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26)
로판 속 공무원 526화(527/945)
장관에게 페디의 대부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 건 며칠 전의 일이지만,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소문이 확산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딱히 정보 통제를 한 건 아니나 고의로 퍼뜨리지도 않았는데? 나랑 마르, 장관과 장관 부인까지 넷만 있던 자리에서 생긴 일이 어떻게 그리 빨리 퍼지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 재무성 장관이 다른 장관들에게 슬쩍 흘렸더군.
그 이유는 전승공과의 대화 중에 알 수 있었다. 장관이나에게 대부 제안을 받은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가다 만나는 장관들을 붙잡아 아주 자세히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 아마 지금도 그러고 있을 걸세. 입이 가벼운 사람이 아닌데,아무래도 기대가 많은 모양이야.
작게 웃음을 터뜨린 전승공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진짜 의외기는 하다. 나하고 있을 때는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리지 않고 쏟아내는 장관이지만, 나름 백작이자 재무성의 수장인 정계의 거물이다. 내 개인적인 평가를 제외하면 입이 무거운 편에 속하는 양반이라는 뜻.
그런데 그런 양반이 고성능 확성기가 된 것처럼 실컷 떠들고 다녀?
‘못 무르게 확정 짓는 건가?’
어차피 무를 생각도 없는데 별짓을 다 하네.
솔직히 장관의 인성을 생각하면 아직도 흠칫흠칫하지만, 그래도 내가 대부를 맡길만한 사람은 장관밖에 없다. 몇 년 전에 약속을 한 것도 있고, 친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다.
그리고 뭔가 내 자식이 장관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부로 둔 모습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장관에게 세뇌된 건가 싶을 정도로.
– 아무튼 조금은 아쉽다네. 칼 군이 황태녀 전하의 대부가 아니었다면 내가 칼 군의 아들을 대자로 삼았을 거야.
“과분한 말씀입니다.”
– 이런 걸로 과분이라고 하면 쓰나. 내가 좋아서 하는 말인데.
전승공의 말 덕분에 방금 전의 어색한 미소 대신 진심으로 웃음을 보였다.
이미 나에게 있어서 두 번째 아버지나 다름없는 분이 욕심도 많으시다.
페디의 세례식 장소는 성 파로나스 대성당으로 결정되었다.
원래라면 평범하게 여명 교단의 사제를 저택으로 초청하여 진행하려고 했으나, 내 부탁을 들은 아우스엔 대교구 측에서 먼저 성 파로나스 대성당 사용을 언급했다.
“두 복자 분의 결혼식이 치러진 곳에서 첫 자식이 세례를 받는 것만큼 의미 깊은 일은 없겠지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절로 웅장해지는 제안이라 정신이 아찔했었다.
그래, 의미가 깊기는 하겠지. 그런데 너무 깊어서 문제잖아. 황제가 즉위한 곳에서 일개 귀족이 결혼식을 진행했던 것도 미칠 지경인데, 그 자식의 세례식까지 한다? 크라시우스 가문과 타일글레헨 백작이라는 작위에 너무 과한 명예와 권위를 실어주는 행위다.
“그거 좋겠군. 장관의 결혼식 때 주께서 축복을 내리셨고, 장관의 아이가 생긴 것도 결혼식 직후지 않았나. 신이 내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니 마땅히 그곳을 써야지.”
심지어 적극적으로 만류해야 할 황제도 오늘 저녁 메뉴 고르듯 평온한 목소리로 지지했다.
그때 세상이 미쳤음을 확신했다. 아니,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더욱 절절하게 느꼈다. 이미 과분한 명예와 권력을 지닌 신하를 견제하기는커녕 부추기는 황제라니. 너 그러다 역성혁명 당해 이 새끼야.
물론 내가 혁명 주동자가 될 생각은 없다. 어떤 인간이 자청해서 황제를 해, 미친놈도 아니고.
‘인생 진짜.’
그렇게 해서 결혼식 이후로 얼씬도 하지 않았던 성 파로나스 대성당에 다시 오게 되었다. 아들의 세례식 때 노쇼를 하는 못난 아비가 될 수는 없으니.
