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8)
제 48화
그 시각 감찰부 – 2
귀족은 고고하게 군림하는 존재여야 한다. 어리석고 무능한 평민들을 계도하고, 만인의 공경을 받으며 올바른 세상을 이끌어 가는 존재. 그것이 귀족이다. 오직 귀족만이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
허나 오늘날 제국은 어떠한가. 마땅히 고개를 숙이고 고귀한 푸른 피의 인도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 감히 고개를 들고 대등한 입장이 되고자 한다. 짐승도 은혜를 아는 법이거늘, 어찌 저 무지한 것들은 귀족이 베푼 은혜를 모르는가? 어찌 귀족과 대등하고자 하는가.
심지어 천한 붉은 피가 푸른 피가 되는 것은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푸른 피는 하늘로부터 선택 받은 존재거늘, 어찌 붉은 피가 푸른 피로 변할 수 있겠는가.
“제국이 장차 어찌 되려고.”
늘 한탄스러웠다. 아무도 없는 곳이면 홀로 한숨을 내쉬고는 했다. 황실과 제국을 위한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불타는 귀족으로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으니.
귀족이 귀족스럽게 군림하고, 평민이 평민답게 순종하는 질서. 이 아름다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제국의 안녕을 위한 것이다. 아펠스는 부패와 탐욕, 교만에 가득 찬 국가였으나, 그나마 이 질서만은 바로 섰기에 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하물며 아펠스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크펠로펜이다. 그러한 크펠로펜이 질서마저 바로 세운다면 얼마나 강대해질까.
“피에 새겨진 질서는 언제나 굳건해야 하지요.”
그렇기에 자신을 리예르 상단주라고 소개한 자와의 대화는 썩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주제를 알고, 진리를 알고 있었다. 평민이지만 꽤 기특하지 않은가. 아무리 어리석고 무능한 평민이어도 주제를 안다면 관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 이후로도 상단주와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 평민 덕에 썩 괜찮은 거래를 틀 수 있었으니.
“최근 광산이 발견되었는데, 개발에 난항을 겪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말에 폭발 스크롤을 건네주었다. 지금까지 상단주를 통해 얻은 이득이 많고, 이 스크롤 하나를 건네주며 얻을 이득도 상당하다. 타인에게 유출하는 것은 마음에 걸리지만, 단순히 광산 개발을 위해 사용된다면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래, 아무런 문제도 없다.
“─작 각─”
아무런 문제도 없어야 할 일인데.
“남작 각하!”
뒤에서 시종장이 외치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 앉아있었다. 어찌 벤델 남작가의 시종장이 저런 품위 없는 모습을 보이는가. 감히 주인에게 소리를 지른단 말인가. 심지어 시종장 뿐만 아닌 근처의 모든 사용인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탓할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 모습을 비웃는 것처럼 검은 제복을 입은 무리가 나와 사용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저택의 문이 열리더니 거구의 사내가 들어왔다.
“이건 의외로군요. 반항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고르푸 자작가와 도실 남작가에 대한 소식은 이미 감찰부가 통보했다. 들이닥친 감찰부에 대항하기 위해 사병을 동원했지만, 결국 순식간에 전멸하고 가문 전체가 효수되었다. 불타는 자신들의 저택 앞에서.
부질없는 반항이다. 차라리, 차라리 납작 엎드리자. 그러면 자비가 베풀어질 수도 있다. 내 죽음은 피할 수 없겠지만, 자식은 화를 피할 수도 있다. 멸문은 피할 수 있다.
“묶어라.”
선두에 선 사내의 말에 감찰부원 둘이 내 손을 뒤로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러고는 머리를 강하게 눌러 바닥에 박게 했다. 이제 내 목숨을 거두러 온 자의 모습마저 볼 수 없다.
“황실과 제국을 능멸한 대역죄인, 요한 벤델 오브 카모라는 들으라.”
사내의 말에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황실과 제국을 능멸? 대역죄인? 이상하다. 발언의 수위가 심상치 않다. 그저 비리를 발견하여 들이닥친 수준이 아니다.
