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38)
로판 속 공무원 438화(439/451)
예비 신부인 마르의 찬성으로 인해 결혼식 장소가 확정되었다. 신부가 좋다는데 신랑으로서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사실 황제가 언급한 순간부터 대성당에서 결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으나, 설마 마르까지 지지할 줄은 몰랐다. 나처럼 부담스러워하거나 난색을 표할 줄 알았는데.
‘어쩌지.’
조금 심통이 난 듯한 마르를 겨우 달래서 돌려보낸 뒤, 한참이나 통신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 부담스러운 장소지만 마르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다. 황제가 무슨 생각으로 대성당을 대관해 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평소에도 상식과 거리가 먼 놈이었으니 그러려니 싶다.
하지만 결혼식 장소를 성 파로나스 대성당으로 바꾸면 어머니의 노고가 물거품이 된다. 장소가 변한다면 그 장소에 맞춰서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 아닌가. 차마 그 안타까운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실망하실 텐데.’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어머니가 나와 에리히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일부러 외면했을 때라면 모를까, 가족을 가족이라고 인정한 순간부터는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망설여졌다. 어머니가 내 결혼식 준비를 얼마나 열성적으로 진행하셨는지, 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아니까.
– 칼?
그러나 고심 끝에 연락을 걸었다. 적어도 지금 말하는 것이 결혼식 직전에 말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급히 드려야 할 말씀이 있어서요.”
– 아들이 어미에게 연락하는데 죄송할 게 어디 있겠니. 편하게 해도 된단다.
살며시 미소를 짓는 어머니를 보자 마음속 삼각형이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황제 이 새끼야. 네가 우리 어머니의 꿈과 희망을 박살 낸 거야.
– 아, 혹시 결혼식 준비 때문에 그러니? 그건 아무 문제 없이 진행 중이니 걱정 말거라.
통신구 너머로도 뿌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말이라 통신구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이라도 황제한테 달려가서 물려달라고 빌어야 하나?
“저기, 어머니, 그게 말입니다.”
물론 빌어야 할 대상은 황제가 아닌 어머니지만.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결혼식 장소… 다른 곳으로 정해졌습니다.”
그 말과 함께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도저히 어머니의 표정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
갑작스러운 칼의 말에 심장이 멈추는 기분이었다. 혹시 내가 못 미덥기에 따로 결혼식 준비를 한 건가 싶어서.
정말 그렇다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다. 겨우 칼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행복은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뜻이다.
“그, 그렇구나.”
하지만 눈가가 뜨거워지는 걸 겨우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착각이 아닐 거다. 분명 나와 칼은 이전보다 가까워졌고, 가까워지고 있다.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해 준 아들 덕분에 일반적인 가정의 모습을 되찾고 있다.
게다가 칼이 나를 믿지 못했다면 애초에 결혼식 준비를 맡겼을 리 없다. 지금처럼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을 리도 없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분명 그럴 거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부끄러워졌다. 칼이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과 달리, 정작 용서를 받은 내가 아직도 과거에 갇혀있었다. 칼이 나를 미워하고 꺼려 할 거라 지레 짐작하며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고 있다.
“어디로 정해졌는지 알 수 있겠니? 아들이 결혼할 곳이니 미리 구경이라도 하고 싶구나.”
살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라우라와 함께 고생한 걸 생각하면 조금 아쉬우나, 결혼 당사자는 칼이다. 그런 칼이 급히 정한 장소라면 최고의 장소일 터.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
– 성 파로나스 대성당, 입니다.
“…응?”
예상치도 못한 이름이 나왔다.
‘성 파로나스 대성당?’
빠르게 기억을 되짚었다. 혹시 성 파로나스 대성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곳이 여러 곳이었나? 제도에 있는 아우스엔 대교구 주교좌성당 말고, 다른 곳에서도 성 파로나스라는 이름을 쓰고 있었나?
– 황제 폐하께서 직접 권하셨습니다. 너무도 황송한 제안이라 차마 거절할 수 없었고요.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짧은 현실 도피가 끝나고 말았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권하셨고, 칼의 입에서 황송하다는 말이 나오는 장소라면 그 성 파로나스 대성당이 맞다.
– 그리고 갑자기 장소를 바꾸는 만큼, 황실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칼이 황제 폐하께 신뢰를 받는 건 알고 있었으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귀족의 결혼식을 성 파로나스 대성당에서 올리는 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일.
“잘 됐구나.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어.”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이제 내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다.
아들이 어마어마한 영광과 명예를 얻을 수 있게 되었는데 내 노력 따위가 대수인가. 제국을 이끌어 간 황제들이 즉위한 영광스러운 장소에서, 대제께서 초대 황후께 황후의 관을 씌어준 아름다운 장소에서 결혼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 그, 어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셨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칼의 모습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손에 넣을 영광이 아닌 어미의 노력을 걱정해주다니, 이 얼마나 따뜻한 아이일까.
