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0)
로판 속 공무원 440화(441/451)
얼굴이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어 슬며시 눈을 떴다.혹시 천장에서 물이라도 새는 건가? 그럼 곤란한데.
– 왕!
“너였냐.”
하지만 눈을 뜨자마자 내 얼굴을 열심히 핥고 있던 티티와 눈을 마주쳤다.
커튼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한 걸 보면 막 아침이 된 것 같은데, 이 녀석은 어떻게 방에 들어왔는지 직접 주인을 깨우고 있다. 생체 알람이 따로 없네.
“일어날 테니 그만 핥아.”
티티를 끌어안으며 문 쪽을 쳐다봤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은 인절미 사이즈인 티티가 열 수 없는 크기다. 아마 지나가던 누군가가 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티티를 가엽게 여겨 열어준 모양.
그리고 티티를 들여보낸 건 높은 확률로 유리스일 거다. 사용인들 중 가장 어려서 그런지 유독 티티를 귀여워하니까. 어쩌면 소피아일 수도 있고.
‘그냥 방에서 키워야 하나.’
여전히 내 볼을 핥는 티티를 보며 고민했다. 정원에 풀어두기에는 아직 작은 녀석이라 저택에 두고 있기는 한데, 저택 안에 풀어두면 방문 앞에서 낑낑거리는 경우가 잦다. 기껏 자유롭게 돌아다니라고 풀어뒀는데 난감할 따름.
그렇다고 방에만 두면 동물 학대 같아서 미안하고, 24시간 내내 방문을 열어두기에는 내 사생활이 날아가는 꼴이라 곤란하다.
‘…쪽문이라도 만들어야지.’
짧은 고민 끝에 그런 결론을 내렸다. 현관문에 있는 우유 구멍처럼 쪽문을 만들면 티티도 무난하게 드나들 수 있을 거다.
물론 역사와 전통을 지닌 저택에 그런 야매 공사를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알 게 뭔가. 애실론 가문의 전통이지 내 전통은 아니잖아.
– 똑똑
“주인님, 기침하셨습니까?”
“어, 방금 일어났어.”
이윽고 노크 소리와 함께 집사의 목소리가 들려 티티를 바닥에 내려놓자, 쪼르르 달려가 문을 벅벅 긁었다.
밖에 있으면 들어오고 싶고, 안에 있으면 나가고 싶구나… 복잡한 아이다.
“아침 식사는 말씀하신 대로 준비했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집사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식사 정도야 사용인들이 알아서 준비해 주니 굳이 내가 지시할 게 없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오늘은어머니가 저택에 방문하신다고 한 날이다.
“곧 오실 테니 바로 내드릴 준비도 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것도 아침 일찍부터.
‘낯서네 이거.’
조금 어색한 심정에 괜히 뒷목을 매만졌다.어머니가 나를 반겨주는 게 아닌, 내가 어머니를 대접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장남이 결혼하기 전에 식장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결혼식장이 제도에 있지 않나. 대성당을 타일글레헨 백작령으로 옮길 수는 없으니 어머니가 직접 오시는 수밖에.
그렇기에 어머니의 방문이 확정된 순간부터 기억을 최대한 쥐어짰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음식이 뭐였는지, 어떤 차를 즐겨 마셨었는지.
“아, 어머님은 육류보다 해산물을 더 좋아하세요. 식후에는 허브티를 즐겨 마시셨고요.”
그런데 내가 쥐어짠 기억보다 마르의 기억이 더 자세하더라. 아들도 기억 못 하던 걸 마르는 줄줄이 꿰고 있었다.
솔직히 자괴감이 들기는 했지만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넘어갔다. 마르가 어머니를 정말 극진히 생각하는구나─ 하고.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딸 같은 며느리와 불타는 효자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전자를 골라야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시녀장, 그리고 몇몇 시녀들이 도착했다.
딱 필요한 인원만 데리고 온 구성이라 경비병들이 움찔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확실히 제국백 가문 안주인의 행차치고는 너무 검소하고 소박한 수준이기는 하지.
물론 어머니가 검소하게 다니셔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남편이 전직 제국백이고 아들이 나인데, 뭐라고 하는 놈이 있으면 그 용기만큼은 높게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날도 추운데 왜 밖에서 이러고 있니.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아무튼 정문에서 기다리던 나를 발견한 어머니는 황급히 다가와 내 볼을 매만지셨다.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내가 영지에 올 때마다 정문까지 나와서 맞이해주던 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제가 워낙 튼튼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잠시 말을 흐린 어머니의 시선이 슬쩍 내 뒤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나도 고개를 돌리자, 사용인들 앞에 선 연인들이 보였다.
