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7)
제 47화
그 시각 감찰부 – 1
감찰부 차장, 데이라스 크로튼의 일과는 하루도 빠짐없이 동일했다. 사무 업무에 능통하다고 보기는 애매한 상사와 서류 보는 일에 도통 관심 없는 부하들 사이에 낀 유일한 사무 담당 간부로서 감찰부의 서류 대다수를 끼고 산다.
재무성 내에서는 데이라스와 차장 수행 인력으로 이루어진 차장실을 공공연히 감찰부 0과라고 부를 정도니, 그 중요도는 무시할 수 없다. 물론 0과의 업무는 현장 활동이 아닌 철저히 사무와 잡일에 집중되어있다.
그렇기에 부장의 기약 없는 파견이라는 사태에도 감찰부는 큰 무리 없이 돌아갔다. 애초에 사무 업무는 거의 데이라스가 담당하고 있었고, 부장이 아카데미로 떠나면서 데이라스에게 부장 대리 권한을 맡겼기에 어지간한 결재도 데이라스 선에서 이루어졌다.
유일하게 염려되는 것은 부장의 공백으로 인해 목줄 풀린 과장 트리오의 발작이지만, 의외로 지금까지 잠잠했다. 특히 1과장은 아카데미에 다녀오더니 쥐 죽은 듯 지내고 있고. 의문이지만 나쁜 일은 아니기에 가만히 뒀다.
그렇게 데이라스는 우려에 비하면 평화로운 부장 대리 업무를 보내고 있었다.
적어도 방금까지는 평화로웠다.
‘부장님?’
책상 한 구석에 둔 데이라스의 통신구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안부 인사 겸 연락을 하고 있지만, 보통 이 시간에는 연락이 없었는데?
“예, 부장님.”
– 황명이 내려왔다.
단도직입적인 부장의 말에 데이라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 정보부에서 전달한 자료가 있다던데?
“예. 세번째 영광과 접촉한 정황이 있는 가문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금일 오전에 전달 받았습니다.
– 폐하께서 세 가문의 충심에 의문을 품으셨다.
그 말에 데이라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펠스 부흥을 운운하는 단체와 접촉한 가문이다. 황제가 그 충심을 의심하고, 권리를 거두는 것이 마땅한 일.
– 그렇기에 감찰부는 황명을 받들어 역도를 소탕한다.
“알겠습니다. 범위는 어느 정도로 정하시겠습니까?”
– 예외 없이.
부장의 대답을 기다리던 데이라스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동요는 짧았다. 빠르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수습한 데이라스는 부장의 지시에 순응했다.
– 내가 직접 가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입장이라.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심려치 마십시오.”
– 그래. 차장은 믿을 수 있지. 깔끔하게 할 거라 믿어.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부장이 연락을 끊으며 통신구가 빛을 잃었다. 책상에 놓인 통신구를 바라보던 데이라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이마를 짚었다.
‘일이 터졌군.’
범위를 묻는 질문에 예외를 두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적으로 지정된 가문의 일원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전부 죽이고, 그 가문의 사용인도 쓸어버리라는 지시.
당연히 원칙상 그러는 게 맞다. 역적은 그 씨를 말리고, 역적에게 봉사한 인물도 처단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그건 신권이 무시할 수 없는 위세를 자랑하여 조금의 꼬투리라도 잡아 짓밟아야 했던 시절에나 적용되던 원칙이다.
황권이 압도적 우위를 점한 현재에 이르러서는 주동자만 쳐내고 나머지는 노예로 강등하는 것이 관례다. 그깟 귀족가, 굳이 씨를 말리지 않더라도 황권을 위협하지 못하니까. 딱 역모를 꾸민 주동자만 죽이며 황제의 관용을 보이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무슨 일이 있다.’
물론 관례와 원칙이 충돌하면 원칙을 들이밀어도 무방하다. 황제의 검인 감찰부가 황제를 위협한 역적의 씨를 말리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으니까. 황제도 감찰부의 충성에 흡족해 할 것이 뻔하니.
