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59)
로판 속 공무원 459화(460/945)
알렉산드리아나 선수가 퇴장하고 영원한 푸른 하늘 선수로 교체되었다.
– 왜 네가 에넨의 복자야? 너 내 성흔도 있고 신물도 가지고 있잖아. 내 복자여야 하는 거 아니야?
‘복자라고 해봤자 그냥 훈장 같은 겁니다. 게다가복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여명 교단이 유일한데, 어떻게 그쪽 복자가 됩니까?’
갑자기 나타난 영원한 푸른 하늘은 내가 여명 교단의 복자로 시복되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현란한 칭얼거림을 시작했다. 혼이 나갈 것 같은 현란함이었으나, 최대한 정성을 다하여 답변해 줬다.
영원한 푸른 하늘의 목소리에서 은근한 서러움이 느껴졌으니까. 평소처럼 심심해서 농담을 거는 것이 아닌, 정말로 서운하고 섭섭해서 저러는 것이다.
그런데 난 처음부터 여명 교단 신도였잖아. 여명 교단 신도가 여명 교단한테서 복자 시복되는 게 뭐가 이상한 건데.
– 훈장 같은 거니까 더 위험해! 그나마 성흔이랑 신물이 있어서 나랑 가까운 거지, 에넨이 훈장까지 주면 에넨 쪽으로 붙을 거잖아!
빼애액 소리치는 영원한 푸른 하늘은 거의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서 드러누운 미운 다섯 살 같은 기세를 보였다.
착잡하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호쾌한 고대의 신 같은 분위기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쾌함은 안쓰러움으로 변해가고 있다. 세계수(진급 예정)에 깃들어있는 동안 무슨 일을 겪었길래 이런 안타까운 존재가 된 걸까.
– 복자 거절하면 안 돼? 에넨은 다른 애들도 많지만, 난 너밖에 없단 말이야…
순간 북방에 있을 바란디가 후작이 떠올랐지만 빠르게 머리에서 지웠다.
그 양반이 패션 제사장이라는 건 나도 알고 영원한 푸른 하늘도 알고 바란디가 후작 자신도 알 거다. 그러니 지금 상황에서 바란디가 후작을 언급해봤자 영원한 푸른 하늘의 울분은 더욱 거세질 터.
‘신물에 깃든 기운, 이번 주 내로 세계수에 넘길 테니 진정하십쇼.’
그 말에 영원한 푸른 하늘이 침묵했다. 지금 발언은 ‘신물을 넘길 테니 이제 너랑 아무런 연관도 없다’는 의미의 손절이 아닌, 영원한 푸른 하늘이 깃든 나무가 세계수로 진화하는 데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었으니.
– …진짜?
‘진짜.’
신물에 깃든 기운을 예비 세계수로 옮기는 건 이미 영원한 푸른 하늘과 합의를 본 사안이었다. 단지 그 시점을 정확히 정하지 못했을 뿐.
평소에는 내가 아카데미에 주둔 중이라 자리를 비우지 못했고, 요즘은 신혼 생활을 즐기고 있었지 않았나. 덕분에 영원한 푸른 하늘도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기다리기만 했다. 괜히 독촉했다가 내 기분이 상하면 언젠가조차 기약할 수 없으니.
그런 상황에서 내 입으로 이번 주라는 시간제한을 걸었다? 영원한 푸른 하늘 입장에서는 서러움이 순식간에 사라질 일이다.
‘늦어도 주말에는 가겠습니다.’
– 알았어! 기다릴게!
미약한 물기가 서려있던 목소리는 어느새 발랄하고 호쾌하게 변했다.
신앙을 받지 못하는 신은 가련하기 그지없구나…
즉흥적으로 이번 주라는 시간제한을 걸게 되었으나, 사실 조만간 이종족 보호 구역에 갈 계획이 있기는 했다.새해가 밝았으니 트릭시의 외조모님께 인사라도 드려야 하지 않겠나.
다만 트릭시가 신혼 중인 나를 배려하여 다음 달 정도에 가자고 했었고,
“이번 주말에 말이니?”
“응. 나는 당장 가도 괜찮기는 한데, 트릭시는 마탑 일도 있잖아.”
신혼 당사자인 내가 먼저 가자는 말을 꺼내니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야 예비 남편이 자청해서 자신의 외조모를 뵈러 가자고 하는데 누가 싫어할까. 만약 트릭시와 외조모님의 사이가 험악하다면 또 모르겠으나, 다행히 둘의 사이는 애틋하고 화목하다.
“나도 주말이면 괜찮지만… 무리해서 시간을 낼 필요는 없단다.”
“처가에 인사드리러 가는 건데 무리하는 게 어디 있어. 바빠도 제일 먼저 가야지.”
“그, 그렇구나.”
내 단호한 대답에 트릭시의 귀가 파닥거렸다.
외조모님을 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나보다 트릭시가 더욱 클 거다. 물론 텔레포트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트릭시이니 작년 수학여행 이후로도 몇 번 혼자서 갔다고 들었지만, 외손녀 혼자 가는 것과 외손녀사위가 같이 가는 건 다른 문제.
심지어 다른 처가 어른들은 저번 결혼식 때 하객으로 참석하여 인사도 나누었으니, 트릭시의 외조모님은 올해 들어서 유일하게 인사를 드리지 못한 처가 분이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트릭시의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겠지.
그렇기에 지금이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라면 빠르게 가는 것이 옳다.
“그리고 결혼식 때 어떻게 하실 건지도 여쭤보자. 외조모님이 오시기 불편하면 우리가 거기로 가야지.”
