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48)
로판 속 공무원 448화(449/451)
느긋하고 화목한 아침 식사는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평소에는 식사라고 해봤자 수프나 빵을 입에 욱여넣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휴가라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제도 덕분에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행복하다. 수프를 접시째 들어서 마실 필요도, 빵을 입에 문 채 뛰쳐나갈 필요도 없다. 문명인답게 숟가락으로 수프를 마시고, 샐러드에 뿌릴 드레싱을 진지하게 고른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행복한 일인가.
‘좋네.’
작게 자른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방장의 실력은 평소에도 좋았지만, 요즘 들어 더욱 발전한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내 입맛이 완전한 부활을 향해 달려가는 걸 수도 있고.
“흐읏─”
그렇게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던 중, 갑작스레 마르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물론 신음이라고 해봤자 작은 소리였다. 기껏해야 사용인들이 음식을 식탁에 내려놓은 것보다 조금 큰 정도였으니.
허나 유감스럽게도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전부 식사 예절을 익힌 귀족들. 특별한 일이 아니면 침묵을 지키며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마르의 목소리는 고요를 깨트린 함성이 되어버렸다.
“…괜찮니?”
그리고 더욱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신음의 원인 또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 덕분에 트릭시는 귀가 붉어진 채 마르의 안부를 물었다.
상냥하지만 잔인하다. 지금은 이 악물고 모른 척을 하는 게 옳지 않았을까.
“네, 괜찮아요.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포크를 쥔 손을 파르르 떨던 마르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툭 건들면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촉촉한 눈망울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민망함과 죄책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조금은 자제할 걸 그랬나? 이거 아직 순수하고 해맑은 신부에게 공개적으로 수치심을 주는 것 같잖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다행히 트릭시도 이 대화를 오래 끌면 마르가 도망칠 미래가 보이는지, 황급히 대화를 끝내며 헛기침을 했다.
대신 여전히 붉게 물든 귀를 매만지며 어쩔 줄 모르는 기색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자제할 걸 그랬어.’
순간 한숨이 나올 뻔했다.저 은근한 시선은 마르를 수치심에 몰아넣은 죄책감 때문이 아니다. 약 반 년 후, 자신도 마르와 같은 일을 겪을 거라는 공포와 기대감 때문이겠지.
‘반 년이라.’
트릭시에 이어 다른 연인들의 시선까지 쏠리자 조용히 물을 마셨다.
결혼식을 수시로 하는 건 하객들에게 가혹한 일이라 반 년 주기로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연인들을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이 공개처형을 1개월, 2개월 주기가 아닌 반 년에 한 번만 보면 된다는 것이니.
한 번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자.
식사 후 티타임은 아무 소란 없이 진행되었다. 수치심에 허우적거리던 마르도 감정을 가라앉혔으니 소란이 생기려고 해도 생길 수가 없었고.
다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 식사 후 업무 복귀가 아니라 티타임이라니. 이런 극상의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
‘뭐야.’
그 순간 품에 있던 통신구가 짧게 진동했다. 누군가 문자를 보낸 모양.
평소라면 무슨 일이라도 터졌나 인상을 쓰며 통신구를 꺼냈겠지만, 요즘은 여유로운 손짓으로 통신구를 확인하고 있다. 어차피 신혼 생활 축하한다는 안부 문자겠지. 지금은 신혼 휴가 중이라 업무적으로 문자가 올 리가 없다.
‘황제?’
문자를 보낸 사람을 확인하자마자 본능적으로 움찔했으나, 금방 긴장을 풀었다.
겁먹지 말자. 지금의 나는 무려 신혼을 방패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아무리 황제여도 신혼을 즐기는 신하를 소환할 수는 없다. 왕권이 강력한 유교 국가에서도 부모님 상을 겪은 신하를 함부로 부르기 어려운 것처럼.
그렇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황제가 보낸 문자를 읽었고,
‘시발.’
목 끝까지 욕이 치솟았다. 겉으로는 나에게 시간을 허락해달라는 요청이었으나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는 통보. 나만 있는 자리였다면 아마 통신구까지 집어던졌을 거다.
‘이게 무슨.’
저절로 손이 떨렸다.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내 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확인했다.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몇 번을 확인해도 황제가 보낸 문자는 내가 읽은 그대로였다. 신성교국에서 온 시성성 성장이 우리 부부와의 대면을 원하고 있다─ 라는 내용.
망할, 혹시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꿈이라면 어디부터가 꿈인 거지?
“오라버니? 무슨 일 있으세요?”
그리고 평온하게 차를 마시던 놈이 갑자기 통신구를 노려보며 인상을 구기자, 막 쿠키를 입에 넣으려던 루이제가 고개를 기울였다.
루이제는 물론 다른 연인들의 시선도 쏠리기에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실수했다.황제가 나에게 정신 나간 폭탄을 던졌어도 가족 앞에서 불쾌한 감정을 표하는 건 올바른 가장의 모습이 아니다.
이건 반성하자. 막 가장이 된 뉴비라 그런지 아직 부족한 게 많아.
“아, 조금 특이한 내용이 전달돼서 놀랐거든. 많이 티 났어?”
일단 최대한 자연스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최대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최대한 화가 나지 않은 것처럼.
“조금 특이한 거 맞죠?”
그런데 루이제가 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았나 보다.
이상하다. 나도 나름 표정 관리는 그럭저럭하는 편인데, 루이제한테는 잘 안 통하네.
“사실 많이 특이해.”
