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5)
로판 속 공무원 555화(556/945)
산모와 아이들 전부 무사하다.
출산실 밖에서 무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남편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
그 한마디를 위해서라면 정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말.
“다만 한 명도 아닌 셋을 낳느라 많이 지치셔서 당분간은 거동도 힘드실 겁니다.”
“건강에 지장이 없는데 그 정도야 감수해야지.”
딱히 문제라고 할 것도 없는 주의 사항이라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의 말처럼 하나도 아닌 무려 셋을 낳았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남들이 겪는 고통의 세 배를 하루 만에 겪은 것인데, 그 여파로 거동이 불편한 건 당연한 일이다.
“아, 그리고.”
“또 뭔가 있나?”
빨리 트릭시와 아이들을 보러 가고 싶지만 의사의 말이 끝나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무시하고 들어가기에는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의 말이잖아. 의사의 말을 무시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은 없다.
“…아뇨, 아닙니다. 이건 각하께서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빙그레 미소를 지은 의사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내가 방에 들어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다.
“흐으.”
그리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의사가 웃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쌍둥이 아니랄까 봐.’
자신들이 세상에 나왔다는 걸 증명하듯 우렁차게 울고 있는 세 자매는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고 말았다. 막 태어난 아기들이 무언가를 잡을 만큼의 힘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엘프의 피가 흐르니까 평범한 인간하고는 다를 수도 있지, 아암.
“카알…”
홀린 것처럼 세 자매의 합창을 보는 사이, 트릭시의 목소리가 들려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내 정신 좀 봐. 가장 고생했을 사람을 먼저 챙겨야 했는데.
“고생 많았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없어?”
서둘러 트릭시 곁으로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잡으니, 트릭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까지는 아팠지만… 이젠 괜찮단다. 저 아이들을 보니 기쁘기만 해…”
배시시 웃는 트릭시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트릭시 덕분에 세 천사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트릭시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에 감사하다.
저 아이들의 태명을 신의 권위로 삼은 덕에, 평소에 신에게 잘 보인 덕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게 믿는다.
“참, 칼.”
“응, 말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연 트릭시를 향해 바짝 머리를 가져다 댔다.
트릭시가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금의 각오라면 황제의 대가리도 치고 올 수 있을 것 같다.
“하늘이가 첫째, 태양이가 둘째, 초목이가 막내란다.”
“응?”
그 말에 아직도 울고 있는 세 아이에게 시선이 갔다.
그러니까 하늘이, 태양이, 초목이 순서로 태어났다고?
‘어떻게 안 거지?’
조금 부끄러운 말이지만 태양이가 누구고 하늘이가 누구고 초목이가 누군지 구분하는 건 포기하고 있었다. 애초에 뱃속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지목해서 태명을 지어주는 건 불가능하잖아. 내가 트릭시 뱃속을 본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이들을 부를 때는 누군가를 따로 지목하지 않고, 그냥 셋을 한 번에 불렀다. 괜히 지목해서 부르면 어제까지는 태양이었던 애가 오늘은 하늘이가 될 것 같아서.
하지만 트릭시는 그걸 구분해냈다. 이게 아버지는 가질 수 없는 모성의 힘인가?
“난 마나를 느낄 수 있잖니. 아무리 쌍둥이라도 고유의 흐름이 있는 법이란다.”
“아.”
감탄과 동시에 자괴감이 몰려왔다.
즉 트릭시가 세 아이를 완벽히 구분하고 있을 때, 나는 그걸 못 해서 셋을 동시에 부르고 다녔다는 거잖아.
‘이 아빠가 미안하다.’
나한테는 저 아이들이 자라서 ‘아빠 미워!’ 라고 해도 슬퍼할 자격조차 없다.
부부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다른 사람들도 방에 들어왔다.
“고생 많았다, 정말 고생 많았어.”
특히 외조모님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트릭시를 부드럽게 끌어안으셨다.
외조모님의 속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타들어가고 있었을 거다. 혹시 외손녀가 출산 중에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외손녀마저 먼저 간 딸을 따라가는 게 아닌가 하는 초조함을 느꼈을 테니까.
다행히 그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그러니 외조모님이 참았던 눈물을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
“딸의 출산을 보지 못한 못난 어미가… 그래도 외손녀의 출산은 지킬 수 있었구나.”
그 중얼거림에는 죄책감과 안도감이 뒤섞여있었다.
“언젠가 외증손녀들 출산도 보셔야죠.”
“…그, 그래. 그래야지.”
트릭시 나름의 위로에 외조모님은 잠깐 침묵하시더니 겨우 입을 여셨다.
무슨 심정이실지 알 것 같아 웃음이 나올 뻔했다. 트릭시의 결혼과 임신으로도 문화 충격을 겪은 외조모님인데, 이제는 외증손녀까지 결혼을 하게 된다? 아마 외조모님의 상식이 연달아 무너지는 꼴이 아닐까.
물론 외조모님은 인간과 엘프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인지하고 계신 분이기는 하나, 이성과 감정이 늘 일치하는 법은 아니다.
“저, 주인님.”
