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1)
제 51화
부장은 너희에게 만족했다 – 3
루이제가 넘어지기 전에 잡았지만,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휘청거렸기에 발목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이힐을 신고 뛰는 사람이 어딨냐고. 다치려고 작정을 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괜찮은 것 같지만 뒤늦게 통증이 밀려올 수도 있다. 근처에 부원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알아서 루이제를 보살피겠지만, 정작 필요하니까 없네. 무능한 놈들.
그렇다고 내가 루이제를 끼고 있기에는 마르게타라는 파트너가 존재한다. 파트너가 존재하는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큰 실례지. 오히려 파트너 신청을 받았을 때 거절하는 것보다 더 어색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실례다.
“미안합니다. 파트너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데.”
“괜찮아요. 저도 후배를 두고 가는 건 마음에 걸리니까요.”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예전에 루이제를 찾아와 충고 한 것도 그렇고, 의외로 마르게타는 루이제를 진심으로 염려해주는 것 같다. 아니면 단순히 후배를 챙기는 마음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고귀한 공녀치고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다.
“루이제 영애도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칼 영식이 잡아줘서 망정이지, 크게 다칠 뻔했으니까요.”
“네, 선배. 정말 감사해요!”
루이제도 마르게타의 호의에 감동한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게타에게 혼나고 동아리실에서 히끅거린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공포 가득한 첫인상은 극복한 모양이다. 서로 만날 일은 드물지만, 좋지 않은 인상을 걷어냈다면 다행이지.
그렇게 왼쪽은 마르게타, 오른쪽은 루이제를 나란히 두고 연회장에 들어갔다. 둘이었던 구성이 셋으로 늘어나자 주변에서 의문 어린 시선이 꽂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시선을 돌렸다. 굳이 파고 들어봤자 이득이 없을 것 같은 일에는 관심을 끄는 게 푸른 피의 덕목이니.
“오.”
“와, 예쁘다.”
그리고 연회장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잠깐 눈이 멀 뻔했다. 거대한 건물 하나가 통째로 연회장인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내부도 금화에 금화를 쌓아 만든 티가 났다. 셋 중에 유일하게 반응하지 않은 건 이미 작년에도 봤을 마르게타 뿐.
“오라버니, 저거 보세요.”
“어. 나도 보고 있어.”
작게 속삭이며 천장 쪽을 눈으로 가리키는 루이제의 말에 내 시선도 천장으로 향했다.
‘진짜 미친 새끼들인가.’
도대체 예산을 얼마나 때려 박아 만들었는지 알기 두려워지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곳곳에 달려 있었다. 금을 기본으로 하여 온갖 보석이 박혀있는 모습.
“아카데미에 있는 샹들리에만 싹 털어와도 급한 불은 끌 텐데.”
“낮술이라도 하셨습니까? 예산 좀 달라니까 무슨 헛소리를.”
“최종 학력이 개인 과외인 녀석은 들어도 못 믿겠지.”
“아니 씹, 갑자기 학력으로 공격하네.”
2년 전, 재무성의 여유 자금이 바닥을 기고 있는 초유의 사태 때 장관이 중얼거렸던 말. 당시에는 미친 양반이 미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넘겼다. 아무리 급한 불을 겨우 끌 정도의 수준이라도, 재무성이라는 거대 부서에 영향을 주는 액수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걸 아카데미 샹들리에 좀 턴다고 얻는다고? 내가 아카데미에 가 본 적이 없다고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오지에서 올라온 사람한테 지하철은 신발 벗고 타야 한다고 놀리는 것처럼.
‘진짜였네.’
장관의 말이 진짜였다. 아펠스 이 미친 새끼들, 까면 깔수록 괴담만 나오는 나라다. 고작 연회장에 이런 돈지랄을 했다고? 아펠스 침공전 때 다른 국가들이 일제히 아펠스를 외면한 게 이해가 된다. 적어도 크펠로펜이 아펠스보다는 덜 개새끼라고 판단했겠지.
의외의 곳에서 크펠로펜이 천명을 쥔 정당한 이유를 느끼는 사이, 루이제가 먼저 보낸 부원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모여 들었다.
