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0)
로판 속 공무원 550화(551/945)
알폰소의 멘탈은 조각을 넘어 가루 수준으로 분쇄되었다.
그러라고 압박을 가한 거기는 하지만 막상 정신을 놓아버린 사람을 보니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얘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죄가 있다면 이 녀석이 큰 결심을 하고 구금한 사령관에게 있겠지. 더 넓게 본다면 원정군 따위를 편성한 쿼로노스 수뇌 정도고.
어느 쪽이든 일개 군단장이 홀로 짊어질 업보는 아니다. 알폰소가 나와 대화를 할 자격이 없는 건 맞으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대화하고 책임질 의무 역시 없다는 뜻이다.
“정녕 네놈들이 대화를 원한다면 그만한 성의를 보여라.”
그렇기에 멘탈 조각 모음을 시작했다. 단순히 패고 끝나면 그건 화풀이에 불과하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제시하며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둬야 쿼로노스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터.
“성의, 라면…”
알폰소도 내가 동아줄을 던졌다는 걸 인지했는지, 아주 희미한 희망이 눈에 깃들었다.
“이 자리에는 본작을 제외하고도 황제 폐하로부터 원수의 이름을 수여받은 사령관과 아르메인의 총군 사령관까지 역임한 후작이 있다. 이제 와서 네놈들의 사령관이 와봤자 동등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실로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네놈의 본국에 전하라. 최소 대신이다. 그 아래가 온다면 우리의 분노는 레온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요구에 알폰소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입으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기에 ‘너 따위로는 부족하다! 더 높은 놈 데려와!’를 시전할 여지는 사라졌다. 이제 쿼로노스는 순순히 대신급 인사만 보내면 우리에게 대가리를 박을 수 있다.
그러나 원정군과 달리 쿼로노스의 수뇌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대신으로도 통하지 않는다. ‘최소’ 대신이라는 말은 그 위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
“명심하라. 왕가가 바뀌는 비극은 한 번으로 족하다.”
“예, 예! 명심하겠습니다, 각하!”
그 말을 끝으로 알폰소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내 역할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나머지는 참모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설마 이러고도 정신 못 차리지는 않겠지?’
만약 그렇다면 쿼로노스의 뚝심을 높게 평가할 생각도 있다. 자신들의 역사를 자기들 손으로 닫고 싶다는데 기꺼이 들어줘야지.
마침 쿼로노스는 유벤 연합왕국과도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셋이서 나눠먹으면 될 거다.
***
레온 원정군이 올리는 보고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국경을 아무런 피해 없이 돌파하였으며, 레온의 수도에도 빠르게 입성했고, 각지의 영주들은 제국과 아르메인의 주둔을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나마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쿼로노스 왕국 정도인데, 장관도 쿼로노스의 행태가 거슬렸는지 이틀 연속으로 하늘을 베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곧 끝나겠군.’
만족스러웠다. 그 콧대 높은아르메인조차 하늘 베기를 보고 제국의 질서에 순응했을 정도지 않나. 쿼로노스 따위가 버티기에는 너무도 강력한 압박이다.
그래서 며칠 후면 쿼로노스 왕국군이 레온에서 철수했다는 보고가 올라올 거라 생각했다. 이제 새로운 왕가를 세우고 나면 레온의 이권을 분배하는 기분 좋은 일정만 남을 거라 생각했다.
“…뭐라고?”
착각이었다.
“쿼로노스 왕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다급한 얼굴로 찾아온 외무성 장관의 보고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쿠데타? 갑자기?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나?
“주동자는 누구지?”
허나 세상이 합리와 이성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이미 터졌다면 원인이 아닌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맛이 갔다지만 덩치만큼은 대륙 중부의 강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쿼로노스다. 그런 쿼로노스에 이상한 놈들이… 아니, 지금도 충분히 이상하지만 더한 놈들이 집권한다면 골치 아파진다.
“내부대신이 군부의 소장파를 포섭하여 궐기했습니다. 수도를 책임지는 경비대와 참모부가 중심이라, 이미 국왕의 신변까지 확보했습니다.”
“허어.”
그리고 이미 쿠데타 세력이 국왕을 확보했다는 소식에 헛웃음이 나왔다.
‘외교는 망친 것들이 쿠데타는 잘 하는군.’
어쩌면 세대 교체에 실패한 행정부, 외교가와 달리 군부는 나름 정상적인 젊은 피가 유입된 걸 수도 있다. 장관도 알폰소라는 이름의 군단장을 언급하며 제법 쓸만한 인재라고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군부 소장파를 포섭한 인물은 내부대신이다. 외교가 박살나든 말든 꿋꿋하게 왕국의 내정을 책임진 인물이니, 아마 쿼로노스 수뇌 중 유일하다시피한 정상인일 수도 있다.
“조금만 결단이 빨랐다면 좋았을 텐데.”
이윽고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내부대신의 결단이 조금만 빨랐다면 쿼로노스가 제국, 아르메인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었을 터.
물론 쿠데타 세력이 기존 수뇌부와 연관이 없다는 건 잘 안다. 허나 고작 그런 이유로 쿼로노스를 얌전히 놓아줄 생각도 없다. 감히 대국을 거스른 대가는 집권층이 바뀌더라도 영원히 짊어져야 할 족쇄지 않겠나.
가혹해 보이지만 이는 제국의 천명을 위해서다. 만일 여기서 제국이 자비를 보인다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는 꼴이니.
