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73)
로판 속 공무원 473화(474/945)
뉴비를 노리는 사악한 고인물들을 빠르게 쫓아냈다. 저 고인물들 때문에 아인테르가 검을 꺾으면 나도 곤란해진다.황제가 직접 신경 좀 써달라고 말했는데, 그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심지어 그 사유를 ‘제 동생하고 타국 왕자가 괴롭혀서 못 해먹겠대요.’라고 보고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그럴 일은 없겠어.’
에리히와 류티스가 물러난 후, 여전히 정자세를 취하고 있는 아인테르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아까 같은 고인물들의 습격만 잘 차단한다면 아인테르가 검을 꺾을 일은 없다. 지금까지 본 아인테르는 힘들고 지겹다고 포기할 성격이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즉흥적이고 끈기가 없는 타입이었다면 2황자가 죽을 때 같이 휘말렸겠지.
“자세를 가다듬는 건 1, 2주 정도만 더 하면 될 것 같군. 그 뒤로는 검술로 넘어간다.”
아무튼 미동조차 하지 않는 아인테르를 보며 넌지시 말을 꺼냈다.
에리히의 말처럼 아인테르는 이미 또래 중에서도 괜찮은 편이다. 긍정적으로 봐주면 중상위권 정도? 그렇기에 자세는 조금만 더 다듬고 기술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기본을 튼튼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백날 기본만 다지고 그 위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으면 지루한 일이다.
물론 고인물 듀오 앞에서는 비밀이다. 그 새끼들은 아인테르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자마자 눈을 뒤집으며 달려들 게 뻔하다.
“검술도 직접 가르쳐 주시는 겁니까?”
“그래. 혹시 다른 사람이 좋나?”
“그럴 리가요. 오히려 영광입니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아인테르는 다시 침묵의 정자세로 돌입했다.
역시 흡족스럽다. 학생이 성실한 모습을 보일수록 가르치는 사람의 기분도 좋아지는 법.
‘1년 동안 제대로 굴려볼까?’
이윽고 진지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카데미 졸업식 전까지 제대로 굴리면 어지간한 기사 수준에는 도달할 수 있다. 아인테르의 재능이 받쳐준다면 그 위도 노려볼 수 있고.
처음에는 황족 겸 후작인 아인테르를 처절히 굴리는 게 꺼려졌지만,배우는 자세가 확실하니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찌 설렁설렁 임하겠나. 확실하게 굴리는 것이 아인테르에게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인테르.”
“예, 말씀하십쇼.”
“갑자기 검을 잡은 이유가 따로 있나?”
일단 아인테르의 정확한 목표를 알아야 한다.
만약 검을 잡은 이유가 단순히 황족으로서의 품위나 건강을 위해서라면 가혹한 트레이닝은 피해야 한다. 도달해야 할 목표 지점이 1km 앞인데, 마라톤 풀코스를 연습하듯 굴리는 건 너무하잖아. 과한 학습은 학생의 의욕과 성실함을 사라지게 할 수도 있다.
“이유라…”
내 질문에 아인테르는 난감하다는 듯 말꼬리를 흘렸다.
“썩 대단한 이유는 아닙니다.”
“나도 그랬다. 보통 가문이 시켜서 검을 잡는 거지, 거창한 이유로 검을 잡은 사람은 드물어.”
“하하, 그도 그렇겠군요.”
잠시 고민하듯 눈을 깜빡이던 아인테르는 픽 웃으며 답했다.
“부인에게 걸맞은 무인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북방 후작가의 유일한 사위가 허약하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순간 넋이 나갔다.부인에게 걸맞은 무인? 사위가 허약하면 곤란해?
‘뭐지.’
대체 뭐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아인테르가 난데없이 저런 생각을 했을 가능성은 낮고, 샤티에게 무슨 말이라도 들은 건가?
그러고 보니 신년하례식 이후로 둘이 종종 연락을 한다는 말은 들었었다. 바란디가 후작이 밝은 얼굴로 알려줬었지.
‘서로 이상형이라도 주고 받은 건가?’
