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62)
로판 속 공무원 462화(463/945)
누군가의 오열과는 별개로 기운 이전 작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세계수! 세계수!”
“예전보다는 작아! 그래도 좋아!”
“우리 집, 우리 집!”
그 증거로 나무 근처에서 뽈뽈뽈 날아다니던 요정들이 예비 세계수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완전한 부활은 아니기에 예전보다 작다는 평을 들었으나, 한때 세계수를 집으로 삼던 존재들이 직접 세계수라고 칭한 것이다. 이제 적당히 시간만 지나면 수백 년 만에 세계수가 부활할 터.
“확실히 달라지기는 했구나. 신성에 대한 지식이 적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해졌어.”
내 뒤에 있던 트릭시도 예비… 아니, 이제는 준 세계수 정도로 칭해도 될 나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와 신성력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이 세계를 이루는 에너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 덕분인지 마나에 익숙한 트릭시도 이 이변을 눈치챈 것이다.
“세상에.”
그리고 세계수와 신성력에 대해 무지한 트릭시조차 이변을 눈치챘으니, 직접 세계수를 관리한 경험이 있던 외조모님은 말할 것도 없다.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내가 검을 꽂는 모습을 보던 외조모님은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세계수를 올려다보셨다. 요정들이 저 나무를 세계수라 칭한 것처럼 외조모님 눈에도 세계수로 보이는 모양.
그렇게 한참이나 세계수를 보던 외조모님은 조용히 눈가를 닦더니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셨다.
“고맙구나. 우리 종족이 너에게 큰 은혜를 입었어.”
“은혜라뇨. 인간이 태운 보물을 인간이 다시 돌려주는 것입니다.”
외조모님의 감사 인사에 황급히 고개를 내저었다.솔직히 다른 사안으로 감사를 표하는 거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세계수 문제면 감사를 받기 민망하다.
애초에 세계수를 불태운 게 아펠스 새끼들이잖아. 비록 크펠로펜이 그 아펠스를 찢어버린 국가라지만, 인간의 업보를 인간이 수습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세계수를 불태운 악적은 지금의 제국이 벌하였으니 모든 인간이 그 죄를 짊어진 건 아니란다. 그런 상황에서 네가 세계수를 다시금 일으켜 세웠으니 어찌 은혜가 아니겠니.”
정작 외조모님이 아펠스와 크펠로펜을 별개로 보고 계시지만.
감사한 말이다. 심적으로는 모든 인간들을 꺼려 하고 있어도, 이성으로는 최대한 별개의 존재로 보고 계시다는 말씀이니까. 저게 외조모님 개인의 성향인 건지, 엘프라는 종족을 책임지는 장로의 책임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제국 입장에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일.
“그리고.”
슬쩍 나에게 다가온 외조모님은 내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으셨다.
“우리의 어머니께서도 인간을 원망치 않으시니 당연한 일이지.”
콘스탄티나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미약한 열기가 느껴졌던 그 부분을.
아무래도 엘프의 장로는 세속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를 겸한 위치인 것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알 수 없는 걸 바로 눈치채시다니.
‘북방 제사장은 직접 보고도 모르던데.’
– 야!
본능적으로 든 생각에 영원한 푸른 하늘의 고함이 들렸다.
미안한 생각이지만 어쩌겠나. 진짜인데.
엘프들의 연회에 강제 참석하게 되었다.
연회라고 해봤자 세계수 옆 공터에 식탁과 음식을 깔아두고 즐기는 소소한 형태였지만, 엘프들만 있는 공간에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트릭시마저 반은 엘프니 순수 인간은 나 혼자.
“은인! 혼자서 멀뚱히 서서 뭐해? 가만히 있지 말고 이것도 먹어봐!”
“아, 예. 감사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종족 보호 구역의 엘프들 대다수는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 빙의 전 세계의 소설처럼 ‘더러운 단명종이 감히!’ 같은 말은 듣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장로의 외손녀사위 겸 세계수 부활의 영웅이지 않나. 적대는커녕 우호적일 수밖에.
