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30)
로판 속 공무원 530화(531/945)
드디어 이날이 왔다.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던 기적의 날이 찾아왔다.
“3년이라는 세월은 앞으로의 인생과 비교하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는 영원히 여러분의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교장의 연설을 들으며 조용히 눈가를 닦았다. 보통 교사들은 졸업식 때 눈물을 보이던데, 명예 교사 학위 소유자인 나도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이게 교사라는 이름이 주는 힘인가?
물론 개소리다. 보편적인 교사들은 그동안 가르친 학생들을 떠나보낸다는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는 것인 반면, 나는 어깨에 짊어진 짐 덩어리를 내려놓는다는 홀가분함에 눈물을 보이는 것이다. 빈말로라도 비슷한 눈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나. 3년 동안 내가 겪은 고통과 설움을 아는 자라면 내 눈물을 욕할 수 없다. 모두가 나의 헌신과 희생에 박수를 보낼 터.
“추억은 미지의 길을 나아가는 디딤돌이자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은 여러분의 인생에 둘도 없을 경험이 되었을 겁니다.”
교장도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어느 때부터 평온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갔다.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이번 졸업식을 통해 류티스, 라테르, 타니안 같은 해외산 시한폭탄들이 조국으로 완전히 귀국하게 된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아마 졸업식이 끝나면 홀로 와인을 들이키며 자축하지 않을까.
“그 경험이 여러분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도, 그저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동등하게 가진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스스로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교장의 의례적인 말에 졸업생들의 분위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평민 출신 학생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진짜 바뀌기는 하겠지.’
귀족 학생들에게 있어 아카데미는 평범한 예비 사교장이자 남들이 다 거쳐가는 경유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평민 학생들에게 아카데미는 귀족들과 미약한 친분을 쌓을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기회의 장소였다. 아카데미 졸업장이 있다면 어딜 가도 그럭저럭 대접을 받을 수 있으니, 평민으로서 최대한 출세할 수 있는 기회나 마찬가지다.
막말로 평범하게 농사나 장사를 하는 평민과 아카데미 졸업장을 들고 행정부나 군부에 투신하는 평민 중 누가 더 잘 살겠나. 정말 어지간한 재능과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후자가 압도적이다.
“부디 여러분의 손에 있는 경험이 여러분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교장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일개 학생이 아닌 사회의 일원이 된 졸업생들을 향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부디 저 어린 사회인들이 덜 상처받고 더 행복하기를 기원하기 위해.
이제 사회라는 야생에 던져진 졸업생들도 교장의 따스한 마음을 눈치챘는지,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호응해 줬다.
…
‘야생은 개뿔.’
저것들 중 대다수는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평온한 백수 생활을 보낼 거다. 내가 간절히 염원하지만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이잖아.
물론 계승권과 거리가 먼 귀족들은 나름 일자리를 찾아야겠다만, 나처럼 구르지는 않겠지.
“그럼 다음으로 학생회 부회장의 송사가 있겠습니다.”
아무튼 교장이 짧은 훈화를 마치며 물러난 직후, 교감이 다음 순서를 진행했다.
사실상 졸업식의 모든 식순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슬며시 눈을 감았다.
‘장하다, 나.’
이 지옥 같은 3년을 무사히 끝냈어.
원작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이겨냈어.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아카데미 3년이면 아무리 긴 작품이라도 완결에 도달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만약 ‘아카데미가 1부고 졸업 이후가 2부입니다!’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면 속세를 등지고 영원한 푸른 하늘의 제사장이 될 의향도 있다.
진짜로.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하는 부원들.
그러나 3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것은 사실이라 마지막으로 동아리실에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눴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군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겠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는 마라.”
류티스의 말에 덤덤히 대답했다. 사실 엄연히 따지면 우리의 만남은 시작도 해서는 안 될 만남이었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제 영원히 볼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습니다. 적어도 같은 나라에서 지냈다면 만나러 갈 수나 있을 텐데.”
픽 웃음을 흘리는 류티스의 얼굴에는 묘한 씁쓸함이 담겨있었다.
의외다. 평소에는 과도할 정도로 호탕한 모습을 보여서 사람의 마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나름 감수성이라는 게 존재하는 놈이었구나.
“무엇보다 고문 선생과 헤어지는 게 안타깝습니다.”
“뭐?”
하지만 감수성과 별개로 방금 한 개소리는 납득할 수 없다.
대체 나하고 무슨 원한 관계를 맺었길래 헤어지기를 싫어하는 거냐. 3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버틴 거지, 무기한으로 너하고 같이 지냈다면 진작에 미쳤을 거다.
“기사로서 대륙 제일 검과 같이 지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죠.”
“…그렇군.”
뒤이은 설명에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원한 관계가 아닌 단순한 존경심이었구나.
난 또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암흑 진화를 했나 걱정했지. 마법사들이 트릭시를 보고 환장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징그럽네.’
