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34)
로판 속 공무원 534화(535/945)
감찰성이 정식으로 출범하며 서열 7위의 장관이 되고, 순식간에 다섯 번째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이 되며, 황제에게 언변으로 털린 다음날.
“정식 영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각하.”
감찰성의 간부들이 모여 축하 인사를 건넸다.
사실 축하를 한다면 어제 하는 게 맞는데, 어제의 나는 현명공의 외조카다운 호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먼저 말을 걸면 씹어 먹겠다는 눈빛으로 깡와인을 들이마시는데 누가 접근할 수 있겠나. 오죽하면 나한테 다가오던 장관도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돌릴 정도였다.
“고맙다. 나 혼자서는 부족한 게 많으니 앞으로 잘 부탁하지.”
“예, 각하. 성심을 다하여 보필하겠습니다.”
그래도 하루 동안 속을 진정시키고 나니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는 되었다.
동시에 조금은 민망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을 겪었더라도 그것이 부서 업무가 아니라면 불쾌한 감정을 보여서는 안 된다. 상사가 헛기침만 해도 그 아래 부하들은 몸살에 시달리는 법이니까. 그 진리를 잊고 0.05 현명공처럼 행동한 어제의 내가 부끄럽다.
‘출범하자마자 일이 터진 줄 알았겠지.’
잠시 눈앞에 있는 간부들의 입장이 되어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거의 1년 동안 준비한 감찰성 출범이 화려하게 이루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장관은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이 되고 황제와 독대했다.
그리고 독대하고 돌아온 장관의 표정은 하루 종일 일그러져있다.
‘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나였다면 등골이 오싹해서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어.
“이 영광스러운 출범을 위해 그대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다. 장관으로서 마땅히 먼저 노고를 치하해야 했는데, 어제는 흥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지. 미안하다.”
그렇기에 애써 웃는 얼굴로 기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간부들은 ‘아, 기분 좋아서 꽐라가 된 거였구나.’ 라고 넘어가지 않을 거다. 사회 초년생도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믿지 않을 텐데, 노련한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다.
허나 이건 단순히 어제의 일을 없었던 걸로 하자는 변명이 아니다. 어제 내가 보인 현명공의 잔재는 어제로 끝날 것이며, 내 사적 분노가 너희들에게 뻗을 일은 없다─ 라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이거면 충분해.’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다. 부하 입장에서는 상사가 미쳐버린 사유를 아는 것보다 불똥이 튀지 않는 게 더 중요한 법이지 않나.
“좀 많이 드시기는 했죠. 언제쯤 네발로 기어다니시나 두근거릴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내가 선을 긋자마자 선 위에서 탭댄스를 추는 새끼가 나왔다는 것.
‘이 새끼가.’
훅 치고 들어오는 3과장… 아니, 집행부장을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몇 초 전까지는 눈치를 보던 놈이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무호흡 딜러로 돌변했다.
“집행부장. 장관께 무슨 무례인가.”
그러나 남들이 보면 부하가 상사를 정면에서 모욕한 발언이기에 정보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표정이 굳은 걸 보면 이 매운맛 발언에 당황한 모양.
실로 당연한 반응이다. 당장 정보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비 감찰부 출신 간부들도 너 미쳤냐는 눈빛으로 집행부장을 바라봤으니까.
하지만 비 감찰부 출신 간부들과 달리 감찰부 출신 간부들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난 괜찮다, 정보부장.”
그리고 그 감찰부 출신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머리에 박혀있어야 할 털조차 붙잡지 못해서 아무것도 없는 놈이잖나. 머릿속에만 있어야 할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것 정도는 이해해야지.”
내 자비로우면서도 잔인한 발언에 정보부장의 눈가가 잠시 떨렸다.
이해한다. 정보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무성 소속이었다. 황제의 충견으로서 무뚝뚝하고 철저한, 마치 군인과도 같던 특무성 장관을 상사로 모신 입장이다. 게다가 특무성도 철저한 상명하복을 미덕으로 하는 곳이니 부하가 상사를 까고, 상사가 웃으며 반격하는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을 터.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빠르게 납득하는 것을 보면 ‘정보’부장으로서 감찰부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주워들었기 때문일 거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겠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한걸음 물러나는 정보부장을 보니 과거의 감찰부 간부들이 떠올랐다. 그것들도 처음에는 편히 대하라는 말에 난감해하고, 이래도 되는 게 맞나 의문인 표정을 지었었다.