“잘 먹네! 사랑받는 사위가 되겠어!”
청발 엘프가 건네주는 음식을 입에 넣자 엘프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어서 사랑받는다니. 그럼 점심때 내 위장은 헛된 희생을 한 게 아니구나. 정말 다행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노는 게 얼마 만이람. 아펠스가 망한 이후로 처음인 것 같네.”
그러나 뒤이은 청발 엘프의 중얼거림에 흠칫하고 말았다.
‘아펠스가 망한 이후로 처음?’
마치 아펠스 멸망 당시에는 살아있었다는 듯한 뉘앙스 아닌가.
혼란스럽다. 엘프들하고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근황 얘기를 하는 건지, 역사 얘기를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엘프를 처가로 둘 예정이니 빨리 익숙해져야 할 텐데.
“흐, 놀랐어? 나 이래 봬도 아펠스 멸망전 때 활약했던 전사거든.”
그런 심정을 눈치챈 듯, 청발 엘프는 씩 웃으며 내 등을 두들겼다.
아펠스 멸망 당시에 살아있던 수준을 넘어 전사로 활약했다라. 겉으로 보기에는 많아봐야 30대 여성 같은데, 도대체 그 속은 몇 살─
“이상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전혀요.”
“그럼 됐어.”
나이에 민감한 건 엘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들고 있던 술을 호쾌하게 들이킨 청발 엘프는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꺼냈다. 세계수를 직접 본 엘프들도 드문 상황에서 다시 세계수가 부활해서 다행이라거나, 젊은 엘프들이 세계수에 대한 막연한 애정은 있어 안심했다거나, 세계수를 부활시킨 사람이 장로의 외손녀사위가 될 줄은 몰랐다거나 등. 이번에는 역사가 아닌 평범한 근황 얘기였다.
“아, 네 부인 온다.”
그 말에 시선을 돌리자 다른 엘프들에게 시달리던 트릭시가 초췌한 안색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픽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인간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마법 원로인 트릭시도 이 보호 구역에만 들어오면 귀여움 받는 막내에 불과하니까.
“트릭시! 술 좋은 걸로 가져와줘서 고마워!”
그런 트릭시를 향해 청발 엘프는 손을 격렬히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마음에 드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종종 가져오겠습니다.”
그 격렬한 감사 표현에 트릭시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외조모님께 선물로 드리기 위하여 가져온 세르베트 와인이었지만, 엘프 전체의 행복과 웃음을 위해 사용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무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온 트릭시는 자연스레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졸지에연장자 앞에서 애정 표현을 보이는 꼴이지만, 트릭시의 피곤함이 부끄러움을 아득히 능가한 것 같으니 기꺼이 어깨를 빌려줬다.
게다가 눈앞의 엘프도 어린 연인들의 애정 표현이 귀여운지 히죽거릴 뿐이었으니까.
“고생 많았어.”
그렇기에 트릭시의 어깨를 토닥이다가 귀를 매만지─
“뭐, 뭐 하는 거야!”
히죽거리던 청발 엘프가 다급히 소리쳤다.심지어 참전 용사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너무도 우렁찬 함성이라 다른 엘프들의 시선도 급격히 우리에게 쏠렸다.
그건 그렇고 당황스럽다. 만약 어깨를 기댄 모습으로도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면 우리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가만히 있다가 저러니 짚이는 구석이 없다.
“그, 부끄럽지만 저와 트릭시가 아직 엘프들의 문화에 해박하지 못해서, 혹시 저희가 무슨 실수라도…?”
조심스레 묻자 얼굴이 붉게 물든 청발 엘프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진짜 몰라?”
“트릭시는 장모님 생전에 엘프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지 못했고, 저는 애초에 다른 종족이지 않습니까.”
“아.”
그러자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시선을 내렸다.
트릭시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제대로 된 상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동시에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한 난감함이 보였다.
허나 망설임을 짧았다. 참전 용사의 용맹함을 갖춘 엘프는 슬며시 트릭시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대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저, 전 몰랐습니다!”
“그래, 그래 보이네.”
