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57)
로판 속 공무원 557화(558/945)
세쌍둥이가 태어난 이후로 황제에게 소소한 놀림을 받고 있다.
“먼저 결혼한 건 짐인데, 어째 자식은 장관이 더 많이 보는군.”
자신보다 몇 년이나 늦게 결혼한 주제에 자식은 네 배인 기적의 남자. 그게 황제의 주요 놀림거리였다.
“폐하께서는 오직 황후 폐하만 보는 분이시나, 소신에게는 여섯이나 되는 부인이 있지 않습니까.”
“비겁하게 숫자로 변명하지 말게. 자네는 부인이 한 명이었어도 짐보다 자식이 많았을 거야.”
낄낄거리는 황제의 모습에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그렇거든.
페디를 무사히 낳고 둘째를 노리고 있는 마르, 한 번에 세쌍둥이를 낳은 트릭시,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가진 리제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황후보다 자식을 많이 낳으면 낳았지, 적게 낳을만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쯤 되면 스스로가 두렵다. 한 번이나 두 번은 우연이라고 볼 수 있지만 세 번 연속으로 이런다? 단순히 운이 좋은 수준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다.
‘진짜 신의 축복인가.’
그것도 무려 세 신의 축복. 단순 계산하면 남들의 세 배.
그래, 세 배면 인정이지.두 배 이벤트도 혜자라고 부르기 충분한데 세 배면 오죽하겠나.
“아무튼 장관을 보다 보면 짐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네. 황실의 번영을 이끌어야 할 황제가 신하보다 못하면 곤란하지.”
농담처럼 말하는 황제였지만 제법 진심이 섞여있을 거다.
너무 많은 황족은 황실의 분열로 나아갈 수 있으나, 황족이 적은 것도 곤란하다. 당장 30년 전만 하더라도 리브노만 황가의 직계가 단절되지 않았던가. 다행히 방계를 뒤지고 뒤진 끝에 상황이라는 희대의 군주가 튀어나와 망정이지, 재수 없었으면 리브노만 황가와 크펠로펜 제국은 30년 전에 서비스 종료를 맞이했을 터.
그렇기에 방계 리브노만의 두 번째 가주이자 젊은 가주인 황제는 황실과 제국을 위해 많은 자손을 보아야 한다. 적장녀인 황태녀 하나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방계라도 있으면 마음이 놓일 텐데.”
그리고 직계가 단절된 리브노만이 방계라는 스페어를 찾은 것처럼, 현 황가도 새로운 방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 아인테르라거나 이드라펜 후작이라거나 황제의 유일한 동생이 만든 가문이 방계가 되겠지.
…아인테르?
“그러고 보니 이드라펜 후작과 바란디가 후작 영애의 일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근래 폭풍과도 같은 일들이 휘몰아쳐서 거의 잊고 있던 일을 언급했다.
황족이자 이드라펜 후작인 아인테르, 북방 유일 후작인 바란디가 후작의 유일한 자식인 샤티. 둘의 혼인은 이전부터 논의되었는데, 정작 현재 상황은 어떤지 아는 게 없다. 내 결혼으로도 바쁜데 남의 결혼을 어떻게 신경 쓰겠어.
“음? 모르나?”
“송구하오나 소신은 근래 신성교국이나 레온 왕국 같은 타국을 전전하느라─”
“모를 수도 있겠군. 대륙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장관이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수는 없지.”
빠른 태세 전환에 도로 입을 다물었다.
저 새끼가 그래도 티끌만 한 양심의 가책은 가지고 있어 다행이다. 만약 ‘바란디가 후작 영애는 장관의 관할인데 왜 모르나?’ 같은 말을 했다면 뒤엎었어.
“아인테르는 며칠 전에 바란디가 후작령으로 갔다네.”
“…예?”
허나 이어지는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황제 일가를 제외하면 유일한 황족인 아인테르가 내 관할 영역에 왔는데, 그걸 며칠 동안이나 몰랐다고?
‘아니 시발.’
왜 진짜 몰랐지?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바란디가 후작은 사소한 일도 꼬박꼬박 보고하는 사람인데?
‘아.’
이윽고 아인테르가 후작령으로 갔다는 시기를 다시 떠올렸다.
며칠 전이라면 트릭시가 세쌍둥이를 낳느라 고생하고, 세쌍둥이의 거주지 문제를 격렬하게 논하던 시기.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시기.
‘듣고 까먹었구나.’
아니면 아예 듣지 못한 걸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이렇게 흐를 줄은 몰랐다.
***
이상해.
이상해, 이상해.
이럴 리가 없어, 이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어.
‘왜 계속 지는 거야…!’
오늘도 땅바닥에 쓰러진 채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로 두 자릿수 패배 전적 달성이라는 경이로운 업적을 세우고 말았다.
납득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바란디가 부족의 후계자로서 단련한 내가, 초원을 달리며 바람과 함께한 내가.
‘이제 막 검을 잡은 사람한테!’
언제나처럼 열받는 미소를 지은 채 다가오는 이드라펜 후작을 보며 이를 갈았다.
이드라펜 후작이 단련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코웃음만 쳤었다. 나와 대련을 해보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을 뗄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내 예상과 완전히 반대였다.
“오늘도 즐거운 대련이었습니다, 영애. 역시 영애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군요.”
