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3)
로판 속 공무원 553화(554/945)
레온 왕국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제국과 아르메인의 위대한 결단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정당한 계승자를 잃은 아스투리아 가문의 가주는 히메니시아 가문의 가주에게 레온의 왕관을 양도하였고, 이를 히메니시아 가주가 받아들이며 평화적인 왕가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피도 흐르지 않았으니 실로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광경이라 할 수 있다.
“덕이 부족한 과인이 왕위에 오를 수 있던 것은 하늘의 뜻과 신민들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에 과인은 레온 위에 서는 자가 아닌, 레온을 대표하며 민의를 담는 그릇이 되고자 한다.”
“””국왕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
또한 새롭게 즉위한 레온 국왕은 처음 즉위를 권유받았을 때처럼 겸손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양국 원정군 수뇌부가 흡족한 미소를 지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레온의 평화를 위하여 양국의 군대가 무기한 레온에 주둔할 터인데, 국왕이 현명하고 신중한 자라면 삼국이 서로 편할 테니까.
[ 새로운 국왕은 스스로에게 덕이 없다고 하나, 진정 덕이 없는 자는 자신이 부족함을 모른다. 왕이 자신을 부덕하다 표하는 것은 아무리 덕이 넘쳐도 부족한 군주의 숙명을 이해하였기에 그러한 것이다. ] [ 이웃 국가의 혼란이 빠르게 수습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그동안 어색하였던 양국의 관계가 이 일을 계기로 따뜻한 태양 아래 나아가기를 기원한다. ]심지어 황제와 아르메인 국왕도 레온 국왕의 즉위식에 맞추어 축사를 보냈다.
이걸로 레온 왕국의 운명이 완전히 결정되었다. 레온이라는 국가는 제국과 아르메인의 공동 이권 지역으로 전락하였으나, 적어도 두 국가를 제외한 다른 국가의 시비나 침공을 받을 일 역시 사라졌다. 레온도 넓은 범위에서 보자면 제국과 아르메인의 연장선이 되었으니.
“같이 합을 맞출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사령관으로 영전하실 때 다시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즉위식과 간단한 사후 처리를 마치자마자 6군단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레온 왕국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 되는 나와 달리, 6군단장은 당분간 레온 주둔군 사령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는 거니까 인사 정도는 나누는 게 도리지.
“기쁘게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허나 근무 연장을 당한 6군단장의 표정은 칙칙하기보다 밝은 편에 가까웠다.아무래도 방면군 사령관 승진이 확정됐다는 걸 들은 모양.
그래, 귀국만 하면 승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근무 연장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 나도 퇴직이 확정되면 어떤 업무든 즐거운 마음으로 마무리 짓고 돌아갈 자신이 있다.
그럴 날이 오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럼 전 이만─”
“오, 두 분 다 여기 계셨군요!”
조기 퇴근이 이루어지기 직전, 이스케르탈 후작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제일 검께서 귀국하신다고 들었는데, 나름 합을 맞춘 사람끼리 그냥 헤어지는 건 섭섭하지 않습니까? 가볍게 한잔하시죠!”
그러고는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술을 들어 올리며 씩 입꼬리를 올렸다.
흐으으음.
“좋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언제 다시 만날지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짧은 고민 끝에 후작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만약 퇴근 시간 직전에 이랬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었겠지만, 아직 해가 중천에 뜬 업무 시간이니 가벼운 음주 정도는 업무의 연장으로 봐도 무방하다. 애초에 술 좀 마시다 헤어져도 조기 퇴근이라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크흐, 역시 제일 검이시라 그런가 술에도 강하십니다?”
“…근처에 피 대신 술이 흐르는 분이 계셔서 그런가 봅니다.”
그리고 점심 무렵에 시작한 술자리는 저녁이 다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시발 내 조기 퇴근이!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셋째 장인어른을 뵈러 갔다.
“사위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부디 마음 편히 받아주십시오.”
이번 출장 동안 알차게 파밍한 영지 중 일부를 드리기 위해서.
사실 처음부터 리제에게 주는 방법도 있지만, 아직 정정한 장인어른을 두고 리제에게 영지를 주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 딸이 백작령을 가졌는데 자기는 남작인 장인어른의 심정도 헤아려야 한다. 그것이 사위가 탑재해야 할 기본적인 센스.
“물론 국경과 가까운지라 지금은 번화한 곳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이제 레온은 이전과 달리 제국의 충성스러운 친우가 되었습니다. 국경이라는 단점은 오히려 양국의 상인들이 오고 가는 요충지로 변할 테니 시간만 지나면 레온의 수도권보다도 발전할 겁니다.”
“…….”
그리고 현재 영지의 단점과 앞으로의 비전까지 설명하자 장인어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사위의 성의에 감동하신 것 같아 절로 흐뭇해졌다. 세상 어떤 사위가 장인어른께 백작령을 선물로 바치겠어. 나이어드 가문 역사상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일이다.
“너무 과분한 선물이라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
한참을 침묵하신 장인어른은 당연하게도 한 번 튕기셨다.어차피 마지막에는 받게 되는 것이 선물이나, 그 전에 몇 번은 튕기는 것이 암묵적인 예의니까.
