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
제 44화
우리 박람회 정상영업합니다 – 3
루이제에게 방출 당하고 마르게타가 영입해준 이후, 나는 매일 아침 부스로 출근하자마자 외출하는 기묘한 박람회를 보내게 되었다. 부스를 나갈 때마다 빌라르가 ‘저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건 조금 마음 아팠지만,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떠돌이 신세가 될 줄은 몰랐거든. 명목상 노동력을 위해 사람들을 불러온 놈이 먼저 탈주해버린 상황이기에 정말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는 하다. 아무리 빌라르를 비롯한 삼국 전력이 호위를 위해 온 것이지만, 이건 너무 노골적으로 짬 때리고 튀는 이미지라.
그래도 공무원인 내가 민간인인 루이제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해해줬으면 한다.
“올해 박람회는 유독 조용하네요. 작년에는 잊을만하면 일이 터졌거든요.”
속으로 빌라르를 향한 짧은 사과를 하는 사이, 나란히 걷고 있던 마르게타가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까? 작년 박람회는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그때는 부스 위치 가지고도 은근히 신경전이 있었고, 손님 유치로도 경쟁이 있었죠.”
그럴 것 같기는 하다. 애초에 부스 운영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부스 운영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성과가 나오면 자존심 강한 귀족들은 자연스레 경쟁을 하게 된다. 시작했다면 이기기 위해 눈이 뒤집힐 푸른 피는 꽤 많다.
“후후, 이것도 칼 영식 덕분 같네요. 정말 고마워요.”
키득거리는 마르게타를 향해 작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르게타의 말대로 내 영향이 작지는 않으니까.
감찰부장의 참전과 나를 보기 위해 몰린 여러 귀족들. 아무리 혈기왕성하고 경쟁심 넘치는 귀족 자제들도 조금은 눈치를 보게 만들 라인업이다. 본의 아니게 마르게타에게 도움을 줬다면 다행이다.
“제가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아, 더 드시겠습니까?”
“네. 고마워요.”
마르게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 손에 담긴 옥수수 몇 알을 집어갔다. 붉게 물든 마르게타의 얼굴을 보니 방금 전의 일이 떠올라 웃음이 흘러 나올 뻔했다.
원래는 마르게타가 아침도 먹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 같아 간단히 먹을 거라도 손에 쥐어주려 했는데, 품위가 없어 보인다며 거절했다. 음식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건 꺼려진다나?
그렇다고 자리를 잡고 먹는 것도 곤란했다. 애초에 그럴 시간이 있었다면 아침을 굶지도 않았을 거고.
“그러면 제가 들고 다닐 테니, 편할 때 드시면 되겠군요.”
“네?”
그래서 근처에 있던 옥수수를 사 수십알 정도 뜯어 마르게타에게 들이밀었었다. 혼란스러운지 떨리는 동공이 인상적이었지.
“이러면 마르가 들고 다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드시고 싶은 만큼 가져가면 됩니다.”
“그, 그… 고마워요.”
마르게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여 내 손 안의 옥수수를 베어 물 듯 가져갔었다. 이후 나와 마르게타의 표정은 굳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손을 가까이 들이밀어 오해를 산 내 잘못이다. 나에게 면박을 주지 않고 무리를 한 마르게타의 심성이 고운 거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옥수수를 입에 문 채 내 표정을 본 마르게타는, 정말 툭 건드리면 울 것 같았으니까.
봐라, 지금도 옥수수만 보면 얼굴이 붉은 상태지 않은가.
“손으로 가져가는 게 불편하면 아까처럼 가져 가도 괜찮습니다.”
입을 오물거리다가 푹 고개를 숙이는 마르게타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조금 웃고 말았다.
이래서 마르게타에게는 고맙고 미안하다. 지금까지도 밀어내는 놈에게 허울 없이 대해주니까. 혼담을 거부하고 1년이나 만나지 못했음에도, 그 모습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살아있는 게 용하지.’
당사자인 나도 이렇게 씁쓸한데 철혈공은 어떤 기분일지. 바렌티 공작가에 진 빚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마르게타와 돌아다니다가 오후가 되면 제과 동아리 부스로 돌아간다. 아무리 그래도 하루 종일 밖을 떠도는 건 피곤해서, 루이제에게 오후에는 부스로 돌아갈 수 있는 자격을 받았다.