단지 관례대로 행동하던 부장이 원칙을 들고 온 것이 의문일 뿐. 분명 무슨 일이 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생각을 정리한 데이라스는 통신구로 손을 뻗었다. 부장의 지시가 떨어졌으니 우선은 움직여야 한다.
정보부가 전달한 자료를 다시 확인하던 데이라스는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들어와라.”
그러자 차장실 문이 열리며 4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오는 길에 만난 것인지 과장 전부가 동시에 모였다.
“무슨 일입니까? 회의 소집은 오랜만인데.”
선두에 선 2과장이 터덜터덜 걸어오더니 적당히 자리를 골라 앉았다. 그 뒤를 따라 세 과장도 착석하며 데이라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2과장이 대표로 의문을 표했을 뿐, 갑작스러운 소집이 의아한 것은 모두 같을 테니.
“1과장.”
그러나 데이라스는 대답하기 전에 1과장을 응시했다. 자신을 부를 줄은 몰랐는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하는 1과장.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 말에 눈이 파르르 떨리는 걸 보니 분명 무슨 일이 있기는 하다.
“아카데미? 그냥 세번째 영광인지 뭔지 하는 것들 잡은 거 아닙니까?”
2과장이 하품을 하며 심드렁히 말했으나, 데이라스의 시선은 여전히 1과장에게 꽂혀있었다. 분명 1과장에게는 세번째 영광을 생포했다는 보고를 들었지만, 분명 말하지 않은 무언가가 더 있다.
계속 눈초리를 받는 1과장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결국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세번째 영광이 부장님 앞에서 북방 얘기 꺼냈어요.”
하품을 하던 2과장이 그 상태로 굳었다.
“심지어 6검 분들 얘기.”
1과장의 말에 피곤과 귀찮음이 맴돌던 간부 회의 자리에는 소름 돋는 침묵이 내리 깔렸다.
길고 긴 침묵을 깬 것은 3과장이었다.
“아니, 그 얘기를 왜 이제야 해?”
“미리 알면요? 풀어드릴 방법은 있고요?”
“없기는 한데…”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 3과장에 이어 5과장이 1과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부장님은 어떠셨나?”
“어떻긴요. 그냥 괜찮은 척 하셨죠.”
“오늘 터뜨리셨군.”
데이라스의 말에 과장들의 시선이 다시 데이라스에게 꽂히자, 데이라스는 정보부의 자료를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세번째 영광과 접촉한 가문이 파악됐다. 고르푸 자작가, 벤델 남작가, 도실 남작가.”
“전부 어줍잖은 것들이군요.”
“그러게요. 잃을 게 없어서 막 나간 건가?”
“부장님께서 이 세 가문에 대한 예외 없는 처단을 명하셨다.”
다시 과장들이 입을 다물며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예외 없는 처단은 2년 전 대숙청 당시에도, 아주 극소수의 가문을 대상으로 하여 겨우 일어난 일이다. 심지어 부장이 이를 갈며 노리던 애실론 가문마저 가주와 후계자 외에는 누구도 죽지 않았다.
“제대로 못하면 다음은 저희 차례지 않겠습니까?”
“깔끔하게 할 거라 믿는다고 하셨다.”
“와 씨, 차라리 욕을 듣는 게 편하지.”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떠는 2과장과 연신 손수건으로 머리의 땀을 닦는 3과장. 지금은 부장의 분노가 세 가문에 국한되었지만, 만일 그 세 가문에 대한 토벌이 조금이라도 미흡하면 분노가 향할 방향은 뻔하다.
아카데미 파견 업무 중이라 감찰부에 오기 힘들다? 글쎄, 부장의 눈이 완전히 돌아가 버리면 그런 걸 신경이나 쓸까. 굳이 애실론 가주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던 황태자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살로 위장하여 죽인 것이 부장이었다.
심지어 죽이기 전에 온갖 조롱을 퍼부었지. 덕분에 애실론 가주는 살해 당한 것이 아니라 수치심에 자결한 귀족으로 기록됐다. 찰나의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둔한 귀족으로.