‘아.’
바로 깨달았다. 이 패턴, 튼튼한 나보다는 가녀린 예비 며느리들을 걱정하는 패턴이다.
“어서 들어가자꾸나. 경사를 앞두고 감기라도 걸리면 곤란하니.”
“아, 예. 알겠습니다.”
어머니의 단호한 목소리에 자동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어머님과의 식사는 오붓하고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주방장의 솜씨가 뛰어나구나.”
“아버지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20년이 넘게 같이 지내다 보니 입맛도 비슷해진 모양이야.”
살포시 미소를 짓는 어머님과 칼을 보니 내가 절로 흐뭇해졌다.
‘다행이다.’
저 둘의 관계가 평범한 가족 수준으로 변해서.
2년 전, 처음 어머님을 뵈었을 때는 이런 분위기와 거리가 멀었었다. 칼은 어머님을 무뚝뚝하게 대했고, 어머님은 그런 칼과 가까워지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게 뻔히 보였을 정도였었지.
그 정도로 어색했던 모자 관계가 이렇게 가까워졌으니, 크라시우스 가문의 예비 맏며느리로서 행복할 따름이다.
“아, 요리는 주방에서 힘쓴 거지만 마르의 역할도 컸습니다. 어머니 취향에 맞는 걸로 하나하나 골라줬거든요.”
“정말이니?”
그 와중에 칼이 내 이름을 언급하자 어머님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감동했다는 듯 묘하게 반짝이는 눈을 보니 자부심과 민망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제, 제가 어머님 취향과 비슷해서 기억하고 있었어요. 저도 해산물을 더 좋아하거든요.”
“그래도 다른 사람의 취향을 기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고맙다.”
직설적인 칭찬에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느껴졌다.
참아, 내 입술아. 품위 없이 히죽이면 어머님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꾸준히 좋은 점수를 따고 있었는데, 막판에 망치는 건 곤란해.
“이런, 너무 마르하고만 얘기했구나.”
다행히 어머님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하여 부끄러운 얼굴을 보이는 건 피할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곧 결혼할 며느리를 챙기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저희 차례가 오면, 그때는 저희를 돌봐주실 거라 믿습니다.”
“후후,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베아트릭스 언니와 어머님의 대화를 들으며 황급히 입가를 매만졌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정말 웃음을 터뜨릴 것 같으니까.
‘…위험했어.’
그렇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조심스레 물을 마시던 중, 엄지를 세운 칼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겨우 진정시킨 입꼬리가 다시 씰룩였다.
식사를 마친 후, 칼과 함께 어머님을 모시며 성 파로나스 대성당으로 향했다.
어머님이 데리고 온 시녀장과 다른 연인들은 저택에 남긴 채 단 셋이서 움직이는 일정. 이 사소한 행동마저 결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기를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대성당에 도착한 어머님이 작게 중얼거리셨다.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오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고.”
그 말에 나도 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어떤 귀족이 이 대성당에서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할 수 있을까. 감히 그런 생각을 품는다면 과대망상가거나 역적일 것이다.
“앞으로 너희의 이름은 영원히 남겠구나. 황실을 위한 공간을 처음으로 사용한 귀족이라고 말이야.”
“너무 과분한 영광이라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칼의 진심 담긴 푸념에 어머님은 살포시 미소를 지으셨다.
“감찰성 장관 각하?”
그러던 중, 갑작스레 누군가 칼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빠르게 외견을 훑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다. 그야 내가 아닌 칼을 불렀으니 칼의 지인이겠지만, 그래도 장관 내정자인 칼에게 말을 걸 정도의 거물이면 내 기억에 있을 텐데?
“황실부장?”
“역시 장관 각하가 맞으셨군요.”
의문은 칼의 대답 덕분에 풀렸다. 신임황실부장이었구나.
그렇다면 기억에 없을만하다. 기존 황실부장이 궁내성 장관으로 승진한 후, 새롭게 승진하여 자리를 채운 관료니까.
“왜 여기 있지? 궁내성에서 휴가를 줬을 리는 없을 텐데.”
