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
제 55화
영웅은 공부 따원 안 했다네 – 3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재학 기간 동안 평등하다. 황족, 왕족, 귀족, 평민을 가리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육을 받으며, 같은 학우로서 우애를 다지고 편견을 가지지 않는다. 상하 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교사와 학생의 차이만 존재하는 곳. 그것이 제국 아카데미의 철칙이다.
동의어로는 ‘난 남아서 일할 테니 먼저 퇴근 하세요.’와 ‘화 안 났으니 사실대로 말해.’ 등이 있다. 말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실상 까보면 전혀 아니라는 거지. 사실 깔 필요도 없이 대충 봐도 아니긴 하다.
‘그나마 아인테르는 예외군.’
대련 상대를 울면서 기권 시킬 수 있는 존재는 딱 넷이다. 아무리 실권이 없다지만 그래도 황족인 아인테르, 귀족 나부랭이가 감히 뚫을 수 없는 왕족 방패를 가진 류티스와 라테르, 교리상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타니안.
넷 중 아인테르는 실기 과목 자체를 듣지 않는다. 검이나 마법, 신성력이 아닌 순수 학문에 열중하는 타입이니까. 애초에 황태자가 용작두를 들고 탭댄스를 추고 있는데 무력을 키운다면 그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겠지.
‘타니안도 걱정할 건 없겠고.’
후보라는 딱지가 붙어있지만 사실상 차기 성자인 타니안의 신성력은 신이 내린 것이다. 여명 교단의 교리상 감히 신이 내린 타니안의 신성력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실기 시험은 프리 패스다. 결국 남은 건 류티스와 라테르.
빌라르를 비롯한 아르메인 왕실 기사단은 류티스의 대련장에 상주할 것이고, 유벤의 왕실 기사단과 마법사단 역시 라테르의 대련장을 주시할 것이다. 타니안이 프리 패스 당하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신성교국 전력도 분산 배치 될 예정이고.
실력으로는 두 왕자를 능가하는 전력이 넘치니 사달이 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실기 시험의 최대 피해자는 두 왕자의 대련 상대인 희생양 뿐이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둘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하니까.
‘그래도 하루면 끝나니 다행이네.’
교장에게 받은 대련 일정표를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기 시험을 보는 학생이 많은 편도 아니고, 대련장도 많으니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 딱 하루만 긴장하면 무난히 넘어갈 수 있을 거다.
실기 시험을 치르는 학생은 교양 정도로 가볍게 임하는 학생과 이 악물고 전력으로 임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그리고 내가 눈여겨볼 것들은 당연히 후자. 전자는 자기들이 알아서 몸을 사리니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렇기에 교장과 함께 모든 대련장을 돌아 다니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교장이 겉으로는 늙디 늙은 노인이지만, 알맹이는 제국을 넘어 대륙 단위로 봐도 강력한 마법사다. 마법사는 늙을수록 무서운 법이지.
“제국의 미래가 밝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년 이리 훌륭한 아이들이 들어오니 제 가슴도 뛰더군요.”
그리고 어디까지나 안전을 위해 살피는 것이기에 학생들의 실력에는 별 기대가 없었으나, 생각보다 뛰어났다.
기술로 상대를 농락하거나, 신체 능력으로 압도하거나, 아니면 악으로 깡으로 기어다니는 경우도 있었다. 다양한 모습이 보였지만, 공통점은 대련 과정이 어떻든 마지막에는 승리했다는 것.
‘괜찮네.’
아직 학생이기에 당연히 완숙한 경지는 아니다. 그래도 제대로 굴리기만 하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전력이 될 것이다. 학생회장처럼 말이다.
…학생회장처럼?
‘오.’
갑자기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서둘러 품 속에서 수첩을 꺼냈다.
***
“제국의 미래가 밝은 것 같습니다.”
제국 아카데미 교장, 베른하르트 무르슈는 감찰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은 드넓고, 인재는 많다. 매년 뛰어난 아이들이 들어와 자신을 놀라게 할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뛰던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매년 이리 훌륭한 아이들이 들어오니 제 가슴도 뛰더군요.”
이 아이들은 자라 제국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이다. 한때는 철혈공 각하와 전장을 누비며 제국을 위해 헌신했지만 이제는 늙고 늙은 몸이다. 그러나 이 늙은 몸으로 새로운 기둥을 육성하는 것에 공헌한다면 어찌 기쁘지 않을까.
흐뭇한 마음에 학생들을 바라보던 베른하르트였지만, 옆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감찰부장이 어느새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것까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나, 방금까지 자신이 흐뭇한 눈으로 본 학생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감찰부장?”
“아, 실례했습니다.”
감찰부장은 수첩을 덮었지만, 베른하르트는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감찰부장이 아카데미에 온 이후로 아카데미를 위해 움직이면 움직였지, 해가 된 적은 확실히 없었다.
하지만 그 감찰부의 수장이 먹이를 노리는 눈빛으로 소중한 학생들을 바라봤다면 무슨 연유인지 알아야 한다. 그것이 교육자로서, 그리고 후대를 위한 받침이 될 늙은이로서의 마땅한 도리.
“실례라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헌데 이 늙은이가 나이를 먹으며 호기심만 늘어나더군요. 무엇을 적으신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별 거 아닙니다.”
수첩을 품 속에 넣는 감찰부장의 시선은 여전히 학생들을 향했다.
“제국을 위해 봉사할 인재를 적고 있었습니다.”
