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74)
로판 속 공무원 474화(475/945)
올해 들어서 제과 동아리는 이름만 제과 동아리인 집합체로 변모했다.
물론 재작년부터 족구 동아리, 체스 동아리라 불러도 문제가 없을 만큼 뒤틀렸으나, 올해는 그 정도가 심했다.
“당장 대련해도 문제없을 것 같은데?”
“졸업 전에는 검을 섞고 싶군. 황족과 겨룰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있겠어.”
에리히와 류티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아리 창립 공신 중 하나인 아인테르가 검의 길을 택한 순간부터─ 고인물 에리히와 류티스는 제과 동아리실보다 야외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어졌다. 지금 황족 뉴비가 등장했는데 제과가 대수냐는 듯한 눈빛과 함께.
그리고 에리히가 밖을 떠도니 세라도 야외 생활을 택하였고, 린은 동아리 박람회 준비 때문에 본인 동아리에 묶여있는 상황이다. 덕분에 동아리실에 남아있는 인원은 리제, 트릭시, 라테르, 타니안이 전부.
부원들이 완전체로 있어도 제과 동아리 호소인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절반 가량이 밖에 있다? 79년도 동아리실은 제과의 장이 아닌 사실상 휴게실이나 마찬가지였다.
‘고인 집단의 최종 콘텐츠는 채팅밖에 없긴 하지.’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아리실에 모여 노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늘 모이던 멤버로 3년이나 노는 건 힘든 일 아니겠나.
만약 신입생 중 제과 동아리에 입부한 학생이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 있다. 혹은 작년에 타니안이 만든 토론 동아리 학생 중 누군가가 제과 동아리로 승격했다면 변화가 있었을 거다. 고이고 고인 집단에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활력이 생기는 법이니.
허나 유감스럽게도 올해는 신규 인원 유입이 없었다. 단 한 명도.
“몇 명 정도는 제과 동아리로 올릴까 싶었는데, 다들 거절하더군요.”
딱히 작년처럼 의도하고 신규 인원을 통제한 건 아니었다. 타니안의 말처럼 몇 명은 유입할 생각이었으나 정작 본인들이 거절했다. 심지어 트릭시와 조금이라도 자주 만나서, 조금이라도 더 가르침을 받고 싶어 하던 토론 동아리 마법사들이 거절했다.
의외인 일이다. 오직 트릭시만 보고 제국 아카데미까지 왔던 것들이 이제 와서 거절이라니.
“작년에는 다들 흥분 상태였지만, 1년이나 머리를 식히니 이성을 되찾은 모양이지요. 선생 되는 분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타니안의 부연 설명에 어느 정도 납득은 할 수 있었다.
제과 동아리는 제국의 황족, 타국의 왕자, 차기 성자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며, 나와 연인들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이 개입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집단이다. 세라는 소꿉친구 버프가 있으니 예외지만.
아무튼 그 눈치를 이겨내고 제과 동아리에 가입한다 한들, 트릭시 입장에서는 자신과 예비 남편의 오붓한 공간에 불청객이 찾아오는 꼴이다. 가르침을 주기는커녕 미움이나 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덕분에 제과 동아리는 그냥 동아리가 됐다. 그냥 동아리 시간이 되면 습관적으로 모여서, 서로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집단이 된 것이다.
“오라버니! 얘들아! 조금 쉬었다가 다시 해요!”
그 와중에 그냥 동아리 부장이 되어버린 리제가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무래도 쿠키가 완성된 모양이다.
“들어가자. 적절한 휴식도 단련의 일환이다.”
“아, 예.”
그런 리제에게 손을 흔든 뒤 건물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동아리가 뒤틀렸어도 우리의 근본은 쿠키다. 근본은 어쩔 수 없지.
이러나저러나 우리 동아리의 근본은 쿠키였기에 올해 동아리 박람회도 제과점 컨셉을 유지하기로 했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트릭시 특제 영약 쿠키는 희소성을 위하여 판매하지 않기로 했고,
“이번에는 평범하게 준비하려고. 괜히 박람회라고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더라.”
언제나 눈을 빛내던 리제도 다소 시큰둥한 기색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
“어차피 어떻게 만들든 우리가 1등일 테니까.”
그것도 냉혹한 현실을 깨달은 듯한 말과 함께.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솔직히 쿠키나 빵이 아닌 밀가루만 팔아도 제과 동아리가 우승할 것 같다는 생각은 매번 했지만, 리제마저 그 생각을 품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하고 타협하게 됐구나.’
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하다. 언제나 열정과 웃음이 가득 했던 해맑은 아이가 3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진화했다.
사실 진화할 이유는 충분하다. 남작가의 영애로서 황족, 왕족과 접하기도 했고, 그 고위직 친구들을 전부 차기도 했고, 자신이 만든 제과 동아리가 다용도 놀이 동아리로 변하는 걸 직관하기도 했으니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열정이 넘치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이지.
결정적으로 리제의 마음은 아카데미를 떠났다. 딱히 아카데미에 질렸다거나 실망을 한 건 아니지만, 마음이 떠난 건 확실하다.
‘마음이 제도에 있는데 어쩌겠어.’
저번 겨울 방학부터 개학식까지, 리제는 제도에 있는 내 저택에서 지냈다. 아티니 남작령에 계시는 세 번째 장인어른도 리제가 내 저택에 있는 것에 대해 아무런 서운함을 표하지 않으셨다. 이미 나와 리제를 부부라고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리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랑 리제의 관계면 사실혼이나 다름없지. 결혼식을 너무 연달아 열면 하객들이 피곤할까 봐 자제하고 있을 뿐.
