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69)
로판 속 공무원 469화(470/945)
뛰어난 후각과 지능을 가진 티티는 빠르게 집사를 데려왔다. 마침 집사가 근처에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속도로.
“당장 사람을 부르겠습니다!”
티티에게 끌려 오자마자 마르의 헛구역질을 본 집사는 나처럼 눈이 뒤집히더니, 통신구를 꺼내 의사와 마법사, 사제를 전부 호출하는 기행을 펼쳤다. 하나만 불러도 충분할 것 같은데.
“이런 일은 전문가들의 교차 검증을 받는 게 확실합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드물게도 우렁찬 성량을 토해내는 집사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집사의 말이 맞기는 해. 하나만 부르면 오진을 할 수도 있지만, 셋이나 부르면 누군가 실수를 하더라도 나머지 둘이 수습할 수 있잖아. 다른 일도 아닌 임신과 관련된 일이니 철저하게 하는 게 맞다.
“마님, 혹시 불편하신 곳은 없으십니까? 어딘가 뻐근하다거나, 아니면 오한이 든다거나, 그런 거요.”
“괘,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그 와중에 집사는 이미 마르의 임신을 확신한 듯, 열정적인 기세로 마르의 상태를 살폈다. 오죽하면 백작부인이 된 이후로 집사에게 하대를 하던 마르가 다시 존대를 할 정도일까.예법에 예민한 마르가 아랫사람에게 존대를 할 정도면 많이 놀라긴 한 모양이다.
– 끼잉, 낑…
그 혼란 속에서 티티는 내 품에 안겨 서럽다는 듯이 낑낑거렸다.
‘지능이 좋아도 문제네.’
그런 티티를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애석하게도 집사의 열정 덕분에 티티는 방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 갔었다.
임산부에게 동물의 털이 해로울 수 있으니 잠시 내보내야 한다는 명분. 그 명분을 내세우며 집사는 티티를 방에서 내보내려고 했으나, 내 다리 뒤에 숨어 귀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 마르의 동정심을 사서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티티는 자기가 부른 집사의 손에 내쫓길 뻔했다는 걸 인지했는지, 아까부터 내 품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안 내보낼 테니까 울지 마.”
– 끼이잉…
티티를 내려다보며 다독여주자 티티는 더욱 애절한 울음소리를 냈다.
얘 IQ 검사 같은 거 하면 80이나 90은 나올지도 모르겠다.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였다.
“부인의 몸 속에 부인의 마나만 흐르고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가장 먼저 긍정적 결과를 알려준 것도 마법사가 되었다.
슬쩍 미소를 지은 마법사의 말에 다리의 힘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아직 의사와 사제의 의견은 듣지 못했으나, 마법사의 증언만으로도 임신은 확정이나 다름없다. 마르의 몸에 마르의 마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아이를 가졌다는 의미니까.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생명이 부인의 품에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군. 고맙다.”
주저앉을 뻔한 걸 겨우 버티며 마법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와 마르의 아이가 생겼다는 걸 처음으로 입증한 사람에게 이 정도 감사 표현 정도야 백 번도 더 할 수 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각하와 부인께서 노력한 결과지 않습니까. 저는 그저 확인만 했을 뿐입니다.”
허나 마법사는 내 인사에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한 건 마법을 쓴 것이 전부라면서.
솔직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급속도로 흐뭇해졌다. 좋은 말을 해 준 상대가 좋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상대가 겸손하고 정중한 태도까지 보이면 호감도는 더욱 늘어나는 법.
“아, 이제 3주나 4주 정도 된 것 같군요. 당연한 말이지만 격한 움직임은 자제하십시오.”
“명심하지.”
심지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 얼마나 훌륭한 마법사인가.
‘호콘 밀리우드.’
속으로 마법사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온갖 기쁨을 안겨준 마법사이니 나도 그만한 보답을 주는 게 도리다.
물론 내가 직접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 그냥 트릭시에게 좋은 마법사를 봤다고 이름을 흘려주면 그 뒤는 트릭시가 알아서 해줄 거다. 마법사에게 그보다 좋은 보답은 없을 테니.
“이제 막 4주 정도 된 것 같군요.”
“두 복자 사이에 생긴 아이라. 실로 주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의사와 사제도 마법사와 같은 판단을 내렸다.
보는 눈만 없었다면 울었을 거다.
***
내 배에 얼굴을 묻은 칼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내가 임신?’
의사, 마법사, 사제. 의료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 전문가가 일제히 말했다. 내 안에 아이가 있다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다. 그, 결혼 이후부터 칼과 열정적인 밤을 보냈으니, 아이가 생길 수도 있지마아안… 그래도 어디까지나 막연한 추측이었다. 바로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겼다. 내 안에, 나와 칼의 사랑을 증명하는 보물이 생겼다.
‘아이.’
얼떨떨함 대신 기쁨이 차올랐다. 헛구역질의 불쾌감마저 에넨의 축복으로 느껴졌다.
‘우리 아이.’
어느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이라니, 너무 사치스럽잖아.
“기쁜 일이구나. 결혼하자마자 바로 생기다니, 실로 신이 내린 아이야.”
나와 칼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베아트릭스 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진단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니. 같은 저택에 마법사가 살고 있는데.”
