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24)
로판 속 공무원 524화(525/945)
퇴근하고 돌아오면 어머니가 계시는 날이 많아졌다.
나야 어머니가 손자를 예뻐하시는 거니 상관은 없지만, 마르가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아무리 어머니에게 살가운 마르라 해도 엄밀히 따지면 친모가 아닌 윗사람이지 않나. 페디를 돌보는 상황에서 어머니까지 상대하려면 정신이 없지 않을까?
“어머니가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니네.’
다행스럽게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정신이 없는 건 맞지만, 그게 어머니 때문은 아니었다.
초보 엄마인 마르는 페디가 울 때마다 기겁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밥을 먹어도 울고, 기저귀를 갈아줘도 울고, 안아줘도 울고, 침대에 내려놓아도 울고. 정말 원인을 알 수 없는 울음에 마르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했었지.
사실 바렌티 공작가에서 페디를 돌볼 유모를 보내준다고 했기에 마르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아니나, 막 태어난 아이를 벌써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처음 1, 2년 정도는 자기가 돌보겠다나?
그 결과가 이거다. 초보 엄마인 마르는 만용에 가까운 용기를 보였고, 어머니라는 경력자가 붙고 나서야 죽기 직전에서 기절하기 직전 정도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경력자.’
무심코 마르의 진심 감사를 받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도 경력자는 아니지.’
유감스럽게도 어머니는 출산 경력이 마르보다 앞선 선배일지언정, 육아 경험은 마르와 좋은 승부를 벌일 수 있는 초보다. 그야 지금의 마르보다 어린 나이에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셨으니 당연한 일. 덕분에 미숙한 게 많았던 어머니는나와 에리히의 관리를 유모에게 맡겼다.
“내가 무슨 도움이 됐다고 그러니.”
그래서인지 감사 인사를 받는 어머니의 표정은 미묘하면서도 은근히 내 눈치를 살피고 계셨다. 마치자동 육아를 돌린 내 앞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게 민망하고 미안한 것처럼.
“무슨 도움이 됐다니요. 마르랑 페디를 두고 출근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가 계신 덕분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향해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유모에게 우리 형제를 맡긴 건 사실이나, 그건 귀족 가문의 부인들이라면 평범하게 하는 행동이다. 귀부인이 양육 경험이 없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에게나 맡긴 것도 아닌 자신의 친구에게 맡기셨으며, 유모에게 맡긴 뒤로도 알게 모르게 뒤에서 챙겨주셨다.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다.
“그, 그래…?”
“예. 그러니 앞으로도 자주 와주십쇼. 페디도 할머니가 오면 기뻐할 겁니다.”
내 확답에 어머니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시더니 이윽고 배시시 웃음을 보이셨다.
‘이제 마음이 좀 편해지시겠지.’
보는 아들이 절로 흐뭇해질 정도의 웃음이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도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놈이라 어머니가 품은 한 정도는 잘 알고 있다. 아마 나와 에리히를 직접 돌보지 못한 것이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을 테지. 비록 지금에 와서는 자식들과 무난하게 지내고 있다지만, 현재가 좋다고 과거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페디를 돌보며 그 기억을 조금이라도 지우셨으면 한다. 자식에게 주지 못한 관심과 애정을 손자에게라도 주면 서로 좋은 일이잖아.
물론 손자 하나로 끝낼 생각은 없다. 두 번째 손자, 새로운 손녀도 마구마구 안겨드려야지.
“유모도 바쁠 텐데 와줘서 고마워.”
그렇게 어머니를 다독이고 난 뒤, 실질적으로 페디를 돌보고 있는 유모에게 잊지 않고 감사를 표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민망하지만 어머니 열 명보다 유모 한 명이 육아에는 더 도움이 돼.
“크라시우스 가문의 소가주님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모는 내 아이들 말고 다른 아이들한테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서 그러지.”
그 말에 유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유모라면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차렸을 터.
‘유모는 조카들을 돌봐야지.’
유모의 속을 여러 의미로 불태웠던 에리히의 자식들.
아무리 생각해도 유모는 우리 애들보다 미래에 태어날 그 아이들을 신경 쓰는 게 옳다. 괜히 내 애들한테 힘을 쏟다가 탈진하면 곤란한 일이다.
