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493)
로판 속 공무원 493화(494/945)
공작의 결혼은 제국 귀족들에게 있어 일생에 몇 번 없을 빅-이벤트다.
그렇기에 결혼식장을 빛내줄 하객들의 직책도 화려했다. 백작위 이상의 고위 귀족은 물론, 부장급 이상 고위 행정 관료와 군단장급 이상의 고위 지휘관, 마지막으로 지방에서는 법원 하나를 책임지는 재판관들까지. 제국의 지도층이라 불릴만한 사람들 대부분이 모였다.
‘모르는 얼굴이 반이네.’
심지어 하객들은 국내 인사로 국한되지 않았다. 트릭시의 경사를 자기 일처럼 기뻐할 국외 인사들도 한가득이었다.
덕분에 하객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것도 고역이었지. 국경을 넘을 정도면 트릭시를 열렬히 존경한다는 거고, 많고 많은 마법사 중 하객으로 참석할 정도면 꽤나 거물이라는 거다. 트릭시의 남편으로서 그런 하객들의 이름을 모르면 실례지 않나. 좋게 이어갈 수 있는 인연을 어색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대륙 곳곳에서 모인 하객들이다 보니 서로 앙숙인 사람들도 한곳에 모였다는 거지만,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될 것이니, 이 자리에 모여주신 귀빈들께서도 그러셨으면 좋겠습니다.”
트릭시의 은근한 경고에 사이 더러운 앙숙들마저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누었다.
아마 속으로는 상대의 부모에 사촌에 팔촌에 구족까지 욕을 하겠지만 어쩌겠나. 자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업계 전설께서 친히 ‘오늘 결혼식 망치면 죽여버리겠다.’ 라는 경고를 했으니 순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업계 전설 여부를 떠나 개인적 감정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을 망치는 건 몰상식한 짓이다. 다행히 마법사들은 마법에 대한 집착이 심할 뿐, 상식이 없는 또라이는 아니다.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마종공 각하. 이는 제국의 홍복이자 대륙의 기쁨일지니, 각하를 존경하며 꿈을 키운 후학으로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무튼 국경을 넘어온 마법사들을 대변하여 킬라나스 공작이 허리를 숙였다.
나이, 작위, 직책, 명성, 조국의 국력까지─ 킬라나스 공작은 모든 방면에서 결혼식장에 모인 마법사들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거물이 제국까지 와서 허리를 숙이고 있다는 것이 오묘한 일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싶다. 트릭시의 남편이라면 평생 보고 지낼 모습이니까.
“제가 귀공 같은 훌륭한 후학들에게 보탬이 되었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심지어 그 후학이 제 경사를 함께 축하해준다면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일입니다.”
킬라나스 공작의 90도 인사에 트릭시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자신을 보며 꿈을 키웠다는 후학이 대륙 반대편에서 온 상황. 트릭시로서도 흡족한 일이기는 할 거다.
***
장관과 마종공의 결혼식은 화려하게─ 동시에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예배실에 온 것 같군.’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결혼식 중 소란을 피우지 않는 건 당연한 상식이나, 그걸 감안해도 지금 분위기는 너무 조용하고 엄숙하다.
감탄스럽다. 이게 마종공의 장악력인가? 일반인보다 괴짜 비율이 높은 마법사들이 북적거림에도 아무런 소란이 없다니. 이건 황제인 내가 버티고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누가 와도 힘든 일이겠지만.’
나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영웅이신 에이만카 대제께서도 카토반 공작가의 시조인 설검공의 자유분방함은 도저히 제어할 수 없었다고 하지 않았나. 이 위업은 오직 마법사의 정점인 마종공만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는 조용히 지나가겠어.’
이윽고 머리 한구석에서 희망의 싹이 자랐다. 이번 결혼식도 저번처럼 소란스럽게 마무리되면 어쩌나 염려했는데, 이 결혼식만큼은 아무 소란 없이 끝날 것 같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사실 많이 걱정했다. 결혼식에 국외 인사들이, 그것도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보다 에넨의 축복이 다시 일어나는 건 아닌가 진심으로 걱정했다.
미친 생각이라는 건 나도 안다. 1년 전의 내가 들었다면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냐며 코웃음을 쳤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실제로 장관의 결혼식 때 에넨의 축복이 있었다. 선례가 있는 일을 무시하는 건 나태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다.
‘…역시 두 번이나 축복이 내려질 리가 없지.’
허나 결혼식이 끝나감에도 축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게 맞다. 한 사람에게 축복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내려지는 게 말이 되겠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사람은 무슨 직책을 가지고 있든 사제의 길을 걸어야 한다. 그러면 차기나 차차기 교황은 확정일 터.
물론 난 장관을 신성교국으로 보낼 생각이 없다. 제국 행정부에 신앙성 장관이라는 직책을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두 남녀가 만인이 보는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였습니다. 그 순수하고 열정적인 맹세에 천상의 에넨께서도 흡족해하시니, 이 자리에 하나의 부부가 탄생하였음을 선언합니다.”
사회를 맡은 세르베트 대교구의 책임자 말리오 추기경의 선언에 뒤쪽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다. 세르베트 공작령의 집사장인 시칠라 백작이겠지. 결혼식이 시작하기 전부터 감동에 겨운 얼굴로 눈가를 닦고 있었는데,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자세히 들으니 울음소리는 한 곳에서만 들리지 않았다.
‘충성스러운 가신들이군.’
애써 그리 생각하며 울음소리를 무시했다.
