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44)
로판 속 공무원 544화(545/945)
크라시우스 가문은 딱히 사람이 귀한 가문이 아니다. 어느 빨간 국가처럼 사람 귀한 줄 몰라서 마구잡이로 대한다는 뜻은 아니고, 자식을 쉽게 낳았다는 의미다.
별거 아닌 특징 같지만 일부 귀족 가문이 자식을 낳지 못하여 친척을 양자로 들이고, 그마저도 불가능하여 진작에 튕겨져 나온 방계를 데려오는 걸 생각하면 이는 확실히 축복이나 다름없는 요소다. 초대 가주 때부터 300년 동안이나 이어진 직계 혈통은 크라시우스의 권위와 번영을 상징했을 정도니까.
덕분에 부모님은 양호한 금슬과 달리 나와 에리히만 낳았다. 굳이 무리해서 자식들을 낳을 정도로 가문이 위태로운 것도 아니잖아.
“축하합니다, 어머니.”
“그으…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그건 ‘크라시우스 가주 빌헬름’의 이야기였고, ‘백수 빌헬름’의 입장에서는 달랐던 모양이다.
“고, 고맙구나…”
나와 에리히의 축하 인사에 어머니는 붉게 물든 얼굴로 바닥만 내려다보셨다. 그 옆에 있는 아버지는 이미 입을 닫은 지 오래였다.
‘스무 살 넘게 차이 나는 막내.’
그런 두 분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당혹감이 몰려왔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야 에리히가 아카데미를 졸업한 이후로 두 분은 24시간 내내 붙어 다니셨으니까. 나와 에리히 덕분에 아버지는 더 이상 가주도 백작도 영주도 의원도 아니게 되었고, 어머니는 가문의 안주인이 아닌 가주의 어머니가 되었다. 업무로 바쁘기는커녕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다.
안 그래도 사이가 좋은 두 분이 시간까지 넘치면 그 뒤는 뻔하지. 마침 두 분은 마나를 익힌 영향으로 젊음도 유지 중이고.
‘안 생기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어.’
이 세상에 피임 마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잠시 기억에서 지웠다.칙칙한 아들 대신 애교 넘치는 막내를 보고 싶으셨던 것 아니겠나.
그래서 최대한 밝은 얼굴로 이 경사를 축하했다. 솔직히 아직 복잡한 심정이나 이해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다.
‘애초에 마르도 늦둥이잖아.’
당장 내 부인부터가 늦둥이다. 늦둥이 막내가 생기는 것 정도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지금 생긴 막내는 페디랑 태양이, 하늘이, 초목이보다 어리겠지만, 마르도 자기보다 나이 많은 조카들이 제법 있다. 다소 뒤틀린 항렬 따위는 절대 흠이 되지 않는다.
…
‘확실히 가르쳐야겠네.’
결심했다. 애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가정 교육 커리큘럼에 ‘어린 삼촌이나 고모를 대하는 법’도 넣자. 만약 우리 애들이 내 동생에게 반말을 하거나 업신여기는 걸 보게 된다면 가슴이 찢어질 거다.
그게 내 가슴일지 애들 가슴일지는 그때 가서 봐야 알 것 같지만.
“그보다 조만간 유모가 다시 바빠지겠습니다.”
아무튼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어머니에게 작은 농담을 건넸다. 나와 에리히가 장성하며 시녀장 일에만 집중하게 된 유모지만, 갑작스러운 막내의 등장에 다시 유모로 복귀─
“이 아이는 내가 직접 기를 생각이란다.”
예상도 못한 대답에 잠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금 뭐라고? 어머니가? 아기를?
“직접이요?”
혹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되물었다.
“그, 그래. 이제 시녀장보다 내가 더 시간이 많잖니. 그러니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하는 것보다는 한가한 사람이 노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와 에리히의 눈치를 보면서도 직접 키우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보이셨다.
곤란한 일이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건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기에 어머니를 만류할 명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어머니의 말처럼 바쁜 유모보다는 백수인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는 것이 효율적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내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쉽지 않을 텐데.’
아이를 돌보는 건 단순히 시간이 남는다는 이유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20대에다 몸이 튼튼한 나조차 페디를 돌보면 기가 빠지는데, 가련한 귀부인의 정석인 어머니는 오죽하겠나. 아마 울고 있는 막내 옆에서 새하얗게 불태운 채 쓰러진 어머니를 목격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나도 간혹 잊지만 어머니는 40대다. 체력적으로 조금 무리가 오기 시작하는 나이야.
“많이 힘들 겁니다. 저보다 어머니가 더 잘 아시겠지만, 아기는 종잡을 수 없는 존재잖아요.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달래주고 돌아섰는데 다시 울고, 자고 있는데 울고, 그냥 울고… 어머니의 체력을 생각하면 전문가인 유모에게 맡기는 게 낫습니다.”
그렇기에 진심을 담아 설득했다. 40대에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육아까지 담당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반드시 어머니가 돌봐야 하는 환경이면 어쩔 수 없지만, 어머니를 도울 사용인만 몇 명인데.
“내가 도울 테니 걱정 말거라. 아이는 부부가 같이 기르는 것 아니더냐.”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의 말에 나와 에리히의 시선이 아버지에게 향했다.
아버지가 육아?
‘가능하나?’
이번에는 어머니와 다른 이유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일단 아버지라면 어머니처럼 체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장 전장에 나서도 훌륭히 활약할 수 있는 분이니까.