“죄인은 위로는 고귀한 황실을 섬기며, 아래로는 신민을 보살필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천명의 수호자인 황실을 공경하며, 이 대륙의 유일한 제국에 봉사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죄인은 감히 사특한 마음을 풀어 영광스러운 의무와 권리를 저버렸으니 어찌 통탄치 않으랴.”
비리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당사자만 죽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역모!’
감찰부는 역모를 벌하기 위해 들이닥친 것이다. 어쩐지 고르푸 자작가와 도실 남작가가 부질없는 반항을 하여 화를 부른 것이 의아했었는데.
항변을 위해 입을 열고자 했지만 재갈에 막혀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들려고 했지만 감찰부원의 손에 눌려 들 수 없었다. 내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이에 크펠로펜 제국의 적법하고도 유일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께옵서는 죄인의 모든 권리를 박탈하고, 더 이상 어떠한 의무도 기대하지 않으시기로 결정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어찌 감히 황실을 능멸했겠는가. 어찌 제국에 반기를 들었겠는가!
“카모라 남작령은 존귀하신 황제 폐하께서 거두실 것이며, 벤델 가는 추악한 욕망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죄인 요한은 어떠한 항변을 할 권리가 없으니, 삿된 말로 황실과 제국을 더럽혀 이 이상의 죄를 짓지 말고 황제 폐하의 결정에 순응하라. 이는 황제 폐하의 마지막 자비일지니.”
잘못됐다, 큰 오해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내 충심은 불변하다. 황제 폐하를 향한 충성은 결코 변─
***
3과장은 도끼에 묻은 피를 털어내고 옆에 있던 수석 팀장에게 도끼를 넘겼다.
벤델 남작가의 가주이자 카모라 남작 요한. 지금은 그저 대역죄인 요한이 되어 목 잘린 시체가 되었다.
“전부 치워.”
그 말에 뒤에서 대기하던 3과 전원이 저택을 뒤엎기 시작했다. 사용인은 생포하여 1과장과 2과장에게 넘기고, 벤델 남작가의 일원은 전부 목을 베어 효수한다. 고르푸 자작가와 도실 남작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것도 아니었나.’
처음에는 나름 잠잠하던 놈이 역모가 얽힘을 눈치채자마자 처절할 정도로 꿈틀거렸다. 적극 가담자가 아니라 아펠스 부흥군이라는 것도 모르고 거래를 한 정도였나 보지.
하지만 상관없다. 황제 폐하와 부장님이 그 세 가문의 멸문을 원했으니까. 억울해도 어쩌겠는가, 아펠스 부흥을 도모한 역적과 거래한 것 자체는 사실인데. 그러게 병신같이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주요 물자를 유출해.
하나 둘 끌려 나오는 사용인, 혹은 목만 손에 든 채 나오는 부원들을 보다가 저택 밖으로 나갔다. 이제 목을 걸고 저택만 태우면 다 끝난다. 다행히 부장님의 분노가 우리에게 향할 일은 피했다.
‘살았다.’
부장님이 움직이는 일은 막았다.
저택을 빠져나와 벤델 남작가(였던 것)의 일원들이 효수되는 것을 확인했다.
‘가주, 맞고. 부인, 맞고. 후계자, 맞고.’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 얼굴은 온전하게 두는 편이다. 제대로 죄인을 처리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다행히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확실히 처리했다.
그렇게 나란히 걸린 머리들을 확인하였고, 마지막에 이르러서 시선이 멈췄다. 마지막 머리는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다.
“저거 누가 가져왔어?”
옆에 있던 수석 팀장에게 묻자 얼마 지나지 않아 부원 하나를 데려왔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본인의 잘못을 알기는 아는 모양.
“어떻게 된 일이지?”
“죄인이 도주 중 안면부터 추락하여 손상이 심했습니다. 빠르게 처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가.”
마지막 머리와 부원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낯선 얼굴인데.”
“예. 이번에 3과로 배정 받았습니다.”
“이번 업무가 처음이었겠군.”
“예. 그렇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가보도록.”
그러자 다시 고개를 숙이며 빠르게 물러나는 신입 부원. 신입 부원이 멀어지자 수석 팀장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리해.”
