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6)
제 46화
우리 박람회 정상영업합니다 – 5
부스 운영 마지막날을 완판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올해 만든 동아리치고는 화려하고 전설적인 위업이 아닐 수 없다. 루이제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해맑게 웃는 것이 꽤 기쁜 것 같았고.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매일 살 걸 그랬나.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찰관님께서 고생하시는 걸 생각하면 이런 일이야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죠.”
“그래도 돈은 받으셔야죠. 관료가 민간인과의 돈거래를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곤란합니다.”
“하하. 그렇습니까?”
쿠키를 픽업하기 위해 감찰관 숙소 앞에서 교감과 만났고,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사양하는 교감에게 겨우겨우 돈을 쥐어주었다. 아무튼 사적인 부탁으로 교감을 귀찮게 한 것은 맞고, 돈을 강제로 쓰게 만든 것도 맞으니까.
그리고 교감은 농담으로 들은 것 같지만, 정말 공무원이 민간인 상대로 돈 문제를 이상하게 하면 내가 곤란해진다. 형무성 놈들한테 붙잡혀서 수감되는 건 딱히 좋은 일이 아니니까. 걔네는 나도 만나기 꺼려지는 놈들이라 영.
“감찰관님은 부원들에게 애정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인다니 기쁘군요.”
웃으며 말하는 교감에게 나도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적어도 교감이 보기에는 내가 무난한 고문으로 보인다는 말이니까. 그동안 고생한 만큼 제대로 이미지가 잡힌 것 같아 만족스럽다.
그리고 돌아가는 교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손에 들린 쿠키 주머니의 크기를 확인했다.
‘양은 확실히 적네.’
정말 다행스럽게도 동아리실에서 겪은 대량 생산 수준은 아니다. 마지막날에는 루이제도 대부분 버릴 거라 생각해 조금 만들었으니 망정이지. 혼자 끼니로 때우기에 적당한 양이다.
게다가 내일은 강당에서 하는 순위 발표와 저녁에 열리는 연회 외에는 아무 일정도 없다. 발표도 정오에 한다고 하니 느긋하게 먹어도 되겠지. 아침부터 나갈 필요는 없으니까.
어차피 1등은 제과 동아리일 것이 뻔한지라 직접 가서 볼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고문이니 얼굴은 비춰야 한다. 번거롭지만 어쩌겠나. 명함이 쥐어졌으면 그 명함에 맞게 움직이긴 해야지.
지금까지 아카데미 강당에 가 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아카데미 내부를 돌아다니다 겉모습을 본 정도. 들어갈 일이 없어서 내부는 본 적이 없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꽤 거대한 건물이었다.
‘크네.’
그리고 내부도 웅장하기 짝이 없었다. 광활한 1층, 그런 1층을 내려다 볼 수 있는 2층이 존재하는 구조. 좌석만 빼곡하게 차있으면 공연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1층은 복잡할 테니 2층에 계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아직 한산한 강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자니 옆에 있던 교감이 슬쩍 2층으로 가는 걸 권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아서 수긍했고. 1층에는 온갖 학생과 교직원이 모일 텐데, 그 사이에 끼어 있기에는 서로 부담스럽다. 차라리 2층에서 내려다보는 게 편하지.
막상 올라가서 보니 무대도 그리 멀리 느껴지지는 않았다. 루이제가 수상하는 모습은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은 정도.
‘여기서 박수 쳐도 무대까지 들리겠는데.’
만족스러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괜찮은 위치 선정을 마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학생들이 하나 둘 1층에 모이기 시작했다. 아직 정오가 되려면 시간이 좀 남았는데 성실하기도 하지. 제일 먼저 온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1층은 금방 인파로 가득찼고, 2층에는 교직원 몇 명과 학생회 정도만 올라왔다. 사람이 얼마 없어 멀찍이 떨어져 있는 2층에서도 어색한데 1층에 끼어 있었으면 어땠을까. 일단 지금의 북적거림 대신 어색한 침묵만 맴돌았겠지.
‘없군.’
2층 곳곳에 학생회가 보이니 자연스레 마르게타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마르게타는 보이지 않았다. 회장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둘이서 시상을 하는 모양이다.
공녀와 나란히 하는 시상이라. 회장의 정신 건강이 조금 염려스럽다. 그래도 학생회 생활로 어느 정도 내성은 생겼겠지. 미래의 공무원으로서 그 정도는 잘 버텨낼 것이라 믿는다.
어느덧 정오가 되어 순위 발표가 시작되었다. 예상과 달리 마르게타와 회장이 시상을 하는 것이 아닌, 회장과 교장이 각각 사회자와 시상자 역할을 맡았다. 마르게타는 어디 있는 거지? 급하게 할 일이 있나?
‘그러면 쟤네가 여기 있을 리 없는데.’
무대에 있는 회장과 보이지 않는 마르게타를 제외하면 학생회 전부가 2층에 있었다. 마르게타가 혼자 남아 할 일이 있다면 차라리 저 중에 누군가 자청했겠지. 물론 학생회 내부의 일이니 외부인인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내가 신경 쓸 일은 따로 있는 것 같으니까.
점점 가까워지는 구두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갈색 머리의 여학생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학생회도 아니고, 파견 첫날에 우연히 본 루이제의 친구들도 아니다. 기억에 없는 처음 보는 학생.
내가 본인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 여학생은 미소만 지을 뿐, 여전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내 앞까지 도착하자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지만, 나는 얘가 누군지 모른다. 일방적으로 아는 척을 해도 곤란한데.
“카페에서 뵈고 싶었는데, 여기서 뵙네요.”
아.
그 말에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내 손을 맞잡으며 악수를 하는 여학생. 손에는 자연스레 까끌까끌한 종이 조각의 감촉이 느껴졌다.
