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14)
로판 속 공무원 514화(515/945)
흑흑… 맛있었다. 퇴근 후 먹는 두부 케이크는.
‘이게 왜 맛있는 거지?’
몇 번을 먹어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라 헛웃음이 나왔다.괜히 열받네 이거. 트라우마 그 자체인 음식인데 쓸데없이 맛은 좋아.
“괜찮구나. 식감도 부드럽고, 맛도 고소해. 굳이 임산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즐겨먹을만한 음식이야.”
심지어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닌 트릭시의 감상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미칠 노릇이다. 내가 두부 케이크에 흠칫하는 것처럼 트릭시도 두부라는 재료 자체에 썩 우호적이지 않다. 남편이 근신과 구금을 연달아 당한 후, 눈물 젖은 두부 먹방을 한 건 트릭시도 잘 알고 있었으니.
그런데 그런 트릭시마저 떨떠름한 표정과 그렇지 못한 손으로 열심히 두부 케이크를 먹고 있었다.
인정한다, 류티스. 너는 최고의 선물을 준 게 맞다.
“두부 케이크라. 이름만 케이크지 조리 과정은 간단할 것 같은데요. 저희도 만들어볼까요?”
“둘째 마님께서 마음에 들어하시니 당연히 그래야지.”
그 와중에 주방장을 비롯한 주방의 사용인들이 구석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보였다. 무려 세쌍둥이를 품은 마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이 생겼으니, 요리사로서 그 음식을 통달하기 위해 굳은 다짐을 하는 것 같다.
고용주로서 절로 흐뭇해지는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다짐의 결과가 두부 케이크 양산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류티스가 저택에 독을 풀었다.’
이 사악한 아르메인의 프락치 같으니. 이미 우리 저택은 내가 푼 반쪽 반지로도 벅차다고.
“와, 진짜 맛있네요?”
“게다가 이거, 어느 콩을 쓰냐에 따라 맛이나 식감도 다양할 것 같아요.”
뒤이은 리제와 린의 감탄 섞인 감평에 침통한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역시 왕자가 챙겨주는 선물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설마 모두의 입맛을 사로 잡을 줄은 몰랐지.
“칼, 괜찮아요?”
내 뒷모습이 처량해 보였는지, 마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어깨를 다독여줬으나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최근 과일 위주로 먹던 마르까지 눈을 반짝이며 두부 케이크를 먹는 걸 보고 말았으니까.
“당연히 괜찮지. 앞으로 입맛이 없을 때는 저거 먹으면 되겠다.”
물론 겉으로는 평온함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죄가 있다면 트라우마 가득한 음식을 선물이랍시고 준 류티스에게 있지, 타국 왕자가 준 선물을 먹은 마르에게 있지 않다.
사실 근원적인 잘못을 따지면 근신, 구금을 당한 나기는 한데, 그건 애써 무시했다.
류티스가 아닌 나한테 죄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마지막 학기라는 글자에는 마성의 힘이 있다.
“아카데미에 자라난 꽃을 보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겠군요.”
무뚝뚝한 기사의 표본인 빌라르마저 마지막 학기라는 상황에 취해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할 정도였으니.
‘그럴 만하지.’
평소의 빌라르를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 모습이나 빠르게 납득했다.
나와 빌라르는 높은 분들의 트롤링을 수습하기 위해 파견을 온 입장이다. 하지만 자국 내 파견인 나와 달리, 빌라르는 일반적인 타국도 아닌 잠재적 적국이었던 경쟁국으로 파견을 온 신세다. 정신적인 부담은 나보다 빌라르가 더욱 심했을 터.
그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잠재적 적국이었던 제국과 아르메인이 우호적 관계를 맺었다. 팔자에 없던 타국 출장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감정이 티끌만큼이라도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이든 아카데미의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건 3년뿐이지요. 그 이상은 교직원들만 가능한 일이니 저나 빌라르 경은 이만 물러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씀입니다. 그 이상 운치를 즐기는 건 민폐인 일이겠지요.”
아무튼 아련한 눈빛을 한 빌라르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자 빌라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양반도 말로만 저러는 거지, 실제로 ‘그럼 더 남아있을래요?’ 같은 말을 하면 내 뺨을 후려갈길지도 모른다. 군대에서도 전역 날이 가까워지면 괜히 아련해질지언정 전역 연기는 절대 안 하잖아. 미친 새끼도 아니고.
“그건 그렇고 3년이나 아카데미에서 지내셨으니, 빌라르 경께 명예 졸업장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듣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말씀이군요. 대륙 제일 교육 기관의 졸업장을 받는다면 자랑할 거리가 늘어나겠습니다.”
그리고 은근슬쩍 건넨 제안에 빌라르는 픽 웃음을 흘렸다. 아마 단순한 농담으로 생각해서 저러는 거겠지.
‘농담 아닌데.’
허나 유감스럽게도 명예 졸업장 얘기는 농담이 아니다. 개학식 직후, 다른 사람도 아닌 교장의 입에서 직접 나온 사안이다.
“비록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아카데미에 오신 분들이지만, 지난 세월 동안 아카데미의 치안 유지나 행사를 도와주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외부인이라고 선을 긋기에는 너무도 가까워진 분들이지요.”
대충 직설적으로 요약하면 ‘얘네 고생 많이 했으니 명함이라도 주자.’ 라는 내용.
딱히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명예나 성의는 보일 수 있는 적절한 보상이다. 트릭시가 파견 강사로 오고, 내가 대륙 제일의 검사가 되며 위상이 떡상한 제국 아카데미 아닌가. 그런 아카데미의 명예 졸업장이면 나름 자랑거리가 되기는 충분하겠지.
