 쭉 부스를 둘러보고, 나는 옆에서 같이 구경이나 하고. 하지만 부스에 들릴 때마다 벌벌 떠는 동아리 부장들이 반겨주는 건 조금 안타까운 일이었다.
‘생각이 짧았네.’
이미 공녀인 마르게타로도 뼈 아픈데, 감찰관도 합류해서 부스를 확인한다. 거의 즉사급의 멘탈 공격이다. 이런 당연한 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애들 괴롭히는 건 너무한 일인데.
“칼 영식 덕분에 일찍 끝났네요. 고마워요.”
“별 말씀을.”
그래도 시간은 확실히 보낼 수 있었다.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 수 있겠지.
“마르. 혹시 내일도 같이 다닐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내가 부스에 있는 꼴은 루이제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 내일도 방출하려고 할 것 같은데, 미리 갈 곳은 정해야지.
내 제안에 마르게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귀가 빨개진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고맙습니다, 마르.”
그리고 미안합니다.
속으로 마르게타에게는 들리지 않을 사과를 건넸다. 괜히 나 같은 놈하고 엮여서 마음 고생이 심할 테니.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는 놈이라, 애꿎은 사람에게 피해만 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못하다. 애써 밀어내고, 이 악물고 모르는 척 하고.
정말 미안한 일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회차를 작성하던 도중, 우연히 태그 중 하나인 ‘일상’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일상 태그가 전자파로 속삭였습니다. 이건 일상 태그를 단 소설이라고.
아, 물론이지 친구. 내가 일상을 잊었을 리 없어.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