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10)
로판 속 공무원 510화(511/945)
2과장은 임시 계약서와 함께 딸기를 취급하는 점포가 표시된 지도까지 보내줬다. 계약이 오고 가는 상황 속에서도 이런 센스를 보이다니, 평소에도 이거의 반만 되는 눈치와 배려심을 보였다면 정말 아끼는 부하였을 텐데.
‘하여간 머리만 좋은 새끼.’
그 좋은 머리로 상사 엿 먹이는 데만 몰두하는 새끼…
그래도 오늘은 마르가 먹고 싶은 걸 찾아줬으니 넘어간다.
‘내용은 나쁘지 않네.’
점포를 향해 걸음을 옮기며 빠르게 계약서를 훑어봤다.
일단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2과장이 미치지 않는 이상 내 뒤통수를 칠만한 내용을 계약서에 넣어둘 일은 없고, 나도 부하 가문에게 갑질을 하거나 횡포를 부릴 생각은 없다. 금전 관계는 깔끔하고 잡음 하나 없는 게 최고지.
어쨌든 내용도 괜찮고, 2과장에게 배려 아닌 배려도 받았으니 이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범위를 확대할까?’
예를 들면 아내들의 입덧 기간 동안만 지속되는 개인 계약이 아닌─ 영지 단위로 맺는 거대한 계약 같은 거.
물론 타일글레헨 백작령은 이전부터 물자 유통을 맡긴 계약처가 있어서 무리지만, 위리디아 백작령을 비롯한 북방의 영지들은 공백의 땅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맡길 계약이라면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게 좋지 않겠나. 인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론 가문이면 믿을 수 있지.’
심지어 현 바론 남작가의 가주이자 2과장의 부친은 평민에서 계승 작위를 받은 능력자. 2과장의 내적 신뢰도는 바닥이지만 바론 남작가는 믿을 수 있다.
좋아, 저택으로 돌아가면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지.
“어서 오십시오, 각하!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미리 준비해뒀습니다!”
“아, 그래. 고맙다.”
그리고 2과장이 알려준 점포에 도착하니, 사장이 딸기 바구니를 든 채로 입구에 나와있었다.
‘들었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포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굉장히 익숙한 바론 남작가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2과장 이 새끼.’
단순히 아는 곳이 아니라 자기 가문이 운영하는 곳을 알려준 거구나.장사에 진심인 새끼 같으니.
‘대가 바뀌어도 괜찮겠어.’
하지만 그 진심인 모습에 오히려 안심했다. 2과장도 이러는 걸 보면 가주가 바뀌어도 계약이 흔들릴 위험은 없겠어.
마르와 첫눈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실시간으로 조달하고, 트릭시의 품 속에 잠들어있는 세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또 무언가 입에 넣은 채 도망가는 티티를 추격하고, 지인들에게 몰려오는 축하 연락에 일일이 대응하는 등. 평화롭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장님. 좋은 소식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그래서인지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 손님들도 찾았다.
“둘 다 잘 왔어. 진짜 오랜만인 것 같다.”
마르가 과일에 맛을 들렸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과일 바구니를 양손에 든 채 찾아온 3과장과 5과장의 모습에 괜히 반가운 심정마저 들었다. 가끔 감찰성 창설 업무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찾아가는 차장, 연인인 1과장, 신혼 선배인 2과장과 달리 3과장과 5과장은 정말 만날 일이 없었다.
게다가 내가 이 둘을 나란히 집행부장, 집행차장 내정자로 만들었기에 업무에 치여 사는 중이기도 했고. 업무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당사자가 ‘야, 바쁘냐?’ 하고 놀러 오면 얼마나 화가 나겠나. 나였으면 상사가 나발이고 한 대 팼다.
“오랜만은 아닌 것 같은데요. 결혼식 때 뵙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벌써 옛날 일 같아.”
3과장의 말에 픽 웃음을 흘리며 과일 바구니를 건네받았다.
트릭시와의 결혼식 때도 감찰부 간부 출신들이 전원 참석했었지만, 결혼식 이후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들을 겪었다. 체감상으로는 벌써 몇 달 정도 흐른 것 같아.
“아, 둘 다 시간은 괜찮냐? 온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라.”
“예, 뭐. 식사할 시간도 없었으면 진즉에 혀 깨물었습니다.”
착잡한 심정이 깃든 3과장의 말에 5과장조차 입을 다물며 시선을 땅으로 내렸다.
짧은 문장과 행동이었지만 두 내정자가 겪었을 고통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죄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과장도 빨리 달았다고 할 수 있는 둘을 냅다 승진시킨 건 전적으로 내 결정이었으니까. 아무리 이 둘보다 어린 내가 장관 내정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나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을 없애는 건 아니다.
더욱 유감스러운 건 그 결정이 미안할지언정 후회는 되지 않는다는 거다. 솔직히 믿고 간부를 맡길만한 애들이 얘네밖에 없었어. 신생 부서를 빠르게 장악하려면 측근을 고위직에 넣어야지.
결정적으로 내가 장관이 되면 3과장이 신나게 놀릴 미래가 보였다. 그래서 공격당하기 전에 부장 승진이라는 카드로 먼저 반격을 했을 뿐.
– 멍멍!
