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60)
로판 속 공무원 560화(561/945)
아인테르가 바란디가 후작령에 갔다는 걸 알게 된 후, 매일 바란디가 후작과 연락을 나누며 아인테르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솔직히 가만히 둬도 후작이 알아서 잘 할 확률이 높다. 후작 입장에서 아인테르는 예비 사위이자 절대 자기 영지에서 다치면 안 될 귀빈이지 않나.
그래도 북방은 내 관할 영역. 아인테르가 뭐 하고 지내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마수, 말입니까?”
그리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위기를 마주했었다.
오붓하게 사냥을 나간 아인테르와 샤티가 하필 재수도 없게 던전 마수와 조우했다는 미친 위기를 말이다.
‘시발.’
순간 눈앞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지만 금방 정신을 다잡았다.
다행히 아인테르는 상처 하나 없고, 샤티도 금방 치료를 받아 후유증이 없다고 한다. 마수를 만난 순간부터 운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로 수습할 수 있다.
– 죄송합니다, 백작.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자 통신구 너머의 바란디가 후작은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평소였다면 바로 말렸을 테지만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아직도 입이 열리지 않았다. 나도 이렇게 당혹스러운데 후작은 말할 것도 없을 터.
“긴 세월 동안 방치된 북방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던전이 있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필 그 던전 중 하나가 사냥터에 있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나, 이는 인재가 아닌 천재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렇기에 굳게 닫힌 입을 억지로 열며 후작을 위로했다.
이건 막을 수 있었던 인재가 아닌 재수가 없는 천재였다. 만약 후작을 비롯한 북방 대영주들이 던전 토벌에 소홀했다면 격노해도 될 사안이나, 북방 대영주들이 얼마나 던전 토벌에 열을 올리는지는 파벌장인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래, 이건 단순히 운이 안 좋았다.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 그리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위로에 후작의 안색이 조금은 밝아졌다. 그래도 차마 숨길 수 없는 착잡함이 깃든 것을 보면 아직도 심란하다는 것이겠지만.
이해한다. 아인테르라는 특급 귀빈이 다칠 뻔한 것도 문제지만, 딸이 죽을 뻔했는데 어느 아비가 덤덤할 수 있을까. 나도 무려 셋이나 되는 딸을 동시에 얻은 입장이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참, 이드라펜 후작은 사냥 중에 일어난 일이니 신경 쓰지 않겠다 하셨다고요?”
– 아, 예.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황제 폐하께는 제가 보고드리겠습니다. 후작께는 피해가 가지 않게 잘 말씀드릴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놀랐을 영애를 보살펴 주십시오.”
내 배려에 후작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아인테르가 불문에 부치겠다고 해도 제국의 정보력은 결코 허술하지 않다. 언젠가는 황제 귀에 들어갈 텐데, 그럴 바에는 내가 보고해서 후폭풍을 최소화하는 게 낫지.
‘빌어먹을 도르곤.’
이윽고 연락이 끊기자마자 거칠게 한숨을 내쉬었다.도르곤이 북방에 던전을 만들고 다닌 건 아니나, 토벌해야 마땅한 던전을 막사 겸 창고로 사용한 광기 때문에 이런 일이 터진 것 아닌가.
그러니 이번 사건은 그놈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죽은 도르곤이 산 칼을 엿 먹이는구나.’
하여간 징한 새끼가 따로 없다.
***
다쳤던 왼팔은 깔끔하게 치료됐다.
그래도 한동안 격한 움직임은 자제하라는 조언 때문에 멍하니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다.
“내가 너 추하게 사냥이니 뭐니 할 때부터 말렸어야 했다.”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잔소리와 함께.
“다행히 이드라펜 후작이 이번 일을 사냥 중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넘기고, 타일글레헨 백작께서 직접 수습한다고 하셔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영지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뻔했지 않냐.”
“죄송해요…”
하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이번만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도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맞다. 내 고집 때문에 후작이 조금이라도 다쳤다면 아버지와 부족, 영지 전체가 큰 책임을 질 뻔했다. 만약 후작이 다치는 수준을 넘어 죽기라도 했다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았을 거다.
“이제 무슨 면목으로 너와 후작의 결혼을 지지해야 할지.”
이어지는 아버지의 중얼거림에 흠칫 몸을 떨고 말았다.마치 나와 후작의 결혼을 포기한다는 말처럼 들렸기에.
“주선해 준 백작께는 죄송하지만, 이런 일이 앞으로도 생길 거라면 차라리 포기─”
“자, 잠깐만요!”
“할 말 있으면 누워서 해라.”
급히 몸을 일으키자마자 아버지가 내 어깨를 누르며 도로 침대에 눕혔다.
“…저기, 아버지.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네 말을 믿느니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걸 기다리고 말지.”
시큰둥한 아버지의 반응에 손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불안하다. 아버지가 당장이라도 후작에게 가서 ‘저희 딸이 후작께 너무 어울리지 않는 철부지니 결혼은 재고하는 걸로 하죠.’ 라는 말을 할까 무섭다.