“부원끼리 재밌게 놀아.”
루이제의 등을 툭하고 치며 말했다. 부원들 사이에 고문, 17살 사이에 21살이 끼는 건 별로지. 심지어 저 구석에 은근히 자리 잡고 있는 빌라르와 눈이 마주쳐서 마음이 편해진 것도 있다. 빌라르도 있다면 내가 밀착할 필요는 없으니까.
“오라버니도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선배도요.”
“그래요, 루이제 영애. 영애도 즐거운 시간 되길 바라요.”
무언가 말하려던 루이제의 시선이 마르게타에게 향하더니 순순히 나를 보내줬다. 아무래도 내가 마르게타의 파트너로 왔으니 차마 잡을 수 없었겠지. 지금까지야 루이제를 보살필 부원이 없어서 같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렇게 다섯이나 몰려오니 괜찮다.
마르게타의 손을 잡고 뒤로 빠졌다. 이제 춤을 출 때 까지 적당히 자리를 잡아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마침 형제님도 계셨군요. 우승 기념으로 같이 건배라도 하시겠습니까? 물론 형제님의 파트너 분도요.”
그런 나를 타니안이 잡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고생은 너희가 했으니 너희끼리 즐겨야지.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동아리의 기쁨은 당연히 고문도 공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이럴 때만 정상적인 말 하냐. 차라리 일관성 있게 쭉 머저리로 지내줬으면 편할 텐데, 겪을 때마다 낯설다.
“맞는 말이네요. 그렇게 해요, 칼 영식.”
“마르?”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할 시간도 없이 마르게타가 먼저 나서서 타니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문이 부원들을 두고 떠나는 건 곤란하죠? 전 같이 춤만 추면 만족하니까요.”
“너무 배려만 받아 민망한데요.”
“대신 춤은 절대 양보 못해요. 그건 알아두세요.”
“물론입니다.”
계속 양보를 거듭해주는 사람의 유일한 부탁도 들어주지 못하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춤을 추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어렵기는 하겠네.’
애초에 내가 춤을 출 일이 어디 있겠나. 사교계 참석도 드물고, 참석해도 나이 지긋한 양반들과 어울리는 게 대다수였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조심스레 마르게타의 발을 내려다봤다. 붉은 하이힐에 다소곳하게 들어가 있는 작은 발이 보였다. 저 연약해 보이는 발을 춤을 추면서 계속 밟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아찔해졌다.
‘잘못 밟으면 부러지겠는데.’
갑자기 시선을 내리 까는 내 모습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르게타의 모습에 슬며시 불안함이 고개를 들었다.
***
오라버니와 공녀님은 서로 손을 잡으며 중앙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학생들이 몸을 피하며 두 분이 지나갈 길을 만들었지만, 그 모습이 이상하지 않고 당연하게 보일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정작 저희 중에서는 아무도 출 사람이 없군요.”
“왜, 심심해? 남자끼리 춰도 괜찮으면 내가 어울려주고.”
“하하. 사양하겠습니다.”
“다행이야. 진짜 하자고 하면 어쩌나 긴장했는데.”
아인테르와 류티스가 서로 농담을 주고 받는 걸 들으며 두 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어쩌면 나도 저 옆에서 부원 중 누군가와 춤을 추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오라버니 혼자 추는 건 지루할 수도 있으니, 옆에서 부원이 같이 춰주자는 말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춤은 남녀가 짝을 지어서 하는 것. 제과 동아리에 여자는 나 혼자여서 다섯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다섯 모두 좋은 친구들. 여기서 누군가를 고르면 다른 넷이 섭섭해 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 관계는 사소한 계기로 깊어질 수도 있고, 깨질 수도 있으니까.
“춤? 루이제는 발목 접질러서 조심해야 한다. 너희끼리 추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런 내 망설임을 아셨는지 오라버니가 지원을 해주셨다. 괜찮은데, 춤 정도는 조심하면 충분히 출 수 있는데.