‘속도위반은 안 하려나.’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섯 번째 결혼식까지 마치려면 2년이 지나야 하는데, 그렇게 계산하면 에리히의 결혼은 3년 후다. 툭하면 끌려올 하객들의 일정을 생각하면 그 정도 간격은 둬야 한다.
그런데 어차피 세라도 올해면 아카데미 졸업하잖아. 까짓것 속도 좀 위반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도 엄밀히 따지면 트릭시랑은 결혼보다 아이를 먼저 가진 것 같은데.
‘아닌가?’
아님 말고.
***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싸우는 소리가 공작성을 뒤흔들었다.
아니, 사실 싸운다기보다는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떼를 쓰고 있다는 표현이 옳은 것 같다.
“왜애애애애애! 쟈기! 나 우뤼죠카 보고시퍼!”
“지금은 안 돼. 몇 주만 지나고 가자.”
“으에에에! 시러! 애두룬 지금때가 딱! 귀엽딴마랴!”
거의 바닥에 드러누울─ 아니, 정말로 누워버린 어머니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온몸으로 항의하셨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라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이상해. 분명 공작령과 관련된 업무는 멋질 정도로 완벽하게 처리하는 어머니인데, 그런 어머니가 왜 업무 외에는 저런 모습만 보이시는 거야?
그리고 아버지는 왜 저런 어머니를 보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는 거야…?
“공작이 방문하면 성대하게 환영을 해야 하는데, 아직 조카 며느리가 회복 중이니 힘들어.”
“화녕가튼거 피료업써! 그냥 예뿌우운~ 아기만 보면대!”
“그건 델 생각이고. 우리 조카가 공작인 외숙모를 홀대할 리 없지. 그건 델도 잘 알잖아.”
“히이잉…”
그래도 평온한 얼굴로 조곤조곤 설득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머니도 조금씩 고집을 거두셨다.
‘아기…’
멍하니 두 분의 대화를 듣다가 홀로 생각에 빠졌다.
아기, 내 사촌인 감찰성 장관 내정자이자 현 타일글레헨 백작의 첫 자식.
작년에 처음 봤던 바렌티 공작가의 공녀가 낳은 아이.
‘예쁜 언니였는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붉은 머리에 초록색 눈. 자상하게 미소 지으며 나와 손을 잡고 다니던 예쁘고 상냥한 언니.
그런 언니가 낳은 아이? 이제 막 태어난 아기?
“귀엽겠다아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중얼거림에 황급히 입을 가렸다.
하지만 너무 늦은 행동이었다. 이미 내 목소리를 들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선은 나에게 향하고 있었다.
“리리두 보고십때!”
“이런.”
지금이 기회다 싶었는지 황급히 나를 가리키는 어머니,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턱을 매만지는 아버지.
큰일 났다. 겨우 진정되어가던 분위기가 나 때문에 다시 타오를 것 같다.
“아, 아니에요! 저 괜찮아요!”
“아니야! 우뤼 리리가 보고시프면바야대!”
다급하게 입을 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이미 제도에 있는 사촌의 저택으로 향한 것 같았다.
“리리가 먼저 나가고 싶다고 한 건 오랜만인데.”
심지어 아버지조차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셨다.
어, 어쩌지…? 나, 나, 나 때문에 사촌 오빠랑 언니가 귀찮아지는 거 아니야…?
“흐으윽…”
“으에?”
“리리?”
나 때문에 막 아기를 낳은 언니가 피곤할 거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
외숙부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무사히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축하와 기력을 소진한 마르가 빨리 회복했으면 좋겠다는 안부 인사였다.
– 네 외숙모하고 리리가 아이를 보고 싶어 하더구나. 지금은 부인이 회복하는 게 우선이니, 나중에 시간이 될 때 말해주렴.
“예, 알겠습니다.”
그 와중에 현명공이 친히 강림한다는 절망스러운 소식을 들었으나, 이러나저러나 현명공과 나는 친척 관계. 친척의 경사에 직접 와 축하를 하는 건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현명공만 오는 게 아니라 외숙부와 소공작도 온다고 하지 않나. 아마 별 소란은 없을 거다.