그럴 듯한 추측이다. 바란디가 부족은 족장이 대대로 제사장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나름 온화한 성향이지만, 그래도 유목민은 유목민이다. 정주민에 비하면 화끈하고 저돌적일 수밖에 없다.
그 영향으로 샤티의 이상형이 ‘강인하고 용맹한 무인’이라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유목민으로 살아온 샤티가 호리호리하고 가녀린 남자를 좋아하면 그거대로 신기한 일이지.
‘좋네.’
어느새 당혹감이 사라지고 뿌듯함이 고개를 들었다. 학문의 길을 걷던 아인테르가 샤티의 이상형에 맞춘다는 건, 그만큼 샤티에게 진심이라는 것 아닌가.중매를 선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인테르와 샤티의 정략혼은 황실과 제국을 위한 결혼이기도 하다. 아인테르가 황족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의미기도 하니, 제국의 귀족으로서 박수를 칠 희소식이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자기 나라 교육기관이 버젓이 있는데, 꾸역꾸역 제국까지 온 왕족들을 보다 이렇게 정상적인 황족을 보니 감동스럽다.
‘역시 외국산보다는 국산이지.’
느그 나라 왕족 따위는 우리 황족님보다 아래다.
“멋진 이유로군. 그래, 북방 제일의 가문과 이어지려면 북방 제일 검 정도는 돼야지.”
“예?”
그렇기에 다짐했다. 아인테르가 정상적이고도 아름다운 이유로 검을 잡았으니, 나도 그에 전력으로 응하겠다고.
“이 1년 동안, 여차하면 졸업 이후로도 가르칠 테니 북방 제일을 목표로 열심히 해보자.”
“아니, 저, 그 정도로 거창한 목표를 원한 건…”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북방에 힘 좀 쓴다는 전사들은 지난 전쟁 때 전부 죽었어. 네가 열심히 노력하면 충분히 제일 검이 될 수 있을 거다.”
내 장담에 아인테르는 몇 번이나 입을 뻐끔거리더니 침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은 내 말이 헛소리처럼 들리겠지. 아무리 어릴 때 검을 배운 경험이 있다지만, 사실상 입문자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제일 검이니 뭐니가 귀에 들어오겠나.
허나 노력, 노오오오오오력이 있으면 된다. 북방의 괴물들은 6년 전의 전쟁을 통해 싸그리 전멸했고, 그나마 남은 위험 종자들마저 작년에 소탕했다. 북방에서 칼 좀 쓴다는 것들은 씨가 마른 상태.
‘가능하다.’
북방 전문가인 내가 확신한다. 이건 충분히 가능한 빈집털이다.
내 가르침을 통해 아인테르는 북방 제일 검 이드라펜 후작이 돼서, 북방 제일의 가문인 구르트 후작가의 사위가 되는 거다.
최고의 계획이다.어쩌면 황제도 감동하겠어.
***
툭하면 통신구를 빛내던 이드라펜 후작의 연락이 뜸해졌다.
덕분에 요즘 들어 마음이 편하다. 그 얄미운 인간이 싱글거리는 걸 보느라 고역이었는데, 벌써 몇 주나 보지 않으니 얼마나 후련하던지.
‘이제야 효과가 나오네.’
콧노래를 부르며 칼날을 닦았다. 신년하례식 이후로 꾸준히 쌓았던 벽이 드디어 빛을 보았다.
그래, 정원 속에서 평화로이 자란 꽃이 북방의 혹한을 맞으며 자란 야생화와 어울릴 수 있을 리가. 단련 중이라고 자랑스레 떠들었으면서 결국 포기한 모양이다. 그러니 나한테 연락도 못 하고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그래도 연락을 끊은 걸 보면 최소한의 부끄러움 정도는 아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응.
‘…아니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통신구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 통신구에 익숙하지 않은 부족─ 아니, 영지 사람들은 할 말이 있으면 직접 찾아온다. 나한테 통신구로 연락을 할 사람은 한 사람 정도밖에 없다.
“샤티 구르트입니다.”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다가 겨우 통신구를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시하고 싶지만, 밀어내는 것과 무시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
– 오랜만입니다, 샤티 영애. 이드라펜 후작입니다.