그렇지만 나를 위해 나서주신 오라버니를, 그리고 나만 보이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 오라버니를 보니 차마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원들도 발목이 아프다고 하자 아쉬움을 표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을 해줬고.
‘미안해.’
사과조차 하지 못하는 죄책감에 입만 오물거렸다. 다섯 명 전부와 출 수 있다면 기쁨 마음으로 출 수 있지만, 하나만 선택하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는 걸.
바닥으로 시선을 내리자 자연스레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오라버니 앞에서 화려하게 넘어지게 만든 하이힐도.
‘창피하게…’
방금 전의 일이 떠오르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부끄럽다. 너무 부끄럽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그 직전으로 돌아가서 뛰어가는 자신을 말리고 싶다.
예상치 못했던 우승 트로피를 받고 붕 뜬 마음이 너무 오래 갔다. 그래서 오라버니를 보자 평소처럼 달려버렸고, 신발은 평소와 다르다는 건 몸이 앞으로 기울고 나서야 눈치챘다.
‘우웃…!’
그 후 오라버니 품에 안긴 걸 생각하면 얼굴을 가리고 주저 앉고 싶을 정도다. 이 자리에서 그랬다가는 부원들이 걱정할 게 뻔해서 애꿎은 입술만 깨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 바보, 왜 그랬어…!
심지어 오라버니 뒤에는 공녀님도 계셨다. 분명 오라버니의 파트너로 참석하신 것 같은데, 파트너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버렸다. 분명 화내실 거라 생각했다. 처음 뵀을 때도 귀족가 영애의 품위를 중시하셨는 걸. 그런데 지금은 그 품위와 너무 어긋난 일을 해버렸으니.
“같이 들어갈까요?”
“루이제 영애가 다쳤을지도 모르잖아요?”
하지만 공녀님은 예상과 달리 화를 내시기는 커녕, 따뜻한 배려를 베풀어주셨다. 오히려 바닥에 넘어질 뻔한 나를 걱정해주셨다.
어찌나 감동이었던지, 지금까지 공녀님을 무서워했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응, 오라버니도 그때 공녀님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하셨었잖아. 역시 오라버니 말씀이 맞았어. 공녀님도 부끄러운 모습을 너그러이 넘어가 주셨으니.
그리고 그런 공녀님의 성격을 잘 알 정도로, 오라버니와 공녀님은 친밀한 사이가 맞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보이셔.’
공녀님과 함께 있던 오라버니는 어제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부원들에게 부탁해서 위로를 한 것보다, 공녀님과 있는 것이 더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역시 나는 도움이 안 되는구나…’
오라버니가 기운을 차리셨다는 것에 기쁘면서도, 내 역할은 미미했다는 것에 가슴이 욱신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오라버니와의 관계는 나보다 공녀님이 훨씬 깊으실 텐데.
‘다행이야.’
그래도 오라버니에게 마음을 풀어 줄 정도로 친한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다행이다. 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으니까. 응, 지금도 두 분이 정말 아름답게 춤을 추고 계시잖─ 아?
오라버니와 공녀님을 보다가 눈을 몇 번이나 깜빡거렸다. 뭔가 이상한데?
‘오라버니?’
대체 몇 번이나 공녀님 발을 밟으시는 거예요?
‘공녀님?’
지금은 조금 세게 밟히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새 두 분이 춤을 마치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고 계셨다.
오라버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고, 공녀님은 얼굴이 살짝 붉으면서도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공녀님…’
그리고 공녀님의 눈가에는 미약한 물기가 반짝였다. 누구보다 명확히 봤지만, 공녀님을 위해 보지 못한 걸로 했다. 공녀님은 행복하신 것 같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보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 감찰부의 보고로 ‘부장은 너희에게 만족했다.’ 상태.
전날 자정부터 공모전 공지에 ‘본선종료’ 라는 글자가 박혔습니다. 예선 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네요. 50일에 걸친 장정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끝이라고 말하니 뭔가 공모전 마무리와 함께 사라질 것 같은 어감입니다. 물론 저는 수상 발표가 끝난 이후에도 독자님들께 찾아갈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