그렇게 어색한 침묵이 맴도는 사이, 어느새 나타난 티티가 3과장과 5과장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낯선 사람의 냄새가 나서 신나게 달려온 모양이다.
‘저거 또 뭐 먹었네.’
그 와중에 흙이 묻은 티티의 입가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기들은 처음 보는 물건을 보면 냅다 입에 넣는다고 하던데, 티티도 마찬가지인 건가? 쟤도 덩치가 커지기는 했지만 아직 어린 강아지기는 하다.
아니, 어쩌면 그냥 개의 습성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주인이 노력한다고 바꿀 수는 없겠어.
“오, 얘가 티티입니까?”
“생각보다 크군요. 아직 어리다고 들었는데.”
아무튼 티티의 등장에 잠깐 어색했던 분위기가 빠르게 녹아내렸다. 3과장은 쪼그려 앉으며 티티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침묵을 지키던 5과장도 슬며시 티티에게 다가가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얘들 은근히 동물 좋아하는구나. 처음 알았다.
“리트리버라 금방금방 크지. 예전에는 한 손에 잡힐 정도였어.”
사실 나도 신기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담했던 녀석이 순식간에 불어나더라.
“큽.”
“으음.”
이윽고 티티의 돌발 행동에 나와 5과장은 본능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헥헥거리던 티티가 쪼그려 앉은 3과장의 무릎에 앞발을 올리더니 관자놀이 부분을 핥기 시작했다.
마치 츄파춥스를 먹는 듯한 모습에 필사적으로 슬픈 생각을 했다. 첫눈이가 ‘아빠는 왜 졸업장이 없어?’ 라고 말할 미래를. 태양이, 하늘이, 초목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와 ‘아빠 미워!’ 라고 하는 미래를.
“애교가 많은 아이군요.”
정작 3과장은 그런 티티의 행동에 분노나 난감함을 보이지 않고 웃어넘겼다.
‘이런 미친.’
허나 3과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관자놀이를 핥던 티티의 혀가 머리 부근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그만해. 다른 곳 다 내버려 두고 하필 거기를.
“우리 부인이 동물들은 착한 사람을 알아본다고 하던데, 진짜였나 봅니다.”
“그, 래. 그런가 보네.”
순간 무슨 헛소리냐는 말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출처가 3과장이 아닌 부인이라면 험한 소리를 할 수 없지.
‘착해서 좋아하는 건 아닐 텐데.’
여전히 거대한 츄파춥스를 핥는 티티를 보며 주방에 있을 주방장을 떠올렸다.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티티를 귀여워하지만, 그중 주방장은 티티에게 직접 고기를 구워줄 정도로 특히 아끼고 있다. 덕분에 티티도 주방장을 제법 따르는 편.
그리고 주방장은 스스로 머리를 민 대머리다.
유감스럽게도 3과장 또한 대머리다.
‘하필 둘 다 덩치도 크네.’
아무래도 티티는 처음 보는 3과장에게서 익숙한 주방장이 보이는 것 같다.
너 냄새로 잘 구분하면서 왜…
***
방학이 시작된 이후로 조용히 영지에서만 지냈다. 형의 결혼식 때와 제노비아 누나를 만나러 가는 경우를 빼면 온종일 수련에만 몰두할 정도로.
원래도 크라시우스 가문의 남자로서 수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지만, 방학이 끝나면 3학년 2학기가 시작된다.류티스와 대련을 할 수 있는 것도 그때가 마지막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욱 수련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류티스는 내 인생에서 다시없을 훌륭한 대련 상대이자 친우. 졸업 전까지 대련 승률을 조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일 거다. 무인으로서 낮은 승률은 용납할 수 없지.
“에리히!”
하지만 굳건했던 의지도 세라의 목소리가 들리면 흔들리게 된다.
“위험하니 여기까지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작게 한숨을 내쉬고 세라를 향해 다가갔다. 이곳은 가문의 기사들이 나처럼 단련을 하고 대련까지 치르는 곳.
물론 가녀린 레이디인 세라가 나타나면 기사들이 어련히 조심하겠지만, 세상에는 만약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나. 혹여나 세라가 눈먼 목검에 스치면 그거보다 더한 참사는 없다.
“먼저 안 오면 또 저녁도 거를 생각이었지?”
그러나 세라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양심에 찔렸으니까.
확실히 요즘 들어 수련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조금만 노력하면 무언가 손에 잡힐 것 같아서 정신을 놓고 검을 휘두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식사를 거른 것도 여러 번이라 유모에게 잔소리까지 들었었다. 오늘도 식사를 거를 조짐이 보이니, 보다 못한 유모가 세라에게 나를 잡아오라고 시킨 모양.
“굶으면서 하는 수련이 무슨 의미야. 제대로 먹어야 힘도 나는 거지!”
세라의 가녀리고 부드러운 손이 내 손을 잡아 이끌었다. 당연하게도 건장한 무인을 이끌기에는 너무 미약한 힘이었으나─
“갈 테니까 천천히 걸어. 그러다 넘어지겠다.”
나 하나쯤 이끌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아무렴 약혼녀가 약혼자 입에 뭐라도 넣겠다는 상황 아닌가. 큰 힘이 필요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진짜지? 이번에도 안 먹으면 제노비아 언니한테도 이른다?”
“그건 좀 무섭네.”
양손을 약혼녀들에게 잡혀 끌려가는 건 보기 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