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13)
로판 속 공무원 513화(514/945)
내 인생 마지막 방학이 끝났다. 앞으로 방학이라는 단어는 첫눈이가 아카데미 학생이 될 때까지 듣지 못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아쉽고도 공허한 느낌이 든다.
“정말 가도 괜찮겠어? 다른 마법사를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날 보기 위해 모인 학생들을 외면할 수는 없잖니. 게다가 올해까지 강사를 맡겠다고 한 건 나니,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도 하고.”
그리고 출근을 하기 직전까지 트릭시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실로 슬픈 일이다. 아내가 세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집에서 쉬게 하기는커녕 출근을 하게 만들다니. 나보다 못난 남편은 이 세상에 없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렴. 내 몸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여차하면 토론 주제를 던지고 앉아서 보기만 해도 돼.”
그래도 트릭시가 이렇게 자신 있어 하니 더 강경하게 밀어붙이기도 애매했다. 아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내의 뜻을 무시하는 건 앞뒤가 바뀐 행동이지 않나.
물론 지금이 임신 초기라 납득하는 거지, 중기 정도만 됐어도 설득조차 하지 않았을 거다. 중기를 넘어가면 그때는 무조건 저택 생활이야.
“자, 이제 가자꾸나. 이러다 개학식에 늦겠어.”
내 눈빛을 읽었는지 트릭시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마치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는 듯.
“그래, 가자.”
결국 작게 웃음을 흘리며 트릭시의 손을 잡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트릭시의 몸을 걱정하는 만큼, 트릭시도 자기 몸을 걱정하고 있을 거다. 트릭시의 몸은 더 이상 트릭시만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자 카토반 공작가의 미래이자 엘프들의 경사다. 그런 보물을 함부로 대할 정도로 트릭시는 경솔하지 않다.
나만 모든 걸 걱정하고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것 교만한 생각이지. 트릭시를 믿고 넘어가자.
딱 임신 중기까지만.
조금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빛에도 물리력이 있다면 내 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을 거다.
‘따갑다.’
괜히 따끔거리는 것 같은 팔을 매만지며 시선을 슬며시 천장으로 올렸다.
온 아카데미가 나를 주목하고 있다. 주목을 받는 건 이제 익숙하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이런 과도한 주목은 몇 번을 겪어도 심장이 떨리는 일이다.
그래도 각오한 일이기에 최대한 덤덤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트릭시의 임신은 이미 온 대륙에 퍼진 경사기에 아카데미 학생과 교직원들도 트릭시의 임신 소식을 접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개학식 내내 동물원 속 맹수처럼 구경거리가 되는 것 정도는 각오했다.
‘어후.’
하지만 천장을 보던 시선을 슬쩍 내리자마자 각오가 무너질 뻔했다. 하필 뜨겁게 타오르는 마법사들의 눈빛과 마주쳤으니까.
‘저게 어딜 봐서 사람 눈빛이야.’
짐승이나 광신도의 눈빛이지.
사람의 눈빛 때문에 쫀 건 카간 새끼 이후로 처음이다. 아무리 단수가 아닌 복수라지만 내가 사람한테 쪼는 날이 다시 올 줄은 몰랐는데.
‘다행히 사생팬의 눈빛은 아니네.’
일단 마법사들의 광기 어린 시선에 ‘감히 우리 각하께 그렇고 그런 짓을!’ 같은 감정이 실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존경해 마지않는 각하에게 세쌍둥이를 안긴 영웅을 향한 경배에 가까웠다.
그야 트릭시의 몸에 엘프의 피가 흐르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고, 인간과 엘프 사이에 자식이 생기기 힘들다는 것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미 트릭시의 부친인 탐명공의 사례가 존재하니 모를 수가 없다.
덕분에 나와 트릭시의 결혼을 축하하던 사람들도 후사가 생기는 건 한참 후의 일로 생각했다. 제국 제일의 마법 명가인 카토반의 피가 끊길 걸 우려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래를 기약했다.
그런데 짜잔. 결혼하자마자 세쌍둥이가 생겼습니다.
‘영웅 맞네.’
마법계의 정점인 마종공의 피를 이은 아이, 카토반 공작가의 이름을 이어나갈 아이.
그러한 아이들을 만들어낸 나는 마법사들 사이에서 영웅이자 명예 마탑주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신기한 일이기도 하지…
“이상으로 개학식을 마치겠습니다.”
때마침 교장의 개학식 종료 선언이 울려 퍼졌기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나는 마법사들의 뜨거운 눈빛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만, 주관적으로 생각하면 저 미친 것들이 언제 달려들지 두렵다.
제발 저것들이 동아리실까지 쳐들어오지만 말기를.
***
아카데미 분위기는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카토반 가문은 대대로 자식이 귀했지만, 한 명 한 명이 재능을 타고났다고 들었는데.”
“전대 세르베트 공작께서도 당대 최고의 마법사셨지. 지금은 그분의 이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논문이 없을 정도잖아.”
정확히는 마법사 학생들을 중심으로 진지한 토론의 장이 열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스스로 마법의 길을 택한 것이 마법사이며, 그 길의 끝에 이른 마종공에 대한 존경과 경외로 가득한 존재가 마법사다. 국적이나 나이, 성별, 신분을 가리지 않고 마법사라면 마종공의 발언이나 행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마법사들이 누구보다 경외하는 대상에게 자식이 생겼다. 심지어 카토반 공작가의 인물이 언제나 뛰어난 마법사였다는 걸 고려하면 대륙 마법계의 경사기도 하다.