통신구를 쥐자 보고 싶지 않았던 얼굴이 나타났다.
역시 예전처럼 얄미울 정도로 싱글거리는 표정이다. 진짜 한 대만 때리고 싶어.
“네, 오랜만이네요. 대체 몇 주 만인지 모르겠어요.”
이왕 몇 주 동안 잠잠했던 거, 한 몇 달 정도까지 이어졌으면 좋았─
– 이런, 제가 연락을 드리지 못해 서운하셨군요. 죄송합니다.
“서운, 하다니요. 그럴 리가요.”
이드라펜 후작의 말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주먹을 쥐며 속을 가라앉혔다.
서운해? 내가? 고작 당신 연락을 못 받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 저도 자주 샤티 영애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엄한 선생님을 만나서 말입니다. 오늘도 겨우 시간을 내서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
허나 이드라펜 후작은 내 속도 모르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평소라면 저 얼굴을 보며 이만 갈다 대화가 끝났겠지만, 다행히 오늘은 반격할 수 있는 주제가 생겼다.
“선생님이 엄하다면 그만큼 성심껏 가르치신다는 거겠죠. 다 후작 각하를 위해서 그러는 걸 겁니다.”
선생이 엄하다고 투정을 부리는 후작에게 일침을 넣을 수 있으니까.
그 선생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함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덕분에 몇 주 동안이나마 후작의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었고, 앞으로도 열심히 후작을 가르치겠지?
– 하하, 너무 과분한 가르침이라 몸이 따라가지 못하더군요. 고문─ 아니, 감찰성 장관에게 가르침을 받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네?”
그 말에 얼빠진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지금, 누구라고?
– 아, 샤티 영애에게는 위리디아 백작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겠군요.
세심한 정정이었지만 충격이 가시지는 않았다. 감찰성 장관이 위리디아 백작, 타일글레헨 백작을 말하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야 북방 귀족들을 이끄는 수장의 직함도 모를 리가.
문제는 그 수장이 이드라펜 후작을 직접 가르치고 있다는 거다.
검으로 하늘을 가르고, 역천자와 칸 참칭자를 죽였던 그 무인이. 대륙 제일의 검사라고 불리는 무인이 직접.
‘어…?’
점점 머리가 새하얘졌다. 강한 무인이 훌륭한 선생이라는 법은 없으나, 강한 무인은 그 자체로 다른 무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존재다. 사소한 한 걸음, 짧은 검격 한 번이 다른 무인들에게 자극을 준다.
만약, 만약 이드라펜 후작에게 무에 대한 재능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진짜 강해질 텐데.’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 참, 영애의 조언대로 최근 단련에 힘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북방에서 지낼 일이 생길 터인데, 몸이 버티지 못하면 곤란하지요.
그리고 예전에 이드라펜 후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방패가 뚫릴 위기에 처했다.
***
날이 갈수록 쑥쑥 발전하는 아인테르를 보며 결론을 내렸다.
‘황족이라 다르긴 다르네.’
귀족 위에 군림하는 혈족이라 그런지, 내 예상보다 엄청난 성장을 보이고 있다.
1년만 제대로 굴리면 어지간한 기사 수준? 너무 과소평가한 수치였다. 어쩌면 기사단장급도 가능할지도 모르겠어.
“오백 번 전부 휘둘렀습니다.”
“천은 채워야지. 오백 번 더.”
“예.”
그럼에도 열정이 식지 않고 내 지시에 순순히 따르고 있다.
가끔 자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재능이 있다는 것도 깨달은 놈은 대가리가 굵어져서 반항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놈을 적당히 쥐어패는 것도 학습의 일종인데, 아인테르를 팰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흐음.’
완벽한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아인테르를 보며 수통에 입을 댔다.
샤티가 이상형을 말한 덕분에 제국을 지탱할 기둥이 탄생하게 생겼다.
‘애국자네.’
작년에 제국인이 된 신진 귀족이 벌써부터 공을 세우다니. 역시 황족의 예비 아내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