‘잠깐만 그래서 문제였지만.’
그 개 같은 것들은 내 명령을 너무나 완벽히 수행해서 누구보다 편히 지내고, 누구보다 막 나가는 괴물들로 퇴화해버렸다.
그러니 정보부장도 훌륭히 적응할 거라 믿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호 존대를 하던 상대에게 반말을 듣고 있지만 언짢음을 보이지 않는 정보부장이지 않나. 변한 환경쯤이야 정보부장에게는 족쇄가 되지 않…
…
‘막 나가는 정보부장?’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무섭다. 노련함과 능력을 갖춘 정보부장이 개노답 새끼들처럼 변하면 감당하기 어려운데.
‘좋은 예시가 있으니 괜찮겠지?’
나도 모르게 장관 비서로 승진한 차장을 바라봤다. 아무리 미쳐버린 감찰부라지만 그 속에도 일부 정상인은 있었다.
그러니 정보부장이 개노답 새끼로 퇴화한다는 건 성급한 판단이다. 충분히 장관 비서처럼 비정상 속 정상인 포지션으로 남을 수 있다.
분명 그러리라 믿는다.
감찰성의 간부들과 인사를 나눈 뒤, 눈치를 보던 다른 귀족들의 악수 세례에 휘말렸다.
어제 다가오지 못한 건 간부들만이 아니라 귀족들도 마찬가지니까.오히려 나와 친분이 있는 간부들과 달리 일반 귀족들은 내가 발작을 시작하면 피할 방법도 없기에 더 몸을 사렸을 거다.
“형, 괜찮아?”
“죽을 것 같아.”
문제는 하루 동안 눈치를 보던 귀족들이 미친 듯이 몰려왔다는 것. 이틀에 나눠서 해야 할 사교 활동을 하루 안에 몰아서 처리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심지어 신규 부서의 장관이자 다섯 번째 리시자리우네 기사단원이라는 타이틀은 오지 않을 귀족들도 오게 만드는 위력이 있었다. 체감상 신년하례식 내내 만나야 할 귀족들을 오늘 다 만난 기분이야.
“인기가 과하면 독이네.”
이 고통을 인기라는 단어로 치장하는 에리히의 발언에 울컥했지만, 쌍욕을 쏟아낼 힘조차 나지 않았다.
망할. 신년하례식 전까지만 해도 에리히가 구르는 걸 구경하려 했는데.
‘구경거리는 나였구나.’
참담하다. 형으로서 한 번만, 단 한 번만이라도 동생의 발버둥을 보고 싶었다. 어째서 하늘은 그 한 번을 용납하지 않는 걸까.
영원한 푸른 하늘, 듣고 있습니까? 당신의 명예 제사장이 당신의 자비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소식이 없네.’
혹시 콘스탄티나한테 극딜 맞고 기절한 건가? 예전에 얼핏 본 입담을 보니 신 하나 담그기에는 충분한 것 같던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손에 든 잔을 입에 댔다. 적어도 손을 움직일 힘은 남아있어서 다행이야.
“형.”
“왜.”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그 말에 입안에서 쓴맛이 맴돌았다.
있었지. 존나 많은 일들이 있었지.
“형수들이 알아보고 오래?”
“알면 좀 말해줘. 다들 걱정이 많더라고.”
어깨를 으쓱이는 에리히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제국의회 의원들하고 붙어다니는 에리히까지 포섭할 정도면 부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모양이다.
사실 걱정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아무리 가족들 앞에서는 웃는 얼굴을 유지했지만 남편이라는 놈이 황제와 만난 뒤부터 술만 마시고, 다른 귀족들과의 접촉을 피하는데 걱정하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겠어. 당장 피네만 해도 감찰성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나만 바라봤잖아.