요약하면 오전에는 밖에서 놀고, 오후가 되면 안에서 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글러먹은 어른이 된 기분인데.
“형, 편히 앉아 있어.”
“형제님. 고문은 뒤에서 지켜보는 걸로도 힘이 됩니다.”
심지어 구석에 있는 내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부원들이 한마디씩 하고 지나갔다. 얘네 입장에서는 편히 쉬고 있으라는 배려의 말 같기는 하지만.
‘신병인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신병 혼자 덩그러니 방치된 느낌이다. 간부들이 지나가면서 편히 있으라고 하는 그런 기분. 배려와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되고 비참해졌다.
루이제를 쳐다보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봤지만,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젓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일 할 생각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뜻이다.
신경 써주는 건 정말 고맙지만, 그래도 남들 일하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는 건 힘든 일이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쉬겠습니까. 푹 쉬고 계십시오.”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자신의 붉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고 있는 류티스의 모습이 보였다.
‘볼수록 신기하네.’
류티스의 머리가 빨간 것이 신기한 건 아니다. 전부 따로 노는 제과 동아리 부원들의 머리색이 떠올랐을 뿐.
루이제는 분홍, 에리히가 검정, 아인테르가 금색. 류티스, 라테르, 타니안은 각각 빨강, 파랑, 하양의 머리 색깔을 점하고 있다. 사람이 여섯이나 되는데 전부 제각각일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원작이 로판이라 이런 걸로도 차별을 둔 건가.
“음?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너랑 라테르가 나란히 있으면 신호등 생각난다는 말은 마음 깊숙한 곳에 봉인했다.
“뭐, 아무것도 아니라면야.”
피식 웃음을 흘린 류티스가 내 옆 자리에 앉더니, 양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 중 하나를 나에게 내밀었다.
“향이 제법 좋습니다. 한잔 하시겠습니까?”
“나는 괜찮다만.”
나는 몰라도 너는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괜찮냐는 눈으로 바라보자 류티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 이제 다들 일에 익숙해져서, 돌아가면서 쉬도록 했습니다. 마침 제가 쉴 차례군요.”
확실히 여유가 있을 때 쉴 수 있는 사람은 쉬는 게 좋지. 고개를 끄덕이며 류티스가 건넨 커피를 마셨지만, 류티스의 말처럼 향이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거 에리히가 만든 겁니다. 형이 걱정된다면서 열심히 내리더군요.”
“그런가?”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에리히가 만든 커피라는 말을 들으니 계속 마시게 된다. 향은 모르겠지만 일단 가족의 정성이 담긴 건 확실하구나.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큭큭거리던 류티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맥락 없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말에 내 시선도 절로 류티스에게 돌아갔다.
“무슨 말이지?”
“정말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셨습니까?”
“하.”
그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래, 징조는 많았지. 난데없이 1과장이 합류하고, 얼마 전에는 나와 1과장이 나란히 사라져서는 부스를 닫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징조를 보고도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한다면 왕족이라고 할 수 없지.
생각해보니 조금 열받는다. 연애 관련으로는 파멸적인 녀석들이, 왜 이럴 때는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거지? 류티스가 알고 있다면 아인테르나 라테르, 타니안도 알고 있을 거다. 날 걱정했다는 걸 보면 에리히도 그렇겠고.
“물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냥 일이 있었구나, 정도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별일 없었으니.”
“그렇습니까?”
그러고는 잠시 침묵이 내리깔렸고,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류티스였다.
“고맙습니다, 고문 선생.”
다시 커피를 마시려던 내 손이 멈췄다. 왕족은 쉽게 고맙다, 혹은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한 국가에 군림하는 일족이기에 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까마득한 과거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물론 이것들이 동아리에서 보인 모습을 보면 별 대수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단 둘이 대화하는 상황에서 쉽게 꺼낼 말은 아니다.
“나한테 고마울 것이 있나?”
“왜 없겠습니까? 저희 때문에 누구보다 고생하는 게 고문 선생인데.”
그걸 아는 새끼들이.
순간 목 끝까지 치솟은 말을 애써 삼키며 말없이 류티스를 바라봤다. 내 감정과는 별개로, 왕족이 이리 솔직히 감정을 표한다는 건 큰 각오를 한 일이니까.
