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34)
로판 속 공무원 434화(435/451)
바란디가 후작의 열정적인 협조로 인해 아인테르와 바란디가 후작 영애─ 샤티의 결혼 논의는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폐하께서 신년하례식 기간 중, 아인테르 전하를 저희 파벌 쪽으로 보낸다 하셨습니다. 황족으로서 신진 귀족들과 우애를 쌓으라는 명분이니 차질 없이 진행될 겁니다.”
– 저도 샤티에게는 사교 활동이라고 일러두었습니다. 결혼 얘기를 꺼내면 꽁꽁 숨어서 나오지 않을 녀석이라…
정작 당사자들 의견 없이 철저히 정략적으로 진행되는 논의지만, 이 세계는 신분제가 살아 숨 쉬는 세계다. 연애결혼보다는 정략결혼이 보편적인 시대라는 뜻. 당사자들 모르게 결혼 얘기가 오고 가는 건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물론 정략결혼도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일이라 어지간하면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를 잇는 편이다. 이왕 부부가 될 사이라면 친한 사이인 게 좋잖아.하지만 이미 아인테르도 샤티도 성인으로 분류되는 나이이니, 친해질 시간을 마련하는 것보다 결혼해야 할 명분과 상황을 조성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내가 할 생각은 아닌가?’
몇 번째인지도 가물가물한 논의를 마치며 천장을 올려다봤다. 확실히 연인 여섯을 정략이 아닌 자율적으로 사귄 사람이 할 생각은 아니다.
심지어 작년까지만 해도 짝사랑 상태였던 사람을 중매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라면 더더욱.
‘쓰레기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묵직한 자괴감이 생기고 말았다. 불과 1년 전에 짝사랑이 무너진 남자를 다른 여자와 엮는다고? 그것도 짝사랑을 무너뜨린 사람이 직접?
객관적으로 보면 쓰레기가 따로 없는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한 달 휴가라는 달콤한 선입금을 받아버렸으니까.
‘…아인테르도 좋아하겠지.’
애써 행복회로를 돌렸다. 아인테르가 황족인 이상 개인의 의사보다는 황실의 가주, 황제의 의사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될 확률이 높다. 어차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면 처가가 든든한 게 이득이다.
그리고 후작가면 처가로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다. 비록 신진 귀족이라는 단점이 있으나, 후작이라는 이름은 그런 사소한 단점 따위 가볍게 덮을 수 있는 수준 아닌가.게다가 바란디가 후작은 자식이 샤티밖에 없기에 아인테르의 자식이 후작이 될 수 있다.
좋은 결혼이다. 황족으로서 정략결혼의 중요성을 아는 아인테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거다.
분명 그럴 거다.
‘제발.’
꼭 그래야만 한다. 만약 아인테르가 결혼을 격렬히 거부하면 나도 곤란하고 황제도 곤란하다고. 바란디가 후작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 아인테르가 순순히 결혼만 한다면 축의금으로 칼 3회 이용권 정도는 줄 생각이 있다.
황제가 하사한 휴가를 즐기며 신년하례식 날만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상황의 호출이 떨어졌다.
다른 사람을 거친 호출이어도 심장이 철렁할 일인데, 무려 상황 직통의 호출이라면 얼마나 공포스럽겠나. 아침이라 은근히 남아있던 잠기운이 순식간에 날아갈 정도였다.
그러나 잠기운이 날아간 덕분에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아인테르 때문인가?’
금방 상황이 호출한 이유를 추측하고 긴장감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아인테르의 결혼은 상황 입장에서 막내의 결혼이자 마지막 며느리를 들이는 일. 아무리 모든 업무에서 물러난 상황이어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것이 아비로서의 정이든, 아니면 정치가였던 자의 관심이든.
그렇기에 아침 식사도 생략하고 황궁으로 향했다. 상황은 편할 때 오라고 했지만, 정말 편할 때 가는 건 눈치를 말아먹은 행동이지.
‘이게 뭔.’
하지만 서두른 탓인지 당연한 것을 잊고 말았다.
황궁에 출몰한 계공은 상황이 기르는 동물이라는걸. 그만큼 상황이 머무는 공간에는 온갖 동물들이 집합해있을 거라는걸.
– 왈! 왈왈!
– 끼잉, 끼이잉!
황궁 변두리에 위치한 상황 거주지에 발을 들이자마자 웬 인절미 다섯 개가 달려들었다.
난감하다.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들이 뽈뽈뽈 달려오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시하고 지나가기에는 발 근처에서 어슬렁거려서 밟을 것 같고, 힘으로 떼어내기에는 어딘가 부러질 것 같았다.
어쩌냐 이거. 어떻게 보면 이게 어지간한 주술보다도 확실한 봉인법이기는 한데.
“다들 이쪽으로 오거라. 손님이 곤란해하지 않느냐.”
이윽고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내 근처에서 꼬리를 흔들던 인절─ 아니, 강아지들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려갔다.
떨어지는 걸 바라기는 했지만 너무 빠른 손절이라 조금은 서운했다. 난 너희에게 있어 잠깐의 유흥에 불과했구나.
“장관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였군. 이 아이들은 사람을 잘 따르는 편이라, 처음 보는 장관이 반가웠을 것이다.”
