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
제 5화
파견을 갑니다 – 2
‘문제가 생겨도 전쟁 터지는 게 다니까 안심!’ 같은 개소리를 듣고 나니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급하게 차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과장들에게 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을 분배하면서 아카데미행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공무원 인생도 벌써 4년, 이런 끔찍한 파견은 처음이다.
“그러고보니 필요 인원을 제외하면 아카데미에서 철수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아카데미 내 조력자는…?”
“없다네.”
“음, 그러면 지원금은 어느 정도 입니까?”
“없다네.”
“…활동비 공급처는?”
“없다네.”
“그럼 있는 게 뭡니까?”
“없다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누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허허 웃으며 말하는 외무성 장관의 얼굴에 침 뱉는 건 몰라도 주먹은 꽂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안하네. 삼국에서 워낙 난리를 쳐서 말이야. 정말 하나도 남김 없이 싹 빼야 했네.”
“저런 환경에서 어떻게 활동합니까? 그 북방 파견도 물자는 충분히 챙겨줍니다!”
“그래도 너무 걱정 하지는 말게. 중요한 건 자네가 아카데미에 상주하는 것 자체니까.”
아무리 들어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외무성 장관과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점점 늘어나는 한숨을 뱉었다.
부장 짬에 무기한 파견을 떠나는 것도 서러운데, 심지어 그 장소가 아카데미인 것도 미치겠는데, 먼 길 떠나는 부장에게 지원이 없단다. 혈혈단신이 비유가 아니다. 정말 아카데미에 혼자 쓱 들어가서 뿌리 박고 지내야 한다.
“그래도 방학 때는 돌아와서 쉬어도 된다. 이거 완전 아카데미 학생이군.”
“그, 제발 닥쳐주십시오.”
장관의 도발 의도가 다분한 말에 나는 이를 갈았다. 방학 같은 소리하고 있네. 공무원한테 방학이 무슨 의미야, 근무지만 바뀌는 거지. 격한 내 반응에 ‘네가 화내서 어쩔 거냐’ 라는 듯 비웃는 장관의 표정이 가슴을 후벼팠다.
저런 걸 직속 상관이라고 둔 내 인생이 전설이다. 개같은 놈.
“이제 가보겠습니다. 파견증이나 주십시오.”
어차피 아카데미에 처박히는 미래를 바꿀 수 없다면 보기 싫은 얼굴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이롭겠지. 장관 얼굴 볼 때마다 정신력이 실시간으로 갈리는 것 같다.
손을 내밀며 파견증을 요구하는 칼에게 장관이 피식 웃으며 파견증을 건네주었다. 제대로 똥 씹은 표정이 꽤 볼만해서 계속 놀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붙잡고 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까.
“넌 사고 쳐도 커버 쳐 줄 학부모가 없으니 조심해라.”
“아, 각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놀렸다.
“1과는 내가 알려준 거 위주로 조사하고.”
“네~”
“2과는 2급 서류 따로 구분하고. 빨리 끝내야 하는 거 알지?”
“예, 예, 당연하죠.”
“3과랑 5과는 크게 해야 할 건 없으니 그때마다 알아서 하고.”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으… 차장은 힘내라.”
“예, 감사합니다.”
재무성 청사 앞에서 마지막으로 간부들에게 신신당부하던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간부들을 훑어보았다. 내 파견으로 짬을 맞아버린 차장은 오히려 위로 받아야 하는 인물이고, 5과장은 최소한의 눈치가 있는 놈이니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부장 없는 감찰부에서 다른 과장들이 과연 조용히 지낼까…?
‘지금이라도 2과장은 데려갈까?’
과장 셋이 뭉쳐 삼위일체를 이룩하면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른다. 내가 실시간으로 집무실에 거주하며 감시하는 사이에도 기어코 그 감시를 뚫고 황금공의 분노를 이끈 미친 것들 아니던가.