그렇게 내 예비 부인 중 한 명으로서 저택에 있던 리제니, 내 정식 부인이 되자마자 아이를 가지게 된 마르를 가까이서 지켜 볼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카데미나 박람회 같은 게 눈에 들어오겠나. 자기도 제도 저택에 머물면서 아카데미 학생이 아닌 내 부인으로 지내고 싶을 터.
“저기, 오라버니. 꼭 아카데미를 졸업할 필요가 있을까요?”
“응. 아빠가 졸업장이 없으면 엄마라도 있어야 하니까.”
“아.”
오죽하면 개학 직전에 이런 대화까지 나눴을까.
물론 리제도 농담 삼아 한 말이었기에 내가 자폭 발언까지 한 거지만, 농담이라도 저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리제의 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뭐, 평소처럼 만들어도 충분하지. 우리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리제의 제안에 에리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원들 입장에서도 박람회를 간단히 진행한다고 하면 기꺼운 일이지.
…흐으음.
“그러고 보니.”
평온한 얼굴을 하는 에리히가 괜히 마음에 들지 않아 슬쩍 입을 열었다.
“올해도 제국의회에서 제노비아가 온다고 하더라. 박람회를 간단히 진행하면 놀 시간도 많을 테니, 오붓하게 같이 박람회 구경이라도 해.”
“어?”
그 말에 에리히가 딱딱하게 굳었다.
세라로도 벅찬 상황에서 제노비아까지 찾아온다니. 가슴이 벅차서 말도 나오지 않겠지.
“맞아, 언니도 온다고 했었어.”
그리고 에리히 옆에 있던 세라가 자연스레 팔짱을 끼며 배시시 웃었다.
“언니도 오면 셋이서 같이 다니자. 언니는 바쁘니까 이럴 때 아니면 같이 다닐 기회도 없잖아.”
“어, 응. 그래야지.”
어색한 미소를 짓는 에리히를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이거 정말 올해 말이나 내년 정도에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동아리 시간이 끝나면 얼추 저녁 시간이 되지만, 트릭시의 텔레포트 덕분에 저녁은 저택에서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저택에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건 나와 마르, 트릭시뿐이다. 연인은 여섯인데 그중 넷이 밖에 있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정말 그렇게 말했다고요?”
“나도 내 귀를 의심했었단다. 작년에는 보는 사람이 감탄스러울 만큼 열정적으로 움직였었는데.”
그래도 육체가 함께하지 못할 뿐, 정신은 언제나 함께라고 믿는다. 지금도 식사 자리에서 리제가 했던 ‘어차피 우승은 우리’ 발언이 화제로 떠오르지 않았나.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마르도, 생생하게 당시의 현장을 설명해주던 트릭시도 이윽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 둘이 생각하기에도 순수한 핑크 카피바라가 세상에 찌든 듯한 발언을 한 것이 재밌는 모양.
“그러면 아쉬워할 사람이 많겠네요. 작년에 판 과자들은 제가 봐도 화려했으니까요.”
“어쩔 수 없지. 어떤 물건을 판매할지는 판매자 마음이잖니.”
“후후, 그건 그렇죠.”
트릭시의 대답에 키득거린 마르는 식탁에 있던 빵을 작게 찢어 입에 넣었다.
저 빵도 리제가 만들고 간 빵이었지. 보관 마법을 건 덕분에 대량 생산을 한 빵이 매일 식탁 위에 올라오고 있다.
“사실 저도 조금은 아쉬워요.마지막 박람회니 더 화려하게 할 줄 알고 기대했거든요.그냥 바로 만든 과자를 먹는 걸로 만족해야겠어요.”
“그래, 바로 먹는 과자도 별미… 니?”
적당히 대답하던 트릭시가 말꼬리를 흐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무언가 위화감을 느낀 것처럼.
그리고 위화감을 느낀 건 나도 마찬가지였기에 마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바로 만든 걸 먹어?’
이상하다. 자기도 박람회에 참석해서 직접 구매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 의문을 담아 마르를 쳐다보자, 마르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박람회는 외부인에게도 열린 행사니, 저도 참석하려─”
“안돼.”
그 말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임산부가 가기는 어디를 가.임산부는 저택에서 보살핌만 받아도 충분하지.
게다가 박람회는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몰리는 행사다. 괜히 마르가 그런 곳에 갔다가 피곤함을 느끼거나 몸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진심으로 울 수도 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내가 가져올게. 마법을 걸면 되니까 따뜻한 상태로 가져올 수 있어.”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만류했다. 내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아내가 원하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가져다줄 수 있다.
“현장에서 직접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 그래요. 주최 입장이 아닌 손님 입장으로요.”
허나 손님으로서 즐기고 싶다는 말에 입이 다물어지고 말았다.
확실히 마르는 학생회 소속으로서 박람회를 즐기기보다는 이끌어간 입장이었다. 3년이나 고생했으니 졸업생이자 손님으로서 즐기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필 올해일 필요는 없잖나. 첫눈이를 낳고 내년에…
…
‘내년에는 괜찮을까?’
진지하게 고민된다. 내년의 마르가 임산부 상태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나?
내년에는 단풍이가 마르의 품에서 자고 있을 것 같다. 그다음 해에는 여름이, 그 다다음해는 벚꽃이.
“괜찮죠?”
빙긋 웃는 마르를 향해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임산부라 못 간다는 건, 나 때문에 못 간다는 말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