‘꼬리를 자르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선례가 남겠지.’
일단 제국에게 한 번 대항해 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수뇌를 교체한다. 이런 무책임한 발상으로 제국의 천명에 몇 번이나 도전할 수도 있다. 그딴 건 용납할 수 없다.
…
“장관.”
“예, 폐하. 하명하소서.”
“빠르게 국왕까지 확보한 것을 보면 제법 강단 있는 자인 것 같은데, 여태껏 침묵하다가 이제야 움직인 연유를 모르겠군.”
쿠데타의 결과를 들어서 그런지 자연스레 원인으로 시선이 갔다.
쿠데타를 성공시킨 걸 보면 능력도 눈치도 결단력도 괜찮은 자다. 그런 자가 쿼로노스의 폭주에 침묵한 것은 소수파의 한계라고 치더라도, 갑자기 쿠데타를 일으킨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보통 한 번 침묵을 지킨 자는 영원히 침묵하는 것이 보편적이니까.
“아, 그것이.”
다행히 외무성 장관은 원인도 파악했는지 금방 반응을 보였다.
“감찰성 장관의 최후 통첩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으음?”
허나 제법 의외인 답변이 돌아왔다.
장관이 쿼로노스의 군단장에게 강도 높은 최후 통첩을 날리기는 했다. 대신급 인사가 직접 올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거절한다면 본토가 뒤엎어질 각오를 하라는 협박으로 두들겨 팼다. 최후 통첩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다.
당장 외무성 장관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 보고를 들었기에 쿼로노스의 철수를 예견한 것 아닌가. 그것들이 정말 끝까지 갈 일은 없을, 테… 니…?
“장관, 설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쿼로노스의 대신들은 감찰성 장관의 자비로운 제안을 거절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하늘을 찢은 당사자가 최후 통첩까지 날렸는데 그걸 무시했다고?
‘미친.’
무얼 상상하든 그 아래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저딴 놈들이 일국의 지배층까지 오른 건지.
그리고 쿼로노스의 정권을 장악한 내부대신이 제국 외무성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것은 2시간 정도가 지난 후였다.
***
자고 일어나니 나라가 망했다.
정확히는 망한 건 아닌데, 거의 한 번 망했다가 부활한 수준으로 뒤엎어졌다.
‘소장파…?’
혼란스럽다. 우리나라에 그런 것도 있었나? 군단장이 된 후로 나이 처먹은 새끼들하고만 어울려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있었다면 진작에 좀 궐기하지 그랬냐. 군단장은 붙은 눈이 많아서 언행도 조심해야 하는데, 너희는 이렇게 화끈하게 움직일 수 있었잖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명령에 휘둘려 레온까지 온 놈이 구국의 결단을 한 후배들을 원망하는 건 추한 일이다. 그 정도는 안다.
‘알긴 아는데…’
그래도 후배들이 조금만 빨랐다면 내가 이런 꼴을 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딜 감히 일개 군단장이 자격을 운운하느냐.네놈에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건 본작이다.”
“언제부터 군단장 따위가 황제 폐하의 대리자와 맞먹는 직책이 됐는지 모르겠군.”
타일글레헨 백작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르자 본능적으로 몸이 떨렸다.
그때는 진짜 혀를 깨물어 죽고 싶었다. 아마 내가 죽는 날까지 그때의 기억이 나를 괴롭히겠지.
“가, 각하!”
그렇게 착잡한 심정으로 한숨을 내쉬던 중, 부관이 막사로 쳐들어왔다.
“왜 그래? 쿠데타 얘기는 이미 들었─”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내부대신이 저희를 팔았습니다!”
“엉?”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본국에 있는 동기에게 들은 말인데, 내부대신이 기존 대신들의 엄벌과 원정군 지휘부의 신병을 제국에게 넘기기로 약속했습니다!”
“…어?”
“그 대가로 제국과 아르메인이 국왕 전하에게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늘 무뚝뚝한 표정을 짓던 부관이 울분을 토하듯 소리쳤다.
“저희가 조국에게 버림받았는데!”
그 말에 나도 입을 열지 못했다.
‘시발.’
일단 내부대신의 심정은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제국과 아르메인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면 원정군은 작은 것에 불과하다는 거겠지. 정권을 장악한 내부대신은 이제 국가 전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그래도 씁쓸한 심정은 어쩔 수 없다. 원정군 사령관만 파는 거면 박수를 쳤을 텐데.
‘시발…’
최연소 군단장에서 최연소 전범이 되게 생겼다.
***
자고 일어나니 쿼로노스의 무조건 항복 소식이 서쪽에서 들려왔다. 쿼로노스에서 구국의 결단을 찍은 내부대신이 제국 외무성에 다이렉트로 대가리를 박았다고 한다.
‘이런 걸 노리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처음 쿼로노스의 쿠데타와 항복 소식을 들었을 때는 꿈인 줄 알았다. 최후 통첩을 거부해서 참다 못한 정상인이 들고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어. 그나마 쿼로노스 내부에 최후의 이성이 남아있어서 다행인 일이다.
게다가 내가 영혼까지 턴 알폰소는 제국의 포로로 전락했다고 한다. 알폰소 입장에서는 내가 조국의 내분을 유도하고, 자신마저 포로로 만든 괴물로 보이지 않을까?
‘포로라…’
턱을 매만지며 고심했다. 조국의 트롤링에 시달리고, 마지막에는 팔리기까지 한 인재.
이 정도면 내가 주워가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