아마도.
“다음 주 주말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 다음 주? 그렇게 빨리?
아무튼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적당한 때를 언급하자 외숙부는 조금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었다.
확실히 생각보다 빠르기는 하지. 그래도 마르의 회복이 평균적인 속도보다 빨랐고, 같은 저택에 마법 최고봉인 트릭시도 지내다 보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오히려 이것도 넉넉하게 계산한 거니까.
그리고 이미 다른 손님이 저택에 방문한 이상, 친척의 방문을 더 뒤로 미룰 명분도 이유도 없다.
“나 왔다.”
그 다른 손님인 장관은 손을 휘적거리며 위풍당당히 저택에 들어왔다.
“오셨습니까? 늦길래 오다가 쓰러진 줄 알았습니다.”
“부인이 너한테 줄 선물을 고른다길래 조금 걸렸다.”
“손님을 기다리는 것만큼 두근거리는 시간은 없죠.”
빠른 태세 전환에 장관은 낄낄거리더니 내 옆에 있던 마르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인. 다행히 건강하신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별말씀을요. 여러 사람들이 걱정해 주신 덕에 금방 나았습니다.”
장관의 인사에 마르도 완벽한 귀부인의 모습으로 대답했다.
뭔가 기분이 묘하다. 나한테 이 새끼, 저 새끼하는 양반이 마르한테는 정중하네. 당연한 모습이지만 뭔가 낯설어.
“그런데 부인은 어디 계시고 혼자 오셨습니까?”
“여기 집사에게 선물을 설명해주고 있다. 좀 많거든.”
말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졌다. 대체 얼마나 가져왔길래 장관 입에서 ‘좀 많다.’ 라는 말이 나오는 걸까. 제국 예산을 다루는 양반이라 어지간한 숫자로는 눈 하나 깜짝 않는 양반인데.
“이거 벌써부터 답례 선물로 뭘 줘야 할지 걱정되는데요.”
“됐다. 네가 너 같은 부하들이랑 같이 독립한 것만으로도 평생 받을 선물은 다 받았다.”
아니 이 노친네가?
장관 부부가 우리 저택에 온 건 같이 저녁이라도 먹자는 명분의 식사 초대 때문이었다.
예전에 장관을 향한 분노로 눈이 돌아가 장관의 저택에 방문하는 걸 고려하기도 했지만, 그건 장관에게는 복수가 될지 몰라도 장관의 부인에게는 너무 가혹한 짓이다. 마르랑 가면 공녀가 오는 거고, 트릭시랑 가면 공작이 오는 거잖아. 어느 쪽이든 쉽지 않은 손님이다.
그래서 장관 부부를 손님으로 초대했다. 손님은 주인의 접대만 받고 돌아가면 그만이니 부인이 마음 졸일 필요가 없다.
“야, 슬슬 말해봐라.”
“예?”
“예? 는 무슨. 네가 아무 이유 없이 부를 놈이냐?”
그리고 장관의 말처럼 나는 장관에게 용무가 있는 입장이다. 그러니 장관을 손님으로 대접하는 수밖에.
“여보. 둘만 있는 자리도 아닌데 너무 거치세요.”
“크흠.”
장관의 요구대로 입을 열려던 찰나, 장관의 부인은 장관의 투박한 언행에 눈치를 주었다.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장관이 까이는 광경이기에 만족했다. 역시 부인이 최고야.
“괜찮습니다, 부인. 제가 각하와 함께 지난 세월이 몇 년인데 그 정도야 이해하지요. 제 부인도 각하와 저의 친분을 아니 염려치 마십시오.”
물론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할 입장이기에 적당히 장관을 지지해줬다. 게다가 장관이 정중하게 나오면 그건 그거대로 끔찍하고.
“그리고 각하의 말씀처럼 제가 각하께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그 말에 부인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러났다. 이걸로 장관에게 작은 빚을 하나 지웠─
“무슨 용무길래 그러냐? 이상한 거면 바로 돌아간다.”
이 씹, 전혀 아니었네.
‘…지금이라도 무를까?’
아니, 참아. 내 안의 이성.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할 부탁은 장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하기 힘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