“감사, 합니다.”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발언에 울컥했지만 덤덤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후작은 승자고, 나는 패자니까.
‘…어떻게 이렇게 강한 거지?’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의문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물론 이드라펜 후작이 제국 아카데미에서 대륙 제일 검인 타일글레헨 백작의 가르침을 받았다고는 들었지만, 스승의 능력보다 중요한 건 제자의 역량이다. 아무리 비옥한 땅이어도 씨앗이 망가졌다면 백날이 지나도 결실을 맺을 수 없다.
그런데 후작은 고작 1년 남짓 한 시간 만에 초원의 전사인 나를 아득히 능가했다. 이건 후작의 재능과 노력이 부족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결과다.
‘정원 속 꽃이라고, 생각했는데…’
혼란스럽다. 황궁이라는 대륙에서 제일 안전한 공간에서 자란 후작이, 모두의 보호를 받으며 자랐을 후작이 이렇게 강하다니. 어릴 때부터 검을 휘두른 나보다 빠르게 재능을 개화하다니.
뭔가 억울하기까지 하다. 황족으로 떵떵거리며 살았을 사람에게 저런 재능까지 있다고? 치열하게 초원에서 살아온 나는 뭐가 되는 건데.
‘진짜 싫어.’
너무 싫다. 뻔뻔하게 웃는 후작도, 나보다 강한 후작도 싫어.
그리고 후작을 비웃은 주제에 계속 지고 있는 나는 더 싫어.
“오늘도… 좋은 대련 감사했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후작에게 의례적인 감사를 표했다.
후작과 눈을 마주치면 눈물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
황급히 도망치는 영애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투박하고 솔직한 사람. 자기감정을 숨기는 데 능숙하지 못한 조금 어리숙한 사람.
‘귀엽군.’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즐거워지는 사람이다. 눈빛 하나, 말 한마디로도 상대를 가늠하는 귀족들이 아닌 저렇게 투명한 사람을 보니 절로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각하.”
그렇게 멀어지는 영애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하하, 알고 계셨습니까?”
그러자 우리의 대련을 몰래 지켜보고 있던 바란디가 후작이 나타났다.
사실 자력으로 바란디가 후작의 기척을 느낀 건 아니다. 대련 중에 우연히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면 계속 눈치채지 못했겠지.
“장인어른께서 지켜보시는데 사위로서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알고 있던 척 웃어넘겼다.
엄밀히 따지면 후작은 나와 영애의 일을 몰래 염탐하다가 들킨 상황이니까. 이렇게 알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해야 후작이 안심한다.
“아이고, 장인이라니요! 너무 황송한 말씀입니다!”
예상대로 다소 어색했던 바란디가 후작의 표정이 급속도로 풀렸다.
‘역시 영애는 부친을 닮았어.’
그리고 영애처럼 투박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이는 바란디가 후작의 모습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며칠 동안 대화를 나누며 파악한 결과, 바란디가 후작은 황족과 이어진다는 것보다 사위가 생긴다는 것 자체에 기뻐하는 사람이다. 내가 황족이 아니었어도 격하게 환영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처음에는 의문이었다. 제국의 후작이 되기 전에도 한 부족의 장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하나뿐인 딸의 배우자를 아무나 고를 리는 없지 않나.
하지만 고작 며칠 사이에 그 의문이 해결되었다.
‘유일한 자식이 미혼으로 죽을까 걱정이었겠지.’
영애의 성격은 조금 드세다. 약혼자나 다름없는 내가 할 생각은 아니나, 내가 아니었다면 정상적인 결혼이 불가능했을 거다.
그러니 바란디가 후작 입장에서 나는 자신의 딸과 가족을 구할 구원자나 마찬가지.
“샤티 저 녀석도 이드라펜 후작 각하처럼 마음을 열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바란디가 후작은 나와 영애가 아주 약간의 충돌을 보일 때마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혹여나 나라는 기회조차 날아가면 어쩌나 걱정을 하는 것처럼.
“하하, 시간이 해결할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걸 위해 이 바란디가까지 온 것이고요.”
허나 후작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영애가 틱틱거리는 모습을 보여도 마음을 거둘 생각이 없다. 황족으로서 진 의무를, 곁에 있으면 재밌는 사람을 벗을 생각이 없다.
지금은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영애가 나를 인정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고 인내하는 것. 그 정도는 나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인내라고 할 것도 없지.’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은 인내가 아닌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을 나 혼자가 아닌 영애가 누릴 수 있는 날까지 기다리자.
아무래도 영애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를 즐겁게 하려는 생각인가 보다.
“각하. 괜찮으시다면 같이 사냥이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이글거리는 눈으로 활을 들고 있는 영애.
그 뜨거운 눈 속에는 반드시 이기겠다는 다짐이 보였다.
‘사냥이라.’
이번에는 영애가 머리를 쓴 것 같다. 검을 중점으로 배우느라 활과 승마는 교양 수준으로만 익혔는데, 유목민인 영애와 사냥 승부를 겨루면 내 필패지 않겠나.
“좋습니다.”
그래도 고민은 짧았다.
“드넓은 초원에서 즐기는 사냥은 더욱 각별하겠군요.”
어제 대련이 끝난 후, 푹 고개를 숙였던 영애를 떠올리니 망설임은 사라졌다.
가끔은 영애가 이기게 둬야 밝은 영애의 얼굴을 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