“네가 만인의 축복을 받으며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기를 바랐기에 노력한 거란다. 내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으니, 당연히 괜찮지.”
– …감사합니다.
그 말 이후로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대화를 마쳤다. 칼은 조금 민망한지 서둘러 통신을 끊으려 했고, 나도 그런 칼을 붙잡고 싶지 않았으니.
– 어머, 안사돈?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시죠?
대신 이 기쁜 소식을 빠르게 안사돈과 공유했다.
당연히 안사돈도 크게 기뻐했다. 아무리 바렌티 가문이어도 딸이 성 파로나스 대성당에서 결혼한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그야 제도는 물론 제국에서 가장 고귀한 대성당에서 결혼식 준비가 이루어지는데, 소문이 퍼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
그리고 소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내 통신구도 열렬히 빛을 내거나 진동했다.
‘망할.’
하도 진동을 하느라 책상에서 떨어진 통신구를 망연히 쳐다봤다. 차라리 떨어진 김에 고장이라도 났으면 좋겠지만, 마종공이 직접 만든 통신구는 고작 낙하 대미지 따위로 고장 나지 않았다.
‘돌아버리겠네.’
한참이나 바닥에 떨어진─ 그 와중에도 여전히 진동하는 통신구를 조용히 들어올렸다. 마음 같아서는 이 통신구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채로 잠적하고 싶다.
허나 불가능하다. 이미 도망치거나 숨을 수 있는 단계는 아득히 지나버렸으니까.
‘사태가 크긴 크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번 일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일으킨 사태다.물론 내가 황실에게 당한 일 중 파급력이 적은 일이 있었겠냐만, 이건 그러한 과거를 고려해도 압도적인 일이다.
최연소 부장? 막말로 최연소나 최고령 같은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갱신되는 법이다. 내가 그 기록을 많이 앞당기기는 했지만 납득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부서의 장관? 어느 부서든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있는 법이고, 그 부서의 초대 장관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당연하다. 내 나이를 빼고 순수하게 감찰부장이라는 직책을 생각하면 장관 내정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황태녀의 대부? 어차피 누군가는 대부가 되어야 한다. 그냥 우연히 그 누군가가 내가 된 거다.
하지만 이번 일은 아니다. 이건 아무리 행복회로를 돌려도 ‘그럴 수 있지.’가 불가능하다.
“신하가 대성당에서 결혼하는 게 어딨냐고.”
결국 어이없는 심정을 참지 못하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오죽하면 황제가 황비를 들이려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겠나. 황제와 황후의 순애보를 생각하면 황비를 들일 가능성 따위 0% 가까우나, 적어도 다른 사람의 결혼식일 확률보다는 높았다.
그만큼 성 파로나스 대성당은 황실을 위한 공간이다. 감히 일개 귀족의 결혼식이 이루어질 거라 상상도 할 수 없는 장소다.
– 축하하네, 칼 군. 폐하께옵서 칼 군을 신뢰하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네.
몇 시간 전, 소식을 접한 전승공의 축하 인사가 떠올라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전승공마저 내 결혼식 장소가 대성당이 될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귀족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출근은 안 해도 돼서 다행이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만약 출근까지 해야 했다면 세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씩 붙잡혀서 인터뷰에 시달렸겠지. 랜덤 인카운터도 그 정도면 끔찍할 정도─
– 똑똑
“칼, 저예요.”
“아, 응. 들어와.”
갑작스러운 노크에 흠칫했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마르의 목소리에 즉시 답변했다.
그러자 서서히 열리는 문틈 사이로 마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째서인지 상기된 듯한 얼굴로.
“칼. 귀한 손님이 와서 그런데, 같이 맞이해 줄 수 있을까요?”
“손님?”
그 말에 고개를 기울이고 말았다. 마르가 귀한 손님이라고 할 정도면 당연히 맞이하겠다만, 그걸 굳이 마르가 와서 알려줄 필요가 있나? 집사는 어디 가고.
그리고 내 의문을 눈치챈 듯, 마르는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황후 폐하께서 황실 재단사를 보내주셨어요. 저랑 칼이 결혼식에 입을 걸 직접 만들어주신다는데요?”
“오…”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고 말았다.확실히 황실 재단사가 만든 드레스면 공녀인 마르조차 기뻐할 일이기는 하다.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대륙 제일이나, 황실이 독점적으로 고용한 재단사기에 아무리 공작가여도 고용할 수 없는 귀한 인물.
“그래, 가자. 바쁜 분일 테니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마르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걸음을 옮겼다.아직도 속은 타들어가지만, 행복한 미소를 짓는 마르 앞에서 죽어가는 표정을 지을 수는 없으니까.
게다가 난 성 파로나스 대성당이 싫은 거지, 결혼 자체가 싫은 건 아니다. 괜히 마르가 오해하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