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02)
로판 속 공무원 502화(503/945)
신앙교리성 성장을 위시한 보수파의 침묵으로 인해 세계수와 콘스탄티나에 대한 안건은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내 입으로 바빠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빨리 끝날 줄은 몰랐지. 한 1주는 걸릴 줄 알았는데.
“세계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공식 사절단을 크펠로펜 제국 치하 이종족 보호 구역으로 파견하며, 이종족 보호 구역 내 교구는 현지 이종족과의 합의를 통해 존속 및 점진적 철수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교황의 말에 추기경들은 박수를 치거나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결과가 정해진 이상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따르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또한 세계수를 여명 교단의 신수로 재지정하며, 세계수를 대륙에 하사한 콘스탄티나의 존재를 대륙의 신으로서 인정합니다. 이는 추기경단의 만장일치로 결정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유일신을 외친 여명 교단이 공식적으로 다른 신의 존재를 인정한 기념비적인 선언.
그 역사적인 순간 속에서, 교황은 평온한 표정으로 의사봉을 세 번 내리쳤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허나 공의회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역사에 남을 세계수 안건조차 공의회에서 다루어야 할 수많은 안건 중 하나에 불과했으니까.
‘몇 년이나 걸리려나.’
내 기억으로 여명 교단의 공의회는 짧아도 수개월, 길면 몇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걸로 알고 있다.
물론 1년 365일 공의회만 하는 건 아니고, 계절 메뉴 판매하는 것처럼 1년에 일정 기간만 공의회에 할애하는 것이기는 하다. 교단의 수뇌부가 진짜로 1년 내내 공의회로 붙잡혀 있으면 교단 망하지.
정작 그 제한 때문에 공의회가 년 단위로 늘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신경 끄고 지내면 되겠지.’
다시 인외마경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공의회를 보다가 슬며시 눈을 감았다.
어차피 난 추기경도 아니고, 신앙심 깊은 신도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세계수 안건 때문에 초청받은 일개 참고인일 뿐. 심지어 세계수 안건이 성공적으로 통과되었으니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것은 없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면 언젠간 공의회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으─
“북방 유목민의 고유 문화인 영원한 푸른 하늘에 대한 안건입니다.”
?
‘뭐야.’
낯선 장소에서 익숙한 이름을 듣고 말았다. 여기서 그 이름이 왜 나오지?
‘이래도 되는 건가?’
나도 모르게 분위기를 살폈다. 콘스탄티나를 독자적 신으로 인정한 것에 이어 영원한 푸른 하늘도 안건으로 끄집어내는 패기. 단순히 구경하는 나조차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인데, 추기경들이 느낄 충격은 상당하지 않겠나.
아니, 분명 상당해야 했다.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면… 태초의 신이라 불린 존재였지요?”
“제 기억으로는 하늘을 향한 숭배가 신앙으로 발전한 경우라고 들었습니다. 늑대 신앙도 결합됐다고는 들었는데, 가물가물하군요.”
그러나 추기경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술렁거림은 있었으나 안건에 대한 반발이나 당혹감이 아닌, 영원한 푸른 하늘이라는 신에 대한 정보 공유를 위함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영원한 푸른 하늘이 콘스탄티나보다도 아득히 아래인 상황이라지만 신은 신이다. 지금 새로운 신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렇게 담담해도 돼?
‘해탈했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미 콘스탄티나를 신으로 인정했으니 이교가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그게 그거라는 즐기는 자 상태에 돌입한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데.
“제국을 위한 배려입니다.”
“응?”
홀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타니안이 작게 속삭였다.
“제국이 제국으로 군림하는 것은 천명─ 즉 신의 총애와 가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헌데 저희가 콘스탄티나라는 새로운 신을 인정했으니, 천명이 다방면으로 해석될 여지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그러네. 제국이 제국인 건 천명 덕분인데, 에넨이 아닌 다른 신이 공인되면 새로운 천명이 생길 수도 있다. 막말로 어느 미치광이 군주가 이교로 개종하고 ‘나도 천명을 받은 황제다!’ 라고 하면 여명 교단도 할 말이 없잖아.
