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05)
로판 속 공무원 505화(506/945)
마법사, 사제, 의사.각자의 특색이 너무 강하여 공통점을 찾기 힘든 직업이나, 부부와 가문의 경사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 공인할 수 있다는 특이한 접점을 지닌 직업들.
나 또한 마도를 걷는 자로서 여인의 임신 여부를 즉각 파악할 수 있고, 마르의 품 속에서 자라는 첫눈이를 느끼는 것이 하루의 낙이 되었을 정도다. 허나 남의 임신 여부는 빠르게 알아채는 마법사들이정작 자기 자신의 임신 여부는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
모순적인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매일 마나를 느끼고 사는 마법사들은 자신의 몸 안에 생기는 새로운 마나에 대해 둔감한 편이다. 매일매일 마나를 늘리고, 자연 속의 마나와 접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법사 아닌가. 몸에 새로운 마나가 느껴져도 ‘어제 명상은 효과가 좋았구나.’ 정도로 넘어가는 경우가 잦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새로운 마나가 점점 커지면 이변을 눈치챌 수밖에 없다. 자신의 몸에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고. 새로운 마나는 자신이 아닌 새로운 생명이 품고 있는 마나라고.
그렇게 아이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보이자마자 눈물이 나올 뻔했다. 부모님은 나를 가지기 위해 수년이라는 세월 동안 노력하셨고, 나 역시 그에 준하는 시간을 보낼 거라 각오했다. 그런데 벌써 아이가 생겼다고? 하늘에 있는 신들과 부모님께서 내린 둘도 없는 선물이다.
그러나 그 경사스러운 가능성을 칼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다. 마법사인 내가 임신이 확실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 때, 그때 사제와 의사를 불러 교차 검증을 하기 위해서 침묵했다.만약 그 이전에 불렀다가 내 착각인 게 밝혀지면 칼이 얼마나 실망할까.
…사실 두려워서 그랬다. 아이가 생긴 것은 분명 기쁜 일이나, 혼혈 엘프가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지는 건 객관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마종공이라 불리는 내가 마나를 잘못 느낀 확률과 비슷할 정도로.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성급히 기뻐했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너질까 봐. 뛸 듯이 기뻐하던 칼이 그런 나를 위로하느라 실망감도 제대로 보이지 못할까 봐.
“들어온 건 다섯인데 보이는 건 둘이야.”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을 듣게 되었다.
무려 전직 대주교에게 내 생각이 맞는다는 듯한 말을 들은 것이다.
“방금, 방금 그 말,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니?”
그 후로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대주교 앞에 앉고, 주머니에서 은화를 집히는 대로 꺼냈다.
‘…다섯?’
그런데 다섯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지?
설마 내 안에 있는 아이가, 하나가 아니야?
***
트릭시는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으로 전직 대주교의 인생 훈─ 아니, 조언을 들었다.
“마법사들은 품 속의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야 판단이 가능하지만, 사제들은 조금 다릅니다. 저와 같은 소수의 사제들은 신께서 지상에 새로운 생명을 보내셨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죠.”
“직감…”
“물론 직감만으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 사제들도 사제들 나름의 판단 방법이 있으나, 지금 각하께 중요한 건 그런 사소한 것이 아니겠지요.”
그 말에 트릭시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사제들의 메커니즘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조금 당혹스럽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에 대한 욕망이 드높은 트릭시 아닌가. 평소라면 사제들이 어떤 식으로 능력을 발휘하는지 꼼꼼하게 질문했을 거다.
허나 그보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축하드립니다. 각하의 품에 셋이나 되는 은총이 깃들었습니다.”
트릭시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세쌍둥이를.
‘꿈인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아이가 생기는 건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나, 트릭시는 인간 반 엘프 반인 혼혈이다. 애석하게도 순혈 인간과는 종의 구성이 다소 다르다.
그래서 나도 트릭시도 카토반 공작가의 가신들도 소공작을 보는 건 몇 년 후의 일로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생겼다고?심지어 하나도 아니고 셋을?
과도한 정보가 한순간에 유입돼서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어떤 사기꾼이 인간이랑 엘프 사이에는 자식 생기기 힘들다고 했냐. 인간 사이에서도 보기 힘든 신혼 세쌍둥이가 나왔잖아.
“저기, 어르신.”
“뭔가.”
혼란을 뒤로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자, 훈수쟁이 컨셉으로 복귀한 대주교가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이라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입니다. 정말 트릭시가 세쌍둥이를 임신한 게 맞습니까?”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각하를 믿게.”
“예?”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아이와 관련된 거면 당연히 산부인과 의사를 믿어야지, 임산부를 믿는 사람이 어딨어.
“각하께서도 당신이 임신하신 건 짐작하고 계셨어. 셋인 건 미처 모르셨던 것 같지만.”
하지만 뒤이은 말에 트릭시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니 그러네. 마법사인 트릭시가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잖아.
“자네가 느끼는 당혹감이 각하께서 먼저 느끼셨을 감정이지. 그러니 지금까지 비밀로 했다고 서운해하지는 말게나.”