다시 말하지만, 동아리에서 보인 추태는 제외하고서 말이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부원들도 소란 없이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는 것에 말이죠.”
“그런가.”
“그게 가능하도록, 이번처럼 고문 선생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렇군.”
갑작스러운 류티스의 말에 어색하게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이가 험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친하지는 않은 데면데면한 관계인데 이런 말을 들으면 민망하지.
그리고 그건 류티스도 마찬가지였는지, 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가 한숨을 토했다.
“돌려 말하는 건 영 맞지 않는군요.”
“그래 보인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고문 선생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싫어하는 사람보다 많이요.”
“허.”
분명 말하는 건 류티스인데, 어째서 가만히 듣는 내 낯이 뜨거워져야 하는 건지.
“무슨 고민이 있더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고문 선생에게 고마워하고 도와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
“─라고, 루이제가 전해달라더군요.”
진지했던 분위기를 접고 웃음을 터뜨리는 류티스의 모습에 나도 실소를 흘렸다. 이 새끼, 갑자기 무슨 일인가 했더니 루이제한테 메신저 퀘스트를 받았구나.
루이제가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보고 있던 루이제가 흠칫하더니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화를 낼 일도 아니기에 손을 가볍게 흔들며 괜찮다는 답을 보내줬고.
“이거 참, 루이제가 얼마나 애절하게 부탁하던지. 이러다 고문 선생과 경쟁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왜, 경쟁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날리려고?”
“날린다고 날려질 분입니까?”
뭐가 그리 재밌는지 큭큭거리는 모습을 보니 이젠 나까지 웃어버렸다. 웃음은 전염된다고도 하던데, 이 녀석을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경쟁하게 된다면, 쉽지는 않겠지만 노력해야죠.”
“의외로군.”
“이미 다섯이서 경쟁 중인데 여섯이라고 문제 될 게 있겠습니까? 애초에 루이제는 물건이 아니니 제가 막을 명분도 없고요.”
왕족이나 되는 녀석이 남작 영애에게 꽂힌 비정상적인 상태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상적인 말을 하고 있다. 이건 진짜 의외인데.
“왜 그러십니까? ‘내가 루이제를 얻지 못하면 다 부수겠다’ 같은 말을 할 줄 아셨습니까?”
애초에 그럴 마음이라면 권력으로 루이제를 가지려 했을 겁니다, 라고 덧붙이는 류티스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것들은 신분에 비해, 루이제 쟁탈전은 정말 소소한 규모로 진행했다. 보는 사람이 어이가 없고 속이 터질 정도로.
“깔끔하게 붙고, 깔끔하게 승복한다. 그게 아르메인의 기사입니다.”
“깔끔치고는 견제가 난무하던데.”
“하하하! 그것도 경쟁의 일종입니다.”
어느새 본인 몫의 커피를 전부 마신 류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니 만약 제가 진다면, 인정해야지요. 그럴 일이 없는 게 제일입니다만.”
이건 다른 넷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일을 하기 위해 부원들 쪽으로 가던 류티스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아, 고맙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루이제 부탁이어도 들어주지 않았을 겁니다.”
‘하.’
멀어지는 류티스의 뒷모습을 보니 온갖 생각이 들었다. 루이제 관련으로도 저거의 반만 했으면 진즉에 진도가 나갔을 텐데. 이럴 때는 분명 왕족이 맞는데, 왜 가장 중요할 때는 그런 모습인지 원.
그렇게 류티스에 대한 평가를 소폭 조정하고 나니,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심했나.’
루이제가 보기에 내가 얼마나 개판이었으면 류티스까지 동원했을까. 내가 생각해도 평소하고 달랐지만, 그 정도로 심했나 싶다. 하지만 어쩌겠나. 2년 동안 털어내지 못한 걸 순식간에 털어낼 수는 없는 것을.
지금도 털어내기 쉬운 일은 아니다. 가능했다면 이미 털어냈을 테니. 그래도 동생뻘 애한테 이만큼이나 걱정 받았다면, 많이 민망한 일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어제 미리 조부모님을 뵙고, 가족과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독자님들도 보람찬 어버이날을 보내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캥거루파르님! 후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