올해 하반기에 이루어질 트릭시와의 결혼. 유일한 외손녀의 결혼인 만큼 외조모님도 참석하셔야 할 텐데, 이종족 보호 구역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 하시면 보호 구역 내에서 결혼식을 할 의향도 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보호 구역 내에서 결혼식을 할 경우, 인간 하객들이 오기 힘들다는 건데─
‘여차하면 두 번 하자.’
인간들이 모인 결혼식 한 번, 엘프들이 모인 결혼식 한 번. 이렇게 하면 된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결혼식 두 번이 대수냐.
***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요정들과 놀아주려던 찰나, 트릭시에게서 연락이 왔다.
“주말에 말이니?”
– 네. 점심 정도에 갈 예정입니다.
그것도 반갑고 기쁜 소식과 함께.
‘역시 닮았어.’
그리고 상기된 얼굴로 연신 귀를 파닥이는 트릭시를 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마치 어릴 적의 아리아드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어쩜 제 어미를 저리도 쏙 빼닮았는지. 분명 사위의 피가 섞여 있을 텐데, 그 피를 찾아보기 어렵다.
‘주말이라.’
이윽고 몇 시간 전, 영원한 푸른 하늘께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이번 주에 귀한 손님이 올 거야. 이 세계수에게도, 너에게도 반가운 손님이니 알아둬.
정말 귀하고도 반가운 손님이었다. 사랑하는 외손녀와 세계수를 부활시킨 외손녀사위가 오다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나이를 먹어서 잠만 줄어들었는데, 그런 소식을 알려주면 두근거려서 어떻게 자라는 거니.”
– 말없이 찾아가면 너무 놀라실 것 같아서요.
슬쩍 농담을 건네자 트릭시도 미소를 지은 채 맞장구를 쳐줬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리아드네가 집을 나간 이후로 나와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동족들에게는 장로였고, 요정들에게는 자신들을 돌봐주는 아줌마였으니.
– 아, 외할머니.
나를 따라 웃던 트릭시가 뒤늦게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 이번에 찾아뵈면 결혼에 대해서도 얘기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웃고 있던 얼굴 그대로 굳고 말았다.
‘결혼?’
트릭시가 결혼한다는 것 자체에 놀란 건 아니다. 작년에 자신의 연인이라며 외손녀사위를 소개한 이후부터 각오한 일이다. 트릭시가 인간 기준으로는 결혼하기 충분한 나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물론 아직도 120살에 결혼한 엘프라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흠칫하지만, 인간 세상에서 자란 아이에게 엘프의 잣대를 들이미는 건 너무한 일.
그럼에도 몸이 굳어버린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딸의 결혼도 보지 못했는데.’
하나뿐인 딸의 결혼도, 출산도 지키지 못한 못난 어른이 외손녀의 결혼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못난 어미이자 할미가 그런 행복을 누려도 되나 두려워서.
– 외할머니?
“아, 미안하구나. 아직 어린 아이가 결혼을 한다는 게 놀라워서…”
갑자기 입을 다물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트릭시의 모습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외손녀 앞에서 우중충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 엘프 사이에서는 어리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결혼해도 문제없는 나이입니다.
“그럼, 당연히 알지. 내가 아직 옛날 사고방식을 가져서 조금 놀란 거란다.”
조금 뾰로통한 트릭시를 향해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래, 트릭시의 결혼은 기쁜 일이다. 가족으로서 누구보다 축하해 줘야 할, 진심으로 웃어줘야 할 일이다.
그러니 두려움은 잠시 집어넣자. 나 혼자만의 문제였다면 스스로 답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려도 되지만, 트릭시의 유일한 혈육으로서 트릭시의 결혼을 외면할 수 없다.
‘혼자서 3인분은 해야겠어.’
이미 떠난 딸과 사위의 몫을 생각하면 나 홀로 셋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4인분인가?’
생각해 보니 그 이도 살아있었다면 외손녀를 귀여워했을 테니 넷의 역할이겠구나.
다들 나만 두고 떠나서 남은 사람만 고생하게 생겼다.
주말을 바라보며 하루하루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냈다.
너무 들뜬 나머지 평소보다 과하게 가지를 정리해버린 일도 생겼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께서는 질책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하셨을 뿐.
역시 세계수 부활에 힘을 빌려주신 분답게 자비로운 분이다. 앞으로는 더욱 성심성의껏 가지치기를 하자.
“장로님, 말씀하신 거 가져왔어요.”
그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바닥에 떨어진 가지와 잎을 청소하는 사이, 내 부탁을 받은 클라리스가 양손 가득히 여러 식재료를 가지고 왔다.
빠르게 훑어보기만 했음에도 상등품인 물건들이다. 재료가 이 정도로 좋으니 결과물도 좋겠어.
“수고 많았단다. 남은 돈은 네가 가지렴.”
“남은 돈이 쓴 돈보다 더 많은데요?”
“늙은이 심부름을 했으니 그 정도는 받아야지.”
“아,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클라리스는 조심스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대신 요리는 제가 할게요. 그 정도는 해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식재료를 든 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너무 빠르고 단호한 발걸음이라 막지도 못했다.
‘이를 어쩐다.’
곤란한 상황이다. 외손녀와 외손녀사위에게 직접 요리를 대접해 주고 싶은 건데, 그걸 클라리스가 대신한다면 그 의미가 퇴색된다.
하지만 클라리스의 고집도 상당하니 정말 본인이 요리를 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줬던 돈을 돌려받아야 할 텐데…
‘마법으로 재울까?’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호의로 도와준다는 아이를 강제로 재우는 건 너무한 일이다.
게다가 클라리스 입장에서도 트릭시는 친구의 딸이다. 먼저 떠난 친구의 어린 딸이 온다고 하니, 직접 요리를 만들어 대접해주고 싶을 터.
‘어쩔 수 없지.’
옆에서 도와주는 형식으로 내 지분을 확보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