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23)
로판 속 공무원 523화(524/945)
어느덧 밤을 넘어 새벽이라고 불러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나도 황후도 잠에 들지 못했다.
– 타일글레헨 백작 부인이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장관의 저택으로 파견을 나간 황후궁 시녀에게서 엄청난 보고를 들었으니까.
확실히 백작 부인이 임신 4주 판정을 받은 게 2월 말 정도였으니 얼추 이때쯤이면 출산 예정일이기는 하다. 아주 조금 빠른 감이 있지만 이 정도면 오차 범위라고 할 수도 없지.
‘왜 내가 떨리는 건지.’
잠에 든 황태녀 옆에 앉아 침묵을 지키는 황후와 달리, 나는 방을 배회하며 뒷목을 매만졌다. 긴장감 때문에 그런 건지 아니면 잠을 자지 않고 버텨서 그런 건지 괜히 뒷목이 뻐근했다.
아니, 아마 전자 때문일 거다. 장관의 아이가 태어나는 건 단순히 장관과 크라시우스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제국과 황실의 안위와도 연결된 중요한 문제다.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면 대대로 황실을 지탱한 충신인 크라시우스 가문의 후계가 굳건해지는 경사며, 황태녀와 또래인 친구가 장관의 후계자가 되는 거다. 황제인 내가 직접 축사를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허나 만약, 그래서는 안 되지만 장관의 아이나 부인이 출산 중에 잘못된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대체적으로 온순한 장관이지만 그런 비극을 겪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 겨우 과거의 상처를 회복했는데 그보다 더한 상처를 입으면 아무리 강건한 사람이라도 미칠 수밖에 없다.
그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감동도 교훈도 없는 비극 따위는 한 자식의 아비로서도, 제국의 황제로서도 결코 바라지 않는 일이다.
“아.”
그러던 중 황후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통신구를 빠르게 조작하는 황후를 볼 수 있었다.
‘결과가 나왔나?’
어느새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을과 겨울의 언저리인 날씨라 결코 땀을 흘릴 환경이 아닌데, 어째 황후가 황태녀를 낳았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긴장되는 것 같다.
황후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통신구를 확인했고,
“샤를로테에게 멋진 이성 친구가 생길 듯합니다.”
빙긋 미소를 짓는 황후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다행히 크라시우스 가문의 소가주는 무사히 세상에 나온 것 같다.
‘이성 친구.’
그리고 긴장이 풀리자 형용할 수 없는 언짢음이 몰려왔다.
하필 아들이 태어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닌 장관의 아들이라니.
‘지 아빠 같은 남자로 자라면 곤란한데.’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걱정이나, 이상하게 벌써 하나뿐인 딸을 웬 도둑놈에게 빼앗긴 기분이다.
물론 과대망상이고 추한 걱정이라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장관은 마종공을 홀린 마성의 남자 아닌가. 당장 몇 년 전으로 돌아가 ‘마종공과 감찰부장이 결혼한다.’ 라는 말을 떠들고 다니면 단단히 미쳤다고 손가락질이나 받을 것이다.
그러니 제국백 가문의 후계자가 차기 황제의 남편이 되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야 난데없이 딸을 뺏기지 않을 터.
…
‘미래의 일은 미래에 생각해야지.’
얼굴도 보지 못한 장관의 아들이 얄미운 도둑놈으로 진화하기 직전,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현재를 날리는 건 멍청한 짓이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장관에게 선물과 축하 인사를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직접 가는 건 무리고.’
일단 장관의 저택에 가는 건 논할 가치도 없는 발상이다.아이를 낳느라 모든 기력을 소진한 백작 부인이 있는데, 내가 방문한답시고 소란을 부린다? 내가 장관이었어도 고맙기는커녕 불쾌할 거다. 제국 역사상 최초로 신하에게 맞은 황제가 될 생각은 없다.
헌데 내가 가서 소란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이 가도 마찬가지다. 황제 대신 장관의 득남을 축하할 사람이라면 고위직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고 소란을 피하기 위해 직위가 낮은 사람을 보내면 그건 그거대로 실례다.
‘당장은 선물만 보내야겠군.’
결국 고민 끝에 평범한 결론을 내렸다.백작 부인이 기력을 되찾기 전까지는 선물만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선물 정도야 시종이 운반하게 하면 되니까.
그리고 하나의 고민을 끝내자마자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되었다.
‘정력에 좋은 음식이 뭐가 있더라.’
부인이 여섯이 될 예정인 장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정력일 터. 과연 어떤 음식을 보내야 장관이 진심으로 감동하며 황궁을 향해 절을 할까.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
“폐하. 기쁘신가 봅니다.”
황후의 말에 무심코 입꼬리를 매만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표현은 익숙하다. 옛날에는 헤카테를 볼 때마다 그랬고, 요즘은 연인들을 보며 매일 느끼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내 피를 이은 자그마한 생명을 보며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다.
“진짜 천사 같네.”