물론 천명을 이루는 요소 중에는 국력도 있으니 실제로 제국이 이교 때문에 흔들릴 일은 없으나, 여지를 조금이나마 남겼다는 게 문제다.
‘…괜찮겠지?’
순간 황제한테 쪼인트를 까이는 미래가 보였지만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다.
내가 세계수 부활을 증명할 참고인으로 간 건 황제도 알고 있잖아. 교황과 추기경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일이 이렇게 흐른 것도 이해해 줄 거다. 난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했을 뿐이니까.
비록 다른 안건으로 싸우던 추기경들에게 세계수 안건을 들이밀기는 했지만, 바빠서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것도 진짜였고. 솔직히 황제도 내가 몇 달, 몇 년 동안 신성교국에 머무르는 건 싫을 거다.
“하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도 신이 된다면 제국에게 득이 되죠.”
“제국에게?”
“예. 이종족의 친우를 자처한 황제기에 엘프의 신인 콘스탄티나를 일방적으로 다루기는 힘들겠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은 제국에 굴복한 유목민들의 신이니까요. 여명 교단이 공인한 신이니만큼 제국의 체제 안정을 위하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타니안의 완벽한 논리에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군.”
실로 옳은 말이다. 난 천명이 흔들릴 여지를 남기고 온 게 아니다. 오히려 제국이 더욱 굳건해지고 유목민들이 제국에 충성할 수 있는 요소를 받고 온 거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다.
공의회 첫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공의회 참고인 역할이 끝나며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추기경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왕 타국까지 왔는데, 내일부터는 관광이나 하자.”
그렇기에 트릭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제안했다. 신혼여행이라 생각하며 온 것이기도 하니, 참고인 역할이 끝나자마자 귀국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게 좋지 않겠나.
에네스티예는 여명 교단의 성지이자 대륙 교계의 중심지로서 다양한 사람과 문화과 공존하는 도시다. 비록 종교적 색채를 지닌 도시기에 화려하고 즐거운 관광은 힘들겠지만, 색다른 분위기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게다가 마침 수백 년 만의 공의회가 열려서,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평소보다 더욱 많은 인원이 몰렸다고 한다. 덕분에 길거리 노점도 꽤나 열렸고.
“관광?”
그런데 의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누가 들어도 다소 난감한 듯한 목소리였다.
“왜? 혹시 피곤해?”
“그건 아니지만, 바로 귀국해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트릭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트릭시는 이번 공의회 결과가 알음알음 각국 지배층에게 퍼지기 전, 빠르게 황제에게 보고하여 대책을 논의해야 하지 않겠냐고 묻는 것이다.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콘스탄티나의 공인은 확정, 영원한 푸른 하늘도 공인 직전까지 간 상황이다. 대륙의 가치관이 흔들릴 정도의 일이니 누구보다 빠른 대처가 필요한 건 맞다.
“괜찮아. 이미 얘기했어.”
하지만 대처는 내가 아니라 황제가 할 일이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문자를 보내줬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솔직히 감찰성 장관이 귀국해봤자 종교적 문제로 무슨 일을 하겠어. 제국에 퍼진 교회에 감찰이라도 걸어?
결정적으로 황제 그 새끼, 날 보내면서 언제까지 복귀하라는 말도 없었다. 양심상 몇 주 동안 뿌리박고 지낼 생각까지는 없으나, 하루 만에 귀국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까 우린 며칠 정도 푹 쉬다가 가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타국 관광을 하겠어.”
그러자 트릭시의 귀도 슬며시 하늘로 솟기 시작했다.
역시 트릭시도 놀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
큰 권리에는 큰 의무가 따르는 법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고귀하고 드높은 황제는 누구보다 무겁고 가혹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법이다.
‘미치겠군.’
그래도 이렇게 흉악한 의무가 얹어질 줄은 몰랐다. 어째서 내 재위 기간에 이런 일들이 터지는 건지.
‘공인이라.’
결국 실소가 나왔다. 종교 전쟁 시기, 콘스탄티나가 에넨에게 순순히 협조하며 여명 교단도 콘스탄티나 신앙 공동체는 탄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계수를 대륙에 내린 존재라며 나름의 존중을 보였으니, 비공식적이나 관습적으로는 ‘신과 준하는 대우’를 표했다.
