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5)
로판 속 공무원 445화(446/451)
성 파로나스 대성당─ 아니,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은 고요했다. 마차에 탄 사람이 고작 둘인 만큼 시끌벅적함을 기대한 건 아니나, 아무런 대화가 없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도 마르도 입을 다물고 있지만 서로 어떤 심정으로 침묵하고 있는지 아니까. 이 감정을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저 맞은편에 앉은 상대를 보는 걸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이러고 있는 거다.
‘느낌이 다르긴 하네.’
마차에 난 창문을 통해 애써 바깥만 바라보는 마르. 귀엽고도 아름다운 모습이나, 솔직히 매일 보는 모습이다. 마르는 언제나 귀엽고, 아름답고, 상냥하지.
헌데 결혼식날이라 그런지 늘 보던 마르가 다르게 보인다. 매일 보는 일상의 마르가 아닌, 결혼식 당일에만 볼 수 있는 예비 신부 마르를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결혼.’
그 단어를 떠올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오늘은 첫 결혼을 하는 날이라 더욱 두근거린다. 헤카테라는 첫사랑이 있던 나도 정식 결혼식은 치르지 못했고, 마르는 말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신랑이라는 놈은 앞으로 다섯 번이나 더 결혼식을 치러야 하기에, 신랑과 신부가 전부 첫 결혼인 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신부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인성 파탄자 같기는 하네.
“마르.”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 전문가가 될 미래가 보여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결혼을 겪을수록 긴장 대신 여유가 생길 터. 그렇다면 결혼식장으로 가는 이 시간마저 오붓하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마르하고만 이 시간을 침묵으로 보내? 그건 마르에게 예의가 아니다.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
“네, 녜?”
너무 강렬한 시작이었는지 기껏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린 마르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실수했다. 머리에 결혼식 생각만 가득할 마르에게 결혼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화약고에 불을 붙이는 꼴이잖아.
물론 기껏 꺼낸 말을 물릴 생각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간다.
“한 번 차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많이 밀어냈는데, 다 이해해 주고 기다려줘서 고마워. 마르가 나랑 함께하는 걸 후회하지 않도록 잘 할게.”
그렇게 말하며 마르의 맞은편이 아닌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마르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니 우리도 장인어른 본받아서 여섯 명은 낳을까?”
“그, 저, 그게…”
그 말에 마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을 아꼈다.
아마 혼란스러울 거다. 저 여섯 명이라는 말이 모든 부인을 통틀어서 말하는 건지, 아니면 자기하고만 여섯을 보자는 건지 헷갈리겠지.
“자식만 서른이 넘으면 저택에 북적거리기는 하겠어.”
작게 웃으며 후자를 암시하는 말을 덧붙이자 마르의 동공이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카, 칼이…”
그러나 떨림은 짧았다.
“칼이 원한다면, 저도 노력할게요.”
다부지고 결연한 대답에 다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여섯 운운한 건 당연히 농담이었다. 어떤 미친 남편이 자식 계획을 아내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겠나. 그것도 둘이나 셋도 아닌 여섯을.
그냥 마르가 과하게 긴장한 것 같아서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
“초대 황후께서도 일곱이나 되는 자식을 낳으셨다고 들었어요. 덕분에 건국 초기 혼란스러웠던 제국을 지탱할 황족이 많았었죠.”
…?
“크라시우스 가문의 권위는 굳건하지만, 혈육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어느새 눈을 빛내는 마르를 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응. 그렇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허나 이번에도 물리지 않았다. 여기서 난감한 기색을 보이거나 농담이라고 둘러대면, 기껏 활기를 되찾은 마르가 다시 부끄러움에 잡아먹히는 수가 있다.
오늘도 나 스스로 업보를 쌓고 말았다.
결혼식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오, 부장님.”
2과장이었다.
“벌써 와있었냐?”
“나름 안내역인데 누구보다 빨리 와야죠. 저 그렇게 경우 없는 놈 아닙니다.”
낄낄거리는 2과장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저래 보여도 결혼식 경험자라 그런가, 생각보다 성실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모님도 어서 오십시오. 다행히 주인공보다 빨리 온 눈치 없는 하객은 없었습니다!”
“후후, 그런가요? 고마워요.”
2과장의 열정 넘치는 보고에 마르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2과장의 말처럼 아직 하객들은 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행사 진행 및 관리를 맡은 황실부 인력, 결혼식장인 대성당을 관리하는 사제 정도만 어슬렁거리는 정도. 거기에 더 추가해 봤자 내가 부른 감찰부 간부들뿐이었다.
‘부를 필요 없었나?’
생각보다 많은 인력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내 손님들이 오면 방명록 좀 대신 적고 축의금도 받게 하기 위해서 간부들을 부르기는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알았으면 그냥 하객으로 오게 뒀을 거다.
이거 지금이라도 편히 있으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2과장의 웃음소리에 어그로가 끌린 차장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부장님.”
“어, 방금 왔어. 아침부터 고생이 많네.”