“살다 살다 여기서 가족 행사를 하는 놈은 처음 본다. 너 역적이냐?”
“제발 조용히 하십시오.”
픽 웃으며 다가오는 장관에게 한숨 섞인 대답을 돌려줬다. 나도 크라시우스 가문의 행사를 대성당에서 진행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보다 내가 역적이면 당신은 역적 동지야. 9족을 멸하면 같이 싸잡힐지도 모르는 입장이라고.
‘혼자 죽지는 않겠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적어도 저 양반을 두고 내가 먼저 죽을 일은 없을 거다.
“아우─”
급속도로 평온해진 내 표정을 보고 장관이 뭐라고 입을 열려던 찰나, 내 품에서 자고 있던 페디가 장관을 향해 짧은 옹알이를 했다.
“이런, 깼구나.”
페디의 기습 옹알이에 장관의 표정도 빠르게 누그러들었다.
저 기분은 나도 잘 안다. 황태녀를 봤을 때도, 페디를 볼 때도 느끼는 감정이지. 아기들의 순수한 목소리와 손짓을 보면 내가 속세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이 헛되게 느껴진다.
“흐음.”
어느새 미소까지 지은 장관은 내 앞에서 살짝 무릎을 굽히더니 페디를 바라봤다.
“지 애비는 안 닮아서 다행이야.”
노안이 의심되는 말과 함께.
다른 사람들은 다 나를 빼닮았다고 하던데, 정작 대부의 눈이 저 모양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성당까지 왔으니 사제한테 힐이라도 받아보라 권유해볼까?
***
대부 권유를 받은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칼의 저택에 방문했다. 내 대자가 될 예정인 페르디난트 크라시우스─ 페디를 보기 위해서.
아무리 순수한 아기라도 낯은 가린다.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더욱 수줍음이 많은 법이니, 세례식 때 대자가 대부를 보며 우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조금씩 얼굴을 익히는 게 옳다.
다행히 칼도 그러한 필요성을 인지할 지능 정도는 있었기에 신혼의 저택을 툭하면 방문하는 나를 꺼려 하거나 쫓아내지 않았다.
그렇게 페디가 자는 걸 구경하고, 페디에게 손가락을 잡히고, 페디가 우는 걸 달래고, 페디와 눈을 마주치며 시간을 보냈다. 세례식 당일인 오늘까지.
‘칼의 아이.’
세례자 역할을 맡은 추기경의 축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페디를 바라봤다.
축사가 시작되자 칼이 내 품으로 넘긴 작은 아이를.
‘내 대자.’
과거에 매몰된 약속이 다시금 세상 위로 나왔다는 증거를.
‘…역시 지 애비는 안 닮았어.’
멍하니 페디를 보다가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오기 전에는 칼의 품에서 얌전히 자고 있었고, 내 품에 안기고 나서도 작은 발버둥 하나 없이 조용한 아이.
아무리 생각해도 외모는 모를까, 성격은 지 애비가 아닌 모친을 닮은 것 같다. 정말 다행인 일이지.
‘저런 새끼가 이 세상에 더 있으면 곤란해.’
하나만 있어도 정신이 아찔한데 둘이나 있다? 제국과 대륙에게 있어 재앙이나 다름없다.
“칼 크라시우스라고 합니다! 황실과 제국을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겠습니다!”
전부 우중충한 얼굴로 업무에 치여 죽어나갈 때, 뭐가 그리 좋은지 우렁차게 인사하던 눈치없는 놈.
“팀장님, 혹시 제가 도울 건 없습니까?”
제국백 후계자라는 신분을 가진 주제에, 자신보다 한미한 가문 출신인 상사에게 꼬박꼬박 존중을 표하던 이상한 놈.
“아니 시발! 내 부서가!”
그놈이 소속된 감찰부 4과 4팀의 수뇌가 전멸하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어떻게든 팀을 이끌어나가려던 고집 넘치는 놈.
