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7)
로판 속 공무원 447화(448/451)
무려 에넨이 개입한 발광 십자가 사태는 단순한 ‘결혼식 중 생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륙 주류 종교의 신. 최근 황혼 교단이 개박살나고 유목민이 제국의 품에 안긴 지금─ 그 위상이 더욱 더 높아진 에넨의 축복은 제국과 대륙 전체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야 일개 사제의 축복도 영광으로 여겨지는 이 세계에서, 신의 축복을 가볍게 여길 존재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 소란 속에서 황제는 인성과 반비례하는 지능을 가진 놈답게 가장 먼저 이성을 차렸다.
“황실과 제국의 위엄이 바로 선 것은 실로 천상의 에넨과 대제의 보우하심이며, 이제는 여러 홍복을 상황 폐하와 짐에게 안긴 충신의 결혼을 친히 축복하셨음이라. 이 어찌 경사가 아니겠는가.”
우선 내 결혼식에 에넨이 개입한 것을 공인함과 동시에 그 축복을 ‘내 결혼을 위한 축복’이 아닌 ‘황실과 제국을 위한 축복의 연장선’으로 삼았다. 신이 일개 신하를 총애한 것이 아닌 황실과 제국을 지켜보고 있다고 홍보한 것이다.
물론 다른 군주가 했다면 씨알도 안 먹혔을 말이다. 아무리 축복의 연장선이라도 군주가 아닌 일개 신하의 결혼식에 존재감을 뿜은 건 납득시킬 수 없다. 군주보다 신하가 총애 받는다는 얘기가 나오기 충분하다.
하지만 황제는 그럴 걱정이 없다. 황제가 황제로 군림하는 것 자체가 에넨의 축복이기에. 그 어떠한 축복이라도 신으로부터 천명을 부여받은 황제보다는 나약한 총애기에.
‘하여간 대가리는 좋아.’
처절한 여론전을 펼치던 황제를 떠올리며 픽 웃음을 흘렸다. 그 새끼의 맹활약 덕분에 나에게 쏠리던 어그로가 분산됐으니 썩 나쁘지는 않다.
게다가 신이 축복한 결혼식에서 사회를 본 리시우코 추기경이 차기 교황 후보로 급부상하고, 신성교국에서 급히 사절단을 보내는 등, 화려한 일들이 연달아 터졌다. 그만큼 나에 대한 관심도 다소 줄어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역시 고통은 나눠야 줄어드네.’
덕분에 나는 오붓한 신혼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하마터면 결혼식 당일부터 저택이 손님으로 미어터질 뻔했어.
“카아알… 벌써 일어났어요…?”
“아, 미안. 깼어?”
그 와중에 비몽사몽한 모습으로 입을 여는 마르의 이마에 입을 맞추자, 마르는 여전히 졸음이 담긴 얼굴로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같은 침대에 누운 놈이 몸을 일으키니 그 충격에 깬 모양.
그냥 화장실 가려고 잠깐 일어난 건데,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든 마르를 깨우고 말았다. 졸지에 아내의 수면을 방해하는 남편이 된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다.
‘많이 방해하기는 했지.’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동시에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 미동조차 하지 않는 마르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많이 했어.’
결혼식부터 오늘까지 열흘. 그 시간 동안 마르는 침대에서 잔 시간보다 다른 것을 한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었다. 덕분에 육체적으로 무리가 와서 정자세로 누워있어야 할 정도로.
허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나만 좋자고 한 행동이 아닌 우리 부부의, 더 나아가 크라시우스 가문의 행복을 위한 대의였으니까.
“크라시우스 가문의 권위는 굳건하지만, 혈육은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심지어 처음에는 마르가 더 적극적이었다. 결혼식장으로 가던 마차에서 그런 말까지 했으니 오죽하겠냐만.
“카, 칼? 잠깐만, 잠깐만 쉬었다가…”
“해가 뜨는 걸 보자고 한 건 마르잖아.”