내 곁을 떠난 네 마리의 강아지를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들자,작은 포대를 들고 있는 상황이 덤덤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상황 폐하의 손길을 받는 생명이 소신을 반겨주니 영광스러울 따름입니다.”
본능적으로 아부 섞인 말을 내뱉으며 빠르게 자리에 엎드─
– 멍!
…리려고 했지만,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대로 굳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왜 상황 근처에 네 마리만 있는 거지? 처음에는 다섯 마리 아니었나?
“그 아이는 장관이 마음에 든 모양이군.”
그 말에 조심스레 발 옆을 내려다봤다.
해맑은 노란 인절미 하나가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우선 안으로 들어가지. 날도 추운데 밖에 있을 수는 없지 않나.”
“아, 예, 폐하.”
어느새 몸을 돌려 건물로 향하는 상황을 따라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다행히 내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놈도 하나뿐이라 걷는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건물로 향하는 상황이 포대에 담겨있던 무언가를 주변에 뿌리자, 갑자기 닭 세 마리가 나타나 상황이 뿌린 무언가를 쪼기 시작했다.
‘미친.’
뭔가 했는데 저거 모이 포대였나?아니, 그것보다 닭을 왜 풀어두고 키우는 건데. 저러니까 황궁으로 탈출했지.
그렇게 복잡한 심정으로 치킨 삼인방을 보다가 상황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였던 시절에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속을 알 수 없다.
***
아침이 되자 상황께서 장관을 호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양위식 이후로 상황께서 현직 관료와 만난 것은 처음 있는 일.
‘빠르시군.’
비록 그분이 공적으로는 은퇴하신 상태이나, 사적으로는 여전히 우리 형제의 아버지 아닌가. 장관이 아인테르의 혼인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진즉에 말씀드렸다.
그렇기에 마지막 남은 자식의 혼인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실무자에게 직접 듣고자 하시는 것 같다. 자식을 냉정하게 대하던 그분도 혼인에 관해서는 깊은 관심을 보이셨으니.
‘혼인이라.’
차를 한 모금 마셨다가 창 밖을 바라봤다. 문득 황후와의 결혼을 처음 상황께 밝혔던 때가 떠올랐다.
냉정하고 딱딱하던 분이 유일하게 놀란 듯한 모습을 보였던 때였지. 죽기 직전이던 1황자가 갑자기 공녀를 부인으로 데려오면 누구라도 놀랄 일이지만, 살면서 그분이 놀란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아주 희미하게,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간 감정이었지만.
‘이번에도 놀라실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때 아인테르의 목숨을 노리던 내가 그 아이의 처가로 후작가를 골랐다는 사실, 그 후작가가 장관의 파벌이라 내가 버릴 일도 없다는 사실에 상황께서는 무슨 반응을 보이실까. 형제의 화해에 기꺼워하실지, 황제가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에 고개를 저으실지, 아무런 감흥도 없으실지 궁금하다.
당연히 직접 물어볼 생각은 없다. 나 홀로 품다가 기억에서 지워야 할 의문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좋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리브노만의 가주가 된 이후로, 처음으로 황족의 일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니.
“폐하, 감찰성 장관입니다.”
‘왔군.’
계속 차를 홀짝이며 바깥 경치를 보는 사이, 문 너머에서 장관이 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본래 장관을 만날 생각은 없었지만 장관이 상황과 독대를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장관이 그분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분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
“들어오게.”
그 말과 함께 조심스레 문이 열렸─
– 멍!
?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 절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러자 당황과 해탈의 감정이 뒤섞인 표정을 짓고 있는 장관, 그런 장관의 품에 안겨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노란 강아지가 보였다.
‘뭐지?’
정신이 멍해졌다. 태양전 밖에서 동물을 만나는 건 익숙하다. 당장 어제만 해도 흑마의 머리에 올라탄 닭을 보지 않았나. 오히려 다음에는 어떤 놈을 만날까 두근거릴 정도다.
그런데 설마 건물 안에서까지 동물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리 두근거렸어도 이런 상황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황제 폐하 만세.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주─”
– 멍멍!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이 존귀하신 제국의 태양을 뵙나이다.”
“…….”
장관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
싸늘하다. 분명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황제의 시선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시선과 비례하여 내 품에 안긴 인절미는 답답하다는 듯 낑낑거리며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제발 가만히 있어. 내려놨다가 네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면 내가 책임져야 돼.
“장관.”
“예, 폐하.”
“그, 품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한 목소리에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이 애를 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허나 간신히 용기를 내 입을 열 수 있었다. 황제의 물음에 답하지 않는 건 불충이다.
“상황 폐하께옵서, 이 아이가 저를 많이 따른다고… 데려가서 기르라고 하셨습니다.”
용기를 가득 담은 말이었으나, 애석하게도 황제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망할.’
갑자기 황제가 원망스럽다. 하필 얘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호출을 해서 이 꼴로 오게 됐잖아.
황제의 호출을 받은 상황에서 저택까지 갔다가 다시 황궁에 올 수는 없다. 그렇다고 상황의 하사품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도 없고. 오죽하면 문밖에 있던 황실 기사단 부단장마저 손사래를 쳤겠는가.
“…귀여운 아이로군.”
“…감사합니다, 폐하.”
뭐가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게 답했다.
그 후, 한동안 인절미가 낑낑거리는 소리만이 애처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