그리고 조금 괘씸하기도 하다. 나한테 대륙 제일 검이라는 칭호가 붙은 게 최근이기는 하지만, 날 존경한다는 새끼가 그동안 그 지랄을─
“3년 동안 받은 배려와 가르침은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문.”
뒤이어 입을 연 라테르의 감사 인사에 상념을 털어냈다.
“너무 거창한 인사로군. 내가 너희를 가르친 것도 아니지 않나.”
“가르침이 학문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느 빨강 머리와 달리 정상적인 말이라 입꼬리가 올라갔다.
솔직히 내가 배려라는 이름의 눈물을 흘린 걸 알았다면 자퇴하는 게 옳았으나, 제 발로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들이 자퇴하는 것도 곤란한 일이었겠지. 이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본래라면 이어질 수 없는 인연이 이어졌으니, 이는 에넨께서 점지하신 인연일 겁니다. 조국에 돌아가서도 고문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라테르는 트릭시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로서 마종의 가르침을 받은 건 일생에 다시 없을 영광이었습니다.”
“저도 마도강국으로 이름 높은 유벤의 왕자를 가르칠 수 있어 기쁠 따름입니다.”
정중한 인사에 트릭시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마주 목례를 했다.
그건 그렇고 기분 탓인가. 마지막 인사다 보니 전부 매운맛이 빠진 훈훈한 광경만 보여주고 있네.
‘평소에도 좀 이러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금방 털어냈다. 이것들은 언행이 문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도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 것들이다. 지난 3년간 올바른 발언과 진중한 행동을 보였더라도 거슬렸을 터.
그러니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자. 아무튼 마지막만 좋으면 3년 동안의 고통도 언젠가는 미화되지 않겠나.
“자, 끝났습니다. 한겨울에 알몸으로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잔병치레는 없을 겁니다.”
그 와중에 마지막 선물이랍시고 부원들에게 축복을 내려주고 있는 타니안은 못 본 걸로 했다.
“3등. 가기 전에 마지막 체스라도 두고 가겠나?”
“마지막까지 1패를 추가하겠다니, 성실하기도 하군.”
기어코 무패 행진을 깨지 못한 라테르도 못 본 걸로 치자.
쟤는 체스 1승보다 더한 걸 손에 넣은 것 같으니까.
***
졸업식이 끝난 후, 멍하니 벤치에 앉은 채 하나둘 고향으로 돌아가는 졸업생들을 바라봤다.
나도 그리운 올리드 가문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도저히 걸음이 옮겨지지 않았다.
‘꿈인가?’
그러다 손으로 볼을 꼬집었다.
‘아프다.’
일단 꿈은 아니네.
‘꿈이 아니야.’
이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는 걸 인식하자마자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믿을 수 없다. 아카데미 졸업과 함께 이런 행운을 얻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황실 교육관.’
감히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영광이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고작 나 따위가 황실 교육관에, 고귀한 황족을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해도 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졸업식 직후, 감찰성 장관 각하가 직접 건네준 추천장을 내려다봤다.
“샤를 올리드. 너의 진정한 능력은 전장에서 선보일 용맹보다 상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눈썰미다. 그리고 상대의 수준에 맞게 어울려 줄 수 있는 세심함이겠지.”
“과,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아니. 너를 3년이나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다. 과분하다고 생각되면 내 눈을 믿고 받아들여라.”
나보다 나를 높게 평가하는 감찰성 장관 각하의 말에 다시 울컥했다. 나도 나름 뛰어난 학생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감찰성 장관 각하께 그런 평가를 받을 줄은 몰랐다.
“왕족을 상대한 경험이 있으니 황족도 상대할 수 있겠지.”
3년에 걸친 실기 시험 동안 류티스에게 시달린 경험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아직 황태녀 전하께서 어리시니 당장은 할 일이 없겠다만, 몇 년이 지나면 바빠질 거다. 그동안 더욱 능력을 갈고 닦도록.”
“예! 명심하겠습니다!”
“기대하도록 하지.”
그 말과 함께 사라진 감찰성 장관 각하를 떠올리니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
저 출세했습니다.
그것도 평범하게 노력했다면 영원히 닿지 못했을 곳에 닿았어요.
‘가문의 영광이다.’
점점 뜨거워지는 눈가를 거칠게 문지르며 추천장을 주머니에 넣었다.
내가 황실 교육관이 되는 건 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다. 자랑스러운 올리드 가문의 이름도 덩달아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쩌면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올리드 가문에 새로운 작위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힘내자.’
그렇기에 결연한 마음가짐으로 다짐했다. 감찰성 장관 각하의 배려로 남들보다 압도적인 출발선에 섰으니, 더욱 멀리 나아가는 것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고맙다.’
이윽고 아르메인으로 돌아갈 류티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가졌다.솔직히 걔가 아니었으면 장관 각하의 눈에 들어올 일도 없었겠지.
그 과정이 끔찍하기는 했지만 결과가 좋으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