허나 이제는 그 수준을 넘어 독자적 신격으로 공인을 한다고 한다. 여명 교단의 승리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유일신 체제가 흔들렸다.
심지어 콘스탄티나뿐만 아니라 영원한 푸른 하늘을 공인하는 것도 확정되기 직전이라고 하니, 이제 이 대륙에 신은 하나가 아닌 셋이다.
‘태양과 초목, 하늘이라.’
그 와중에 제법 그럴싸한 조합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밉다.
‘나쁘지는 않다.’
그렇게 계속 실소를 흘리다가 결론을 내렸다.
일단 이 사실이 밝혀지면 대륙이 요동치는 건 맞다. 각지에 퍼진 교회가 동요할 거고, 신민들도 우왕좌왕할 것이며, 귀족들도 눈치싸움을 시작할 터.
그러나 놀랍게도 정말 나쁜 상황은 아니다. 콘스탄티나 공인으로 끝났다면 골치가 아팠겠지만, 영원한 푸른 하늘도 공인되며 화가 복으로 변하였다.
‘영원한 푸른 하늘은 제국의 일부다.’
북방이 제국의 영토가 되었고, 유력 부족장들은 귀족이 되었다. 또한 제국은 북방의 문화를 존중하겠다 선언하였고, 황제는 유목민의 칸이 되었다. 이는 황제가 유목민 신앙인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해도 문제가 없다.
반면 콘스탄티나의 신도인 이종족들은 명목상 제국의 신민이 아닌 황제의 친우라 애매하지만, 다행히 제국과 이종족은 우호관계다. 상황 폐하 이전의 암군들도 이종족과의 관계는 무난하게 유지하였으니, 제국이 먼저 무리한 요구를 하지만 않는다면 이종족들이 이번 일로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잠잠한 수준을 넘어 제국에게 협조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제국은 이전부터 여명 교단과 우호적이었고, 이제는 영원한 푸른 하늘 신앙을 장악했다. 공인된 신 셋 중 둘이 친 제국 진영이라는 뜻. 이 상황에서 콘스탄티나 신앙만 중립을 지키면 홀로 동떨어질 테지.
‘나쁘지는… 않은데…’
무심코 한숨을 내쉬었다. 좋기는 하지만 저걸 다 내가 실현시켜야 한다는 게 문제다.
미치겠다. 공의회 첫날부터 이런 보고가 올라오다니. 도대체 공의회가 완전히 끝나면 어떤 지옥이 펼쳐질지 두려울 지경이다.
***
성 토그라 대성당 내에서도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작은 기도실.그곳에 홀로 남아 우리의 주께 기도를 올렸다.
이교를 공인한 선택에 후회는 없다. 진정 주와 교단을 위한다면 이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화려하게 재강림한 신을 탄압하고 외면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을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교단의 미래를 생각해도 좋지 않다.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다른 자들도 우리의 주를 외면하고 부정할 수도 있으니.
그래, 이것이 옳다. 이 외에 방법을 택하면 다시 종교 전쟁 시절처럼 무수한 피와 눈물이 땅에 흐르고, 비명과 통곡이 하늘을 메울 것이다.
그래, 그랬을 것이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
“주여, 이 죄인을 용서치마소서.”
주를 향한 내 마음을 고백했다. 아무리 이것이 옳더라도 나를 용서하지 말라고.
유일한 주의 이름을 종이라는 자가 격하한 것을, 우리의 선현이 쌓은 영광을 스스로 분해한 것을 용서치 마시라고.
모든 업보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한다. 내 고집에 따른 선량하고 현명한 추기경들에게는 죄가 없다.
부디 이 진심이 주께 닿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해가 지고, 어둠이 하늘을 덮고, 다시금 여명이 터오를 때까지 기도했다.
“…주여.”
그리고 고개를 들어 눈을 뜨니, 주의 십자가가 빛나고 있었다.
– 너의 뜻을 내가 안다.
감히 일개 피조물이 듣기에는 황송한 목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