“이는 한 가문에 내려진 축복도, 한 국가의 홍복도 아닙니다. 국경을 가리지 않는 대륙적인 경사입니다.”
“세쌍둥이요? 그럼 선물을 세 배로 준비하면 충분합니다!”
그래, 대륙 마법계의 경사다. 그래서 마종공의 임신 소식을 접한 마도의회 의원들이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였을 정도 아니었겠나.
그걸로도 모자라 개학을 앞둔 나를 은근히 부러운 눈빛으로 보기도 했었지.
‘아무리 세상 일은 모르는 법이라지만.’
이건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올 것 같았다. 분명 형님의 계승권을 위협하지 않기 위하여 유배를 가는 심정으로 택한 제국 아카데미 입학이었는데, 어느새 명망 높은 마도의회 의원들에게 부러움을 사는 현명한 선택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그 현명함이 마법사로서의 현명함이지, 정치가로서의 현명함은 아니라 다행이다. 만일 후자로 오해받았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3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것일까.
‘내다 버린 3년.’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 보기도 하고, 좋은 친우들을 사귀고, 마종공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니 내다 버린 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내 인생에서 이보다 보람차고 즐거웠던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을 터.
‘마지막 학기라.’
실소가 터질 것 같던 입꼬리는 어느덧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보조 교사가 되어 아카데미에 남고 싶으나, 내가 즐거워한 학창 생활은 다른 녀석들과 함께했기에 즐거웠던 것.나 홀로 제국에 남아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번 반 대항전은 누가 이길는지.’
문득 2학기의 유일한 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반 대항전이 떠올랐다.
마지막 대항전의 승리를 내가 가져간다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겠지. 이번에는 진심으로 노력하자.
“마종공께서 탐명공을 능가하신 것처럼, 차기 세르베트 공작도 각하를 능가하는 거 아니야?”
“마종공 각하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상상하기 힘들군.”
그 와중에 마법사 학생들은 상당히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관심이 가는 주제다.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마종공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등장하면 대체 무슨 칭호를 붙여야 할까.
‘황제가 고생 좀 하겠어.’
현 황제일지 후대의 황제일지는 모르겠으나 머리 좀 아플 거다.
동아리실에 가까워질수록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누군지 알 것 같은 목소리다. 방학 동안 더위라도 좀 먹고 오기를 바랐는데, 더위를 먹기는커녕 더욱 강해져서 온 건가.
“세쌍둥이 임신 축하드립니다! 벌써 네 아이가 고문 선생과 부인을 볼 날을 기다리고 있군요!”
문을 여니 아니나 다를까 류티스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저 녀석이 아니면 저런 성량의 목소리를 낼 사람이 없기는 하다.
“아, 그리고 이건 작은 선물입니다.”
“볼 때마다 뭔가를 받는군. 고맙다.”
이윽고 류티스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작은 상자를 고문에게 건넸다.
‘이런.’
이번에도 저 녀석에게 한발 늦었다. 나도 가볍게 선물을 준비했─
“…두부 케이크?”
고문의 목소리에 선물을 꺼내려던 손이 그대로 굳고 말았다.
‘미친놈.’
빠르게 고문과 류티스의 얼굴을 번갈아봤다. 고문의 얼굴은 당연히 미세하게 찌푸려졌고, 류티스는 언제나처럼 웃는 얼굴이었다.
믿을 수 없다. 두부에 안 좋은 추억이 있는 고문에게 저런 선물을 준다고? 방학 동안 더 강해져서 돌아온 줄 알았는데, 강해진 게 아니라 더위를 처먹고 망가져서 온 거였나?
“아르메인에서는 두부 케이크를 다양하게 사용합니다! 건강식인데다 향도 맛도 밋밋하기에 임산부가 부담 없이 먹을 수 있고, 뱃속의 아이들이 티 하나 없는 순백의 모습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며 먹는 문화죠!”
하지만 뒤이은 류티스의 설명이 상당히 그럴듯하다는 게 문제다. 화를 내기에는 정말 선의의 선물 같고, 넘어가기에는 과거의 기억이 걸린다.
“그래, 고맙다.”
끔찍할 정도로 기괴한 선택지 속에서 고문은 전자를 택했다.
보는 사람이 절로 안타까운 일이다.
***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두부 케이크를 내려다봤다.
‘비겁한 새끼.’
속으로 어느 빨강 머리 개새끼를 욕하며 조용히 뚜껑을 덮었다. 하필 임산부 건강식이라는 명분을 들먹여서 화도 못 내겠다.
더 미치겠는 건 류티스의 명분에 반쯤 설득됐다는 거다. 확실히 두부로 만든 음식이면 임산부랑 태아들에게 좋을 것 같기는 해.
“저기, 고문.”
“어, 왜 그러지?”
정신적 충격으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라테르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저도 작게나마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유벤에서 정식으로 보낼 선물은 아직 준비 중이라, 정말 가벼운 선물입니다만─”
“괜찮다.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지.”
라테르가 건넨 물건을 빠르게 훑어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흉악한 두부 케이크와 달리 은은한 푸른빛이 도는 고급스러운 딸랑이였다.
‘역시 류티스보다는 얘가 정상이구나.’
물론 마법사는 미쳤을 때의 고점이 어마어마하나, 평균적인 광기를 생각하면 마법사가 기사보다 낫다.
오늘부터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