황금공 다음은 누구지? 전승공이나 철혈공인가? 그때는 정말 공작성에 달려가서 대가리 박고 과장들을 제물로 바쳐야 할지도 모른다. 이 부장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제발 살려만 주십쇼!
“…왜 그렇게 보십니까? 무섭게.”
내 시선에 2과장이 오한이 느껴지는지 잠시 몸을 떨다가 떨떠름히 물었다. 아마 본인이 제물로 바쳐지는 평행세계를 엿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마지막까지 2과장에게 물귀신 메타를 시전할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고개를 저으며 포기했다. 삼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감찰관이라는 명함을 든 칼 혼자만 쓸쓸히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던가.
지금 와서 갑자기 2과장을 데려갈 수도, 데려갈 이유도 없다. 솔직히 이유는 차고 넘치는 것 같긴 하지만 데려갈 수 없다는 건 매한가지다.
‘진짜 믿고 가야 하나? 이 새끼들을 믿고?’
히히 거리는 과장들을 눈에 담았다. 눈 앞이 잠시 깜깜해졌다.
“최대한 문제 없이 지내겠습니다. 타지에서 고생하실 부장님께 다른 고생거리를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내 표정이 미세하게 일그러지자 결국 차장이 입을 열었고,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래, 과장을 못 믿으면 차장을 믿자.
“그래도 무슨 일 터지면 바로 연락하고.”
“예. 꼭 하겠습니다.
“…그래.”
마지막으로 차장에게 조용히 귓속말을 한 이후에야 마차는 나를 태우고 남쪽으로 향했다.
“시발, 도로 상태 개판이네.”
불안을 뒤로 하고 위풍당당히 출발한 마차는 아카데미에 가까워질수록 클럽의 흥겨운 리듬에 몸을 맡긴 것 마냥 신나게 들썩거렸다. 마부, 마부, pump this party…
분명 옛날에 이 근방 도로 공사를 위해 예산 좀 타간 걸로 기억하는데, 꼬라지를 보니 도로 공사가 아닌 지방관 저택 확장 공사로 들어간 것 같다. 개새끼, 도착하면 넌 제일 먼저 털어버린다.
살생부 윗줄에 이름 모를 지방관을 기록하자마자 마차가 다시 한 번 들썩이며 그 결정을 환영했다. 너도 이런 도로 달리느라 힘들겠구나. 아무도 없이 홀로 파견을 떠나던 나는 이미 마차와 작은 우정을 쌓은지 오래였다.
마부가 밖에 있지만, 마부는 압도적 신분의 격차로 인해 말을 걸면 기겁하니 마차가 유일한 나의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런 덜컹거리는 우정 표현은 딱히 반갑지 않았다.
“망할. 텔레포트를 못 쓰니 원.”
텔레포트가 흔한 마법은 아니지만, 원활한 이동을 위해 제국 내 주요 도시에는 텔레포트 마법진이 설치되어있다. 당연히 아카데미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그곳에도 마법진이 존재해야 마땅하나, 아카데미가 자리 잡은 지역의 특이성으로 인해 마법진 설치가 철저히 배제되었다.
크펠로펜 제국이 아직 왕국이라 불리던 쪼렙 시절, 당시 대륙의 최강국이던 아펠스 제국. 그 아펠스 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자랑했던 곳이 오늘날 아카데미가 자리 잡은 곳이다.
그, 뭐더라. 아펠스 제국이 교육을 장려하여 지금의 아카데미를 화려하게 지었고, 아펠스 제국의 모가지를 따버린 크펠로펜도 차마 아카데미를 밀어버리거나 다른 곳에 새로 만들 수 없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애초에 그때는 돈도 부족해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지.
그런데 적국의 수도였던 도시가 너무 활성화되고 접근이 용이하면 아펠스 부흥군이 집결할 여지를 줄 수 있기에 고의적으로 마법진을 설치하지 않았다, 라고 전해진다. 대충 그런 이유로 아카데미는 지금까지 텔레포트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었고, 덕분에 마차를 혹사시켜야 갈 수 있는 곳이다. 아니면 텔레포트 시전이 가능한 마법사를 고용하거나.
