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04)
로판 속 공무원 504화(505/945)
에네스티예의 정경은 생각 이상으로 괜찮았다. 종교 특화 만렙을 찍은 도시라 엄격 근엄 진지한 분위기를 걱정했는데, 생각해 보니 빙의 전 세계의 로마나 바티칸도 관광객이 많은 곳이었잖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
‘이 맛에 관광하는구나.’
건축에 조예가 없는 일반인이 봐도 감탄이 나오는 성당, 성인이나 명망 높은 사제의 일화가 깃든 기념지, 대륙 각지에서 모인 신도들이 정착하며 생긴 다문화 복합 지역 등. 마치 도시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 같았다.
게다가 치안과 청결, 물가도 실로 에넨의 은총을 받은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아무래도 여명 교단의 중심지인 곳이기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면 교단의 이미지 자체가 망가지는 꼴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교단에서 이 악물고 관리하는 것이 느껴졌다.
‘관광지 물가 없는 관광지.’
가슴이 절로 웅장해졌다. 손님 등 처먹는 새끼들 없는 관광지라니. 마치 가혹 행위 없는 병영, 진실만 말하는 기자처럼 환상 속 존재잖아.
역시 성지라 뭔가 다르기는 하다. 꿈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을 현실로 구현했어.
“다음은 저기로 갈까?”
그렇게 트릭시와 팔짱을 낀 채 여기저기 둘러보던 도중, 멀리서부터 화려한 존재감을 뽐내는 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솔직히 신성교국에 입국했을 때부터 신경 쓰였다. 도시 외곽에 처박혀있는 주제에 에네스티예에 있는 어떤 건물보다도 높았으니까. 심지어 에네스티예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성 토그라 대성당보다도.
어떻게 보면 불경하다고 할 수 있는 탑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흥미가 갔다. 저런 불경한 탑이 어쩌다 에네스티예에 세워졌을까.
“그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에네스티예의 모습도 궁금하구나.”
트릭시도 내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마법사인 트릭시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일반인인 내가 봐도 저 탑의 존재가 신경 쓰이는데, 일생이 연구와 탐구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는 오죽하겠나. 아마 내가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트릭시가 먼저 제안했을 거다.
“제도에서도 저렇게 높은 건물은 마탑뿐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더 신기하네. 신성교국의 마탑인가?”
트릭시의 중얼거림에 탑을 올려다봤다.
저거는 마탑이 아니라 성탑이라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교황의 은패를 보이자마자 탑의 입구에 있던 관리자는 정중히 설명을 시작했다.
“이 탑은 종교 전쟁이 끝난 직후,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성기사들과 사제들, 자발적으로 모인 신도들이 힘을 합하여 쌓아 올린 탑입니다. 주의 영광과 올바른 신앙을 위해 싸웠다지만, 성직자로서 손에 피를 묻힌 것과 죽은 동료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쌓은 탑이지요.”
그리고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숙연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성탑이라는 이름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탑이었다.
“그렇기에 먼저 천상으로 올라간 동료들과 닿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주의 자비에 가까워지고 싶은 열망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신성 모독으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당대 교황께서 용인해 주신 덕분에 지금의 탑이 세워졌습니다.”
“다행이군요.”
관리자의 말에 무심코 그런 감상을 내놓고 말았다.
그런데 진짜 다행이기는 하다. 탑을 쌓은 당사자들이 순수한 의도였던 데다 교황도 긍정적으로 봐줘서 망정이지, 이거 바벨탑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는 하잖아. 심지어 교단의 중심지에서 참전 용사들이 쌓은 바벨탑? 교황이 파문빔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다.
“각하의 말씀대로 다행인 일입니다. 당시 교황 성하의 자비로운 결정 덕분에 오늘날 에네스티예의 자랑인 이 탑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작게 웃음을 터뜨린 관리자는 따스한 눈빛으로 탑을 응시했다. 마치 이 탑을 책임진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물론 자부심을 느낄만한 탑이기는 하다. 종교 전쟁에서 여명 교단이 승리한 기념으로 만든 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다시는 교단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맹세라고 볼 수도 있으며, 전사한 순교자들을 향한 무덤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지금은 각 층마다 사제들의 연구실이 존재합니다. 그곳에서 신학을 연구하며 교단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죠. 게다가 몇몇 은퇴한 선배들께서는 서점이나 카페도 운영하시니, 즐거운 관람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상하다. 분명 관광지 설명을 들은 건데, 정작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저 설명을 듣고도 웃으며 탑을 구경하면 마음이 없는 놈 같─
“칼, 우선 꼭대기부터 가지 않겠니?”
“그러자.”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감성에 빠진 것 같았다.
관광지에 왔으면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게 도리지. 관리자가 기껏 설명해 준 걸 생각하면 그게 옳다.
