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39)
로판 속 공무원 539화(540/945)
평화로운 아티니 남작성은 하객들의 연이은 방문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정확히는 사용인들이 죽어나갔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분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신년하례식을 다시 하는 기분입니다.”
“뭐, 조금 억지를 부리면 아직 신년이기는 하지요.”
나와 인사를 나눈 뒤 다른 하객들에게 다가가는 두 후작의 대화처럼, 이 결혼식은 미니 신년하례식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신년하례식이 아니면 제국의 공작과 후작들이 전부 모일만한 일이 어디 있을까. 아무리 높아봤자 백작 정도를 상대하던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선 채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게 어딜 봐서 결혼식이야.’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하객들을 훑어보다가 픽 웃음을 흘렸다. 내가 초대한 하객들이지만 보면 볼수록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결혼식 때 공후작들이 집결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마르와 트릭시의 결혼식 때도 고위직들의 정모가 진행된 만큼, 리제의 결혼식도 그렇게 진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당연히 린, 에리, 피네도 마찬가지다. 우리 앞으로 세 번은 더 보는 거야.
“장관님!”
그러던 중, 나이어드 가문의 집사장이 황급히 다가왔다.
“폐, 폐하! 황제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벌써 오셨군.”
처절한 집사장의 외침에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이 기습적으로 방문한 거라면 나도 온갖 쌍욕을 내뱉으며 네 발로 달려갔을 테지만, 내가 초대한 손님이니 딱히 놀랍지는 않았다.
그저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것이 의외였을 뿐.
‘아직 안 온 하객이 더 많은데.’
보통 황제는 행사에 참석하거나 회의를 진행할 때, 미리 와서 자리를 잡기보다는 시간에 딱 맞춰서 움직이는 편이다.
딱히 게으름을 피우는 건 아니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오면 황제보다 늦게 오게 된 사람들이 눈치를 볼까 봐 나름의 배려를 하는 것이다. 덤으로 약속 시간보다 빨리 오기에는 업무가 많아서 시간을 만들기 힘들기도 하고.
그럼 놈이 아직 하객의 반도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모습을 보였다.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잠깐 의심의 싹이 피었지만 금방 고개를 숙였다.
개수작을 위해 왔다고 치기에는 아직 레온 왕국 파견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그 새끼가 쿨타임도 지나지 않았는데 연달아 지랄을 할 정도로 못 배워처먹은 새끼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한들 옆에 황후가 있는 상황에서 만행을 저지를 놈도 아니다.
“황제 폐하께서 오셨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는 없지. 장인어른께서는 먼저 가셨나?”
그렇기에 평온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노비의 마음이 아닌 새신랑의 마음으로 황제를 맞이하면 된다.
“예! 마님과 함께 가셨습니다!”
예상한 답변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초대한 건 나지만 이 영지와 성의 주인은 장인어른. 공작과 후작은 같은 귀족이기에 내가 먼저 나서도 되지만, 황제를 주인보다 먼저 맞이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다만 장인어른이 황제 앞에서 제정신을 유지하실지가 걱정이다. 남작인데다 공직과도 거리가 먼 장인어른은 신년하례식 정도가 아니면 황제를 볼 일이 없는데.
‘…괜찮으시겠지.’
당연히 황제를 믿는 건 아니다. 그 옆에 있는 황후를 믿는 거지.
황후는 긴장한 신부의 아버지를 붙잡고 있을 정도로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장인어른의 상태가 영 안 좋으면 황후가 적당히 발을 뺄 터.
그래도 긴장 상태일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방치하는 건 사위의 도리가 아니기에 빠르게 걸음을 옮겼고─
“아우!”
“전하?”
황후의 품에 안겨 팔을 허우적거리는 황태녀를 볼 수 있었다.
조금 당혹스럽다. 설마 황태녀도 올 줄은 몰랐는데, 황태녀가 벌써 야외 활동을 할 정도로 자란 건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지 않았나?’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황태녀는 스스로 몸을 뒤집고, 기어다니고, 걸음마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때마다 나도 옆에서 박수를 치며 응원했으니 모를 수가 없다.
