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vil Servant in Romance Fantasy RAW novel - Chapter (564)
로판 속 공무원 564화(565/945)
두 남녀가 한 침대에 누워있다면 아침 짹짹 기상이 국룰이다.
– 좋은 아침일세, 장관.
물론 그 짹짹이 동네 참새의 지저귐이 아니라 황금공의 목소리가 될 줄은 몰랐다. 공작이 직접 해주는 모닝콜이라니, 너무 과분하잖아.
– 어제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가?
“각하의 배려 덕에 그보다 좋을 수 없었습니다.”
– 그거 다행이로군. 그래야 해변까지 빌려준 보람이 있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황금공의 모습에 조용히 침대에서 벗어났다. 대화 소리 때문에 곤히 자고 있는 린이 깰 수도 있고, 혹여나 각도가 어긋나면 린의 모습이 통신구에 잡힐 수도 있다.
“각하께 받은 배려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부담스러운 소리 말게. 이건 배려를 한 게 아니라 정당한 대가를 준 거야.
황금공스러운 대답이라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번에 해변을 빌려준 것은 내 결혼식을 통해 얻은 대가에 대한 보답이지, 결코 선의로 인한 배려가 아니라는 선 긋기.
다소 예민한 반응 같지만 그만큼 거래에 철저한 양반이니 어쩔 수 없다. 괜히 배려인 척했다가 내가 정말로 보답을 해버리면 황금공 입장에서는 줘야 할 보답이 두 배로 늘어나는 꼴이니까.
‘입 닦아도 될 위치인데.’
볼 때마다 신기하다. 공작이자 제국 경제의 거물이니 만큼 사소한 건 그냥 먹고 튀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오히려 황금공에게 무엇이라도 먹이기 위해 안달인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황금공은 사소한 것에도 철저히 대가를 지불하며, 무언가를 그냥 주거나 받는 경우가 없다. 어쩌면 황금공의 황금은 돈을 좋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황금 같은 인성을 표현한 게 아닐까?
다만 주고받는 것에 예민한 만큼 피해를 받는 것에도 확실하다. 자신이 1의 피해를 받으면 100만큼 돌려줄 정도로.
‘피해라…’
무심코 침대에 있는 린을 쳐다봤다. 지금은 집행부장으로서 열심히 구르고 있는 3과장이 요룬 가문을 오인 사격했을 때, 빠르게 수습하지 않았다면 감찰부가 탈탈 털릴 뻔했지.
하지만 그 사건이 구르고 굴러 린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옛날 사람들 말 중에 틀린 게 없어.
– 이런, 용건만 말한다는 게 사담이 길어졌군.
“편히 말씀하십시오, 각하.”
황금공의 말에 다시 통신구로 시선을 돌렸다.
아침부터 공작이 직접 연락한 것이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내가 예비 부인과 온 것을 아는 황금공이기에 무리한 요구는 아니겠지만, 간단한 일도 아니─
– 해변을 빌려준 건 어제 하루였네. 오늘도 놀다 갈 거라면 다른 관광객들과 함께 써야 할 거야.
“아, 예. 명심하겠습니다.”
– 그래. 그럼 수고하게. 다음에는 결혼식 때 보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통신이 끊겼다.
…
‘체크아웃 안내였네.’
공작이 직접 해주는 모닝콜에 이어 체크아웃 안내.
너무 과분한 서비스라 실소가 나올 것 같다.
바다에서 바다 만들기를 한 이후로 린의 표정은 한여름의 태양처럼 밝아졌다.
실로 다행인 일이다. 이걸로 새신부가 결혼식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있는 참사는 막았다. 현직 감찰성 장관과 결혼하는 사람이 우울한 기색을 보이면 뭔가 권력에 팔려간 비운의 여주인공 같잖아. 우리는 나름 연애결혼이라고.
“부인이 여섯이면 연애가 아니라 정략이라고 보는 게 정상이긴 하지.”
황제의 덤덤한 시비에 순간 울컥했다.
우리의 사랑이 조금 이상하게 시작했다는 건 인정하지만, 어떠한 외압도 없이 순전히 우리의 의지로 시작된 사랑이다. 감히 그것을 정략이라고 하는 건 황제라도 용서할 수 없다.
“황금공은 열둘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나보다 부인이 두 배나 많은 사람도 있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그야 황금공은 공작이지 않나. 공작이 정략을 위해 부인을 늘릴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
그렇게 말한 황제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장관이 공작이라면 온 대륙이 장관의 연애를 인정하겠지.”
“아무리 제국백이라도 천명을 지탱하는 공작과 비교할 수는 없지요.”
탐스러운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눈빛에 황급히 꼬리를 말았다.
내가 공작이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황제도 알고 우리 집 티티도 안다. 황제가 저렇게 중얼거리는 이유 역시 가능성이 없는 일이라 편하게 말하는 거지, 단 1%라도 여지가 있었다면 조용히 준비했을 놈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본능적인 공포가 몰려왔다.
‘망할.’
서글프다. 그동안 얼마나 황제에게 시달렸으면 이런 걸로도 쫄아버릴까. 마치 아빠가 ‘너 말 안 들으면 티라노사우루스가 물어간다?’ 라고 위협하는 말에 움츠러든 아이가 된 기분이다.
“헌데 장관, 이번 결혼식도 신부의 고향에서 치른다고 했었나?”
“예, 폐하. 플란벨 백작령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래도 애써 정신을 부여잡으며 황제의 질문에 답했다.