물론 당시에는 그럴듯한 이유였을지 모르지만, 아펠스를 짓밟고 30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얘기다. 아펠스 부흥군은 진즉에 크펠로펜의 집요한 추적으로 인해 찬란한 빛을 내며 소멸했으니까.
사실 지금까지 설치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그냥 비싸서다. 텔레포트 마법진이 뭐 개나소나 만드는 것도 아니고, 유지 비용도 장난 아니고. 아카데미 근처는 정말 아카데미밖에 없으니 누군가 그곳에 갈 일도 없고, 아카데미 내에 어지간한 시설이 갖춰졌으니 나갈 일도 없고…
‘장관 시발아.’
몇 달 전에 장관이 아카데미에 마법진을 설치하자는 건의를 그 이유로 기각한 것을 봤으니 확실하다. 내가 이렇게 아카데미로 파견 갈 줄 알았으면 그때 어떻게든 통과시켰지. 결국 돌고 돌아 장관이 문제였다. 제발 어디서 갑자기 돌연사 했으면.
“부장님, 아카데미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
얘기할 상대가 없으니 의식의 흐름대로 정신을 놓고 있던 나는 마부의 말에 반색하며 창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거대한 성벽을 눈에 담았다. 와, 높다…
“웅장하군. 이 거리에서 저 정도 크기라니.”
“부장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교직원이나 학생들을 상대로 한 상인들이 점점 모이다보니 규모가 꽤 커졌습니다. 그리고 상인들의 가족, 또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상인들이 모이면서 아카데미는 단순 교육기관이 아닌 하나의 도시로 변했지요.”
‘학원도시…’
뭔가 레일건 잘 쏘는 학생이 있을 것만 같다.
그 뒤로 나와 마부는 다시 침묵을 지키며 마차가 덜커덩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열악하고 긴 이동 끝에 아카데미가 보여 말문이 트였지만, 서로 터놓고 대화하기는 어색한 사이니까. 숨막히는 침묵은 성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깨졌다.
“경비 인력이 많이 줄었군요.”
성문 통과를 위해 경비병에게 보여주었던 파견증을 품 속에 챙기던 내가 창 너머 거리를 확인했다. 수많은 인파, 꽤 많은 상점. 하지만 경비병은 보이지 않는다. 전부 학원도시, 아니 아카데미에 거주하는 민간인들.
“흠, 그런가? 아카데미는 처음이니 잘 모르겠군.”
“아까 성문만 해도 보통은 4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성문을 통과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파견증을 보여주자마자 몸을 휴대폰 진동 마냥 떠는 모습이 진귀해 수고하라는 덕담을 날렸던 것과 별개로, 성문을 지키는 병사는 4명이 아닌 2명 뿐이었다.
‘정말 최소 인원만 남기고 철수했네.’
“아카데미 내에 조력자는 없다네.”
“전부 철수해서 아무도 자네를 도울 수 없을 거야.”
“꼬와도 어쩌겠는가. 꼬우면 자네가 장관 했어야지.”
외무성 장관의 (극히 주관적으로 왜곡된 기억 속의)말이 다시 떠올랐다. 말로 듣고, 머리로 이해한 것이 아닌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정말 와닿았다. 일생에 단 한 번도 연이 없었던 미지의 공간인 아카데미에서, 홀로 감찰관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버텨야한다.
‘방학이… 언제지…?’
대학은 보통 6월인데, 여기도 그런가?
개강과 동시에 종강을 바라보던 대학생의 심정을 다시 느껴버린 나는 아카데미 본관에 멈춰서야 긴 마차 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상관에게 쪼이는 공무원 생활에서 벗어나 상관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파견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칼의 아카데미 생활(학생 아님)도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짠홀릭님의 후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