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31)
로판 속 공무원 531화(532/945)
만남이 있다면 헤어짐이 있고, 시작이 있다면 끝도 존재하는 법.
또한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마지막에는 웃으며 헤어질 수 있고, 둘도 없을 친구라도 마지막에는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 인생.
지난 3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그러한 인생을 배웠다. 비록 내가 살아온 세월, 앞으로 살아갈 세월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교훈까지 가슴에 새겼다.
‘다시는 제도 밖으로 안 나간다.’
역시 공무원은 지방이 아니라 중앙에서 일하는 게 최고라는 교훈을.
사람들이 괜히 수도나 대도시에서 사는 게 아니다. 어차피 굴러야 한다면 작은 곳보다 큰 곳에서 구르는 게 좋으니 아득바득 중앙으로 가는 거지.
나 역시 그렇다. 아카데미 파견 전에는 제도의 소중함을 몰랐으나, 3년이라는 초-장기 파견을 겪다 보니 제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는 제도에서 살다가 죽자.’
티티가 물어온 공을 다시 던져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부장이라는 직급으로 장기 파견을 간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건 타국 왕족의 유학이라는 기적의 사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움직인 거였다. 그나마도 장관급 인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
그리고 며칠 후면 나도 정식으로 장관이 된다. 그렇게 되면 제도에서 영혼까지 갈려나갈지언정 제도 밖으로 출장을 나갈 확률은 없다. 내가 뭐 유사시 해외를 떠돌아야 하는 외무성 장관도 아니잖아.
‘…좋아할 일이 맞나?’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제도 안이나 밖이나 구르는 건 매한가지인데 ‘어차피 구를 거면 제도가 낫지.’ 라며 위안을 가지는 꼴이라니. 마치 노예가 자기 발목에 묶인 족쇄를 자랑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그 족쇄가 황금 족쇄면 자랑할 법하지 않을까?
분명 그럴 거라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정신적으로 버틸 수가 없다.
– 멍!
“굿 독.”
다시 공을 물어온 티티도 나에게 힘을 내라는 듯 우렁차게 짖었다. 주인의 마음을 위로할 줄 아는 기특한 아이야.
하지만 조금 미묘한 기분이다. 내 발목에 처음 족쇄를 채운 사람은 상황이며, 티티를 하사한 사람도 상황이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물론 병만 존나게 주고 있는 황제와 비교하면 상황은 선녀다.
적어도 상황한테는 이래저래 받은 게 많으니까.
***
“허, 참.”
황실 기사단장이 올린 보고를 확인하다가 감탄을 터뜨리고 말았다.
[ 황실 교육관 내정자인 샤를 올리드의 무력은 평범한 기사 수준입니다. 그러나 상대와 자신의 격차를 파악하고, 상대의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흘리는 재주는 황실 기사단의 베테랑 교관들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무뚝뚝한 황실 기사단장치고는 상당한 극찬을 적어 올렸으니까.
‘엄청난 인재가 잠자고 있었군.’
그 뒤로도 잔뜩 적힌 보고─ 를 가장한 칭찬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장은 샤를이라는 청년을 마뜩잖게 여겼다. 막 아카데미를 졸업한 청년이 황실 교육관이라는 명예로운 직책에 오르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고, 경험을 위해 말단부터 시작해야 한다 주장했을 정도였지.
허나 추천장을 써준 장관의 체면을 고려하여 샤를의 능력을 검증하였고, 능력을 확인하자마자 이전까지의 반대가 무색할 정도로 돌변했다. 너무 빠른 태세 전환이라 절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단장이 이럴 정도면 능력은 확실하다는 건데.’
사실 황실 기사단장은 맡은 업무의 특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황실의 안전과 황궁 경비를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자가 느슨하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전대 황실 기사단장조차 다소 융통성이 있을지언정 업무에 소홀하지는 않았다.
그런 단장이 황실 교육관 자리에 젊은 청년이 앉는 걸 찬성했다. 깐깐하고 보수적인 단장의 눈에도 완벽한 인재라는 뜻이다.
‘신기한 일이야.’
그래, 신기하고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인재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 학생이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리고 이런 숨은 보석을 기어코 발굴한 장관의 집념도 경악스럽다.
‘약속을 믿는 건 아닐 텐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념이라 과거의 일을 회상했다.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한 과거, 정확히는 장관이 툭하면 퇴직을 희망하던 시절. 매번 퇴직 신청을 거절하는 것도 귀찮아 너를 대신할 수 있는 인재 100명을 물어오면 퇴직을 고려해 보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 혹시 그걸 진심으로 믿고 이러는 건가?
‘설마.’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망상을 지워냈다. 아무리 장관이 퇴직에 눈이 멀었다지만 그렇게 순수할 리가 없다.
애초에 장관이 인재 100명을 물어오면 장관까지 101명을 굴려야지 왜 놓아주겠나. 인재 아까운 줄 모르고.
‘혼자 죽을 수 없다는 집념이겠군.’
이윽고 굉장히 그럴듯한 가설이 떠올랐다.
학생 대신 관료의 길을 택한 장관은 두 번 다시 없을 청춘을 행정부에서 보냈다. 그렇기에 젊은 귀족들을 보면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까? 어딘가 뒤틀린 장관의 성격을 생각하면 실로 설득력 있는 가설이다.
‘아무렴 어때.’