“세 가문에 대한 징벌은 황명이다.”
데이라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래, 황명이다. 분노로 가득한 부장의 지시인 동시에 지엄한 황명이다. 부장이 아무런 언급이 없었어도 철저하게 처리해야 할 일. 단지 그 범위를 조금 더 넓힐 뿐이다.
“3과장 레너드 호델라, 5과장 마르실리오 비아고. 각 과를 이끌고 역적을 토벌하라.”
“알겠습니다.”
“예.”
감찰부의 대외적 무력을 담당하는 3과, 미처 처리하지 못한 대상을 수거하는 5과. 이 둘이 나서면 하위 귀족가 셋 정도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1과장 에르제베트 마살로와 2과장 라파예트 바론은 사용인을 처단하기 전에 심문을 진행하도록.”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찰부의 과 전부가 달려드는 일은 오랜만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단순 비리가 아닌 역모와 관련된 문제이며, 터지기 직전의 폭탄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데.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임하면 격노할 사람이 최소 둘이다.
“다시 말하지. 예외는 없다. 조금의 지연도 있어서는 안 된다. 특무성 쪽에 협조를 요청할 테니, 빠르게 이동하도록.”
도보로 세 가문을 찾아간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한 가문을 처리한 사이에 다른 두 가문이 소식을 듣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 텔레포트를 통한 이동이 필수적인 상황. 특무성에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은 꺼림직하지만, 역모가 걸린 일이니 특무성도 무난하게 협조를 해 줄 것이다.
빠르게 해산하는 과장들을 보던 데이라스는 무심코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6검? 부장 앞에서 6검을 주제로 도발했다고?
‘정신나간 놈.’
단순히 북방만이 아니라 그분들을 건드렸다. 자살 희망자라면 제대로 소원 성취했겠지. 차라리 부장에게 부모 욕을 하는 것이 더 안전했을 텐데, 시체는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다.
***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차장에게 지시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슬쩍 강당 밖으로 나가 차장에게 토벌 지시를 내렸고, 나간 김에 잠시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잘 하겠지.’
직접 손을 쓰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나는 이 자리를 함부로 비울 수 없는 입장이다. 사적인 이유로 공적 업무를 뒤로 할 수는 없으니까. 만일 황제가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가 아닌, 그냥 칼 크라시우스에게 내린 명령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갔겠지만.
‘아쉽네.’
우리 애들은 믿는다. 감찰부 내에서 보면 이런 또라이가 없는 병신 집단이어도 바깥 일은 실망시키지 않는 것들이니까. 물론 3과장의 오인 사격 같은 참사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명확한 타겟을 지정했으면 실수할 수가 없다.
그저 아쉬울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그래도 만족하자. 세번째 영광과 접촉한 가문이 아무도 없었다면, 난 결국 그 숲에서 머리만 터뜨린 걸로 화를 풀어야 했다. 적어도 이건 내 지시로, 내 부하들이 움직인 거니까.
“오라버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트로피를 끌어안은 루이제가 달려오고 있었다. 뒤에는 부원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로.
“넘어지겠다. 조심해.”
픽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만족하자. 오늘은 좋은 일이 있는 날이니까. 감찰부에서도 좋은 소식을 하나 더 보낼 것이라 믿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롤로그부터 등장한 차장, 2화부터 등장한 과장들이지만 무려 47화 만에 감찰부 간부 전원의 이름이 공개되었습니다.
감찰부장 칼 크라시우스, 얼굴마담/결전병기/목줄.
차장 데이라스 크로튼, 사무/기타 잡일.
1과장 에르제베트 마살로, 심문.
2과장 라파예트 바론, 정보.
3과장 레너드 호델라, 집행.
前 4과장 페넬리아 유스, 절멸.
5과장 마르실리오 비아고, 암살.
강제 신비주의 루트를 밟게 한 것이 미안해서 보기 편하게 이름과 각 과 특화 업무를 적어뒀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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