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2)
로판 속 공무원 442화(443/451)
낯설다. 늘 입던 제복이 아닌 난생 처음 입는 턱시도를 걸치고 있어서 그런가, 내 몸이 포대기 같은 것에 감싸진 기분이다.
“어떤가요? 움직이는 데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좋군. 늘 입던 옷 같아.”
하지만 황실 재단사의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돌려줬다. 어디까지나 낯선 옷이라 어색한 거지, 옷 자체는 내 맞춤으로 만든 만큼 불편한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실 불편하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새로 만들 것 같아 조금 무섭다. 지금까지 본 재단사의 능력과 열정을 생각하면 그러고도 남으니까.
“그렇죠? 아무리 잠깐 입을 옷이라지만 인생에 다시없을 경사 때 입는 옷인데,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곤란하죠.”
다행히 내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재단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장관님은 다섯 번은 더 입으셔야 되니까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이런, 그럼 한 벌 가격만 치르기는 미안한데.”
“후후, 비용은 황실에서 부담하기로 했으니 걱정 마세요.”
입가를 가리며 웃던 재단사는 이윽고 마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신랑에게는 문제가 없으니 진짜 주인공인 신부에게 집중하려는 모양.
그런 재단사를 보다가 슬며시 보타이를 매만졌다. 늘 넥타이만 메다가 보타이를 메니 허전하기 그지없다. 둘 다 목에 메는 것은 동일하지만, 아무래도 길이 차이가 있어서 영.
‘참아야지.’
그러나 애써 어색함을 억누르며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전문가가 이렇게 입혀줬으니 이게 맞는 거다. 괜히 ‘난 넥타이가 더 편한데.’ 같은 말을 했다가는 처음부터 다시 의상을 맞춰야 할 수도 있지 않나.
애초에 어색한 게 문제라면 턱시도 자체를 입지 않았을 테고.
“부장님,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불편해 보이는데.”
무심코 소매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에리가 스르륵 다가와 속삭였다.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아니면 내가 표정 관리에 실패한 건가?
“편한 옷 찾으면 결국 제복인데, 그거 입고 결혼할 수는 없잖아.”
재단사의 관심이 온전히 마르에게 쏠린 것을 확인하며 작게 대답했다. 제복 아래 모든 옷이 평등하면 그냥 주는 대로 입는 게 좋다. 그게 모두가 행복한 길이다.
게다가 공식 행사나 업무 중도 아닌 결혼식인데, 그 축복받아야 할 자리에서 피비린내 나는 감찰부 제복을 입는 건 많이 이상하지. 까딱 잘못하면 결혼식장을 온갖 망령이 모이는 자리로 만드는 수가 있다.
“그건 그렇죠.”
에리도 내 설명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광기 가득한 에리가 생각하기에도 감찰부 제복과 함께하는 결혼식은 좀 아닌 듯하다.
“그나마 색은 검은색이라 다행이네요. 부장님이 흰색 입는 건 상상이 안 가는데.”
“나도 그건 양보 못 하겠더라.”
내가 옷을 맞추면서 유일하게 요구한 사항이 색깔이었다. 에리 말처럼 내가 흰색 옷을 입는 건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그리고 나까지 흰옷을 입으면 시선이 분산되니까. 이왕이면 신부만 주목받아야지.”
“결혼식은 신랑도 주인공 아니에요?”
“난 여섯 번 해서 괜찮아.”
그중 한 번 정도는 주목받겠지.
그렇게 덧붙이자 에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킥킥거리기 시작했다.아무래도 예비 신랑의 드넓은 마음씨에 감동한 모양이다.
재단사가 저택에 방문하면 늘 같은 패턴이 된다.
“이게 최종본입니다!”
열정이 가득 찬 목소리로 어그로를 끄는 특급 탱커 재단사.
“와아…”
그런 탱커에게 가장 먼저 어그로가 끌리는 마르.
“언니, 어서 입어보세요!”
“그러렴. 입어봐야 이상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지.”
그 뒤를 따라 열렬한 리액션을 보이는 다른 연인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구석에 박혀 잊히는 나까지. 굉장히 익숙하고 낯익은 패턴이다.
“그럼 공녀님이 갈아입으셔야 하니, 장관님은 잠시만 나가주세요.”
하지만 오늘은 구석에서 조용히 숨을 죽일 수 없었다. 재단사가 정확히 나를 지목해서 추방령을 내렸으니까.
“…어차피 부부 사이인데 굳이 나갈─”
“나가주세요.”
“그래.”
단호한 지시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재단사가 최고 책임자다. 최고 책임자의 지시에 따르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다른 분들은 잠시만 도와주시겠어요? 혼자 입기에는 조금 불편하거든요.”
“그런 거라면 당연히 도와줘야지.”
문을 열고 나가기 직전, 재단사와 트릭시가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나도 잘 도와줄 자신이 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행복에 겨운 마르가 기겁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
***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옷감은 이오네스 후작령에서 황실에 진상된 것을 사용했습니다. 공녀님의 위세는 굳이 겉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기에 과한 화려함보다는 새신부의 풋풋함과 아름다움을 강조─”
재단사가 옆에서 드레스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있지만, 솔직히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귀에 여력을 쏟기에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에 정신이 팔리고 말았으니까.