미미하게 입꼬리를 올린 감찰부장은 썩 만족한 듯한 모습이었다.
“좋군요. 제국의 미래는 실로 밝습니다.”
그 말에 베른하르트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분명 학생들이 고위 관료의 눈에 들어 추천장을 받는다면 기쁜 일이다. 하지만 그 고위 관료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마음이 걸린다.
그러나 고민은 짧았다. 감찰부장은 악명과 별개로 애국심은 투철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관료나 군인의 길을 꿈꾸는 학생에게 이상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예, 저 아이들이 어서 자라는 것이 보고 싶군요.”
저 아이들은 분명 좋은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생각. 그래, 학생회장이다. 학생회장 같이 괜찮은 원석을 발견하여 누구보다 빠르게 확보했었지. 아카데미는 학생회장처럼 경험이 부족한 원석들이 모여있는 교육의 장이다. 그리고 원석은 먼저 발견해서 채가는 사람이 임자다.
괜찮은 녀석은 3과나 5과 쪽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 그것도 아니라면 특무성이나 군부 쪽에 추천해도 괜찮고. 그 녀석들도 늘 인력이 부족하니 뭐니 투덜거리니, 이렇게 예비 공무원을 보내서 생색을 내면 무언가 부탁할 때 편해진다.
‘노다지도 이런 노다지가 따로 없네.’
눈에 띄는 대련이 이루어졌던 대련장 번호를 적을 때마다 흡족함도 차올랐다. 예비 대학원생을 보는 교수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무튼 여기서 한 10명만 잡아가면 내 앞길이 편해질 것 같다. 셋 정도는 다른 부서에 찔러주면 좋아서 환장하겠지.
그렇게 나만의 작고 소중한 포켓몬 도감 작성은 교장이 부를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다음 시험 때도 확인해야지.’
그때는 새로운 원석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국의 미래와 내 미래가 너무도 밝은 것 같다.
마침내 검술 대련장에서 류티스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에 숨어있는 아르메인 왕실 기사의 기세가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제가 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무할 정도로 무난히 끝났다. 아무리 대련이라지만 왕족을 상대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용기가 솟아날 수는 없다. 정신나간 공화주의 새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차라리 라테르가 기사 루트를 밟았다면 류티스와 붙였을 텐데, 하필 그놈은 마법사라. 하여간 늘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다.
“즐거운 대련이었다!”
너만 즐거운 대련이었겠지.
크게 웃으며 상대를 향해 악수를 건네는 류티스의 모습에 상대를 향한 동정심이 더욱 깊어졌다. 실력이 나빠 보이지도 않는데 상대가 왕족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쟤도 괜찮은 녀석인데.’
몸은 고개만 숙였지만 마음만큼은 90도 허리를 숙였을 대련 상대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대련 시작과 동시에 항복을 하면 너무 티가 나고, 왕족의 몸을 해하지 않는 대신 왕족의 미움을 사버린다. 그래서 상대는 류티스에게 맞아가며 인고의 시간을 버티게 되었다.
이리저리 맞고, 찔리고, 베이면서 최대한 덜 아픈 부위로 탱킹하는 게 얼마나 놀랍던지. 전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는 접대 패배가 가장 어려운 법인데.
‘인재가 많네.’
류티스의 상대도 내 마음 속에 저장했다. 이번 아카데미가 황금 기수인지, 아니면 원래 이 수준이 평균인지는 모르겠다. 뭐, 뽑아가는 사람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다만.
“호오. 이거 우연이군요. 에리히 학생의 대련도 곧 시작하려는 모양입니다.”
“에리히 말입니까?”
류티스 반대편으로 절뚝거리며 내려가다가 다시 멀쩡히 걷는 카이저 소제 학생을 보는 사이, 다른 대련장들을 살피던 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고 가시겠습니까?”
“그럴 시간이 될런지 모르겠군요.”
“류티스 학생의 대련이 끝났으니 급할 것이 있겠습니까? 마법부 대련은 아직 멀었으니 충분합니다.”
충분한 명분을 선물해준 교장의 마음씨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에리히의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면 괜찮겠군요.”
“에리히 학생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되는군요.”
“교장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가 더 뿌듯하군요.”
“빈말이 아니니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서로 적당히 덕담을 건네며 다른 대련장으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대련장에 막 오른 에리히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평온해 보였던 에리히는 우리가 나타나자마자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투지가 상승했다. 대련 상대가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대련이 시작하자마자 악에 받친 것처럼 돌격하는 에리히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보는 내가 자랑스럽고 흡족할 실력이다.
‘다 좋은데.’
정말 좋은데.
왜 날 보더니 갑자기 이 악물고 달리는 것 같지?
기분 탓인가.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시선이 확실히 내 쪽에 꽂혔었다.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 존재는 에리히에게 있어 광폭화 토템이었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교장이 칼의 눈초리에 찝찝함을 느낀 이유: A+급 노예를 탐색하는 농장주의 눈빛이었음.
이제 내일이면 50일 동안 이어진 공모전의 마지막날입니다. 수상작도 발표가 되겠군요.
그리고 저도 내일이면 공모전 딱지를 떼고 플러스로 전환하여 독자님들 곁에 찾아올 것 같습니다. 공모전은 무료기에 더 많은 독자님들과 만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제 그 날도 끝나겠군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제 새로운 수정 공지를 또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내용과 관련된 수정이니, 자세한 것은 공지를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번 회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