가끔씩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자고 있는 페르디난트를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귀엽다. 너무 예쁘다. 내 자식이 아닌 황태녀를 볼 때조차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내 자식은 오죽하겠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내 눈앞에서 자고 있는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24시간 내내 품에 안고 싶지만 참았다. 막 태어난 아기를 함부로 안았다가는 뼈가 잘못될 수도 있으니.
“으으.”
‘아차.’
그 와중에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곤히 자고 있던 페르디난트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빠가 미안하다. 조용히 하고 있을게.
“성질도 급하더니 예민하기까지 하네요.”
내가 황급히 입을 다무는 걸 본 마르는 쿡쿡 웃음을 흘리며 페르디난트가 덮고 있는 이불을 정돈해줬다.
그러자 묘하게 인상을 쓰던 페르디난트의 표정이 급격히 평온해졌다.
‘뭔데.’
왜 벌써부터 아빠만 차별하는 건데. 이러면 아빠 울어.
“저랑 페디는 10개월이나 같이 지냈잖아요. 아직은 제가 더 편할 거예요.”
“그건 그렇네.”
하지만 마르의 논리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아빠로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엄마의 정을 내세우는데 어떻게 반박해.
그래도 조금은 섭섭했다. 페르디난트가 먹고 싶은 게 생기면 자다가도 뛰쳐나갔고, 제도에 보이지 않으면 2과장을 탈탈 털어서 구해왔다. 그런 아빠의 노력을 먼지만큼이나마 알아줬으면 고마울 것 같…
‘페디?’
그러고 보니 엄청 자연스럽게 애칭이 흘러가지 않았나? 태어난 날에 바로 이름과 애칭을 얻다니, 빠르기도 하지.
‘페디라.’
귀여운 어감이라 만족스러웠다. 페르디난트가 안 좋은 이름은 아니지만, 이 꼬물이한테 꼬박꼬박 페르디난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웅장하고 위엄 넘치는 이름이잖아.
‘마르랑 페디.’
무심코 내 옆에 있는 마르, 요람에 누워있는 페디를 번갈아봤다.
정말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페디가 태어났음에도 출근은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상황이나 졸업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양육 휴가를 쓰기는 애매하니 어쩔 수 없는 일.
그래도 내가 없는 사이 사용인들이 영혼을 불사를 기세로 마르랑 페디를 보살펴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충성스러운 사용인들을 두면 다방면으로 편한 법이지.
“첫째 아가가 괜찮다면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니?”
“물론이죠. 어머님이 도와주신다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게다가 어머니까지 내 공백을 메우기 위해 틈틈이 페디를 보러 오겠다고 하셨다. 확실히 부모님과 처부모님 중에서 유일하게 시간이 남고 오기도 편한 분이 어머니기는 해.
그렇기에 페디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다. 우리 아기 천사는 이 아빠가 없더라도 할머니랑 엄마 품에서 웃고 있을 거라고. 이 아빠가 먹을 걸 가져오지 않아도 사용인들이 최고의 음… 아, 아직 아기니까 모유밖에 못 먹겠구나.
‘그거 가지고 배가 차나?’
물론 차니까 온 세상의 아기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거겠지만.
“고문 선생,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
고작 액체로 끼니가 해결된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던 찰나, 류티스의 목소리가 들려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이기는. 당연히 아들 생각이겠지, 3등.”
동시에 라테르의 자연스러운 도발도 들렸다.
반 대항전 이후로 라테르는 저 3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동안 체스로 인성질 당한 걸 생각하면 당연한 행동이기는 하다.
“…3등 맛 좀 보고 싶나?”
“미안하지만 난 1등을 노리느라 바빠서, 아래 있는 3등과 싸울 시간은 없다.”
파르르 떨리는 류티스의 손을 보다가 애써 시선을 돌렸다.
인과응보기는 하지만 제3자인 내가 들어도 흠칫할 발언이었으니까. 당사자의 빡침과 굴욕감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인과응보지만.
***
니아가 손자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시간을 내서 동행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으에에에에엥!”
“어, 어머니!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죠!?”
“이, 이, 일단 진정하렴. 아기가 우는 건 배가 고프다는 신호라고 하지 않니.”
“방금 전에 먹었는데요!?”
“그, 그럼 볼 일을…”
“냄새는 안 나요!”
초보 엄마인 며느리, 장성한 아들 둘을 두었지만 양육 경험은 없다시피한 시어머니.보기만 해도 절로 헛웃음이 나오는 조합이라 가슴이 답답해졌다.
‘본인도 누구를 도울 입장은 아니면서.’
허둥지둥거리는 니아를 보니 그런 의문이 들었다. 칼과 에리히의 어린 시절은 내가 관리했고, 그 후로는 자기들이 알아서 자랐다. 솔직히 니아가 둘의 양육에 관여한 지분은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그냥 손자를 보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제가 한번 보겠습니다.”
일단 서럽게 우는 작은 소가주님을 조심스레 살폈다.
저 둘에게 맡겼다가는 칼이 퇴근할 때까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