다만 마르가 아무리 불굴의 정신력을 가졌어도 내 신체적 능력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당연한 일인데 마르만 그걸 몰랐어.
열흘 동안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마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2세는 올해 안에 태어나려나.’
어쩌면 첫눈과 함께 우리 곁으로 올지도 모르겠다.
“저기, 칼.”
“응?”
2세가 태어나면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 고민에 빠질 무렵, 희미한 마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첫 아이. 어쩌면 저랑 생일이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르도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싶어서.
허리를 부여잡으며 겨우 몸을 일으킨 마르와 함께 방에서 나왔다. 아무리 몸이 고달파도 식사까지 방에서 하는 건 곤란한 일이니.
“주인님, 마님! 벌써 일어나셨어요?”
“아, 아직 식사는 준비 중이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렸다는 듯 유리스랑 소피아가 튀어나올 때는 조금 놀랐다. 혹시 방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나오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건가?
“우리가 일찍 일어난 거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전해줘.”
“네, 네!”
아무튼 당황한 듯한 소피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소피아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주방장과 요리사들이 농땡이를 치다 식사가 늦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평소보다 일찍 나온 상황 아닌가.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애초에 지금 화를 내면 예약 시간보다 일찍 식당에 방문한 주제에 왜 음식이 없냐고 따지는 꼴이기도 하─
“아, 마님.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마님을 보필해도 될까요?”
해맑은 유리스의 말에 소피아를 쓰다듬던 손이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직 몸이 성치 않은 마르지만, 사용인들 앞에서 품위 없는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애써 꼿꼿하게 걷는 마르다. 그런데 그런 마르를 향해 굳이 보필이라는 말을 언급했다? 유리스가 판단하기에 마르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다는 의미.
‘진짜 근처에 있었던 건가.’
무심코 침을 삼켰다. 물론 얘네도 알 거 다 아는 나이기는 한데, 어릴 때부터 본 데다 저택 사용인 중 최연소라 그런지 아직 꼬꼬마로 보이는 아이들이다. 그런 꼬꼬마들도 알 정도로 신혼을 불태웠다고 생각하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수치심이 올라왔다.
이윽고 시선을 조용히 옆으로 돌리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마르가 보였다.
‘미안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기에 속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신혼의 뜨거움을 모든 사용인들이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미칠 노릇이겠지.
그리고 내 시선을 느낀 듯 나를 쳐다본 마르는 자그마한 원망을 담은 눈초리로 눈물을 글썽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미친놈이기는 하다.
***
마지막 서류에 직인을 찍은 후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이라고 해봤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서류들이 우르르 몰려올 테지만, 지금만큼은 마지막이 맞다. 그렇다면 지금을 즐기는 수밖에.
‘돌아버리겠군.’
하지만 막 직인을 찍은 서류가 눈에 들어오자 헛웃음이 터졌다.
그래, 저 서류가 문제다. 저 서류를 보면 도저히 지금을 즐길 수 없다. 내가 괜히 저걸 마지막에 처리했겠는가.
[ 경신성사성 성장 알디노 보이타야 추기경, 시성성 성장 알렉산드리아나 테레지아 추기경 입국 예정. ]서류 맨 위에 당당히 적힌 문장을 보고 결국 한숨이 터졌다. 두 추기경의 방문은감찰성 장관의 결혼식 중 발생한 기적으로 인해 신성교국도 뒤집어졌다는 증거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대륙의 안위나 교단의 존폐 문제가 아니면 개입을 극히 꺼리는 에넨이 일개 필멸자의 결혼식에 개입했다. 아무리 황제인 내가 황실과 제국에 대한 총애니, 천명이 굳건하다는 증거니 떠들어도 관계자인 신성교국 입장에서는 ‘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렇기에 신성교국은 빠르게, 동시에 무겁게 움직였다. 일단 급하게 꾸린 사절단을 제국─ 정확히는 성 파로나스 대성당으로 보낸 뒤에 진짜 사절단을 추가로 꾸린 것이다.