나조차 내 대에 마종공이 결혼한 것이 신기한데, 대를 거쳐 섬긴 가신들은 오죽하겠나. 단순히 신기함을 넘어 감동을 느낄 것이다.
***
별장에서 진행된 결혼식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무 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번 결혼식 중에도 에넨이 깜짝 등장을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미친 생각 같지만 어쩌겠나. 아예 일어나지 않은 일을 경계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겪은 일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결혼식 중에 신이 축복을 내리면 어쩌지?’ 같은 걱정을 하는 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염려지만. 어떤 미친놈이 그런 걱정을 하겠냐고.
그렇게 어기적어기적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부케를 들고 있는 리제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스승님! 결혼 축하드려요!”
“후후, 고맙구나. 우리 제자 때는 내가 먼저 축하해 줄 테니 기대하렴.”
트릭시는 그런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보였다.
‘생생하네.’
그리고 나는 리제가 들고 있는 부케를 쳐다봤다.
굉장히 익숙한 부케다. 마르가 트릭시에게 건네준 그 부케가 약 6개월의 시간을 거쳐 리제의 손으로 들어갔다. 따로 마법을 걸어둔 것인지 6개월 전에 봤던 생생함이 아직도 느껴질 정도.
그렇기에 기분이 묘하다. 상징적인 의미가 강한 부케라는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같은 부케를 돌려쓰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남들이 보면 부케도 아껴 쓰는 극한의 검소함이라고 보겠어.
‘저걸 뺏을 수도 없고.’
히히 웃고 있는 리제와 부케를 번갈아봤다. 저렇게 행복해하는 리제에게서 부케를 압수해? 난 그런 잔인한 짓 못해.
게다가 리제는 부케를 압수 당하면 앞에서 웃고 뒤에서 혼자 울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자식이 결혼할 때도 저거 쓰자.’
이윽고 다소 독특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어차피 트릭시가 마법까지 건 부케라면 수십 년의 세월도 버티겠지.
오늘부터 저 부케는 크라시우스 가문의 가보다. 재활용도 수십, 수백 년 단위면 예술이라는 걸 이 대륙에 보여주자.
엘프 주거 지구에서 하는 결혼식은 닷새 후에 진행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별장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연달아 진행하고 싶었지만, 외조모님께서 닷새 후가 길일이라고 하시니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엘프 주거 지구는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일반 이종족 보호 구역과 달리, 타종족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그런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배려를 받았는데 외조모님이 원하는 일정에 맞추는 건 당연한 도리다.
“어떠니? 혹시 예의에 어긋난 복장은 아니니?”
그렇게 잠시 시간적 여유가 생긴 사이, 어머니는 몇 번이나 트릭시에게 복장을 검사받았다.
정확히는 검사를 받은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트릭시의 의견을 구한 거지만, 트릭시는 귀찮거나 난감한 기색 없이 꼬박꼬박 대꾸를 해줬다.
“괜찮습니다. 엘프들의 문화는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어머님의 복장도 충분히 예절과 품위를 갖춘 복장입니다.”
그 말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
엘프와 인간의 문화는 크게 다르다. 그걸 몰라서 트릭시의 귀를 공개적으로 만졌다가 봉변을 당한 게 아닌가.
“그러니? 그럼 이건─”
“부인. 마음은 알겠으나, 엘프인 며느리가 괜찮다고 하니 지금 그대로면 충분할 것 같소.”
어머니가 막 다음 옷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단호히 제지하셨다.
적절한 제지라 아버지를 향해 슬쩍 목례를 했다. 지금 끊지 못했으면 못해도 저녁까지는 강제 패션쇼였어.
“하지만 빌리. 다른 분도 아니고 며느리의 외조모님을 뵈러 가는 건데 허술하게 입고 가면 곤란해요.”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 눈에는 당신이 무얼 입든 완벽하기만 한데 허술하다니.”
직설적인 칭찬에 어머니는 잠시 입을 다무시더니 슬그머니 옷을 내려놓으셨다.
감동했다. 아버지도 저런 애정 표현을 할 줄 아는 분이셨구나.
‘에리히가 졸업하면 막내도 생기겠네.’
에리히가 졸업을 하면 제국의회 의원 대리가 되고, 자동으로 아버지는 제국의회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 그러면 오직 영지에만 머무는 백수로 진화하는 거다.
과연 백수인 아버지가 어머니와 24시간 붙어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가슴이 두근거린다.
***
며칠 후면 명예 제사장이 이곳으로 온다.
‘제발!’
나도 모르게 간절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신인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만큼은 다른 신에게라도 의존하고 싶었다.
제발, 제발 내 명예 제사장의 결혼식 때 아무 일도 없게 해줘! 나한테는 이제 걔밖에 안 남았어! 빈털터리의 마지막 재산마저 가져가는 건 너무하잖아!
‘콘스탄티나는 요정도 있고 엘프도 있잖아!’
세계수가 부활하면 정령도 다시 대륙에 나타나잖아!
그러니까 에넨, 제발! 옛날에 내가 널 돌봐준 정을 생각해서라도 제발!
“하늘 아줌마, 하늘 아줌마.”
“뭐해? 뭐해?”
절박한 기도를 시작하자 어느새 사악한 콘스탄티나의 자식들이 은근슬쩍 달라붙었다.
너희도 순진한 얼굴로 위장한 채 내 명예 제사장을 가져가려는 거지? 다 알아!
그래도 난 뺏기지 않을 거다! 고고한 하늘이 어찌 대지에서 자라는 초목에게 패배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