***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흥분에 떨만한 일이나, 나는 그렇지 않다.
정확히는 더 이상 그러지 못했다. 이미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드높은 마탑의 주인으로 지냈고, 대륙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인 제도를 매일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와서 다른 도시를 내려다봐도 색다를 뿐이지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성탑 꼭대기에 오른 이유는 간단하다.칼과 함께 내려다보는 광경이라면 평생이 지나도 잊지 못할 테니까. 무료함에 젖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될 테니까.
물론 마탑 꼭대기에서 봐도 비슷한 광경이겠지만, 근무지에서 보는 광경과 관광지에서 보는 광경은 느낌이 다르니까.
“어?”
그러던 중, 에네스티예를 내려다보던 칼이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니?”
“저기, 성 토그라 대성당 맞지?”
칼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확실히 성 토그라 대성당이 보였다.
“으응?”
그리고 나도 칼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빛나지?’
대성당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뭔가 이상한 빛이었다. 마르의 결혼식 때 빛났던 십자가나, 세계수가 부활했을 때 보였던 빛과는 조금 달랐다.
애초에 대성당 전체가 빛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성당에 달린 창문을 통해 빛이 불규칙적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마 싸우고 있는 건가?”
진지하게 중얼거리는 칼의 목소리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제 추기경들이 격렬한 논쟁을 보이기는 했지만, 설마 공의회 중에 자기들끼리 성법을 주고받을 리가. 마치 마법사들이 토론 중에 수 틀리면 서로 마법을 날린다는 말…
‘진짜 싸우는 중인가?’
아련히 떠오르는 기억 때문에 웃음이 멈췄다.
마법사들도 여차하면 마법으로 싸우는데, 사제들이라고 다르다는 법은 없으니.
“내려가자꾸나.”
“아, 응.”
결국 생각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귀족의 일은 귀족이, 사제의 일은 사제가.
세속이 교회의 일에 너무 관심을 가지는 건 좋지 않다.
작은 소란이 있었지만 성탑 관광은 흥미로웠다. 에네스티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만큼 그 내부도 넓었고, 넓은 공간은 한치의 낭비도 없이 무언가로 채워져있었다.
특히 입구의 관리자가 말했던 것처럼 사제들의 연구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니, 처음 보는 건물에서 익숙한 마탑의 향기가 느껴졌다.
‘구경하는 건 실례겠지.’
문득 떠오른 욕망을 빠르게 털어냈다.
칼이 받은 은패는 해당 패의 소유자가 교황과 준하는 주요 인물이라는 상징. 즉, 교단의 미래를 논하는 연구실이어도 칼이 들어갈 자격은 충분하다.
하지만 자격이 있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개인적 호기심 때문에 서로 곤란해지는 건 불편한 일이지.
“성직자라고 다 진중한 건 아닌가 봐.”
“직업이 어떻든 같은 사람이잖니.”
그리고 지금은 연구실보다 더욱 관심이 가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
[ 최종 직급이 대주교인 노인의 일방적 인생 훈수 카페 ]이름만 봐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동시에 이유 모를 흥미가 솟구치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몇몇 은퇴한 선배들께서는 서점이나 카페도 운영하시니, 즐거운 관람되시길 바라겠습니다.”
관리자가 조금 원망스러웠다. 단순히 카페가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게 있다고 정확히 말했어야지. 하마터면 이런 별난 카페를 놓칠 뻔했어.
“…들어갈까?”
“그래.”
조금 멍한 칼의 목소리에 나도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장사꾼은 일단 손님의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
나름 대주교까지 오르고 명예롭게 은퇴한 사람에게 장사꾼이라고 하기는 미안하지만, 본인이 자처하여 괴상한 카페를 열었지 않나.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아무튼 그런 의미에서 저 전직 대주교는 훌륭한 어그로꾼이다. 신성교국까지, 그것도 이 성탑까지 올 정도로 신실한 관광객이 저런 간판을 본다? 바로 지갑 오픈하고 온갖 인생 훈수를 요구할 거다. 대주교의 훈수는 못 참지.
“허, 이거 참.”
정작 우리가 무언가에 홀린 듯 들어가자 전직 대주교는 난색을 표했다.
“분명 노인의 훈수라고 했는데…”
말꼬리를 늘리는 대주교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뒷말을 짐작했다. 아마 자신보다 연장자가 훈수를 듣기 위한 손님으로 올 줄은 몰랐을 터.
당연하지만 굳이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
“다섯한테 훈수를 두는 건 너무하지 않나. 노인의 체력 좀 생각해주게.”
?
“예?”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라 절로 반문이 나왔다. 다섯한테 훈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하루에 정해진 손님만 받는 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에 대주교는 픽 웃음을 흘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들어온 건 다섯인데 보이는 건 둘이야.”
그 말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던 트릭시가 황급히 대주교에게 다가갔다.
“방금, 방금 그 말,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니?”
그것도 은화를 한 움큼이나 꺼내면서.
“넣어두십시오. 은화를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 그럼 금화면…”
“동화면 충분하다는 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비싸게 사려는 손님과 싸게 팔려는 주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니, 그보다 뭔 줄 알고 돈부터 주는 건데. 쿨거래도 저 정도로 시원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