“이 업무를… 팀 하나가 감당하는 게 가능합니까? 과 하나가 아니고요?”
“이 새끼가 팀장 달더니 배부른 소리 하네. 과 하나가 동원될 일이면 이거보다 10배는 많지.”
“인생 시발…”
아무리 봐도 가문의 힘을 써서 적당히 경력을 쌓을 부서에 온 것인데, 상황이 꼬여도 나가지 않고 버티던 이해할 수 없는 놈.
“종군이라뇨,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지금 4팀은 막 걸음마를 시작했습니다! 평범한 임무에 나서도 위험한데 전쟁에 나가라는 건 죽으라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과장님. 제가 조금 더 잘했으면, 더 많이 살 수 있었을까요?”
“…이상하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도 마음이 놓입니다.”
소모품처럼 쓰러져가던 말단 감찰부원들에게도 하나하나 관심을 주던, 일개 부하가 아닌 동료처럼 여기던 감수성만 풍부한 놈.
“어디서 이런 병신 같은 것들만 모였을까.”
“병신 대장이 말이 많네.”
“솔직히 전부 병신이면 수석인 놈이 제일 문제 아닐까?”
“망할 새끼들.”
그러면서도 평민 출신인 다른 팀장들과 우정을 나누던 특이한 놈.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놈이었다. 나이에 맞지 않고, 신분에 맞지 않고, 경력에 맞지 않는 기행을 펼치던 신기한 놈이기도 했다. 사레이 도브라 탈라와 멸세로 일대일 승부를 봤을 때는 진짜 뭐 하는 새끼인가 싶었지.
그럼에도 싫지는 않았다. 언제든지 감찰부에서 탈출할 수 있는 놈이 우직하게 버티고, 나이도 어린놈이 인맥이 아닌 능력으로 나아가고, 상대의 신분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그래서 그놈을 눈여겨본 것 같다. 그놈을 보다 보면 심심하지는 않았으니까. 같은 팀장들과 투닥이는 걸 보면 철없는 자식새끼들이 일곱이나 늘어난 것 같았으니까.
“왜, 왜 저만 남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신이 저를 어떻게 쓰려고, 전부 데려가놓고 저만 남긴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오래 가지 못했다. 일곱이나 되는 명예 자식 중 여섯이나 가버렸고.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는 분명 제대로 해결된 문제로 알고 있었습니다!”
헤카테의 죽음에 감찰부장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눈이 돌아가버린 그놈은 팀장의 신분으로 부장에게 정면으로 들이받았었지.
그 이후로 칼은 과거의 칼로 돌아가지 못했다. 원한을 갚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쥐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랬던 녀석이 여러 방황 끝에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이제야 과거를 인정하되 매몰되지 않았다.
‘…너는 꼭 엄마를 닮거라.’
그렇기에 페디는 칼을 닮지 않았다. 닮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는 칼처럼 어둠 속을 방황하다가 빛을 찾을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찬란하게 나아가면 된다. 그것이 소설로 치면 위기 하나 없는 재미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잃은 무능한 명예 아비로서, 유일하게 남은 자식조차 제대로 보듬지 못한 자로서. 반드시.
‘너는 내 손자니까.’
이 세상은 너와 나의 관계를 대부와 대자라 할 거다.
그래도 나는 너를 내 손자라고 생각한다. 너는 내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놈의 자식이니까.
나 홀로 품어왔던 약속이 유일하게 세상으로 나온 결과물이니까.
‘처음 약속과는 다르지만.’
나는 네가 헤카테의 자식으로서 세상에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헤카테가 아닌 다른 여인의 아이라니, 약속이 꼬여도 대차게 꼬인 것 아닌가.
허나 상관없다. 칼의 말처럼 약속이 틀어졌다고 뭐라고 할 사람은 남아있지 않다. 이미 무너진 약속을 흔적이라도 찾아 재건한 건 칭찬을 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니 나는 너를 내 약속이라 여기마.
누가 뭐라고 해도. 설령 나보다 먼저 떠난 여섯이 핀잔을 준다고 해도.
앞으로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