“전 이미 장인어른께 둘도 없을 보물을 받았습니다. 이런 걸 100개는 들고 와도 부족할 정도로요.”
귀찮은 예의지만 장인어른을 냅다 선물만 받아먹는 분으로 만들 수는 없기에 기꺼이 어울렸다.
게다가 하나뿐인 딸을 주신 분에게 널리고 널린 영지 중 하나를 드리는 것이 뭐가 대수겠나. 리제는 이 세상에 한 명이지만 내가 드리는 영지는 대체할 수 있는 곳이 많다.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정 부담스러우시다면 리제와 벚꽃이를 위해 잠시 맡아두신다 생각하셔도 됩니다.”
“맡아둔다라.”
자식과 손주까지 소환되자 난감한 기색을 보이던 장인어른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좋네. 내 기꺼이 맡아두도록 하지.”
탁자에 올려둔 인장이 장인어른의 품으로 들어갔다.
됐다. 이제 나이어드 가문도 타국에서나마 백작위를 가진 당당한 고위 귀족 가문이 되었다.
“그런데 타국에 있는 영지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아, 그건 제가 괜찮은 인물에게 집사장 자리를 맡겨뒀습니다.”
장인어른의 당연한 우려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알폰소 그 녀석. 군단장이기는 한데 주요 경력이 현장 지휘관보다는 참모를 중점으로 이루어졌더라. 의외로 행정이나 사무에 능통해서 놀랐어.
“물론 임시직이니 장인어른이 원하는 사람으로 교체하셔도 됩니다.”
“아니, 그건 됐네. 사위가 맡긴 사람이라면 내가 고르는 사람보다 뛰어나겠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 장인어른의 모습에 감동했다. 사위를 이렇게 믿어주는 장인어른에게 백작령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드릴 수 있다.
아니, 장인어른이 원하신다면 두 개나 세 개도 드릴 자신이 있다.
***
칼의 출장이 끝나면서 저택은 활기를 되찾았다.
지금까지 텔레포트로 출퇴근을 했기에 저택에 칼이 없던 날은 없었으나, 타국으로 먼 길을 가야 하는 남편과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남편은 다른 법. 가족들과 사용인들의 마음은 당연히 고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화목한 저택 속에서 나는 홀로 방에 앉아있었다.
“너희는 언제 엄마 얼굴을 보려고 이러니?”
태양이와 하늘이, 초목이가 언제 세상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랐으니까. 무려 셋이나 되는 아이들을 품고 있다 보니 이제는 거동조차 힘들만큼 배가 부르고 말았다.
오죽하면 요즘은 사용인들이 내 방까지 식사를 가져올 정도였다. 평소였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했겠지만, 이제는 거절할 수 없었다.
“엄마도 조금은 힘들단다.”
배를 쓰다듬으며 자고 있을 아이들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하나나 둘이면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셋이 한 뱃속에 오밀조밀 모여있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버거움을 느꼈다.
‘의사는 빨리 나올 수도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뭐라고 했었더라. 세 명이나 같은 공간을 쓰고 있으니, 성격이 급한 누군가는 답답해서 일찍 나오려 할 수 있다고 했었나?상당히 그럴듯한 말이라 납득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조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한정된 공간 내에서 서로 양보를 하고 지내는 것처럼 누구도 나올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엄마로서 자식들의 우애가 좋은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래도 이왕이면 좁은 곳에서 그러지 말고 넓은 곳에서 우애를 과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마님.”
그러던 중, 문밖에서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니?”
“시칠라 백작이 왔습니다.”
오늘도 집사장이 왔다는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 출산일이 가까워질수록 집사장은 작은 주군들의 탄생을 놓칠 수 없다며 매일매일 저택을 방문하고 있다. 집사장으로서의 업무는 제대로 하고 있나 걱정이 될 정도로.
“들어오라 하렴.”
“예, 마님.”
그래도 집사장의 정성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매일 만나주고 있다. 칼도 공작가의 충신이라며 좋게 보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고.
“각하를 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집사장은 나를 보자마자 허리를 숙였다.
언제나처럼 양손에는 무언가를 가득 든 채로.
“그건 뭐니?”
“작은 주군들께서 입으실 옷입니다.”
“옷은 얼마 전에도 가져왔잖니.”
“그때보다 날씨가 더워지지 않았습니까. 새로 구했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항변하는 집사장의 모습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날씨가 좀 더워졌으니 옷도 새로 사자.”
며칠 전에 칼이 같은 말을 했었으니까.
우리 태양이, 하늘이, 초목이. 너희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다.
‘이 엄마도 그래.’
그러니 이제 그만 나와주지 않으련? 같은 공간에서 너희끼리 노는 것도 좋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 것도 좋을 거란다.
그리고 너희보다 먼저 태어난 형, 어쩌면 오빠인 페디도 너희를 기다리고 있단다.
‘…넷이나 되는 아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일 사용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올해 말에는 다섯 번째 아이도 태어날 터. 점점 저택이 소란스러워질 걸 생각하면 마음이 따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