…아니, 피네는 원래 나만 바라봤으니 이걸 예시로 삼기는 좀 미묘한가?
“그냥, 뭐. 귀찮은 일이 생겼거든.”
아무튼 에리히의 말에 적당히 둘러댔다.
아직은 말할 때가 아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행복해할 리제에게 타국 출장을 언급하는 건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물론 언젠가는 말해야 할 일이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혼식 전에 출장을 언급하면 리제는 결혼식의 설렘이 아닌 먼 곳으로 가는 남편에 대한 걱정과 야속함만 느끼게 된다.
‘그건 안 되지.’
리제에게 왜 이제 말하냐는 원망을 들을지언정 리제의 기쁨을 앗아가는 건 할 수 없다.
“형.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렇게 다짐하는 사이, 에리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언제 하는지도 중요한 것 같더라고. 말해야 할 시기가 지나면 후회할지도 몰라.”
예상치 못한 조언이라 멍하니 에리히를 바라봤다.
“…진짜 네가 할 말은 아니네.”
세라와 제노비아의 속에 불을 지르고 다니다가 겨우 약혼 관계가 된 놈이 할 말은 아니다. 그 약혼마저 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겨우 된 거니까.
다행히 에리히도 양심이 있는지 내 말에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후회라.’
눈치는 부족하지만 양심은 있는 동생의 말에 턱을 매만졌다.
저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리제의 기분을 위한다며 사실을 숨기다가 더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지. 나는 그저 당장 상처 입느냐, 나중에 입느냐에서 후자를 골랐을 뿐이고.
‘어렵네.’
어느 쪽도 정답은 아니다. 둘 다 골라야 할 이유와 고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고,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방금 에리히가 말한 말해야 할 시기라는 문장이 머리를 잡아먹었다. 에리히 주제에 나를 뒤흔드는 데 성공했다.
“에리히.”
“어, 왜?”
“맨입보다는 선물이 있는 게 좋겠지?”
“당연하지.”
이윽고 나와 에리히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당연하겠지. 그냥 용서를 비는 것보다 화려한 선물을 동봉하는 게 더 좋겠지.
‘선물이라.’
좋아, 결정했다.
“고맙다. 덕분에 결심이 섰어.”
“그럼 형수들한테도 나 좀 그만 불러달라고 전─”
“내가 너 백작 만들어줄게.”
“…어?”
딱딱하게 굳은 에리히의 어깨를 토닥이며 걸음을 옮겼다.
이제 결심이 섰다. 레온 왕국 파견을 피할 수 없다면 시야를 바꾼다.
나는 일을 하러 타국을 가는 게 아니다. 해외에만 있는 귀한 명품을 직접 구매하기 위해 잠시 원정을 떠난 거다.
‘나이어드 가문도 힘 좀 키워야지.’
나는 레온 왕국의 새로운 왕가를 세우기 위해 가는 입장이다. 즉, 한동안 레온의 총독이라는 말. 반발하는 귀족들을 짓누르고, 레온이 가진 이권을 제국이 무기한으로 빌릴 수 있게 힘을 써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겸사겸사 부동산 좀 챙기자. 리제와 결혼한 직후에 가는 거니 리제의 신혼 선물이라 생각하고 잔뜩 챙기면 될 거다.
이래저래 긁어모으면 백작령 몇 개 정도는 나올 터. 그걸 리제에게 주면 리제와 나 사이에서 나오는 자식은 남작이 아니라 백작이 될 수도 있다.
‘타국 작위여도 상관없어.’
제국과 국경을 접한 부동산만 노릴 거니까. 그렇게 하면 말만 타국이지, 사실상 제국 영토의 연장이다.
“형, 잠깐만. 백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절박하게 따라오는 에리히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깨달음을 준 보상으로 에리히에게도 백작령 정도 땅은 줄 생각이다.
“형, 우리 서로 어색해질 일은 하지 말자. 내가 무슨 백작이야.”
“그럼 후작 할래?”
“형!”
내가 내 가족을 위해 주머니 좀 챙기겠다는데 누가 말리겠어.
이렇게 빵빵한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하면 리제의 마음도 조금은 느슨해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