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06)
로판 속 공무원 506화(507/945)
신혼여행을 둘이 아니라 다섯이 왔다는 걸 깨닫자마자 귀국을 준비했다.
다행히 신성교국에 온 목적인 참고인 역할도 끝났고, 성탑에 방문하기 전 어지간한 관광지도 전부 둘러봤으니 에네스티예에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 신혼여행에 미련을 가지지 말고 빠르게 돌아가는 수밖에.
그것보다 일이 다 끝나고 나서야 정체를 알게 되다니.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효심이 넘치는 아이들이구나.
“아쉽군요. 어제 패를 드렸는데 벌써 돌아가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간다는 소식에 타니안이 항구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래도 새로운 생명을 품은 분이 낯선 타지에 머무는 것은 가혹한 일이지요.”
“이해해 줘서 고맙다.”
“하하, 이해라는 말을 듣기는 민망합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타니안을 따라 나도 미소를 지었다. 혹여나 갑작스러운 귀국에 신성교국이 난감한 기색을 보이면 어쩌나 걱정했었다. 아무리 용무가 끝났다지만,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는 건 주인의 체면과도 직결된 문제니까. 신성교국의 땅을 밟은 지 사흘 만에 돌아가는 건 교단의 체면에 조금은 손상이 갈 수도 있는 문제.
허나 타니안의 반응을 보니 교단은 아무런 유감이 없는 것 같았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걸 문제 삼을 생각은 더더욱 없을 터.
“교황 성하를 비롯한 추기경들께서도 두 분이 즐거운 관광을 보내셨기를 바라며, 새로운 생명이 깃든 것에 진심 어린 축하의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영광이로군. 아이들이 태어나면 바로 교회에 가도록 하지.”
“아, 그때는 주교에게 패를 보여주십시오.능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고의 축복을 내려줄 겁니다.”
그 말에 트릭시의 표정이 급격히 온화해졌다.
언젠가 태어날 자그마한 세쌍둥이에게 최고의 축복이 내려진다면 예비 엄마에게 있어 최고의 행복이겠지. 비록 세쌍둥이의 몸에는 콘스탄티나를 섬기는 엘프의 피가 흐르지만, 살아가야 할 곳은 인간 세상이지 않나. 이 대륙에서 신의 총애나 축복이 얼마나 짙느냐는 그 사람의 권위를 증명하는 수단 중 하나다.
물론 약 100년 만에 태어난 카토반 공작가의 아이라는 칭호보다 더 권위적인 칭호는 없겠다만.
“그럼 형제님과 자매님, 내년에 태어날 세 아이들의 앞날에 주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타니안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제국으로 복귀했다.
나갈 때는 신혼여행이었지만, 돌아갈 때는 가족여행이 된 기묘한 여행이었다.
제도의 저택에 도착하자 열화와 같은 환영이 쏟아졌다.
“어서 오세요, 언니. 타지에서 고생 많으셨어요.”
“스승님, 혹시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아니면 뭐 먹고 싶은 거라거나!”
“이, 이거, 임산부에게 좋은 차래요!”
정확히는 나 말고 트릭시에게만 쏟아졌다.
물론 신혼여행을 떠난 사람이 아이 셋을 품은 채 돌아온다면 누구라도 놀랄 일이만,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조금은 서운했다. 이 남편도 나름 공의회에서 역사에 남을 활약을 하고 온 건데…
그렇게 씁쓸히 연인들을 보는 사이, 복도 너머에서 사용인들과 티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둘째 마님! 둘째 마니이이임!”
“집사님, 그렇게 소리 지르면 마님 놀라세요!”
그리고 사용인들마저 트릭시밖에 보이지 않는 듯, 한 명도 빠짐없이 트릭시의 몸을 살폈다.
– 멍!
오직 티티만이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반겨주었다.
‘굿 독.’
헥헥거리는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 넓은 저택에서 너만이 내 편이구나. 오늘 저녁은 좋은 고기로 챙겨줄게.
아니, 우리 티티는 앞으로도 고급 소고기만 먹자.
***
흑마에게 당근을 먹이는 상황 폐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상황께서도 생각을 정리하기 위하여 저런 행동을 하시는 걸 테니.
“폐하.”
“예, 상황 폐하.”
이윽고 입을 연 상황께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은 많지만, 그중 가장 굳건한 기둥은 다섯 개입니다. 이는 대제께서 친히 다섯 기둥을 고른 뒤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사실이었지요.”
황제인 내 위치를 존중하여 존대로 말씀하신 상황 폐하는 흑마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몸을 돌리셨다.
“그리고 그 다섯 기둥 중 하나라도 무너지는 것은 제국이 불안정하다고 공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상황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상황의 말씀에 동의했다.
공작 중 한 명이라도 대가 끊긴다면 그것은 제국이, 황실이 자국의 일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걸 온 대륙에 알리는 꼴이다. 황실에게 있어 다섯 공작가가 어떤 의미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그렇기에 약 100년 전부터 역대 황제들의 공통적인 근심은 카토반 공작가의 후계 문제였다. 다른 공작들이 멀쩡히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동안 마종공만은 누구와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아왔으니 오죽했겠나. 그나마 마종공의 수명이 길어서 중매에 나서지 않은 것이지, 인간이었다면 황제가 직접 나서서 누군가와 이으려 했을 거다.
심지어 카토반 공작가의 시조인 설검공은 아펠스의 천명에 확인 사살을 가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아펠스 제도 광장에서 아펠스 마지막 황제의 집권 정당성에 당당히 의문을 표한 혁명가. 그런 인물의 후대가 끊기면 아펠스를 무너뜨린 크펠로펜의 이미지가 다소 곤란해진다.