또 정보차장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아카데미에 주둔하고 있었어도, 이미 1과장과 묵광대도 철수했으니 같이 철수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여기에 있었나?”
“얼마 전에 다시 왔어요. 직접 봬야 할 일이 생겼으니 별 수 있나요?”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를 삼키며 물으니 정보차장은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행동 하나하나에 짙은 피로감이 배어있었다. 해석하면 ‘통신구로 전달할 수 없는 중요 내용을 위해 여기까지 다시 왔다.’ 라는 의미니까.
그런 중요 내용을 전달하러 다시 아카데미까지 온 정보차장도, 정보차장이 직접 전달해야 할 중요 내용을 들어야 할 나도 비참하기 짝이 없다.
“시체 매장이 끝났어요. 무연고 사체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유족도 찾았고요.”
“좋은 소식이군. 많던가?”
“셋 정도? 생각보다는 적었죠.”
정보차장의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적 가문이 셋이라.’
유족. 이제는 시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세번째 영광과 연관된 가문을 비유하는 말이었다. 그 반란군과 접촉한 역적 가문이 무려 셋이나 된다는 것.
물론 정보차장 말대로 거창하게 아펠스 부흥 운운하던 것치고는 적었지만, 애초에 세번째 영광은 튜토리얼이나 다름 없는 허술한 단체다. 오히려 셋도 많다고 할 수 있지.
“너무 재미 없는 얘기를 했나요? 시상식이나 마저 보죠.”
“그러지.”
서로 마주 보던 나와 정보차장이 동시에 1층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정보차장이 품 속에서 작은 스크롤을 꺼내 빠르게 찢자, 희미한 막이 주변을 에워싸고 사라졌다.
“밖에서는 5분 동안 저희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거에요.”
“모습은?”
“모습은 그대로 보이니 약식으로 할게요.”
헛기침을 한 정보차장이 변장한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는 지엄한 황명을 받들라.”
황명 앞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본래라면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여도 부족하지만, 약식이기에 가능한 행동.
내가 고개를 숙이자 정보차장이, 지금은 황제의 칙사가 된 고귀한 대리인이 말을 이었다.
“에이만카 대제께서 하늘의 부름을 받아 천명을 바로 세우심에 온 대륙이 위선과 탐욕으로 더럽혀진 천명을 다시 세운 대제를 찬양하였다. 이에 영광스럽게도 대제의 후예인 리브노만은 천명을 수호하며 질서를 유지하니, 어찌 그 위엄이 닿지 않는 곳이 있으랴.”
미사여구가 꽤 길다. 심지어 대제와 천명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니, 황제가 제대로 열이 받은 모양이다.
“그러나 감히 어둠 속에 숨어 적법한 천명의 수호자를 업신여기는 자들이 있으니 이 어찌 통탄치 않으리오. 대제께서 보우하여 뭇 충성스러운 신료들이 무도한 자들을 징벌하였으나, 아직 어둠 속에서 리브노만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존재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황명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상황이면 어떤 지시가 떨어질지는 뻔하다. 이미 첫 문장부터 황제의 노여움이 가득 담겨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이에 크펠로펜 제국의 적법하고도 유일한 지배자, 코르부스 에이만카 리브노만 오브 크펠로펜이 명하노니.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는 지엄한 황명을 받들어 천명을 뒤흔드려는 역적들을 소탕하여 제국을 평안케 하라.”
“지엄한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그걸로 끝. 단 몇 마디로 귀족가 셋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제야 정보차장도 목소리를 풀고,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장이 황명을 전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 아닌가요?”
“어쩌겠나. 그만큼 폐하께서 강력히 원하신다는 것이니.”
지엄한 황명은 아무나 전달할 수 없으며, 약식으로 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관료라면 최소 장관급이어야 가능한 행동. 그러나 정보차장은 부장도 아닌 일개 차장이면서 약식으로 황명을 전달했다. 아마 속으로는 울고 싶었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황제는 장관급 인사를 선발하여 아카데미로 보낼 시간마저 아까운 모양인데.
‘아펠스라는 말을 듣고 눈이 돌아갔겠지.’
이미 300년 전에 멸망한 나라의 부흥군이 하필 자기 대에 부활했다? 격노하여 옥새를 집어 던졌어도 이해가 간다. 심지어 그 씹어먹을 부흥군과 접촉한 귀족가가 있다고 하니,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거다.
“정보는 감찰차장에게도 전달했지만, 아직 그 세 가문이 얼마나 연관됐는지는 몰라요. 아펠스 부흥군인 걸 모르고 단순 거래만 했을 수도 있고, 정말 적극적인 반역 행위에 가담했을 수도 있죠.”
“중요한가?”
정보차장의 말에 짧게 답하자 잠시 말이 없던 정보차장은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중요하진 않죠.”
그래, 중요하지 않다. 단순 거래든, 아니면 적극적으로 가담했든. 그것들이 역모 행위에 얽힌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세번째 영광과 접촉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동료 핏값으로 출세한 놈이.”
다시 떠오르는 기억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새끼는 너무 쉽게 가버렸지. 하지만 그 새끼를 도운 것들이 남아 있었다.
눈을 뜨자 어느새 정보차장은 사라졌고, 시상식도 막바지에 이르러 교장에게 트로피를 받는 루이제가 보였다. 축하 박수가 쏟아지자 트로피를 번쩍 드는 것이 꽤 기뻐 보였다.
주변을 두리번거린 루이제가 용케도 2층에 있는 나를 발견하고 활짝 웃자 나도 미소로 답해줬다. 축하해, 루이제.
‘다행이다.’
루이제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죽일 놈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만족스러운 마음을 담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품 속의 수정구가 유독 묵직하게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