그리고 눈을 깜빡이며 귓속말을 듣던 트릭시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
나도 같이 좀 알자.
‘귀 때문인가?’
일단 정황상 귀를 만진 게 문제가 된 것 같기는 한데, 말을 안 해주니 정확히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다.
그냥 트릭시가 귀를 만지면 흐물흐물 녹아내릴 정도로 좋아해서 만지는 건…
…
‘설마.’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피가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혹시 엘프들의 귀는 인간의 귀가 아니라 다른 부위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 건가?
그런 거라면 저 청발 엘프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린 것들이 단순한 애정 표현을 넘어 불같은 모습을 보인 거니까.
그렇게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
평소처럼 업무를 보던 중 의외의 물건을 받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이 보냈다고?”
“예, 폐하. 직접 드리지 못하여 송구스럽다는 말과 함께 전달받았습니다.”
황궁 시종장이 들고있는 두 개의 상자를 보다가 턱을 매만졌다.
추기경 명의로 보낸 물건인데다 황궁의 확인 절차를 통과하였으니 안전상 위협이 되는 물건은 아닐 터. 그렇기에 순수한 호기심만이 남았다.
‘추기경 명의로 보낼 물건이 있나?’
차라리 교황 명의나 사절단장인 알디노 추기경의 명의라면 제국과 신성교국의 우호를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헌데 여러 성장 중 하나이자 사절단 내에서도 2인자인 알렉산드리아나 추기경 명의? 그나마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시성 관련인데, 그건 이미 생전 시복과 사후 시성으로 정해지지 않았나? 굳이 나한테 무언가 보낼 이유는 없을 텐데.
“열어보게. 추기경이 직접 보낸 것이니 마땅한 답례를 보내야겠지.”
“예, 폐하.”
짧게 고민하다가 개봉을 지시했다. 어차피 상자만 열면 바로 정체를 알게 될 텐데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나. 빠르게 내용물을 확인하고 그에 걸맞은 답례품을 고민하는 게 옳다.
‘허.’
이윽고 첫 번째 상자에서 나온 물건을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초상화다. 문외한이 봐도 신경 써서 그린 것이 느껴졌고,굳게 다물어진 입과 경건한 표정, 양손에 든 성서와 십자가가 인상적인 종교적 초상화였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감찰성 장관이다.
‘복자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초상화 하단에 적힌 문구를 보고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거 방심하면 시종장 앞에서 터진다.
“제국의 기둥이 생전 시복된 것을 기념하여 복자 칼 크라시우스 형제님과 그 주인이신 폐하께 드리는 선물,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군.”
초상화와 함께 동봉된 서신을 읽은 시종장의 말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했다. 생전 시복은 몹시 드문 일이니 충분히 기념할만한 사건이다. 아마 이것과 같은 초상화가 장관의 저택에도 갔을 터.
‘다른 건 뭐지?’
나도 모르게 두 번째 상자로 시선이 갔다. 복자 초상화를 받았으니 저거는 복자에게 주는 의복이나 성물인가? 아니, 그렇다면 굳이 나한테 보낼 필요는 없다.
다행히 궁금증이 커지기 전에 시종장이 다른 상자도 개봉하였고,
‘큽.’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성 칼 크라시우스 오브 타일글레헨.’
복자 초상화에 이어 이번에는 성인 초상화였다.
미치겠다. 사후 시성이라면서 이미 신성교국 내부에서는 성인 취급을 하기로 했는지, 성인들의 초상화처럼 장관의 머리 뒤에 광원이 그려졌다. 그 세심함과 신속함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참자, 참아야 한다. 황제가 신하 앞에서 가벼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인상적인 선물이로군. 내 따로 답례품을 정하여 일러줄 터이니, 시종장은 이만 나가보게.”
그러자 시종장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의 문이 닫히고 시종장의 발걸음 소리마저 멀어지는 순간,
“하하하핰!”
참고 있던 웃음이 터졌다.
복자 초상화와 달리 온화한 미소를 짓고 가슴 부근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장관의 초상화.
이건 내가 아니라 장관이 봐도 웃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