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6)
로판 속 공무원 556화(557/945)
트릭시가 출산한 이후로 저택에 방문하는 손님이 늘어났다.
정확히는 경비병들이 지키는 정문까지 다가왔다가 짧게 기도를 하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생겼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손님들의 정체는 전부 마법사였다.
‘성지순례냐고.’
물론 마법사들 입장에서는 정말 성지순례를 하는 심정으로 오는 걸 거다.
존경하는 마법계 대선배께서 아이들을 낳았다고 하니 축하는 하고 싶으나, 그렇다고 막 출산을 끝낸 사람을 귀찮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법. 그렇기에 그 사이 타협점으로서 이 기묘한 성지순례 문화가 탄생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기도만 하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마종공 각하와 그 여식분들을 잘 지켜달라며 경비병들에게 용돈을 주고 간다고 한다. 실로 기묘한 일이다.
“어째 우리 페디가 태어났을 때보다 더 소란스러운 것 같네.”
“우우?”
“그래도 다 페디가 보살펴야 할 예쁜 여동생들이니, 질투하면 안 된다?”
“아우!”
품에 안고 있는 페디의 볼을 매만지며 말하자 페디는 방실 웃으며 답했다.
귀엽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한 건 아니겠지만, 아비의 마음으로는 장남이 여동생들을 위해 다부진 대답을 하는 걸로 보인다.
그래, 우리 페디라면 멋지고 듬직한 오빠가 될 수 있을 거다. 나와 마르를 닮은 아이라면 분명 그렇게 자라겠지.
‘공작의 오빠가 제국백이라.’
다만 유일하게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오빠가 여동생보다 낮은 작위를 물려받을 예정이라는 것. 혹시 애들끼리 다투다가 ‘난 나보다 작위가 낮은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같은 말이 나오면 어떡하지?
그럴 일은 없을 거라 믿지만 괜히 불안하다.페디도 공작가의 피가 흐르는 혈통인 데다 제국백 작위를 물려받을 예정이나, 공작은 어떤 혈통을 가져와도 상대할 수 없는 무적의 타이틀이니까.
‘마리아가 순한 아이로 자라기를.’
그러니 우리 마리아, 우리 장녀.
가문과 제국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순하고 착한 아이로 자라주렴. 네 태명으로 붙은 하늘은 태초의 신이면서도 온화했었어.
“아우우─”
“왜 그러니? 여동생들을 보고 싶니?”
“우우!”
갑자기 칭얼거리는 페디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세쌍둥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페디는 동생들을 보는 걸 좋아했다.특히 자면서도 쫑긋거리는 귀를 뚫어져라 쳐다봤었지.
‘솔직히 귀엽긴 해.’
나도 그 아이들의 귀를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진짜 엘프들의 귀가 그렇고 그런 의미만 아니라면 수백 번은 더 만졌다.
트릭시가 어느 정도 기력을 차린 후.
“작년부터 작은 주군들께서 지낼 방을 준비해뒀습니다.”
카토반 공작가의 집사장인 시칠라 백작이 큰 공을 쏘아 올렸다.
“지금은 공작 각하와 부군 각하께서 신혼이시고 작은 주군들께서도 너무 어리시지만, 언젠가는 공작령에서 지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려 세쌍둥이들의 거주지 논쟁이라는 공을.
그 말을 듣자마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얼얼했다. 진작에 고려했어야 할 문제를 이제야 눈치챘다.
‘어디서 지내야 하는 거지?’
아빠와 엄마가 둘 다 영지 보유자면, 그 자식들은 대체 어디에서 지내야 하는가.
사실 원론적으로 따지면 세쌍둥이는 세르베트 공작령에서 지내야 하는 게 맞다. 이미 그 아이들의 성은 크라시우스가 아닌 카토반으로 정했고, 카토반 공작가의 아이들이 세르베트 공작령에서 지내는 건 가신들과 영민들 입장에서 ‘당연한’ 일이다. 훗날 자기들을 다스릴 공작이 다른 동네에서 자라다 오면 좀 그렇잖아.
하지만 머리와 달리 가슴은 인정하지 못했다. 내 소중한 딸들을 타지에 보내야 한다고? 같은 저택 내에서 물고 빨아도 부족한 아이들을?
“…그냥 제도에서 지내면 안 되나?”
“저희 가신들이야 언제든 제도에 올 수 있으니 괜찮지만, 영민들은 100여 년 만에 소공작을 맞이하는 상황입니다.”
영민들의 민심을 생각하면 무조건 세르베트 공작령으로 와야 한다는 말에 절로 침음이 새어 나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옳은 말이다. 귀족 가문의 후계는 같은 귀족들만 신경 쓸 거라는 인식과 달리, 영주 가문의 후계는 그 지역 영민들에게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야 자신들을 다스리는 영주 가문이 후계 없이 단절된다면 다른 가문이 개입할 텐데, 주인 없이 버려진 영지를 탐낼 귀족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렇다면 졸지에 자신들의 터전이 귀족들의 각축장으로 전락하는 참사가 터지는 거다.
그렇기에 우리 마리아가 물려받을 세르베트 공작령의 안녕을 생각하면 제도가 아닌 세르베트에서 지내는 게 맞다.
‘세르베트…’
침통한 심정으로 나와 떨어져 지낼 세쌍둥이의 모습을 상상했다.