아.
짧은 문장이었지만 트릭시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나였어도 일단은 침묵했겠네.
“충고 감사합니다, 어르신.”
“인사는 꼬박꼬박 잘하는군. 어디 가서 예의 없다는 말은 안 듣겠어.”
픽 웃는 대주교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 후, 아직도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트릭시를 조심스레 껴안았다.
“아, 칼…”
“돌아가자. 홑몸도 아닌데 조심해야지.”
직설적인 말에 트릭시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성지에 와서 이렇게 좋은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네. 고마워.”
“고, 고맙기는. 나 혼자 가진 것도 아니잖니.”
쭈뼛거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은 트릭시는 다소 얼떨떨한 기색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당장은 기쁨보다 어색함이 더 크겠지. 아무리 짐작을 하고 있었다지만 어디까지나 혹시나 하는 심정이었고,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부부가 오붓하게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신혼여행 중 임신이 공인되었으니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셋이라.’
애초에 나도 복잡 미묘한 감정이니 트릭시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몇 번을 곱씹어도 감탄스럽다. 어떻게 하나도 아니고 세쌍둥이가 내려왔지?
‘신의 선물 같은 건가?’
에넨이 하나, 영원한 푸른 하늘이 하나, 콘스탄티나가 하나. 좀 억지 같지만딱 셋이기는 한데.
‘태명은 정해졌네.’
아무튼 신이 내린 선물이라 생각하면 태명은 자동으로 정해졌다. 태양이, 하늘이, 초목이가 딱이지.
나랑 관련 있는 신 중에 전쟁의 신이나 죽음의 신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다.
***
나이를 먹으며 뻐근해지던 육체와 피로에 찌들었던 정신이 점점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아니,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진실이리라. 카토반 공작가의 부군이 생기면서 공작가의 안정성이 두터워졌으니, 카토반의 집사장으로서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평온해질 수밖에 없다.
‘맑군.’
차를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늘마저 내 기쁨을 축하하듯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정말 멋진 하늘이다. 하늘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였었나.
‘결점 하나가 사라졌다고 이렇게 편하다니.’
그리고 그 유일한 결점이 1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서야 사라질 줄 누가 알았을까.
물론 아직 공작 각하는 혼인만 한 상태시지, 자식을 보려면 몇 년은 지나야 가능할 거다. 엄밀히 따지면 카토반 공작가의 후계는 아직도 불안정한 상태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건가. 부군 각하께서는 스물이 좀 넘은 분이시고, 공작 각하도 부군 각하보다 오래 살면 오래 살았지, 덜 살 리는 없는 분이다. 카토반 공작가를 이끌어 갈 미래의 공작 각하는 반드시 태어나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웃을 수 있다. 제국 제일의 마법 명가이자 제국 건국 1등 공신, 설검공의 핏줄은 앞으로도 이어질─
‘음?’
찻주전자 옆에 두었던 통신구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시칠라 백작입니다.”
평온한 티타임을 방해하는 연락이었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기분이 좋으니 어떤 일을 겪어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 나란다.
게다가 연락을 건 분이 공작 각하시라면 오히려 기쁜 일일 터.
헌데 조금 의아하다. 각하께서는 분명 신성교국으로 여행을 떠나시지 않았나. 그 귀한 시간을 할애하여 나에게 연락을 주시다니, 무슨 중대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 갑자기 연락을 걸어 미안하구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단다.
“괜찮습니다, 각하. 각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저의 의무이자 영광입니다.”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 각하께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설령 중대한 일이라도 상관없다. 카토반 공작가를 섬기는 가신이 각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가문의 영광. 새벽 중에 지시를 내리셔도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 옳다.
– 후후, 그러니?
내 대답에 그러한 의지가 보였는지, 각하의 미소는 더욱 짙어지셨다.
– 그럼 네가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해주렴. 실은─
공작가의 가신들이 급히 회의실로 모였다.
“열 달─ 아니, 그보다 일찍 태어나실 가능성도 있으니 7개월 이후부터는 일정을 전부 비워야 합니다!”
“일단 공작령의 빈민들에게 기념 구휼을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태어나신 후에 하는 거 아닙니까?”
“모르겠습니다. 카토반 가문에 누군가 태어난 것이 100년도 더 된 일이라.”
그리고 당연하게도 회의실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작은 주군들께서 지낼 방부터 마련해야지요! 무려 셋입니다, 셋! 그분들이 어릴 때야 같은 방에서 지내더라도, 다섯 살만 되셔도 다른 방을 쓰고 싶다 할 겁니다!”
그 우렁찬 외침에 몇몇 가신들은 눈물까지 보였다.
사실 나도 그렇다. 설마 공작 각하께서 셋이나 되는 작은 주군들을 품으실 줄이야.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작은 주군들을 위한 방, 옷, 장난감 등등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사이, 시종장이 입을 열었다.
“유모는 누가 합니까?”
거짓말 같은 침묵이 회의실에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