그렇게 외조모와 외손녀의 기묘한 대화를 보던 중, 집사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밖에 계신 분들에게도 소식을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밖?”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가 나지막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랬지. 저택 밖에도 트릭시의 무사 출산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널려있었지. 아이들이 태어났다는 것에 홀려 그새 까먹고 있었다.
“주인님이 괜찮으시다면 제가 둘째 마님의 소식을─”
“아니, 됐어. 내가 나가서 말할게.”
집사의 말에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집사는 내가 가족들과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배려를 하는 거겠지만, 지금은 내가 나서서 말하는 것이 맞다.
트릭시와 세쌍둥이의 탄생을 자신들의 일처럼 여기고 간절히 기도를 하던 사람들이다. 남편인 내가 직접 감사를 표해야 저들의 노고에 응답할 수 있을 터.
“아, 연회도 간단하게 준비해. 손님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잖아.”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집사를 보다가 나도 걸음을 옮겼다.
트릭시는 다른 가족들이 잘 보살피고 있고, 세쌍둥이도 벌써부터 온갖 귀여움을 받고 있다. 나 하나잠깐 자리를 비워도 지장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감사만 표하고 금방 돌아오자.
***
장관이 급히 저택으로 돌아간 후부터 나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마종공의 자식들이 태어나는 순간이며, 거의 120년 만에 카토반 공작가의 일원이 늘어나는 순간이다. 황제로서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대륙 각지의 마법사들이 하나둘 장관의 저택 앞에 집결 중이라는 보고마저 올라왔다. 아마 마법사들만의 통신망으로 마종공이 진통을 시작했다는 정보를 접한 모양.
‘범상치 않은 것들만 모였군.’
그 와중에 자기들끼리 갈 사람을 선정했는지, 마법계에서 명망 높은 자들만 얼굴을 보였다. 선별되지 않은 다수가 우르르 몰려갔다면 곤란했을 테니 실로 다행이다.
그렇게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서류를 억지로 보며 시간을 보낸 결과, 정말 간절히 원하던 소식이 들려왔다.
– 마종공이 무사히 출산을 끝냈습니다. 아이는 셋 전원 건강하며, 이제 출산으로 소모한 기력을 되찾기만 하면 된다고 감찰성 장관이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산모도 아이들도 무사하다는 소식이.
‘됐다.’
궁내성 장관의 보고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샤를로테가 태어났을 때도 이 정도로 안도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내가 초보 아빠라 혼자 긴장한 거지, 객관적으로 보면 황후도 황태녀도 무사할 게 당연한 순간이었으니까.
허나 셋을 동시에 출산하는 건 뛰어난 제국의 의료 체계로도 불안한 일. 그 위기가 무사히 넘어갔으니 제국의 홍복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오늘은 장관도 마종공도 이래저래 정신이 없을 테니, 선물은 내일 보내도록 하지.”
– 영민하신 판단입니다, 폐하.
바쁠 때 받은 선물은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법. 기껏 준비한 선물이 잊혀질 바에는 느긋하게 내일 보내는 것이 옳다.
그런 명령을 내리자마자 옆에 방치해두었던 서류에 손을 뻗었다. 이제야 나도 마음 놓고 업무를─
“헌데 장관. 아이들의 이름은 정해졌나?”
문득 든 의문에막 고개를 숙인 궁내성 장관에게 물었다. 장관의 성격상 아이들의 이름은 경우의 수대로 생각해두었을 터.
– 예, 폐하. 첫째가 마리아, 둘째는 세실리아, 셋째가 카틀레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카토반 공작가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이름이 튀어나왔다.
마리아, 세실리아, 카틀레아라.
‘혼자 지은 이름은 아니군.’
장관의 감수성으로는 나올 이름이 아니다.
***
저택 밖에 있던 마법사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자 제도 전체가 울릴 정도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솔직히 좀 쫄았다. 광신도들 사이에 던져진 정상인이 된 기분이었어. 만약 적으로 만났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튀었을 거다.
“칼.”
“아, 마르.”
그렇게 마법사들에게 감사 인사와 연회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다시 방으로 복귀하자 마르가 반겨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갑자기 창문이 울리더라고요.”
“마법사들.”
“아.”
짧은 단어였지만 마르는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에게 있어 마종공 주니어 x3의 탄생은 인생에 둘도 없을 경사니까.
“후후, 다들 깜짝 놀랐어요. 기껏 잠든 애들이 다시 깨면 어쩌나 하고요.”
“잔다고?”
그러고 보니 방에서 나갈 때만 해도 복도까지 들리던 울음소리가 지금은 들리지 않았다. 설마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잠들었을 줄은 몰랐는데.
“가서 보세요. 페디랑 다른 귀여움이 있으니까요.”
그 말에 망설이지 않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확실히 아들하고 딸은 다른 귀여움이 있는 법이지.
“…오.”
그리고 여전히 서로의 손을 잡은 채 귀를 쫑긋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쉽다. 엘프들에게 있어 귀가 그렇고 그런 의미만 아니라면 만져볼 텐데.
‘조금 짧긴 하네.’
비율상 혼혈인 트릭시보다도 짧은 귀를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하프가 아닌 쿼터라 귀 길이도 쿼터가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