“하하, 휴가였으면 좋겠지만 업무 중입니다. 장관 각하의 결혼식 준비를 제가 총괄하고 있거든요.”
“…폐하께서도 참 과분한 책임자를 정해주셨군.”
웃음을 터뜨린 황실부장을 향해 칼은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놀랐다. 황실의 일을 책임지는 황실부장이 칼의 결혼식을 담당하는 것도 그렇지만, 총괄자가 현장에 나와있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참, 숙녀 분들께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황제 폐하로부터 과분한 영광을 받은 피제라 도벨른 오브 리느앙이라고 합니다. 편히 리느앙 남작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아, 네. 반가워요, 리느앙 남작님.”
너무 활기찬 인사라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였다. 작위 귀족에다 황실부장인 사람치고는 가벼운 것 같은데…?
물론 겉으로 보이는 행동 때문에 황실부장을 우습게 볼 생각은 없다. 가볍기만 한 사람이라면 저 자리까지 올라가지 못했을 테니.
“그런데 각하. 마침 결혼 당사자인 각하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것이 있는데, 혹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십니까?”
“내 의견?”
그 말에 칼의 시선이 어머님에게 향했다. 확실히 어머님을 모시고 왔는데 업무 얘기를 하기는─
“나는 괜찮단다. 마르와 있을 테니 편히 얘기하다 오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부인!”
어머님의 빠른 허락에 칼과 황실부장은 대성당 구석으로 향했다.
“마침 잘 됐구나.안 그래도 잠깐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네?”
그 모습을 보다 어머님의 말씀에 반문하고 말았다. 마침 잘 됐다니, 칼하고 같이 결혼식장을 보려고 오신 거 아니었나?
내 반응에 다시 미소를 지으신 어머니는 품 속에서 반지를 꺼내시더니 나에게 쥐어주셨다.
“나름 안주인의 일인데 가주가 보고 있으면 민망하잖니. 여자에게는 여자끼리 처리하고 싶은 일이 있는 법이지.”
미약한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멀뚱히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안주인의 일이라고 하셨으니 크라시우스 가문과 관련된 일 같기는 하지만, 난데없이 반지를 주시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그 반지, 내가 정식으로 타일글레헨 백작 부인이 되었을 때 빌리가 선물해준 반지란다.”
?
순간 머리가 굳어버렸다. 어머님께서 백작 부인이 되셨을 때 받은 반지? 그것도 아버님께 받은 선물?
…
“어, 어머님! 이 귀한 걸─”
“오해하지는 마렴. 결혼 반지는 따로 있으니까.”
기겁하여 어머님께 반지를 돌려드리려고 했으나, 어머님은 예상했다는 듯 단호히 고개를 저으셨다.
다행이다… 혹시 결혼 반지 같은 건가 싶었네.
“전전대 타일글레헨 백작, 그러니 칼의 친조부 되시는 분은 여러 부인을 두셨단다. 그에 비해 빌리의 부인은 나뿐이었고, 백작의 부인은 앞으로도 나 하나일 거라며 이 반지를 줬었지. 연인으로서 받은 선물보다는 가문의 내조를 맡은 백작 부인에게 준 선물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야.”
아니, 다시 들으니 결혼 반지와 비슷할 정도로 중요한 반지가 맞았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 귀한 걸 왜 나한테…?
“칼은 우리랑 달리 부인이 여섯이나 생길 예정이니, 이것과 같은 반지도 여섯 개를 만들려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게만큼은 내 반지를 물려주고 싶더구나.”
“그, 어머님, 저에게는 너무 과분한…”
“그런 말은 하지 말렴. 첫 번째 부인이 다른 부인들과 다를 바가 없으면 위엄이 서지 않잖니. 공평한 사랑은 중요하지만, 첫 부인의 권위도 중요하단다.”
그러고는 여전히 내 손바닥에 있던 반지를 직접 손가락에 끼워주셨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이 보면 섭섭해할 테니 여기서 몰래 주는 거란다. 결혼 선물이라고만 하고 내가 쓰던 거라고는 하지 말렴. 알겠지?”
빙그레 미소를 짓는 어머님의 모습에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쓰시던 반지.’
심지어 유일한 백작 부인으로서 사용하던 반지.
멍해졌던 머리가 점차 생기를 되찾았다. 히죽이는 입꼬리를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웃으니 예쁘구나. 앞으로도 자주 웃어주렴.”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