“허나 천명이 제국에 있으니, 모든 건 순리대로 흐르는 법입니다.”
뒤이은 말씀도 실로 옳다. 황제들의 근심거리였던 마종공이 어느덧 혼인을 하여 카토반 공작가에 부군이라는 것이 생겼다.
‘젊어서 그런가 힘도 좋아.’
게다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자식도 생겼다.
아직 장관이나 마종공에게서 공식적인 임신 사실을 듣지는 못했으나, 어제 저녁부터 카토반 공작가의 가신들이 노련한 전직 유모들을 찾고 있다는 소문이 사교계를 뒤덮었다. 갑자기 카토반 공작가에서 유모를 찾는 것도, 그것을 숨기지 않는 것도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뻔하다.
카토반 공작가의 후계가 나타났다. 그것도 약 100년 만에.
“그러니 폐하. 황실은 이 경사를 축하하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본질적으로는 공작가에 후계가 생긴 일상적인 일이 아닙니까.”
그 역사적이고 대륙적인 경사 속에서 상황 폐하는 황실의 침묵을 조언했다.
황실은 장관과 마종공에게 아이를 가진 것을 축하하고 선물을 보낼 것이지만, 그것은 기본이나 마찬가지인 절차기에 따로 조치를 취했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상황께서는 그것보다 더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신 거다.
그래, 아무리 경사라 할지라도 결국은 다섯 공작가에 후계가 생긴 일이다. 300년 제국 역사 동안 수없이 일어난 일상이다. 그 당연한 일상에 황실이 과한 축하를 보낸다면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공작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는 꼴.
“상황 폐하의 귀중한 조언 덕에 머리가 맑아진 듯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마종공이 품은 생명이 세쌍둥이라는 정보를 접한 건 그로부터 20분 후의 일이었다.
“…….”
“…….”
상상도 못한 세쌍둥이에 나도 상황 폐하도 한동안 입을 열 수 없었다.
***
통신구도 휴대폰처럼 발열이 된다면 이미 내 통신구는 재로 변했을 거다.
‘전구로 써도 되겠다.’
책상에 방치한 통신구를 보다 보니 문득 실소를 나왔다.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통신구는 한밤중의 숲속에 던져도 미친 존재감을 뽐낼 정도였으니까. 어떻게 연락이 한 번을 안 끊기지?
‘트릭시는 잠잠한 것 같던데.’
미묘한 기분이다. 카토반 공작가의 가신들에게 말한 임신 소식이 벌써 제국 전체에 퍼진 건 둘째 치고, 왜 임산부인 트릭시보다 남편인 나한테 연락이 더 많이 오는 건지 모르겠다.
…혹시 트릭시는 무섭고 나는 만만한 건가?
‘그럴만하지.’
납득했다. 나도 어디 가서 무시당할 체급은 아니나, 솔직히 트릭시와 비교하면 좀 딸리는 게 사실이다. 100년 넘게 군림한 업계 최고랑 비교하면 누구라도 딸리겠지만.
아무튼 기존에 사용하던 통신구는 미친 듯이 쏟아지는 연락 때문에 반강제로 방치 중이다. 저 연락 세례를 하나하나 다 받으면 24시간 내내 깨어있어도 시간이 부족하겠지. 누구 연락은 받고 누구 연락은 안 받았다는 말이 나올 바에는 평등하게 전부 안 받는 게 낫다.
– 칼, 무슨 일 있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트릭시에게 부탁해 임시 통신구까지 만들었다. 남들 연락 안 받겠다고 부모에게 연락도 안 하는 건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효자잖아.
– 마음이 복잡한가 보구나. 이해한단다. 하루아침에 네 아이의 아빠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쿡쿡 웃음을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에게 처음 연락을 걸었을 당시, 나보다 몇십 배는 더 흥분하셨던 것 같았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말자. 하루아침에 네 손주의 할머니가 되었으니 마음이 편하다면 그게 더 이상─
– 참. 라우라가 카토반 공작가의 구인 공고에 관심을 보이더구나.
“유모가요?”
어머니의 말씀에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일단 카토반 공작가에서 구하는 사람은 아기들을 돌볼 유모 자체가 아닌, 양육 지식을 누군가에게 전수할 베테랑 유모들이다. 유모 자체는 가신들 가문에서 선발할 테니 당연한 일.
그리고 유모는 나와 에리히를 기른 노련한 경력자다. 결점이 있다면 은퇴하고 노후를 즐기는 중후한 부인이 아니라 현직 시녀장이라는 거지만, 유모가 자기 업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다른 일에 관심을 가질 성격은 아니다. 여유가 있으니 카토반 공작가의 구인 공고에 관심을 보이는 거겠지.
‘…괜찮은데?’
슬쩍 턱을 매만지며 머리를 굴렸다. 나와 에리히가 무럭무럭 잘 자란 것에서 알 수 있듯, 유모는 굉장히 유능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런 유모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을 돌본다면 나야 좋은 일.
“카토반 쪽에 얘기 해두겠습니다. 유모면 저도 믿을 수 있죠.”
인재가 자발적으로 합류한 상황이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식 부자인 바렌티 공작가와 달리 카토반 공작가는 유모 같은 인적 자산이 증발해서 걱정이 많았었다.
이제 유모가 마음을 바꿔도 무르지 못한다. 카토반 공작가 유모들의 중시조가 되어줘…!
어머니가 왜 내 앞에서 유모 얘기를 꺼냈는지 알 것 같다.
“지금, 뭐라고?”
– 대륙 각지에서 신청서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500명까지는 셌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군요.
해탈한 듯 실소를 흘리는 집사장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미친 마법사들.’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았지만 대충 알 것 같다.
마법사 겸 유모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 ‘마종공의 아이의 유모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을 위해 눈이 뒤집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