마르는 어쩌다 보니 제도에서 결혼식을 올렸지만, 트릭시와 리제는 신부의 영지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이왕 전통 같은 전통이 쌓이는 중이니 린도 무난하게 플란벨에서 하는 게 낫지. 에리와 할 때는 이오네스 후작령에서 할 예정이다.
“장관.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줬으면 하네.”
“마지막 결혼식 장소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 말에 잠깐 움찔한 황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전부 귀족인 다른 부인들과 달리, 아직 피네는 평범한 기사이자 고향이 불타오른 고아다. 신부의 영지라고 할 만한 곳이 존재하지 않기에 피네와의 결혼식은 어디서 진행할지 궁금했던 거겠지.
‘최소한의 선은 지키는 새끼.’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나를 놀리거나 엿 먹일 때는 한 대 한 대가 치명타인 주제에, 가족과 관련된 문제니 눈치와 양심을 챙기고 있다.
“여섯 번째 부인과 처음 만난 곳이 북부라 위리디아 백작령을 생각 중입니다.”
“위리디아? 타일글레헨이 아니라?”
“거긴 동생이 쓸 수 있게 양보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던 황제도 픽 웃음을 흘렸다.
“마음씨 넓은 형이로군. 하디네르 남작이 기뻐하겠어.”
그렇게 말한 황제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더니 나에게 건넸다.
“이건 동생에게 양보할 줄 아는 형을 위한 짐의 선물일세.”
‘이런 씹.’
황제가 건넨 것은 인장이었다.
이번에도 그 망할 놈의 인장이었다.
“아, 장관에게 주는 게 아닐세. 여섯 번째 부인에게 주는 거지.”
꿈틀거리던 트라우마가 이어지는 말 덕분에 가라앉았다.
“이제 페넬리아 경도 부장급 관료이지 않나. 그런 고위 관료가 여전히 기사인 건 이치에 맞지 않고, 그동안 쌓은 공도 적지 않지. 계승 남작위 정도야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선물이라네.”
“…황송한 말씀입니다만, 폐하께서 친히 하사하셔야 할 물건을 어찌하여 저에게…”
“얼굴 볼 일도 적은 황제보다 남편이 주는 걸 더 기뻐하지 않겠나?”
어깨를 으쓱인 황제를 보다가 인장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상황에게는 과거 애실론 가문이 쓰던 후작의 인장을, 첫째 장인어른께는 리잔슈타트 공작의 인장을 받았었다. 남에게 받는 인장은 귀찮은 일과 함께 딸려온다는 기묘한 징크스가 생긴 상황이었다.
그 징크스가 마침내 깨졌다. 처음으로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는 인장을 받게 되었다.
“영지는 위리디아 백작령과 가까운 곳이니 관리하기도 편할 거야.”
위치도 적당해서 더욱 만족스러웠다.
***
영주성은 날이 갈수록 분주해졌고, 통신구는 쉴 새 없이 빛을 뿜었다.
– 이제 며칠 후면 훌륭한 사위를 얻으시겠군요. 축하드립니다.
– 제가 이리나 영애를 본 적은 몇 번 없으나, 볼 때마다 그 총명함에 놀라고는 했습니다.
– 하하, 안 그래도 탄탄하던 요룬 백작가의 앞날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만나던 친우들, 업무적으로 긴밀한 파트너들, 간혹 인사만 나누던 지인들까지. 가리지 않고 나에게 연락을 하기 바빴다.
이 상황이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고위 귀족이자 황금공 각하 파벌의 중견으로서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기는 했으나, 이제는 중견이 아닌 핵심 수뇌를 대하는 듯한 태도다.
‘그 울타리에 진입하기는 했지.’
통신구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창문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도 성의 정문을 통하여 수많은 마차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래, 딸의 결혼 한 번으로 나와 가문의 격이 몇 단계나 올랐다. 현 제국 실세를 사위로 둔 덕분에, 사위와 연을 맺은 가문들이 우리 요룬 가문과도 이어질 예정이기에.
‘바렌티, 카토반, 살론.’
사위와 얽힌 공작가를 떠올리니 헛웃음이 나왔다. 두 공작가의 남편이자 한 공작가의 외조카라니, 이게 한 명이 가질 수 있는 혈연이란 말인가.오죽하면 후작가 중 1, 2위를 다투는 마살로 후작가가 평범하게 보일 정도다.
그리고 우리 요룬 백작가가 그 가문들과 얽히게 되었다. 내 입지가 급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군.’
씁쓸했다. 돈을 다루는 상인이라면 세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할지언정, 적어도 그 뒤를 바짝 쫓아가야 한다. 그래야 드넓은 세상 속에서 황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변한 덕분에 위치가 변하고 있다.
물론 싫다는 건 아니다. 소중한 딸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가 제국에 둘도 없을 사윗감이다. 선조부터 이어진 가문은 더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경사를 싫어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였으면 재앙이었다.’
허나 세상이 급변하여 내 입지가 넓어졌듯, 세상이 갑자기 나를 핍박할 수도 있다. 내 힘이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군가 가져가도 이상하지 않다.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지.’
그러니 정신을 다잡자. 운으로 올라간 자리여도 지키는 것만큼은 내 실력으로 지켜야 한다.사위 덕을 본 장인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딸을 팔아 영광을 얻은 놈이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이 딸을 위한 아비의 당연한 도리일 테니.