“마음 같아서는 장관에게도 드리고 싶지만, 감찰관이라는 명확한 직책으로 오신 상황이라 여의치 않습니다.”
“괜찮습니다. 졸업장이 없다고 아카데미에서 보낸 추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절대 내가 못 받아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래, 명예 졸업장 같은 거 없어도 돼. 남편에게 명예가 없어도 부인들은 다 진짜를 가지고 있잖아.
‘…피네는 없구나.’
그러고 보니 여섯 연인 중 피네는 아카데미 재학 경험이 없다.
‘아.’
미치겠다. 이러면 안 되지만 나와 같은 처지인 연인이 있다는 사실에 급속도로 마음이 평온해졌다. 피네를 향한 내적 친밀감도 배로 늘었고.
‘이런 걸로 동질감 가지면 안 되는데.’
못난 연인이라 미안하다, 피네야.
***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나… 힘들어… 언니… 나 좀 살려줘…
“부장, 그러다 침 나오겠어요.”
“침으로 이 서류가 젖으면… 쉬어도 돼…?”
“서류를 새로 만드는 업무가 추가되겠죠.”
“으에에에엑…”
구에에에에에엑…!
“자, 다시 펜 드세요. 처리가 늦어지면 부장님만 힘들잖아요.”
냉정한 후배님의 무자비한 재촉에 눈물을 머금으며 다시 펜을 잡았다.
힘들어, 선도부장 직책은 너무 힘들고 무거워!
‘선도부면 머리 쓰는 거랑 거리가 멀 줄 알았는데.’
남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불만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억지로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일반 선도부원은 정말로 머리를 쓰는 것과 거리가 멀다. 1학년 때는 선배들이 시키는 것만 하면 됐고, 2학년이 돼서도 부장의 지시를 돕는 정도였으니까. 작년까지의 선도부 생활은 편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올해, 꿈에서도 원치 않았던 선도부장이 되며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내가 왜 부장인 건데.’
서러움에 찔끔 눈물이 나올 뻔했다. 입학부터 선도부였던 것도 아니고, 평민인 내가 왜 부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건지 모르겠다. 다른 애들이 좋게 봐줘서 고맙기는 한데, 그 대가가 이런 거라면 조금은 미움받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
– 선도부장이면 무조건 추천장을 받을 거야! 도망치거나 놀지 말고 열심히 해!
그럼에도 선도부장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이유는 별거 없다. 아멜리아 언니가 그걸 원하니까.
작년에 졸업한 우리 언니, 추천장을 받고 위리디아라는 곳으로 간 우리 멋진 언니.
– 적성을 살려서 군부 쪽으로 빠지면 적어도 머리를 쓰느라 고생하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죽어가는 얼굴을 하던 불쌍한 언니…
그 처절한 모습 때문에 더 이 악물고 버티는 거기는 하다. 비록 선도부장이 부의 책임자라 머리를 써야 하지만, 졸업 이후에는 다시 몸을 쓰는 곳으로 갈 수 있잖아. 난 언니처럼 못 살아.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서류를 읽다가 잠시 언니의 초췌했던 얼굴을 떠올렸다. 예전에 무슨 야생마니 교배니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는 한데, 자세한 거는 모르겠다. 솔직히 듣기는 했는데 이해를 못 했어.
‘잘 지내는 것 같기는 한데.’
다행히 초췌한 안색과 별개로 언니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업무는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이나 대가가 있다나?
생각해 보면 우리 자매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감찰부─ 아니, 장관님의 영지에서 일하고 있는 거잖아. 장관님이 부하를 학대하거나 이상한 일을 시킬 사람은 아니지, 응.
‘나도 위리디아로 갈까?’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며 졸업 후 진로를 생각했다. 동생들도 언니가 위리디아에 마련한 집에서 살고 있으니, 나까지 위리디아에서 일하면 가족이 전부 같은 곳에서 지내는 거다.
졸업하면 장관님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감찰부로 가려고 했지만, 위리디아가 장관님 영지라면 거기서 일하는 것도 은혜 갚기 아닐까? 분명 그럴─
“부장님. 왜 눈동자가 멈춘 거죠?”
“앗.”
그 후 10분이 넘게 잔소리를 들었다.
서럽다. 빨리 졸업을 해야 후배한테 혼나는 부장이 아닌 귀여움 받는 막내로 돌아갈 텐데.
‘응?’
그렇게 몇 번째인지 모를 마음의 눈물을 흘리며 다음 서류를 집으니, 뭔가 심상치 않은 내용이 보였다.
[ 금년 반 대항전 치안 유지를 위한 긴급 예산 편성 건의안 ]‘으으응?’
너무 심상치 않은 내용이라 몇 번이나 확인했다.
치안 유지? 그거 이미 예산이랑 인력 배정하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긴급 예산?
“저기 저기, 카틀레아.”
“네, 부장님.”
영문을 모르겠어서 알고 있을 사람을 부르자, 다른 서류를 처리해주던 카틀레아가 고개를 돌렸다.
“이거 뭐야?”
직설적인 질문에 카틀레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 이거.”
이윽고 내가 들고 있던 서류를 확인한 카틀레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올해 반 대항전이 타국에서 온 선배님들이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반 대항전이잖아요. 그래서 올해는 반드시 이기겠다고 의욕이 넘치시더라고요. 작년이나 재작년이랑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 선도부의 역할이 막중해졌어요.”
“아앗.”
그 말을 듣자마자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카데미 자퇴도 썩 나쁜 선택지는 아닐 것 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