“알겠습니다.”
신입 부원이 향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수석 팀장을 바라보다 품 속의 통신구를 꺼냈다.
‘슬슬 연락이 오겠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어. 5과장. 그쪽으로 갔어?”
– 그래. 용케 여기까지 도망쳤더군.
“미안해. 워낙 작아서 그런지 우리 쪽에서 놓쳤어.”
– 조심해라. 덕분에 우리 목도 날아갈 뻔했으니.
5과장과의 연락이 끝나고 얼마 후, 손상이 심각했던 머리는 내려지고 새로운 머리가 걸렸다.
이후 3과장이 차장에게 제출한 벤델 남작가 토벌 보고서에는 3과 소속 감찰부원 하나가 작전 중 사망한 것으로 적혔다. 안타까운 일이다.
***
감히 역모에 가담한 세 가문을 토벌하는 것에 성공했다. 이제 역도를 토벌하며 얻은 증거를 윗선에 올리기만 하면 이 토벌 작전도 완전히 끝나게 된다.
“이렇게 기억력이 안 좋아서 어쩌지?”
감찰부 지하실, 1과장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세 가문을 토벌하며 생포한 사용인들은 그대로 1과로 보내졌다. 토벌된 가문이 아펠스 부흥군과 협력했다는 증언을 받기 위하여.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눈 앞의 사용인은 얼마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갑작스레 낯선 환경에 놓여서 긴장한 것 같다.
“대역죄인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잖아. 역적과 접촉하는 건 봤을 텐데?”
“모, 모릅니, 모릅니다… 보, 본 적이, 없, 어요…”
몸을 벌벌 떨고 말을 더듬으며 말하는 사용인.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시종장이라는 자가 이리도 기억력이 안 좋아서야.
결국 1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을 계속 추궁해봤자 나오는 건 없으니.
“아들이 견습 시종이었지? 걔도 대역죄인을 자주 모셨다던데?”
“예, 예?”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시종장 아들이어도 견습을 가까이 둔 거잖아? 엄-청 신뢰 받았다는 거네. 그러면 본 것도 많겠어. 그치?”
그 말에 사용인, 시종장의 눈이 요동쳤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니 어쩔 수 없네. 아들한테 대신 물어볼게. 쉬고 있어.”
“나, 납니다! 이제 다, 다 기억 납니다!”
응, 끝났네. 역시 기억을 떠올리는 거에는 이 방법이 효과가 좋아.
“대, 대역죄인, 은 평소에도 황, 황제 폐하, 폐하께 불만을 품, 고… 다시 아펠스가 일어서, 야 한다고…”
“정말 끔찍한 생각이네.”
그렇게 여러 증언을 받고 심문을 마친 1과장은 심문실에서 나갔다.
“어, 끝났냐?”
심문실을 나가자 밖에서 육포를 씹고 있던 2과장이 반겨주었다. 사용인 전부를 1과가 가져갔기에 2과는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가능한 모습.
“네. 증언은 다 확보했어요. 아주 지독한 역도들이네요.”
“지독하지, 아무렴.”
1과의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감찰부의 토벌 작전은 공식적으로 완료되었다.
***
각 과에서 올린 보고서는 차장이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정리되었다. 이후 차장의 보고서는 황제가 감찰부장에게 직접 내린 명령이기에, 재무성 장관을 거치지 않고 곧장 황제에게 올라갔다.
황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진 감찰부의 보고에 흡족해 하며 감찰부를 치하했다.
“역도들은 예외 없이 처단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몹시 흡족해 하셨습니다.”
– 잘했어.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니까.
그리고 아카데미의 누군가도 차장의 보고에 만족했다.
과정에 의문 따위 제기할 사람이 없고, 결과도 완벽한 작전이었다.
실로 완벽히 끝난 작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찰부: 업무 스트레스가 상당하여 간부끼리는 가볍고 허물없이 지내는 편. 아무튼 일을 맡기면 열심히 함.
이제 전자파로 속삭이던 일상 태그가 다시 꿈틀거릴 겁니다. 일상을 잊었을 리 없다고.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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