짧은 고민 끝에 순순히 실토했다. 가족이 될 연인끼리 무언가 숨기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이미 몇 번이나 다짐한 일 아니던가.
게다가 나 개인의 일이 아닌 마르와도 관련된 일이니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도 없다.
“그, 결혼식 때 화려한 일이 있었잖아. 그것 때문에 신성교국에서 성장이 둘이나 왔어.”
“성장이요?”
내 말을 받아준 건 마르였다. 주제가 결혼식으로 넘어갔으니 결혼 당사자인 마르가 나서는 건 당연한 일.
“응. 경신성사성하고 시성성 쪽에서 왔대. 지금은 제도로 오는 중이고.”
그 말에 마르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경신성사성은 여명 교단 최대 행사 중 하나인 승천식을 직접 주관하는 부서이며, 시성성은 이름 그대로 성인에 대한 시성을 맡은 부서다. 그런 핵심 부서의 수장이 우리 때문에 왔다는데 긴장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비록 마르가 공작의 딸이지만, 아무리 제국 공작가의 일원이어도 신성교국의 성장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이곳은 신이 실재하고 그 위엄을 증명한 세계이니.
‘어쩌지.’
아무튼 그런 마르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우리 결혼식 때문에 성장 둘이 제국까지 왔어.’ 라는 말로도 굳어버린 마르에게 ‘그런데 시성성 성장이 우리 직접 보고 싶대.’ 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심지어 황제가 보낸 문자에는 시성성 성장이 우리와 신앙에 대해 논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적혔다. 추기경에다 성장이나 되는 사람이 정말 신앙에 대한 깨달음을 위해 우리를 보고 싶은 건 아닐 테고, 당연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만남을 청하는 것일 터. 그 다른 이유는 높은 확률로 시성 문제일 것이다.
물론 나와 마르가 성인으로 지정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성인 후보가 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명예와 권위가 생긴다. 아주 만약에 진짜로 성인이 되면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문제다. 차라리 황제가 일 좀 하라고 소환하는 거면 무시해도 무방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명예로운 일이라 무시할 수도 없잖아. 거기다 신성교국에서 제국까지 온 성장이 얼굴 좀 보자는데 거부하면 사이가 어색해질 수도 있는 노릇.
“…그리고 둘 중에 시성성 성장 말인데─”
결국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건 피할 수 없고 숨길 수도 없으니 말하는 게 맞겠지…
***
멍하니 항구에 서서 점차 가까워지는 함대를 바라봤다. 돛에 신성교국을 상징하는 문장이 거대하게 그려진, 열 척이나 되는 함선이 다가오고 있다.
‘크군.’
밋밋한 감상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한 척 한 척으로도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는 거대한 함선이 무려 열 척이나 뭉쳐있다. 보자마자 크고 웅장하다는 생각 외에 무슨 생각이 들겠나.
게다가 저 함대에 있는 인물들을 생각하면 크다는 말이 어울린다. 제국도 중히 대해야 할 거물이 둘이나 탑승하고 있으니까.
‘내가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건지.’
답답하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기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이다. 황제 폐하의 유일한 동생이자 제국의 후작으로서, 마땅히 그 명에 따라야 한다.
“성장의 입국이라면 본래 외무성 장관이 맡아야 할 일이나, 외무성 장관은 아직 아르메인에 있다. 덕분에 제국에 남아있는 외무성 인사 중 성장과 격이 맞는 인물이 없지.”
단지 그 명이 받지 않아도 될 명이었다는 게 문제일 뿐.
“그러니 아인테르. 네가 가서 성장들을 맞이하거라. 황제의 동생이 맞이한다면 성장들도 만족할 것이고, 실질적인 업무는 너와 동행할 외무성에서 맡을 것이다.”
황제 폐하의 덤덤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넥타이를 매만졌다.
확실히 난데없는 명이었지만 이는 폐하께서 나에게 신뢰와 자격을 준다는 의미. 그런 만큼 나도 그 신뢰에 부응하는 것이 옳다.
“각하.”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사이, 옆에서 수행원으로 붙은 외무성 인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신성교국과의 외교를 담당하는 부장급 인사라고 했었나.
“이제 준비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예, 그러도록 하죠.”
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신성교국의 함대가 항구에 정박했으니, 부장의 말처럼 슬슬 준비해야 제대로 성장들을 맞이할 수 있다.
‘…성장이라.’
미약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왕국의 대신들이 제국의 장관보다 아래로 취급되는 반면, 신성교국의 성장들은 장관과 동급으로 취급된다. 신성교국의 종교적 권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
그래서인지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성장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감찰성 장관이 떠오른다.
‘장관 같은 괴물이면 곤란한데.’
제발 양호한, 상대적으로 양호한 인물들이었으면 좋겠다.
부질없는 꿈을 꾼 것 같다.
“어르신, 가까운 거리를 왜 이리 빙빙 돌아서 이동한 거죠? 하마터면 뱃멀미로 소천할 뻔했잖아요.”
“계속 말하지 않았나. 앞길을 보니 급하게 가면 재앙과 마주할 것 같더군. 피할 수 있는 재앙을 예지했다면 당연히 피해야지.”
“예~지랄 마세요. 오랜만에 바깥바람 쐰다고 천천히 온 거면서 무슨.”
“아무래도 재앙은 자네 주둥아리였던 것 같아.”
기함에서 옥신각신거리며 내려오는 노년의 남성과 젊은 여성을 보자마자 느꼈다.
신성교국의 성장들도 정상은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