가신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귀여움을 받는 세쌍둥이, 영민들의 환호를 받는 세쌍둥이, 역대 세르베트 공작들의 가호를 받는 세쌍둥이.
아빠랑 따로 떨어져 지내서 아빠를 낯설어하는 세쌍둥이, 아빠가 놀러오면 울음을 터뜨리는 세쌍둥이, 가신들의 등 뒤에 숨어서 아빠를 향해 어색하게 인사하는 세쌍둥이.
…
“내 딸들을 데려가려거든 날 죽이고 데려가라.”
“예, 예?”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시칠라 백작이 당황했다.
그래도 내 뜻은 변함이 없다. 이산가족이 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딸들에게 있어 어색하고 낯선 아빠가 되는 건 참을 수 없다. 내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하며 얻어낸 아이들인데, 절대 그럴 수 없다.
“자식은 아빠가 지켜야 한다! 그 애들이 아카데미 입학하기 전까지는 옆에 두고 지낼 거야!”
처절한 울부짖음에 시칠라 백작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백작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영지를 생각하면 아이들을 데려가야 하나, 친부가 이 난리를 피우니 어찌 난감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인이라면 한 번 정도는 죽어도 물러날 수 없는 전장을 겪는 법. 지금의 나에게는 이 순간이 그 전장이다.
“…저기, 칼?”
내 당당한 선언에 침묵을 지키던 트릭시가 입을 열었다.
“사실 외할머니께서도 엘프 주거 지구에서 아이들을 기르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단다.”
“…….”
그 말에 뜨겁게 타오르던 투지가 거짓말같이 가라앉았다.
외조모님이 상대면 좀 버거운데.
마침 세쌍둥이니 한 명은 제도, 한 명은 세르베트, 한 명은 엘프 주거 지구에서 기르자─ 같은 미친 결론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저 이산가족이 되기 싫은 누군가의 결의, 영민들이 아이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는 시칠라 백작의 양보, 간간이 얼굴만 비쳐도 충분하다는 외조모님의 부탁이 어우러져 ‘1년 중 일정 기간은 세르베트와 엘프 주거 지구에 있기’ 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솔직히 그 일정 기간도 양보하고 싶지는 않았으나, 내가 우리 딸들을 아끼는 것처럼 가신들과 외조모님도 마찬가지지 않나. 어느 정도는 양보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길이다.
그래, 분명 그런데…
“이 애들하고 따로 살아야 한다고?”
울었다. 손을 꼬물거리며 잠에 든 아이들이 깰까 봐 마음으로 울었지만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이 아이들하고 헤어질 수 있을까.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당장 가는 것도 아니고 5살부터잖니. 그것도 길어야 한 달이고.”
트릭시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애석하게도 슬퍼하는 건 나 혼자였다. 엄마인 트릭시가 내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면 5살이 아닌 10살, 1년 중 한 달이 아닌 1주로 바꿀 수 있었을 텐데.
“칼, 조금 추해요.”
허나 조곤조곤한 마르의 결정타에 마음이 꺾였다.
그 마르의 눈에도 추해 보일 정도면 대체 얼마나 꼴불견인 걸까. 거울을 보기 두려울 정도다.
망할.
***
우울한 얼굴로 마리아와 세실리아, 카틀레아를 바라보는 칼의 모습에 미소가 그려졌다.
아비라는 존재는 아들보다 딸에게 더 약하다고 하던데, 칼을 보면 사실인 것 같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는 독립을 할 아이들인데.’
그래서인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세르베트는 제도와 붙어있는 지역인 데다 타일글레헨 백작령과도 가깝기에 떨어져서 지내니 뭐니 할 정도로 먼 곳이 아니다.게다가 체네스 공작령에 위치한 엘프 주거 지구조차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금방 갈 수 있다.
그럼에도 칼은 저렇게 어쩔 줄 몰라하며 동요하고 있다. 훗날 아이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기절할 기세로.
‘…입학은 할 수 있을까?’
본인 말로는 아카데미 입학 전까지 옆에 두고 지낼 거라지만,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가 되면 집에서 가르치겠다며 붙잡고 있지 않을까?
그건 곤란하다. 차기 세르베트 공작과 그 자매가 될 아이들에게 미취학이라는 이름을 줄 수는 없다.
“트릭시.”
“아, 응. 왜 그러니?”
진지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이, 칼의 목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얘들도 나랑 떨어지기 싫은가 봐. 이렇게 꽉 잡고 있어.”
그 말에 슬쩍 칼과 아이들을 쳐다봤다.확실히 세실리아의 손이 칼의 손가락을 잡고 있기는 했다.
‘뭘 줘도 잡던데.’
하지만 아이들은 아빠의 손가락이 아닌 하녀의 장난감도 손에 들어오면 잡는 법. 오히려 칼의 안쓰러운 면모만 더욱 부각되었다.
슬프지만 웃음이 나왔다. 적어도 칼이 우리 아이들에게 사랑을 덜 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아빠의 사랑이 무거운 아이들이 질색할지언정, 아이들이 애정을 갈구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카틀레아도 잡았다…”
감동한 듯 중얼거리는 칼의 곁으로 다가가 마리아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 와중에 언니라고 동생들에게 아빠의 손가락도 양보하는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부디 이대로 쭉 자라렴.’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잘 때도 서로의 손을 잡는 사이 좋은 자매로.
아빠와 가신들, 외증조할머니가 서로 데려다가 기르고 싶은 사랑스러운 아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