민망한 마음에 차장의 어깨를 토닥였다. 사실 2과장은 알 바 아니지만 감찰성 창립 업무로 바쁜 차장을 끌고 온 건 너무한 거 아니었을까.
“부장님께서 결혼을 하는데 부하들이 자리를 빛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괘념치 마십시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차장은 덤덤히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부서의 장이 결혼을 하는데 부하들이 안내 역할로 일하는 것은 그 부서의 장악력을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 상사를 위해 일치단결하여 헌신하는 부하들─ 훌륭한 과시 아닌가.
물론 감찰부 간부들은 헌신과 거리가 먼 사이지만, 적어도 외부인들은 그 처절한 진실을 모른다. 아무튼 감찰부의 굳건함을 보여주기에는 딱이라는 뜻.
“…일하다가 피곤하면 적당히 황실부 사람하고 교체해. 3과장이랑 5과장한테도 전해주고.”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최후의 양심을 발휘하여 자율 교체 허가권을 주고 떠났다.
‘더 줘야겠다.’
그리고 일하는 대신 주기로 한 돈보다 2배 정도는 더 주기로 결심했다. 그 정도는 줘야 내 양심이 덜 아플 것 같아.
“저기, 칼.”
“응?”
씁쓸한 심정을 억누르며 발걸음을 옮기자, 마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왜 칼을 부장이라고 부르는 거죠? 이제 장관 아닌가요?”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목소리라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마르의 생각과 달리 감찰성은 아직출범 전 상태라 공식적인 내 직급은 부장이 맞다.
이상하게 황제를 포함해서 다들 장관 취급해서 문제지.
신랑 대기실에 홀로 앉아 찾아오는 지인들을 맞이했다. 아마 이 순간이 오늘 하루 중 유일하게 마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마음 같아서는 신부 대기실에 같이 있고 싶지만, 나와 달리 마르는 지인이 많아 방해만 될 거다. 아쉽지만 참는 수밖에.
“웬일로 정상적으로 입었군. 당연히 제복일 줄 알았는데.”
“제복 입으면 다른 녀석들하고 같은 복장이지 않습니까. 누가 보면 신랑이 여럿인 줄 알 겁니다.”
“그건 그렇지.”
그리고 얼굴을 보자마자 시비를 거는 장관에게 퉁명스레 대답하니, 장관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결혼식 때 피비린내 나는 감찰부 제복을 입는 건 지양해야 할 일이나─ 애초에 ‘제복’이라는 것 자체도 문제다. 당장 결혼식장에서 어슬렁거리는 감찰부 간부만 몇인데,나도 제복을 입고 오면 그것들과 커플티를 입는 꼴이잖아.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신랑이라는 놈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되는 거냐? 하객들은 어쩌고.”
“그쪽 처조카사위도 대기실에서 놀고 있었는데요.”
다행히 이 세계에서는 신랑이 홀에서 하객을 맞이하든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든, 온전히 신랑의 자유다. 딱히 정해진 규칙이나 암묵적 관례도 없다.
그렇기에 망설임 없이 대기실을 택했다. 한 번이라도 홀에 나와서 하객을 맞이하면 다른 다섯 번도 자동으로 그래야 하잖아. 솔직히 그건 귀찮아.
“유부남이 됐으면 슬슬 말 좀 줄여라. 부장인 놈이 따박따박 말 대답이나 하고 말이야.”
“평소에는 장관 취급했으면서 이럴 때만 부장 취급하지 맙시다.”
그렇게 장관과 한참이나 투닥이며 대화를 나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기실까지 찾아와 인사를 나눌 정도로 친한 지인은 드물었으니까. 장관과 말싸움을 벌일 여유는 충분하다.
“아무튼 결혼 축하한다. 혼자 살다 죽을 것처럼 지내던 놈이 부인만 여섯을 들이고, 하여간 사람 앞날은 모르겠어.”
“저도 몰랐으니 괜찮습니다.”
“흐, 아는 놈이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
짧게 웃음을 흘린 장관은 이윽고 내 어깨를 손을 올린 채 입을 다물었다.
평소라면 징그럽게 왜 이러냐고 기겁을 했겠지만, 장관의 표정이 드물게도 진중했기에 참았다.
“꼭 행복해라. 그래야 나도 죽어서 그 녀석들을 볼 면목이 서니까.”
“…예, 꼭 그러겠습니다.”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장관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기실을 나갔다.
‘한이 풀렸나 보네.’
그런 장관을 보니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소중한 친우들을 잃은 것처럼, 장관도 소중한 부하들을 잃었다. 그 부하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나였으니, 나는 장관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이자 마음의 짐이었겠지. 혹여나 마지막 남은 이놈도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그런 존재.
그러나 그 마지막 존재가 어느덧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죽은 친우들에게 집착하지 않고 새로운 인연을 바라봤다. 장관 입장에서 이 결혼식은 마지막 부하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일 거다.
그래서일까, 장관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홀가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