단지 아버지의 엄격 근엄 진지한 얼굴을 어린 아기가 감당할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실례지만 울던 아기가 아버지를 보면 더 울거나 겁에 질려 입을 다물거나 둘 중 하나 같은데.
“너희가 걱정하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그리고 뒤이은 말에 흠칫하고 말았다. 존나 실례인 생각을 했는데 그걸 들켰─
“너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우리가 이제 와서 아이를 돌보겠다고 하니 믿음이 안 가겠지.”
아, 아니구나.
“그래도 에넨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구나.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한 번은 부모다운 부모가 되고 싶으니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이미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번이나 훌륭한 부모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이윽고 씁쓸함 가득한 아버지의 말에 황급히 대답했다.
우리의 성장기를 부모님이 아닌 유모가 책임진 건 맞다. 하지만 그건 모든 귀족가의 평균이었다.
크라시우스 가문의 양육법이 좀 야생적이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그건 악의가 아닌 미숙함의 결과였고, 그 뒤에 염려와 보살핌이 있었다.
그러니 우리에게 미안함을 가지되, 이처럼 짙은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부모다운 부모라는 과격한 워딩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생긴 한이니 우리가 직접 풀어야 한다. 이마저도 너희의 도움을 받는다면 민망한 일이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버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말씀하시니 더 입을 열 수 없었다. 자신의 한을 직접 풀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건 도르곤을 잡으러 가기 전, 내가 아버지한테 했던 말이니까. 설마 저걸 그대로 돌려받을 줄은 몰랐는데.
“저기.”
그렇게 어색한 대치가 이어지려던 찰나, 에리히가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잘못한 것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막내를 기르면 그건 그거대로 막내에게 못할 짓 아닙니까?”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논리와 함께.
생각해 보니 지극히 맞는 말이라 감탄하고 말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했고, 막내를 정말 사랑으로 돌보겠다는 각오도 느꼈지만, 에리히의 말처럼 막내를 일종의 수단으로 여긴다 해석할 수도 있잖아.
“그리고 가족끼리 있었던 작은 소란을 하나하나 마음에 담아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주님과 어머니가 저희를 조금 이상하게 대한 것처럼, 저랑 형도 두 분에게 제대로 된 의견을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심지어 두 분이 품은 죄책감을 ‘가족끼리 그럴 수도 있는 거지.’로 취급했다. 두 분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러 우리가 고생했듯, 우리도 우리의 감정을 부모에게 표현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것이라 퉁쳤다.
형으로서 흡족스러운 모습이다. 얘가 나름 의회에 출근을 한다고 나름의 지성과 언변을 갖춘 건가 싶을 정도로.
다만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가주는 난데?”
“아차.”
백수로 진화한 아버지를 아직도 가주라고 부른다는 거다.
멍청한 행동이지만 오늘 세운 공이 적지 않으니 봐준다.
우당탕탕 막내 대소동이 씁쓸한 부모님의 고해성사가 될 뻔했으나, 간헐적 현명함을 뽐내는 에리히 덕에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에리히의 말이 맞지. 그래, 그 말이 맞아. 우리의 한을 푼답시고 다시 실수를 할 뻔했어.”
오죽하면 아버지가 작게 웃음을 보이고, 어머니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배를 쓰다듬을 정도였을까.
“고생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한 거야.”
무사히 인사를 마치고 제도로 복귀한 후, 에리히의 어깨를 토닥이며 보기 드문 에리히의 활약을 치하했다.
만약 나 혼자 인사를 드리러 갔다면 찝찝하게 헤어졌겠지. 오늘 일은 온전히 에리히의 공이 맞다.
“가장 좋은 땅으로 찾아올게.”
그 말에 에리히의 걸음이 멈췄다.
“…영지 가져온다는 거, 진심이었어?”
“그럼 농담이었겠냐.”
역시 간헐적 현명함을 뽐내는 놈답게 다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에리히를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명심해라. 장남은 동생들에게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장남의 무게니까.
‘막내 것도 챙겨야지.’
그리고 동생이 둘인데 누구는 챙겨주고, 누구는 안 주는 것 역시 장남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 막내. 이 형이 태어나자마자 영지를 가진 티타늄 수저로 만들어줄게.
아니, 형이 아니라 오빠가 되려나?
‘아들만 셋이면 좀 그렇긴 하지.’
확실히 2연속으로 아들이 나왔다면 슬슬 딸이 나올 차례기는 하다.
***
레온 왕국으로의 출정 선언만이 남은 상황에서장관의 가문에 경사가 생겼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처음에는 당연히 세 번째 부인의 임신인 줄 알았다. 바렌티 가문의 공녀와 마종공을 즉각 임신시킨 놈이니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지.
‘이건 상상도 못한 일이군.’
그런데 세 번째 부인이 아닌 모친이 주인공이었다.
‘어쩌지?’
복잡한 심정으로 집무실 한구석에 보관 중이던 핑크빛 장신구들을 바라봤다.
저거 임신 축하 선물로 준비한 건데, 저 화려한 핑크 장신구들을 40대 귀부인에게 줘야 하는 건가? 저런 걸 주면 오히려 놀린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망할 놈.’
괜히 장관이 원망스러웠다. 장관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아무튼 장관이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 하다 하다 이제는 부모까지 동원하여 고민하게 만들다니.
그래도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 번째 부인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장관의 모친에게 보낼 필요는 사라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세 번째 부인도 임신했다는 보고를 들었으니까.
‘미친 놈.’
저게 사람이야 짐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