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19)
로판 속 공무원 519화(520/945)
반 대항전은 제국 진영─ 정확히는 아인테르가 속한 반의 점수가 류티스, 라테르의 반을 근소하게 앞서감으로써 치열한 삼파전이 지속되었다.
그야 제국 아카데미 학생 대다수는 제국인이고, 그 대다수의 학생들이 아인테르의 승리를 위해 단결하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다. 오히려 제국의 단합에도 불구하고 근소 열세를 유지하는 류티스와 라테르가 경이로울 정도지.
“제국은 언제나 승리한다!”
“제국 만세! 이드라펜 후작 각하 만세!”
그러나 근소고 나발이고 제국이 이기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제국 학생들은 경마 경기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1위에서 물러나지 않는 아인테르의 반을 보며 열광했다.
“아직 남은 경기도 많은데 벌써 이긴 것처럼 구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모르나?”
물론 타국 학생들이 보기에는 제국의 반 대항전 우승이 확정된 듯한 수준의 열광이라 반발하기도 했으나,
“그래서 1등이 누구지?”
“너무 그러지 마라. 평소 2등만 해서 1이라는 숫자를 읽지 못하나 보지.”
“””하하하하하!”””
제국 학생들은 그런 타국 학생들의 반발을 패배자의 현실 부정으로 인식하며 웃어넘겼다. 반 대항전이 끝나지 않은 건 맞지만, 쭉 1등을 유지하는 건 제국이니까.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우뚝 서는 것 또한 제국일 것이라 여기고 있다.
‘미친놈들.’
그 경이로운 티배깅을 구경하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제3자인 내가 봐도 탄성이 나올 정도의 티배깅인데, 타국 학생들이 느낄 빡침은 오죽하겠나. 저러다 제국이 역전패라도 당하면 졸업 때까지 씻을 수 없는 흑역사가 될 것이 자명하다.
허나 굳이 나서서 응원(을 가장한 티배깅)을 말리지는 않았다. 아무리 광기가 가득하더라도 결국 애들 싸움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아카데미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황제의 말처럼 어른 겸 외부인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저것들 꼬라지를 보면 내가 만류하더라도 소용 없을 것 같다. 만약 자제하라는 말을 꺼내면 ‘감찰관님은 제국의 승리가 기쁘지 않습니까?’ 라는 추궁과 함께 비제국인 딱지가 붙을 것 같기도 하고.
‘여차하면 내가 감찰 당하게 생겼어.’
여론을 하나로 모으며 그에 반발하는 자들을 짓누르는 행동. 감찰성 장관 내정자인 내가 봐도 훌륭한 감찰 방식이다. 저 녀석들이 몇 년만 일찍 태어났으면 출세 좀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은근히 기대된다. 어쩌면 저 중에서 몇 명 정도는 감찰성을 지탱하는 싱싱한 신입이 될지도 모른다.
‘알아서들 하겠지.’
그렇게 뜨거운 응원전을 감상하다가 몸을 돌렸다.학생들이 미쳐서 ‘이렇게 된 이상 우두머리를 습격한다!’ 같은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이상, 저런 아가리 파이팅 정도는 넘어가도 무방하다.
밥을 지을 때도 김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있어야 밥솥이 멀쩡하지 않나. 학생들도 적당히 열기를 빼내야 열정이 폭발하지 않고, 무력 충돌도 일어나지 않을 터.
“기사 왕국에서 검을 빼면 뭐가 남는 거지?”
“마도강국이라면서 마종공에게 밀리는 놈들이 할 말은 아닌데.”
“너무 싸우지들 마라. 어차피 제국 앞에서는 둘 다 거기서 거기야.”
…일어나지 않겠지?
‘저러다 벤치클리어링 터지는 거 아닌가.’
진지하게 걱정된다. 귀족으로서 품위 있는 삶을 살아오던 학생들이 경기장으로 뛰쳐나와 주먹질을 한다고? 심지어 자신의 국적을 부르짖으면서?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절로 옹졸해진다. 진짜 그런 일이 터지면 아카데미 역사에 길이 남기는 하겠네.
교장과 내 인생에서도 지워지지 않을 흑역사가 될 테고.
‘시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말년에 왜 이딴 일이 터진 걸까.
‘망할 동생 새끼.’
그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에리히 때문이다. 류티스랑 라테르가 발광하는 건 매년 있던 일이고, 아인테르는 조용히 지내다가 에리히에게 헛바람이 들어간 것이다. 세 명에게는 나름의 정상참작 사유가 있다.
하지만 에리히 이 새끼는 몇 번을 생각해도 용서가 안 돼.
‘두고 보자.’
지금쯤 열정적으로 경기에 참가 중일 에리히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언젠가 대련 명목으로 합법적 구타를 하겠다고.
***
에넨께서는 참으로 배려가 넘치시는 분이다.
“이번에도 제국이 이겼다!”
“야, 기죽지 마! 2등도 잘 한 거야! 우리는 1등이지만!”
“고개를 들어라, 친구여! 강자에게 진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면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없다. 곧 아르메인으로 귀국하는 나를 위해 이런 신박한 광경을 보여주시는 것 아닌가.