‘화려하기도 하군.’
심지어 사절단 핵심 인물인 알디노 추기경과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은 무려 한 개의 성을 총괄하는 성장이기도 한 거물들이다.추기경이라는 권위에다 성장이라는 권력까지 결합되어 사실상 교황 바로 다음가는 존재들. 제국 내에 존재하는 사제들 중 최고위 인사인 리시우코 추기경조차 교단 내 서열로 따지면 저 둘보다 아래다.
아니, 이제 리시우코 추기경은 기적을 가까이서 목도한 사제니 현시점에서는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지도 모르겠다.
…이걸 반대로 얘기하면 기적을 가까이서 본 추기경 정도는 되어야 저 둘과 비빌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고.
‘그나마 교황이 오지 않은 게 다행인가.’
스스로 생각해도 실소가 나오는 생각이지만 사실이다. 교황이 이미 양위식 문제로 작년에 방문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교황이 왔을 정도의 사안이니까. 이건 부정할 수 없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교단의 전례와 행사를 담당하는 경신성사성과 성인에 대한 시성을 담당하는 시성성의 성장을 보내버렸지만.
차라리 교황 하나만 오는 게 더 편했으려나? 아니, 아니다. 교황이 움직인다면 절대 교황만 올 리가 없으니 이게 나아.
‘망할.’
미간을 짚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감찰성 장관의 결혼식 덕분에 황실과 제국의 권위는 더욱 높아졌으나, 그 대가가 눈이 뒤집힌 신성교국과의 드잡이질이라고 생각하면 없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장관이 원망스럽다. 이 일은 장관의 책임이 아니지만, 일단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다. 이 끔찍한 사태를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고 싶다.
‘신혼만 아니었어도.’
허나 그 사소한 희망마저 이룰 수 없다. 장관에게 이번 일을 수습하라고 명령하기에는 신혼이라는 두꺼운 방패가 가로 막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신혼을 건드리는 건 도리가 아니지.
“그냥 무시하고 부를까?”
무심코 육성으로 본심을 뱉어버렸다. 물론 오붓하고 뜨거운 신혼을 즐기고 있을 관료를 ‘이거 수습해.’라는 명목으로 소환하면 지고의 충신도 역적으로 변할 수 있다. 내가 그 정도도 모르는 놈은 아니다.
만약 객관적으로, 누가 보더라도 장관에게 이로운 사유로 소환하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육아 때문에 쉬고 있던 정보차장 내정자도 승진이라는 명분이 걸리니 무난히 부를 수 있지 않았나.그러나 애석하게도 이번 일은 명백하게 부정적인 사유다. 그러니 참는 수밖에.
‘부하가 친 사고를 수습하는 상사라니.’
갑자기 자괴감이 든다.
정확히는 장관이 아닌 에넨이 친 사고지만 아무튼 그렇다.
역시 황제는 에넨의 축복을 받은 존재가 맞다.
[ …천상의 주께서 친히 축복을 내린 결혼식은 가히 옛 성서에 나오는 성인들의 결혼에 비할 아름다운 기적입니다. 폐하께옵서 허락하신다면 그 기적을 겪은 두 분을 직접 만나 뵈어 주를 향한 믿음을 논하고자 하니, 부디 너른 마음으로 용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서신이 올 리가 없다.
‘성인.’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시성성 성장이 성인을 논했다. 감찰성 장관과 마르게타 공─ 아니, 타일글레헨 백작부인의 시성이 가능할 수도 있는 일.
고인이 성인이 되는 것도 영광인데, 살아서 성인이 된다?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긍정적인 사유다.
‘이건 소환하는 수밖에 없겠군.’
내가 어지간하면 신혼은 즐기게 두려고 했는데. 실로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