물론 나로서는 뒤틀린 성격의 결과물이라도 반길 일이다. 장관이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인재를 납치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추천장을 받은 젊은 인재들은 기쁘게 관료가 되고, 추천장을 준 장관은 자신의 음습한 욕망을 풀고, 가만히 있던 나는 늘어나는 인재를 흡족하게 보면 그만이다. 모두가 행복한 완벽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만 올해로 장관의 감찰관 업무가 끝난지라, 더 이상 젊은 인재들을 공급할 방법이 사라졌다는 게 아쉽다. 3년 동안 제법 쏠쏠했었는데 말이야.
그렇다고 무작위로 추천장을 뿌리기에는 장관이 선별한 인재처럼 좋은 인재들이 걸린다는 보장이 없다.
‘가까이서 지켜봤기에 가능한 방법이었지.’
장관은 아카데미에 거주하며 학생들을 지켜봤다. 단순히 평판을 주워들은 게 아니라 직접 능력을 확인한 것이다. 그보다 확실한 인재 검증 방법은 없다.
“내년 감찰관도 장관을 보내야 하나.”
어느 검정 머리가 듣는다면 기겁할 발언을 중얼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장관은 갑작스러운 감찰관 업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하지만 감찰부장을 아카데미에 박아 넣은 것도 아까웠는데, 곧 정식 감찰성 장관이 될 인재를 제도 바깥에 둘 수는 없지 않나. 그건 인재를 낭비하는 꼴이다.
…
‘신혼 기간 동안만 보낼까?’
갑자기 악마의 속삭임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왔다. 어차피 한동안 장관은 신혼이니 육아니 해서 휴가를 몰아서 쓸 텐데, 내가 다루지 못하는 인력이라면 잠깐 외부로 돌리는 게 이득이지 않을까?
하지만 속삭임은 그저 속삭임으로 그쳤다. 그런 짓을 저지르면 제국 역사서에 ‘타일글레헨의 난’이 적힐지도 모른다. 어쩌면 ‘타일글레헨 혁명’이 될지도 모르고.
그래, 장관은 외부로 보내지 말고 내부에 두자. 곁에 두고 알뜰히 써먹는 게 최고의 활용법이겠지.
─라고, 다음 보고서를 읽기 전까지 생각했었다.
“이런.”
특무성에서 올린 보고에 급격히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저히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라 손에 쥐었던 찻잔도 도로 책상에 내려놓았다.
[ 레온 왕세자 위독. 길어도 내년 2월을 넘기지 못할 것. ]레온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가 오늘내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장관이 아카데미에서 아르메인과 밀약까지 맺지 않았나.
그렇기에 이 내용 자체는 별거 아니다. 오히려 제국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보고니 긍정적 보고라고 할 수 있다.
[ 네르카프 대원수, 아르메인 왕국 남부를 중심으로 순시. ] [ 아르메인 남부 총군 사령관 이스케르탈 후작 사임. 현재 영지에서 사병 훈련 중. ]그러나 뒤이은 문장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레온 왕국 한정으로 아르메인의 정보력은 제국과 비등하거나 앞선다.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아르메인 국왕도 알고 있다고 보는 게 편하다.
그런데 레온 왕세자의 사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대원수가 레온과 접한 남부 지역을 순시 중이다? 누가 봐도 대대적 군사 작전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사임이라.’
게다가 아르메인이 레온에 개입한다면 가장 먼저 나서야 할 남부 총군 사령관이 갑작스레 사임했다. 큰일을 앞둔 장수는 교체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는 걸 고려하면,
‘현장 지휘관이로군.’
아르메인은 단순히 남부 총군 소속 부대를 몇 개 파견하는 게 아니라, 전 사령관인 이스케르탈 후작을 중심으로 원정군을 편성할 확률이 높다.
골치 아픈 일이다. 무려 총군 사령관까지 역임한 자가 원정군을 맡는다는 건 그만큼 이번 사태에 대한 아르메인의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혹은 자신들이 레온 왕국 개입에 진심이라는 걸 과시하기 위함이거나.
일단 제국을 향한 과시는 아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제국과 아르메인은 한 배를 탔다.
‘쿼로노스인가.’
빠르게 대륙 지도를 떠올리며 아르메인이 경계 중일 국가를 떠올렸다.
쿼로노스 왕국. 과거 레온 왕국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전했을 때, 기습적으로 레온 왕국을 침공하여 영토를 강탈한 신흥 강국.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들밖에 없다. 아르메인이 경계할 수준의 덩치라면, 제국과 아르메인이 움직여도 발을 빼지 않을 절박함이라면 쿼로노스밖에 없다.
‘어쩔 수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특무성의 보고서를 따로 정리했다.아르메인이 사령관급 인사를 움직이겠다면 제국은 그 이상의 인사를 보내야 한다.
직책만 보자면 총사령관인 장인 어른이 계시지만 이런 일에 장인 어른을 보내는 건 무리가 있고,명예를 생각하면 대륙 제일 검인 장관이 있다. 무인들에게 있어 장관의 이름은 드높으니 아르메인 원정군에게도, 레온 왕국에게도, 개입할 확률이 높은 쿼로노스 왕국에게도 좋은 압박 카드가 될 터.
‘미안하네, 장관.’
그래도 다행히 레온 왕세자의 사망 시기는 2월 정도로 예상된다. 적어도 장관의 세 번째 결혼식은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다.
아마도.
‘…사람이 너무 유능해도 문제로군.’
장관에게는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나, 장관은어딜 투입해도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 오니 온갖 곳에 쓰게 된다.
황제로서는 기특한 신하가 따로 없지만 이쯤 되면 슬슬 미안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