나도 모르게 정면에 있는 전신 거울로 손을 뻗었다. 드레스처럼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이 거울에 닿자, 거울에 비친 나도 마주 손을 뻗었다. 그러자 마치 두 신부가 손을 맞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쁘다.’
거울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니 자기애가 강한 사람 같지만, 지금은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 정말 예쁘다. 내가 본 그 무엇보다도 예쁘고, 아름답고, 우아하다.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했음에도 품위가 보이는 수준이다.
‘이걸 입고 결혼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자 얼굴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옷을 입고, 칼의 옆에 서는 거야. 대제께서 초대 황후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셨던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하는 거야.
“죄송하지만, 전 아직 누군가와 함께 할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 최고의 순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상하게 인생 최악의 순간이 떠올랐다.
3년 전, 칼이 내 사랑을 밀어냈던 그때. 아직 칼이 마음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나는 칼에게 상처가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그때.
그때는 분하고 슬퍼서 엄청 울었었지. 오라버니와 언니들에게 둘러싸여 위로받기에 바빴고, 심지어 아버님 앞에서도 펑펑 울고.
‘그랬었는데.’
조심스레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펴봤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베아트릭스 언니, 활짝 웃으며 예쁘다고 해주는 루이제, 작게 박수를 치며 미소 짓는 이리나, 연신 감탄을 하며 엄지를 세워주는 에르제베트 언니, 고개를 끄덕이는 페넬리아 언니까지.
이제는 가족에게 둘러싸여 위로를 받고 있지 않다. 새로운 가족들 사이에서 축하를 받고 있다.
“마, 마르야?”
놀란 듯한 베아트릭스 언니의 목소리에 흠칫하고 말았다.어느새 뺨을 타고 눈물이 흐르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펑펑 쏟아지는 수준은 아니나, 기껏 한 화장이 망가지는 데는 한 방울로도 충분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오늘은 기쁜 날인데 왜 이러는 걸까. 좋은 분위기였는데 나 때문에 다들 놀랐잖아.
“개, 갠찬아여…”
겨우 입을 열었지만 눈에 이어 입도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내가 들어도 괜찮지 않은 목소리가 나와버렸으니.
부끄럽다. 괜히 감정이 북받쳐서 울기나 하고.
“다른 신부님들도 결혼을 코앞에 두면 감정이 격해지시고는 하죠. 눈물을 보이는 것 정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와중에 재단사만이 평온한 표정으로 나를 달래주었다.
저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울보를 달래기 위한 하얀 거짓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르가 운다고!?”
갑자기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칼을 보니 전자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칼이 진정할 것 같으니까.
***
문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눈물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와 무작정 난입했었다. 너무 짐승 같은 예절이지만 예비 신부가 우는데 식겁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재단사가 기쁨의 눈물이라 설명해줘서 마음이 놓였다. 마르도 자기가 왜 우는지 혼란스러운 기색이기도 했고.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 허.
그 소소한 소란을 첫 번째 장인어른에게 얘기하자, 장인어른은 실소를 지으셨다.
– 마르가 나보다 부인을 닮기는 했다. 아닌 척하면서 감성적인 게 딱 부인 성격이야.
“그, 장모님도 눈물을 보이셨습니까?”
– 덕분에 오해를 많이 받았지. 안 그래도 나이 차이가 제법 있는 결혼이었는데, 저거 약탈혼 아니냐는 얘기가 한동안 돌았었다.
씁쓸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유감스럽지만 장인어른의 덩치와 인상을 생각하면 그런 오해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장인어른 말씀대로 하필 마르의 어머니와 장인어른의 나이 차도 제법─
–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고개 들어라.
“예.”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
진정하자. 이 타이밍에 조금이라도 웃는 기색을 보이면 장인어른이 노할 가능성이 높다.
‘어떻게 공작이 약탈혼.’
슬쩍 입술을 깨물며 처절할 정도로 감정을 가라앉혔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떤 미치광이가 그딴 여론을 주도한 거야. 전대 공작 중 하나인가?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되는데.
“그래도 장모님이 장인어른과 행복하게 사시는 것처럼, 저도 마르와 행복하게 살 증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군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약탈혼이라는 단어를 머리에서 지운 후, 필사적으로 입을 열자 장인어른은 흡족한 기색을 보였다.
남들이 퍼뜨린 괴소문과 별개로 두 분은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그런 말을 막내 사위에게 들었으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을 거다.
–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그 뒤로 한참이나 장인어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으나, 장인어른은 구석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작게 중얼거리셨다.
– 이만 끊도록 하지.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제도에서 하고.
“벌써요? 아직 마르가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왕이면 보고 끊으시는 건 어떻습니까.”
– …괜찮다. 어차피 결혼식 때 볼 테니.
찰나지만 장인어른이 망설이는 게 느껴졌다. 허나 다시 권하지는 않았다. 무인이 굳은 결심을 세웠는데, 그걸 방해하는 건 같은 무인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 아, 그러고 보니.
막 통신을 끊으려던 장인어른이 도로 입을 열었다.
– 조만간 현명공이 제도에 올 거다. 조카의 결혼이니 꼭 가겠다고 난리더군.
“예, 뭐, 각오했습니다.”
– 현명공이 결혼식에 참석하면 황금공도 올 거다.
그 말에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일개 제국백 결혼식에 다섯 공작 전원이 모이는 꼴이니까.
‘환장하겠네.’
진짜 내 결혼식은 제국 역사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