너무 감동스러운 일이라 차마 눈을 뜰 수가 없다. 이대로 어디 구석으로 가서 기절하고 싶다.
“아버지.”
허나 아르메인 호위 전력의 책임자이자 삼국 전력의 대표로서, 그런 사치스러운 도피는 허락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그게… 기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민망하다는 듯 겨우 입을 여는 페로사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페로사가 내 앞에서 심상치 않다는 말까지 할 정도면 이미 기사들의 인내는 한계치에 이르렀을 터.
“당장이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며 난리입니다.”
“그렇군.”
구체적인 상황 설명에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착잡하다. 류티스 저하를 호위하기 위해 제국까지 온 기사들이, 아르메인을 대표하여 제국에 주둔 중인 기사들이 흥분 상태에 빠졌다. 어른의 입장으로 학생들의 대결을 보는 것이 아닌, 아르메인의 기사로서 예비 기사들의 분투를 보기 시작했다.
‘심정은 이해하지만.’
물론 기사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아르메인의 자랑스러운 기사인데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는가. 그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위치기에 인내하는 것이고, 움직인 후의 여파가 두려워 침묵하는 것이다.
호위 전력이 사적인 이유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아르메인이 움직이면 타국도 움직일 가능성도 높다. 만약 이 일로 사고가 터지면 먼저 행동한 아르메인에 책임이 몰릴 것이다.
그렇기에 아카데미 반 대항전이 국가의 자존심을 건 승부가 되었음에도 참고 있었다. 동시에 학생들의 승부가 아카데미 밖으로 퍼지려는 걸 막고자 했다.
“이 승부는 학생들의 힘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승부다. 그 과정에 외부인이 개입한 승리는 인정받을 수 없겠지. 진정 아르메인을 위한다면 참고 응원하라고 전해라.”
그리고 학생 싸움에 어른이 개입하여 이긴다 한들, 그것을 진정한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네, 아버지. 그렇게 하겠습니다.”
페로사는 내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자신들보다 어린 페로사가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기사들도 더 인내하겠지.
“유벤 쪽에도 슬쩍 흘려두겠습니다.”
“그래.”
뒤이은 말에 잠깐 당황했지만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그렇군, 유벤 쪽에서도 학생들에게 개입하기 직전이었군. 그나마 신성교국은 잠잠하다는 게 다행이다.
‘…어째서 마지막에 이런 일이.’
아니, 사실 다행이 아니다.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것 자체로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국왕 전하와 왕실을 지켜야 할 내가 류티스 저하를 따라 타국에 있는 것도, 졸지에 삼국을 대표하는 책임자─ 라는 이름의 방패가 된 것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고통에서 이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한 발자국을 남기고 이런 일이 터졌다.
‘헌금이 부족했나.’
아무래도 에넨을 향한 내 진심이 희미했던 모양이다.
***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워졌던 빌라르와 올리비아의 안색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해탈했구나.’
대충 사정을 알 것 같아 짙은 숙연함이 가슴을 짓눌렀다. 저거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마음을 놓은 거잖아.
안타까운 일이다. 빌라르도 올리비아도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영광스러운 졸업을 맞이하는 입장이었는데, 어디 사는 동생 새끼가 쏘아 올린 존나 큰 공 때문에 이 난리가 났다. 그 원흉의 형으로서 미안하지 않다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해탈한 둘을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었다.
“근처에 있는 애들은 다 불러와! 숫자는 우리가 많아!”
“모이기 전에 끝낸다! 전부 달려들어!”
“앉아있는 놈은 뭐야!? 빠지지 말고 합류해!”
반 대항전이 중반부에 돌입했을 무렵부터 기어코 벤치클리어링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터지는 벤치클리어링 소식에 도저히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당장 나도 죽어나가는 판국에 미안함이 무슨 소용이고, 도리가 무슨 의미인가.
‘망할.’
아무튼 이번에도 터진 벤치클리어링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눈앞에서 싸움이 생겼다면 말리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그보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이 세계에는 벤치클리어링은커녕 스포츠 경기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는데, 이 새끼들은 자체적으로 반 대항전을 프로 스포츠 경기처럼 만들기 시작했다.
진지한 선수들, 열정적인 응원가, 애향심 짙은 관중들, 선수들의 벤치클리어링까지.
‘이게 어딜 봐서 로판이야.’
아무리 봐도 현대 스포츠물인데. 여기 혹시 장르 드리프트 한 세계였나?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학생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벤치클리어링의 단계까지 온 것도 신기하다. 선수들의 주먹다짐은 인간의 본능이 아니었나 싶─
‘응?’
무력충돌을 제지하기 위하여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사이, 익숙한 얼굴이 선수들 사이에서 보였다.
에리히였다.
…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이 새끼.
“그만!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야 할 장소에서 이게 무슨 소란이냐!”
에리히의 얼굴을 보자마자 우렁찬 외침과 함께 달려갔다. 저벤치클리어링이 자발적으로 멈추기 전에 에리히를 무력 제압해야 한다.
이건 신들이 나를 위로하기 위해 내린 축복이다.
에리히를 합법적으로 팰 수 있는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