“죄송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언니 나름의 농담에 마주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실 정말 정신이 없기도 했다. 내가 임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눈앞의 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으니까.
“4주차면 올해 겨울에 태어나겠네요? 어쩌면 첫눈이랑 같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어요.”
“후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리나의 말과 언니의 웃음소리에 다시 칼의 머리를 쓰다듬게 되었다. 첫눈과 함께 태어날 아이라니, 평범하게 태어나도 절대 잊을 수 없는 행복일 텐데.
“언니랑 생일이 비슷할 수도 있고요.”
뒤이은 루이제의 말에 다시 미소를 지었다. 내 생일은 11월 말. 루이제가 말한 것처럼 내 아이도 그 즈음에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내 아이 아니랄까 봐 엄마와 생일이 비슷하다니. 아버님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크게 웃으실─
‘아.’
내 정신 좀 봐. 이 기쁜 소식을 우리끼리만 알고 있었잖아.
“칼, 잠깐만 일어나 볼래요?”
“계속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얘를 두고 출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싫은데.”
여전히 배에 얼굴을 묻고 있는 칼을 부드럽게 타일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칼답지 않은 투정이었다.
위험했다. 순간 ‘그럼 내일까지 이러고 있어요.’라는 대답을 할 뻔했다. 칼이 녹아내렸으니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조금만 참아줘요. 저희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기쁜 일이잖아요.”
그러자 칼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통신구를 꺼냈다.
시댁에는 칼이 연락할 테니 나는 바렌티 가문에 연락하면 되겠지. 아버님도, 어머님도, 오라버니와 언니들도 전부 좋아할 거야.
그런 기대를 품으며 책상에 두었던 통신구를 들었다.
***
복자라고 해봤자 여명 교단에서 임의로 정한 인간들만의 칭호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신마저 인정하는 칭호일지도 모르겠다.
아카데미 개학이 코앞이라 다시 류티스, 라테르, 타니안에게 시달려야 하는 시기. 그 시기에 갑자기 자식이 생긴다? 에넨이 힘내라고 보물을 내려보낸 거 아닌가. 작년, 재작년에는 이런 행복이 없다가 복자로 시복된 올해 이런 일이 생겼으니 확실하다.
‘아카데미만 안 가면 완벽했을 텐데.’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게 아니라 출퇴근 형식이니 매일 마르와 품 속의 아이를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아내 옆에 딱 달라붙어 보살피고 싶은 게 남편의 마음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남편에게 신혼 휴가, 육아 휴가는 있을지언정 임신 휴가는 없는 게 제국의 현실이다. 막말로 임신 휴가를 주면 10개월이나 쉬는 꼴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아버님, 그만 진정하세요.”
그렇게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사이, 아직도 장인어른과 연락 중인 마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내가 어찌 진정하겠느냐. 네가 벌써 한 아이의 어미가 되다니. 시간이 어찌 이리도 야속하게 흐르는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누가 들어도 눈물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 철혈공이 펑펑 우는 현실 따위, 난 모른다.
– 그 자그마한 손으로, 이 아비에게 꽃을 건네주던 네가, 평생 아빠랑 같이 살겠다고 하던─
“아, 아버님!”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마르의 흑역사에 고개를 숙였다.소인은 사실 얼마 전부터 귀가 멀었습니다.
– …아무튼 좋은 소식을 들려줘서 고맙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보러 가고 싶지만, 신혼집에 들락날락거리는 아비가 될 수는 없지.
그렇게 한참이나 눈물을 보이던 장인어른은 금방 표정을 가다듬고 덤덤히 말씀하셨다.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카데미에 있는 동안 장인어른이 마르 옆에 계셔주시면 감사하죠.”
그 말에 슬쩍 마르의 옆으로 다가가 통신구에 얼굴을 비췄다.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마르 혼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택에서 지내야 하는데, 홀로 쓸쓸히 지낼 마르 옆에 가족이 있다면 반길 일 아닌가.
허나 장인어른은 내 말을 듣고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으셨다.
– 너는 네 장인을 주인 없는 집에 눌러앉는 무뢰한으로 만들 생각이냐?
차마 반박할 수 없는 거절이라 입을 열지 못했다. 확실히 저택의 주인이 부재중인 상황에 손님이 몇 시간이나 버티고 있는 건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설령 그 손님이 안주인의 부친이어도.
– 방학이 되면 네가 초대장을 보내라. 부인과 함께 가마.
“저희가 장인어른께 가면 되지 않습니까?”
– 그때면 마르의 배가 제법 불렀을 텐데, 그런 마르를 데리고 울켄까지 오겠다고?
헛소리하지 말라는 듯한 반응에 다시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텔레포트로 가면 금방이라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개학식 날이 밝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해.”
“알았어요.”
이제 임산부인 아내를 두고 먼 곳으로 떠나야 한다.
“아직 날이 추우니까 따뜻하게 다니고, 욕실에 들어갈 때 미끄러운 것도 조심하고.”
“후후, 그럴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남편의 사랑이 담긴 보살핌을 받아도 모자란 부인이, 홀로 저택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별일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심심하면 연락─”
“…칼, 그러다 늦겠어요. 어서 가요.”
잠자코 들어주던 마르가 내 등을 떠밀었다.
아직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 말하라는 말도 못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