하지만 걸음마를 할지라도 아직 가녀리고 가녀린 아기다. 황태녀를 물고 빠는 황제가 황태녀의 외출을 허가했다고?
“우우!”
“전하. 제 수염은 이미 전하가 가져가셨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팔을 허우적거리는 황태녀에게 고개를 숙이자 이번에도 황태녀는 내 턱을 만지며 성을 냈다.
가짜 수염을 붙이고 가면 가차 없이 뜯어가고, 맨 얼굴로 가면 투정을 부리고. 아기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역시 대부라 그런지 대녀를 먼저 챙기는군.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야.”
“송구하옵니다, 폐하. 전하의 위엄으로도 벅찬 부족한 신하인지라 감히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께 눈을 돌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농담 섞인 황제의 말에 적당히 대꾸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황제는 황태녀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 정도로는 결코 노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딸을 먼저 챙기는 모습에 흐뭇해하지.
애초에 나를 보자마자 허공에 훅을 날린 건 황태녀기도 하고. 그런 황태녀를 두고 어떻게 황제한테 먼저 인사를 할까.
“대녀인 황태녀를 자기 딸처럼 돌보는 것이 장관이지. 외손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걸세, 남작.”
“화, 황송한 말씀입니다, 폐하.”
황제의 관심이 나에게 쏠리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장인어른은 기습적인 격려에 다시 기함을 하셨다.
이 비겁한 황제 놈. 우리 장인어른 작위 올려줄 거 아니면 괴롭히지 마라.
“참, 선물부터 줘야 했는데 말이 길었군.”
그런 장인어른의 어깨를 토닥인 황제는 뒤에 있던 시종에게 눈짓을 했다.
‘이거구나.’
이윽고 무언가 가득 담긴 자루가 내 손으로 옮겨졌지만 굳이 내용물을 확인하지는 않았다.
상황께서 재배하고 황제가 하사하는 사과… 도저히 이런 자리에서 공개할 물건은 아닌 것 같다.
“장관과 부인을 위해 특별히 선별한 것이네. 끝나면 알아서 나눠 가지게나.”
“예, 폐하. 과분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묵직한 사과의 무게를 느끼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리제하고는 같이 사니까 절반은 장인어른께 드리고 가자.
“제도는 화려하지만 고요한 아름다움이 부족했지. 하지만 이곳은 자연과의 조화가 확연히 눈에 들어와 새로운 멋을 느낄 수 있었네.”
“과찬이십니다, 황후 폐하.”
“후후, 과찬이라니. 느낀 걸 그대로 말하는 것이 어찌 과한 게 될까.”
그 와중에 황후는 장모님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뽐내고 있었다.
역시 황제의 억제기이자 황실의 양심은 뭐가 달라도 달라. 아랫사람에게 위압감을 주지 않는 상사라니.
“아우우!”
내 시선을 느낀 듯, 황후의 품에 안긴 황태녀는 나를 향해 다시금 손을 뻗었다.
그래, 너도 억제기 하렴. 솔직히 네가 더 강력한 억제기가 될 것 같기는 해.
‘아빠 미워라고만 하면 끝이지.’
그 말을 듣고 새하얗게 불탈 황제를 생각하니 흐뭇해졌다.
결혼식은 아티니 남작성의 그레이트 홀에서 진행되었다. 만약 날씨가 좋았다면 야외에서 했겠지만, 한 겨울에 야외 결혼식은 고문이지 않나. 고향을 사랑하는 리제조차 겨울 야외 결혼식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제자가 한 가족이 되는 날. 그 경사스러운 날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어쩌다 보니 사회를 맡은 트릭시의 말에 하객석에서 아주 약간의 술렁거림이 느껴졌다.
트릭시와 리제가 사제 관계라는 것도, 나란히 내 부인이 될 거라는 것도 이미 제국은 물론 대륙 전체에 퍼진 이야기다. 새삼스레 놀랄 것 이유는 없다.