어제의 나라면 아버지의 반응을 기꺼워했겠으나 이제는 아니다. 이제야 후작이 내가 원하던 이상적인 반려자라는 걸 깨달았는데, 내가 그동안 못나게 군 걸 사과하기도 전에 헤어져야 한다고?
물론 내가 한 행동을 생각하면 헤어진다는 말도 과분하지만…
‘아무튼 안 돼!’
어쨌든 안 된다. 영원한 푸른 하늘께서 못난 나에게 후작 같은 사람을 내려주셨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째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다. 확신할 수 있다.
“저, 저 진짜 앞으로 안 그럴게요. 후작께 툴툴거리지도 않고, 정말 친절하게 대할 자신 있어요!”
“그것도 잠깐이다. 지금이야 미안한 마음이 앞서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걸?”
이미 마음이 떠난 것처럼 뒷목을 긁적거리는 아버지를 보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다.
평소에는 내가 그렇게 싫어해도 밀어붙였으면서! 이제 내가 밀겠다는데 왜 아버지가 당기려는 거야!
“차라리 네가 진심으로 미안할 때 정리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 그럼 적어도 마지막 모습은 좋게 남을 테니까.”
“마지막 아니에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빼액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진짜… 진짜 잘할 수 있단 말이에요오오…”
진심을 담아 말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은 불편했다.
아니, 사실 이상하지 않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고 있잖아.
‘이렇게 떼를 쓰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지금껏 내가 보인 행실 때문에 아버지는 내 말을 믿지 못할 거다. 이제 와서 잘한다고 한들 믿음이 가지 않을 거다. 오히려 아버지랑 후작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까. 바로 옆에 있던 보물을 돌멩이처럼 취급한 내 업보니까.
허나 그렇다고 포기하면 난 또 후회할 거다. 이미 후회할 짓을 해놓고 두 번이나 그럴 수는 없어.
“제가 후작께 무례했던 건 알아요. 후작께서 저에게 실망을 하셨을 수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요.”
“그걸 아는 녀석이 지금까지 그랬다고?”
“그, 그러니 이제는 제가 전부 감수할게요! 후작께서 저를 무시하고 밀어내셔도, 그분이 저를 싫어하셔도 물러나지 않을게요! 그분이 저를 기다린 것처럼!”
훅 들어오는 아버지의 지적에 황급히 말을 마무리했다.
급한 마무리였지만 하고 싶은 말은 전부 했다. 내가 무례했음에도 후작이 인내한 것처럼, 이제는 내가 인내할 시간이다. 후작이 나를 무시해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다.
***
‘사람은 위기를 겪어야 변한다.’ 오랜 옛날부터 이어진 격언이자 나 역시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다고 죽기 직전까지 가서야 변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지만, 그래도 변한 게 어디인가.
‘고집은 세도 변덕이 심한 애는 아니지.’
샤티의 방을 나온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샤티가 후작에게 틱틱거리고 시큰둥할 일은 앞으로 없을 거다.
비록 그 이유가 죄책감 때문인지, 뒤늦은 연심 자각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뭐 어떤가. 정략으로 시작했더라도 부부로 지내다 보면 애정이 쌓이는 법. 어차피 연애결혼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니 정략이라도 좋은 남편을 만난다면 감지덕지다.
유일한 변수가 있다면 정작 후작의 마음이 변했을 수 있다는 것이기는 한데,
“오, 장인어른.”
샤티의 방에서 나오자마자 반겨주는 후작을 보니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영애는 좀 괜찮습니까?”
“늘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녀석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해서 불편한 것 같지만, 그걸 제외하면 멀쩡합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웃음을 터뜨린 후작은 이내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사냥터에서 돌아온 후부터 계속 샤티의 상태를 걱정한 후작이다. 지금의 샤티가 자신을 보면 부끄러워할 거라며 병문안도 자제하는 후작이다.
그런 후작이 샤티를 포기했을 리 없다. 아까 샤티에게 결혼 포기 운운한 것도 한 번 떠본 거였지.
“그건 그렇고 영애께서 저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 같아 감동했습니다. 역시 노력하면 빛을 보는 법이군요.”
그 와중에 방 밖에서 나와 샤티의 대화를 들은 듯,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는 후작의 모습에 나 역시 마주 미소를 지었다.
사실 나도 감동했다. 드디어 딸의 결혼이 임박한 것 같으니까.
“그 기념으로 영애께서 완전히 회복된다면 같이 제도에라도 갈까 싶습니다. 영애가 수락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고, 샤티도 당연히 좋아할 겁니다!”
“하하, 장인어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용기가 생기는군요. 조만간 권해보겠습니다.”
연이은 희소식에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고맙다, 하양아.’
그리고 속으로 후작에게 빌려주었던 하양이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양이 덕분에 후작이 샤티를 구할 수 있었고, 하양이 덕분에 샤티가 후작에게 마음을 열었다. 하양이가 딸의 목숨을 구함은 물론 나의 근심까지 해결해 준 거다.
‘앞으로 하양이 식사는 최고급만 준비하자.’
만약 하양이가 원한다면 북쪽 만년설산의 눈을 녹인 물만 마시게 할 자신도 있다.
우리 가족의 은인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