허나 제자의 결혼식 날, 스승의 입에서 ‘우린 이제 가족이다.’ 라는 말을 직접 듣는 건 이성과 별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당사자인 나도 가끔씩 사제를 부인으로 삼았다는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하거든.
“반 년 전, 제가 건네준 부케가 다시금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보물은 이제 새로운 신부의 보물이 되겠지요.”
그래도 밝은 얼굴로 말을 이어가는 트릭시를 보니 미묘한 기분도 금방 가라앉았다.사제고 뭐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좋다는데.
– 그치. 다른 사람들 시선보다 당사자들 의견이 더 중요한 거야.
다행히 영원한 푸른 하늘도 내 의견에 동조하면서 나 혼자만의 자기합리화는 아닌 것으로 증명됐다.
…
?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 엄청! 요정들은 콘스탄티나가 상대해주고, 세계수에 깃든 신성도 조금씩 가져가니까 편하더라고!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당황하지 않고 인사를 건네자, 영원한 푸른 하늘은 지금껏 들은 목소리 중 가장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축하할 일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축하는커녕 어느새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익숙해.’
결혼식 도중에 갑자기 등장하는 신, 굉장히 익숙한 패턴이다. 이미 두 번이나 겪어서 세 번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패턴이다.
그렇기에 머리가 맹렬히 돌아갔다. 이 결혼식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결혼식을 원한 리제의 결단으로 인해 진행되는 스몰 웨딩이다. 그 스몰 웨딩조차 하나하나가 거물인 하객들로 인해 스몰 (호소) 웨딩인 상태인데, 신의 축복까지 나타난다? 리제의 결단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 그보다 결혼 축하해. 그 말 하려고 온 거야.
‘아, 예, 감사합니다.’
– …….
‘…….’
-…….
‘…끝입니까?’
– 응. 왜? 더 축하해줘?
뭐가 문제냐는 듯 평온한 목소리에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당황했다.
뭐지? 왜 익숙한 패턴이 아니라 처음 보는 패턴이 나오는 거지? 나한테 명예 제사장이니 뭐니 하던 양반이 이러니까 너무 낯선데.
– 아까 말했잖아. 당사자들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그 혼란 속에서 영원한 푸른 하늘은 큭큭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아무리 격렬히 축하해 주고 싶어도, 축하받는 사람들이 조용한 걸 원하면 자제해야지.
너무 상식적이고 따뜻한 배려라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게… 하늘의 자비?
***
감동한 듯한 명예 제사장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통했어.’
다행히 통했다. 신의 축복을 내리지 않는 것을 부부를 향한 배려로 둔갑하는 것에 성공했다.
‘축복은 뭐 아무나 주나.’
이윽고 내 처지가 처량하여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내 유일한 신도이자 명예 제사장의 결혼식이다. 심지어 앞선 두 번의 결혼식은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승냥이 두 마리에게 강탈당했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화려하고 영원히 기억에 남을 축복을 내리고 싶다.
그런데 신앙이 무너진 내가 무슨 수로 축복을 줘. 세계수가 부활한 덕분에 신성력 일부를 받고 있지만, 그건 내가 신으로 지내기에 부족함 없는 양이지 외부 활동을 할 정도는 아니다. 내 자체적인 신도와 신앙이 있어야 신으로서의 행동이 가능하다.
물론 어떻게든 쥐어짜면 소소한 축복은 가능할 것 같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나던데, 무슨 일 있었나?”
“모르겠군. 그냥 태양이 구름에서 나온 거 아닌가?”
“하긴. 그게 아니라면 이런 소소한 빛이 나올 리 없지.”
“맞는 말일세. 설마 하늘의 신이 축복이랍시고 빛만 반짝이다 돌아갔겠나?”
“”하하하하하!””
‘안 돼.’
끔찍한 미래에 절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인지조차 힘든 소소한 축복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힘은 힘대로 쓰고, 보람은 없고, 최악의 경우 에넨이나 콘스탄티나와 비교만 당한다.
‘…나도 신앙…’
신앙만 있으면… 나도 축복 열심히 내려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